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9일 귀신이 순종하는 언어의 능력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막 1:27)  

마가복음이 전하고 있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건 중에서 시몬 형제와 안드레 형제를 제자로 삼은 것 말고는 최초의 이야기가 바로 이 회당 사건입니다. 이 회당에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이걸 한 마디로 줄이면 ‘언어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언어는 앎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동시에 능력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사람은 권위 있는 앎을 경험했으며, 귀신 축출이라는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 안고 있는 존재론적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귀신에게 명령을 내리자 귀신이 순종했다는 마가복음의 보도는 곧 이런 언어의 존재론적 능력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치유를 설명하는 다른 경우에는 예수님이 어떤 동작을 하셨지만 여기서는 단순히 말로 꾸짖고 명령을 내리기만 했습니다. 이런 데 관심이 있는 분들은 예수님이 일으키신 초자연적 사건 중에서 동작이 곁들여진 사건과 단지 말씀으로만 일으킨 사건을 분류해보십시오. 거기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귀신까지 순종할 수밖에 없는 예수님의 ‘언어’는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당연히 귀신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대답은 틀린 건 아니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정확한 대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추정해볼 뿐입니다. 예수님은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에 완전히 일치함으로써 그것에 합당한 언어 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사람의 언어는 그가 어떤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노름꾼으로 사는 사람들의 언어는 노름꾼의 세계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름의 능력을 행사합니다. 소위 고스톱에서 사용되는 언어인 고, 싹쓸이, 피박 같은 언어는 그것을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의 정신을 노름으로 끌어들입니다. 시인들의 언어는 사람들을 그런 시적 상상력 안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할머니들이 들려주던 옛날이야기는 아이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심어줌으로써 훗날 작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에 일치하신 예수님의 언어는 바로 그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존재론적으로 담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존재론적 능력이 예수님의 언어라는 말은 곧 예수님이 곧 하나님과 일치한다는 뜻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요한복음 1:1절의 말씀도 이 사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로고스이며, 그 로고스로 존재하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아직 그리스도교 신앙의 깊이로 들어오지 않으신 분들에게 이런 말은 말장난처럼 들릴지 모르겠군요. 그렇지 않다는 사실만 알아두십시오. 그리스도교는 언어의 존재론적 능력을 처음부터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만 알아두십시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언어로 기록된 성서에 계시되었다고도 말합니다.
어쨌든지 오늘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귀신을 제압한 예수님에 관한 보도를 읽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각성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드러내는 언어인지, 가리는 언어인지, 사랑의 능력을 드러내는 언어인지, 감추는 언어인지 말입니다. 가능한대로 우리의 언어가 더러운 귀신을 몰아낼 수 있는 능력을 확보했으면 합니다.

주님, 귀신도 순종할 수밖에 없는 예수님의 언어가 바로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임을 믿습니다. 아멘.

바우로

2006.06.10 08:21:17

그리스도의 신성이 강조된 보수적인 성서해석이라는게 아쉽습니다.기적설화를 그리스도의 인성의 측면에서도 볼 수 있지 않을런지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06.06.10 23:36:37

그리스도의 신성이 강조된 보수적인 성서해석?
저의 성서해석에 대한 재미있는 해석이군요.
그렇지 않아도 자유주의적인 목사라고 핀잔을 들을 때가 많았는데,
이제 나도 나이가 들은 탓인지
보수적으로 변했군요.
바우로 님,
사진이 가족인가요?
앞의 꼬마는 아들 같아보이는데요.

바우로

2006.06.15 12:11:13

글세요..목사님은 자신이 보수적으로 변했다고 하셨지만, 아직은 진보적인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애굽기를 실화라고 믿고, 성서고고학적인 해석을 단죄하는 근본주의자들에 비한다면 훨씬 진보적이십니다.
참, 앞의 꼬마는 아들이 아니라,교우님중 한 분의 아들입니다. 제가 워낙 애들을 좋아해서,신부님 그리고 전교우들과 교회에서 단체로 부활주일 기념사진을 찍을때, 꼬마를 안고 사진을 찍은 것이지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sort 조회 수
6341 6월2일- 권위 있는 가르침 [1] 2006-06-02 5000
6340 6월2일- 권위 있는 가르침 2006-06-02 1994
6339 6월3일- 귀신들린 사람 [1] 2006-06-03 3877
6338 6월3일- 귀신들린 사람 2006-06-03 2178
6337 6월4일- 예수의 행위와 정체 2006-06-04 3621
6336 6월4일- 예수의 행위와 정체 2006-06-04 2224
6335 6월5일- 잠잠하라. [3] 2006-06-05 4367
6334 6월5일- 잠잠하라. [3] 2006-06-05 2088
6333 6월6일-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2006-06-06 3752
6332 6월6일-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2006-06-06 1779
6331 6월7일- 귀신 발작 2006-06-07 3874
6330 6월7일- 귀신 발작 2006-06-07 2087
6329 6월8일- 서로 묻다. 2006-06-08 4070
6328 6월8일- 서로 묻다. 2006-06-08 1975
6327 6월9일- 귀신이 순종하는 언어의 능력 [4] 2006-06-09 3617
» 6월9일- 귀신이 순종하는 언어의 능력 [3] 2006-06-09 1934
6325 6월10일- 예수의 소문 2006-06-10 3475
6324 6월10일- 예수의 소문 2006-06-10 1818
6323 6월11일- 시몬 형제의 집 [1] 2006-06-11 3995
6322 6월11일- 시몬 형제의 집 2006-06-11 1712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