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 대한 공부

조회 수 3700 추천 수 0 2013.08.13 22:41:47

나는 10대 중반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더 어릴 때는 교회에 나가는 동네 친구를 따라서
성탄절 즈음에 몇번 나간 정도다.
본격적으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뒤로는
이런저런 상황에 의해서 꾸준하게 교회 생활을 했다.
신학교를 나오고 전업 설교자로 살고 있지만 
기독교 자체에 대해서 실제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성격상 그냥 교회 조직에 성실했을 뿐이다.
그런 성실성이 나쁜 거는 아니지만
그것으로 충분한 거는 아니다.
그런 거로는 늘 구경꾼에 머물 뿐이다.
구경꾼은 호기심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그런 호기심으로는 기독교 영성의 중심으로 들어올 수가 없다.
청소년 시절, 젊은 목사 시절의 내가
구경꾼에 불과했다는 말은
기독교 자체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다.
겉으로야 그렇지 않지만 실제로는 그랬다.
이제 나는 구경꾼은 벗어난 것 같다.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날이 갈수록 더 많아진다는 게
그 증거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평신도들도 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신학자는 기독교라는 거대한 산을 올라가는 영적 산악인이다.
산을 오르려면 무슨 준비가 필요한가?
마음이 착하다고 해서 산에 오를 수는 없다.
체력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안 된다.
우선 산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를 알려고 마음을 쏟는 사람이 바로 신학자다.
신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신학자가 되는 게 아니다.
목사들은 오히려 신학자가 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목회의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라는 산을 앞에 두고
직접 힘 자라는데 까지라도 오르려고 하기 보다는
산 아래 주막집에서 술을 마시거나
작부들과 노닥거리면서 시간을 보낼 뿐이다.
(표현이 지나쳤으면 용서를 빈다. 안타까움의 표현이다.)
기본적으로 산에 대한 관심이 없다. 
산을 옆에서 감상할 뿐이다. 
어떤 사람이 산에 올랐다는 풍문에만 만족한다.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선전하는 일에 더 바쁘다. 
결국 산이 세계를 전혀 모른다는 뜻이다.
자신의 체력이 좀 약해도
낮은 지역부터 직접 산에 올라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높은 산도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산 아래 주막에서 노는 것이 아무리 재미가 있어도 
직접 산에 오르는 기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것을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를 것이다.
내가 도사처럼 말했는데,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기독교가 뭔지 좀 알고 교회에 다니자.

[레벨:18]르네상스

2013.08.14 10:59:33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제대로 된 신앙교육을 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예배도 잘 드리고 기도도 많이 하고 전도와 선교도 열심히 하고 헌금도 열심히 꼬박꼬박 내지만
교육을 체계적으로  못한 것 같습니다. 교리교육이라는 것을 물론 하긴 하지만 너무나 추상적이고 피상적인,
수박 겉핥기 식의 교리교육이고 목사의 설교도 성경본문과는 전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목사 개인의 신앙경험이나
간증, 세계관이나 인생관 등을 말하고 신자들은 그것들을 무분별하게 수용해 온 실수와 잘못이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는 한국사회의 정치, 문화적 배경도 있고 한국인 특유의 기질도 한몫 했다고 보고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 선교 초기부터 너무나도 편협한 '복음'을 한국인들에게 전달해서
평생 신앙생활하면서 오로지 '예수천당, 불신지옥' 외에는 아는 게 전혀 없는, 좋게 말하면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나쁘게 말하면 '무지몽매한' 신자들로 참 잘 길들인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의 짧은 소견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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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8.15 00:02:52

김종원 님의 짧은 소견이 아니라 
정확한 진단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그게 우리 앞에 놓인 숙제랍니다.

[레벨:18]天命

2013.08.14 18:09:04

 “목사들은 오히려 신학자가 되기 어렵다.”
 
저는 나이 40이 다 되어 기독교인이 됐고
생활의 패턴에 큰 변동이 생길 만큼 변화를 경험했습니다만,
목사가 안된 것 천만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비아를 알고 나서는 특히 그런 생각이 듭니다.
 
