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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0대 중반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더 어릴 때는 교회에 나가는 동네 친구를 따라서
성탄절 즈음에 몇번 나간 정도다.
본격적으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뒤로는
이런저런 상황에 의해서 꾸준하게 교회 생활을 했다.
신학교를 나오고 전업 설교자로 살고 있지만
기독교 자체에 대해서 실제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성격상 그냥 교회 조직에 성실했을 뿐이다.
그런 성실성이 나쁜 거는 아니지만
그것으로 충분한 거는 아니다.
그런 거로는 늘 구경꾼에 머물 뿐이다.
구경꾼은 호기심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그런 호기심으로는 기독교 영성의 중심으로 들어올 수가 없다.
청소년 시절, 젊은 목사 시절의 내가
구경꾼에 불과했다는 말은
기독교 자체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다.
겉으로야 그렇지 않지만 실제로는 그랬다.
이제 나는 구경꾼은 벗어난 것 같다.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날이 갈수록 더 많아진다는 게
그 증거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평신도들도 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신학자는 기독교라는 거대한 산을 올라가는 영적 산악인이다.
산을 오르려면 무슨 준비가 필요한가?
마음이 착하다고 해서 산에 오를 수는 없다.
체력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안 된다.
우선 산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를 알려고 마음을 쏟는 사람이 바로 신학자다.
신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신학자가 되는 게 아니다.
목사들은 오히려 신학자가 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목회의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라는 산을 앞에 두고
직접 힘 자라는데 까지라도 오르려고 하기 보다는
산 아래 주막집에서 술을 마시거나
작부들과 노닥거리면서 시간을 보낼 뿐이다.
(표현이 지나쳤으면 용서를 빈다. 안타까움의 표현이다.)
기본적으로 산에 대한 관심이 없다.
산을 옆에서 감상할 뿐이다.
어떤 사람이 산에 올랐다는 풍문에만 만족한다.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선전하는 일에 더 바쁘다.
결국 산이 세계를 전혀 모른다는 뜻이다.
자신의 체력이 좀 약해도
낮은 지역부터 직접 산에 올라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높은 산도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산 아래 주막에서 노는 것이 아무리 재미가 있어도
직접 산에 오르는 기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것을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를 것이다.
내가 도사처럼 말했는데,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기독교가 뭔지 좀 알고 교회에 다니자.
제가 어릴 때 부터 교회에서 받은 교육은 신화에 가까운 성경이야기를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고
목사님의 말씀을 그의 맹신하라고 배웠읍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그런것에 조금이라도 의심을 하면 불신앙이라고 배웠읍니다.
그런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것은 기독교역사 입니다.
한국에서도 그러겠으나 미국에 있는 신학교에서는 중요한 정규과정에 들어 있어
거의 모든 신학생들이 듣는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교회에서 그런 것들에 대해서 미국 목사님들도 거의 언급을 하지 않는 다고 하더군요).
물론 역사와 신학은 다릅니다. 역사는 여러가지 증거에 의거하여 논리 적으로 이론을 정리하는 것에 반하여
신학은 필요에 의하여 이론을 세워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요. 이것은 어느 신학 역사학자의 이야기 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를 떼어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대부분 교회에서는 이 두가지를 분리시켜 자기 자신들의 정당화 시키고 있다고 봅니다.
북한에서 역사를 왜곡하여 김일성 부자를 신성화 시키듯이
한국 교회에서는 교회 역사를 왜곡하여 현재의 자신들의 교회를 신성화 시키고 있다고 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율법의 역사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그저 지키라고 이야기 했을때
예수님 께서는 율법의 원래 목적을 말씀하셨읍니다.
그들이 율법의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면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지 못했으리가 생각됩니다.
물론 신앙이 어린 교인들에게 기독교 역사를 가르치는 것에는 위험이 따를 수 있읍니다만,
역사교육이 기독교에 대한 공부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요소라고 봅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그의 맹신하라고 배웠읍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그런것에 조금이라도 의심을 하면 불신앙이라고 배웠읍니다.
그런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것은 기독교역사 입니다.
한국에서도 그러겠으나 미국에 있는 신학교에서는 중요한 정규과정에 들어 있어
거의 모든 신학생들이 듣는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교회에서 그런 것들에 대해서 미국 목사님들도 거의 언급을 하지 않는 다고 하더군요).
물론 역사와 신학은 다릅니다. 역사는 여러가지 증거에 의거하여 논리 적으로 이론을 정리하는 것에 반하여
신학은 필요에 의하여 이론을 세워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요. 이것은 어느 신학 역사학자의 이야기 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를 떼어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대부분 교회에서는 이 두가지를 분리시켜 자기 자신들의 정당화 시키고 있다고 봅니다.
북한에서 역사를 왜곡하여 김일성 부자를 신성화 시키듯이
한국 교회에서는 교회 역사를 왜곡하여 현재의 자신들의 교회를 신성화 시키고 있다고 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율법의 역사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그저 지키라고 이야기 했을때
예수님 께서는 율법의 원래 목적을 말씀하셨읍니다.
그들이 율법의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면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지 못했으리가 생각됩니다.
물론 신앙이 어린 교인들에게 기독교 역사를 가르치는 것에는 위험이 따를 수 있읍니다만,
역사교육이 기독교에 대한 공부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요소라고 봅니다.
한국교회는 예배도 잘 드리고 기도도 많이 하고 전도와 선교도 열심히 하고 헌금도 열심히 꼬박꼬박 내지만
교육을 체계적으로 못한 것 같습니다. 교리교육이라는 것을 물론 하긴 하지만 너무나 추상적이고 피상적인,
수박 겉핥기 식의 교리교육이고 목사의 설교도 성경본문과는 전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목사 개인의 신앙경험이나
간증, 세계관이나 인생관 등을 말하고 신자들은 그것들을 무분별하게 수용해 온 실수와 잘못이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는 한국사회의 정치, 문화적 배경도 있고 한국인 특유의 기질도 한몫 했다고 보고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 선교 초기부터 너무나도 편협한 '복음'을 한국인들에게 전달해서
평생 신앙생활하면서 오로지 '예수천당, 불신지옥' 외에는 아는 게 전혀 없는, 좋게 말하면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나쁘게 말하면 '무지몽매한' 신자들로 참 잘 길들인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의 짧은 소견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