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어록(044)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아들인 예수를 세상에 보내셨다.’는 표현은 신화적이지만 실제로는 시()적이다. 신화와 시가 명백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세상의 신비를 한편으로는 신화적으로 표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적으로 표현했다. 두 장르가 교차되기도 한다. 신화가 시적인 문장으로 표현되고, 시가 신화의 옷을 입기도 한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다음과 같다. 신화의 주인공은 반신반인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시의 주인공은 온전한 인간 형태로 나타난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신화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때도 예수의 온전한 인간성을 약화시키지 않았다. 예수는 온전한 인간(vere homo)이다.

심판과 구원은 한 사건을 두 가지로 표현한 것이다. 인자(人子) 개념은 심판에 포커스가 맞춰진 것이라면 메시야는 구원에 포커스가 맞춰진 개념이다. 구원이 생명의 밝은 면이라면 심판은 생명의 어두운 면이다. 예수를 통한 구원 경험이 너무 절실하기에 거기서 배척되는 사태를 심판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13절에 마지막 심판자를 가리키는 인자라는 용어가 나오지만 요한은 그것마저 구원의 관점에서 보았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구원보다는 심판에 기울어진다. 거친 말로 지옥이 두려워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거나, 심리적인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인생과 신앙생활을 마치 살얼음판 위에 선 사람처럼 대한다. 목사들은 간혹 인간의 약한 심리에 근거해서 선정적인 말투로 공격하는 설교를 한다. 이런 설교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신자들은 자기를 학대하거나 합리화하거나 미화한다. 또는 자기 밖의 대상을 공격한다. 그것이 한국교회에는 동성애자들과 이슬람교와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 현상으로 나타난다. 동성애자들은 그런 모습으로, 이슬람교도들도 그런 모습으로, 공산주의자들 역시 그런 모습으로 예수를 통한 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왜 가능한지도 알지 않겠는가.


[레벨:8]복서겸파이터

2019.02.09 17:45:05

목사님. 오랜만입니다. 늘 평안하시지요? 월터 윙크의 'Human Being'을 열린 마음으로 다시 도전하여 읽어보았습니다. 저는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분 자체가 예수세미나의 영향을 받은 분이라서 그런지 인자의 개념을 융의 분석심리학과 연결시켜 인간이 도달해야할 영적인 자아 정도로 해석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인자 개념을 Apocalyptic하게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던데, 목사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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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9.02.09 20:33:26

예, 반갑습니다.

이 다이나믹한 세월 속에서 다른 이들에게 미안한 정도로

저는 평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월터 윙크의 신학 사상을 저는 잘 모르니

그가 어떤 생각으로 인자 개념을 묵시적으로 해석하는 걸 경계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인자 개념을 묵시적으로 해석하는 걸 경계했다기보다는

묵시사상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한 거겠지요.

인자 개념은 묵시사상에서 온 것이기에 가타부타 말할 것은 없습니다.

묵시 사상도 큰 틀에서 보면 역사철학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과 개입으로 악한 이 세상(ald aeon)이 완전히 망하고

새로운 세상(new aeon)이 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무자비한 제국을 경험한 히브리 선지자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들이 세상은 선악이원론으로 본다든지 하는 문제가 있긴 하나

새로운 에온에 대한 강렬한 희망은 기독교의 종말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 힘이 있어요.

당연한 말을 너무 길게 했군요.

대답- 인자 개념은 경계하고 말고가 없이 묵시적인 역사관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초월적인 심판에 의해서 역사 단절을 통한 새로운 세상이 올 수 있다는 과격한 사상이

역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기독교 신학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는 논의가 더 필요하겠지요.

[레벨:8]복서겸파이터

2019.02.09 21:17:39

목사님. 빠른 답변 감사드립니다. 


제가 말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당연히 인자개념은 묵시사상에서 나온 것이지요. 


그런데 월터 윙크의 저 책은 한기연에서 '참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어 나와있는 책이더라구요. 그래서 저 책을 원서로 찾아서 읽어봤는데, 부제가 예수와 사람의 아들의 수수께끼입니다. 


예수님이 왜 자기 자신을 인자로 지칭했느냐를 월터 윙크는 끝까지 천착했습니다. 여러 이론을 다 둘러보지만, 예수님이 본인을 지칭하실 때 1인칭인 '나'가 아닌 '인자'라고 하는 말을 쓰셨는지에 대한 자신만의 이론을 펼치는 것이무척 흥미로왔습니다. 제가 느낀 감상으로는 저 인자가 시편, 다니엘, 에스겔, 에녹서에 나오는 구약의 개념을 뒤에 초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통해 그렇게 새롭게 해석해 내었다는 해석은 물론 정설이지만, 예수님의 '인자'개념을 오히려 하나로 고정시켜버리는 부작용이 있다고 봅니다. 복음서를 분석해보면, 분명 예수님이 스스로 '인자'를 발화하셨고, 그 모든 '인자'가 묵시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한 사람으로서 본인의 인생을 온전히 살아내셨고,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음을 주셨다는 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인자의 참 뜻이라고 본다는 그의 주장도 저는 충분히 수긍이 갑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늘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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