회심 이후 마음이 꼬치는 기독교서적 출판에 잠시 종사했었는데,
목사님들께 책을 전해 드리면, 그분들은 그걸 가지고
그저 설교거리만 찾는 데 급급한 모습들이었습니다.
수행자의 모습을 하고 대하는 분들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아마 제가 목사가 됐으면
저 역시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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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8.15 00:04:58

천명 님의 말씀대로 수행자의 모습을 목사님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는 게
한국교회의 가장 큰 위기이겠지요.
그건 또 개별 목사만의 책임이 아니라
교회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구요.
어떻게 하면 될지 현재 상황에서는
좀 깜깜합니다.
새벽이 가까웠나 봅니다.

[레벨:4]벅수

2013.08.14 22:49:37

 제가 어릴 때 부터 교회에서 받은 교육은 신화에 가까운 성경이야기를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고
목사님의 말씀을 그의 맹신하라고 배웠읍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그런것에 조금이라도 의심을 하면 불신앙이라고 배웠읍니다.

그런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것은 기독교역사 입니다.
한국에서도 그러겠으나 미국에 있는 신학교에서는 중요한 정규과정에 들어 있어
거의 모든 신학생들이 듣는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교회에서 그런 것들에 대해서 미국 목사님들도 거의 언급을 하지 않는 다고 하더군요).

물론 역사와 신학은 다릅니다. 역사는 여러가지 증거에 의거하여 논리 적으로 이론을 정리하는 것에 반하여
신학은 필요에 의하여 이론을 세워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요.  이것은 어느 신학 역사학자의 이야기 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를 떼어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대부분 교회에서는 이 두가지를 분리시켜 자기 자신들의 정당화 시키고 있다고 봅니다.

북한에서 역사를 왜곡하여 김일성 부자를 신성화 시키듯이
한국 교회에서는 교회 역사를 왜곡하여 현재의 자신들의 교회를 신성화 시키고 있다고 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율법의 역사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그저 지키라고 이야기 했을때
예수님 께서는 율법의 원래 목적을 말씀하셨읍니다.
그들이 율법의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면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지 못했으리가 생각됩니다. 
물론 신앙이 어린 교인들에게 기독교 역사를 가르치는 것에는  위험이 따를 수 있읍니다만,
역사교육이 기독교에 대한 공부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요소라고 봅니다.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13.08.15 00:10:28

벅수님은 교회사를 전공하시나 보군요.
역사 공부가 핵심이라는 벅수님의 말씀은 옳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와 신자들은 사는데 급급해서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답니다.
그런 걸 아는 것 자체가 귀찮은 겁니다.
지금 당장 기도 잘하고 봉사 잘해서 축복 받는 게 시급하거든요.
지금까지 그런 순진한 분들의 힘으로 한국교회가 성장하긴 했는데,
앞으로는 그게 잘 안되겠지요.
주님의 평화가...

[레벨:4]벅수

2013.08.16 00:02:04

 저는 목사님의 설교를 소중하게 듣고 감사하는 평신도입니다.
사람들의 위치가 바꾸어 지면서 원래의 뜻이 바꾸어 지듯이 
시간이 지나 가면서 신앙 선배의 의도가 왜곡되어 지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 왜곡되어 진 것들을 진리라고 하는 것을 볼 때,
예수님께서 당시의 유대 사회를 어떻게 보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안타까움으로 좋은 말씀을 해 주시는 목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평화가 항상 목사님과 함께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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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8.16 09:24:02

벅수님은 역사 공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평신도시군요.
인문학의 꽃은 역사공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역사 안에 모든 게 담겨 있으니까요.
성경도 역사적 산물이고,
예배도 그렇고,
기독교 자체가 그러니까요.
예수님도 역사적 인물이셨으니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오늘 우리도 그런 역사의 한 순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실질적으로 인식하면서 살도록 노력해야겠네요.
주님의 평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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