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살에다시읽는
요한계시록-336
19: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마지막 때 심판의 주님으로 재림하실 예수에게는 또 하나의 이름이 따라옵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입니다. 영어 번역이 더 실감 날 겁니다. ‘KING OF KINGS, LORD OF LORDS’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중 부활 단락에서 합창단이 이 문장을 반복합니다. 저도 청년 시절 교회 합창단에 끼어서 함께 노래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로마 제국의 황제가 아니라 십자가에 달렸으나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그리고 종말에 생명을 완성하러 다시 오실 예수님만이 주님이고 구원자이고 메시아라는 외침입니다. 왕의 왕, 주의 주!
이런 신앙 전통을 이어받은 오늘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사는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개인에 따라서 다르니까 일반화할 수는 없으나 다음의 한 가지 사실만 짚으면 충분합니다. 예수를 왕들의 왕이고 주들의 주라고 믿는다면 세상의 왕들과 세상의 주들에게서 완전히 해방된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세상의 왕들과 주들은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들로는 우리 영혼이 만족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판사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교수가 된다고 해도 그것 자체로 영혼의 만족을 충만하게 느끼는 사람은 없습니다. 미모와 건강과 행복한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멋있어 보여도 잠정적이고 무상한 것으로 우리가 어떻게 충만해질 수 있겠습니까.
이런 설명이 멀게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돈과 돈을 가능하게는 권력과 각종 재미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으니까요. ‘돌로 빵을 만들라.’는 요청을 수없이 들으니까요. 솔로몬의 영광만이 삶의 기준으로 강요되고 있으니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면 될까요? 여기에 어떤 뾰족한 답변은 없습니다. 매일 자기를 부정하고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사는 게 최선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십자가에 처형당했으나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예수와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가 ‘아빠 아버지’라고 불렀던 그분을 참되게 신뢰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최소한 일용할 양식만은 보장된 세상이 되도록 서로가 노력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돈독해도 일용할 양식이 없는 일상을 버텨내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도 ‘돌로 빵을 만들라.’는 마귀의 요구를 듣고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게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빵만으로 사는 건 아니지만 빵이 없어도 된다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그리스도인 정치인의 역할도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