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13
18:17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우리말 성경이 ‘부’라고 번역한 그리스어는 ὁ τοσοῦτος πλοῦτος입니다. ‘호’는 정관사 the이고, 토수토스는 great라는 뜻이며, 플루토스 rich나 wealth입니다. ‘호 토수토스 플루토스’는 단순히 부가 아니라 거부, 즉 큰 부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이 토수토스가 생략되었습니다. 번역자의 실수인지, 알면서도 그렇게 번역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말 <새번역>과 <공동번역>은 ‘그렇게 많던 재물’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어쨌든지 위 문장은 요즘 표현으로 ‘슈퍼 리치’가 한순간에 망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속담에는 부자는 망해도 3년은 먹을 것이 있다는 말이 있긴 합니다.
요한계시록의 묵시적 세계관은 이 세상의 멸망을 전제합니다. 세상을 매우 비관적으로 보는 겁니다. 인간의 악이 너무 심각해서 고쳐서 쓸 수는 없고 하나님이 직접 개입해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지나치다는 느낌이 드나 근본에서는 그들의 생각이 잘못된 건 아닙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을 보십시오. 노년층의 빈곤율과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고 합니다. 인간의 물질적인 욕망에 기초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도태되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체제 아래에서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비관론에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의 창조로 보기에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세상을 포기하거나 부정하지 않습니다. 인간만 보면 비관적이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낙관적입니다. 묵시 사상은 전자에 무게를 두었다면 그리스도교 종말론은 후자에 무게를 둔 것입니다.
어쨌든지 슈퍼 리치가 속히 망한다는 말을 순전히 종교적인 것으로 치부하지 말고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슈퍼 리치라고 떠들어봤자 그들이 소유한 재산에는 큰 능력이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재물도 우리의 죽음을 늦추지 못합니다. 약간 늦출 수는 있으나 막지는 못합니다. 그 차이가 미미합니다. 더구나 돈으로 사랑을 얻을 수 없고, 돈이 많아도 시인이 되지 못하며, 천만금이 있어도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떤 부자 청년에게 재물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절대적인 경험에 이르는 데는 재산이 오히려 걸림돌이라는 뜻입니다. 돈을 관리하느라 영혼이 피곤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는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생명이니 구원이니 하는 골치 아픈 이야기는 모르겠고, 그냥 돈이나 실컷 쓰면서 화려하게 살다가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기억해둬야겠습니다.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