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0일
Agnus Dei
대림절은 예수 재림만이 아니라 초림을 포함하는 절기다. 예수 초림에 따라다니는 인물은 세례 요한이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안드레는 원래 요한의 제자였다가 자기 형 시몬(베드로)와 함께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예수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은 네 복음서가 다 언급하고 있다. 초기 기독교에서 예수의 세례 건은 잘 알려진 사건으로 보인다. 예수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는 건 가능한 피하고 싶은 일종의 ‘불편한 진실’이었는데도 복음서 기자들은 그것을 숨기지 않는다. 세례 요한 추종자들이 초기 기독교에서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흔적이다.
세례 요한은 제자들에게 예수를 두 번에 걸쳐서 ‘하나님의 어린양’(Agnus Dei)이라고 말했다(요 1:29, 36). 어린양은 구약시대에 대표적인 속죄제물이다. 어린양이 제단에 오름으로써 인간의 죄가 용서받는다는 종교의식이 그 바탕에 있다. 예수의 죽음이 곧 인간의 죄를 용서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그누스 데이는 슬픔이면서 기쁨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 없이 죽은 사건이기 슬프지만 인간의 죄가 용서받는 사건이기에 기쁘다. 슬픔과 기쁨이 여기에 결합되어 있다.
예수의 죽음과 우리의 속죄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걸 주술적인 것으로 보면 곤란하다. 여기에는 예수라는 인격체의 고유성이 자리한다. 그는 하나님의 통치에 절대적으로 순종한 사람이다. 하나님 나라(통치)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자신의 실제 삶으로, 그리고 운명 전체로 생생하게 살아낸 사람이다. 하나님이 그에게 자기를 계시했다는 말이 이를 가리킨다. 그런데 그가 십자가에 처형당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십자가 처형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뜻이다. 하나님 나라에 완전히 일치되어 있는 자가 그 하나님에 의해서 버림받았다는 모순을 해명할 수 있는 길은 단 한 가지 밖에 없다. 그의 죽음은 인류 구원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생각했다.
바흐의 비단조 미사곡 중에서
'아그누스 데이'를 링크했습니다.
잘 들으시면 마음이 편안해질 겁니다.
가사를 못 알아들어서 문제지만,
곡과 연주자들의 표정과 태도만으로도
전달되는 게 많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5Ea4j-Si3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