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인 시(4)- 아무도 모른다

조회 수 4099 추천 수 0 2014.02.04 22:55:35

 

아무도 모른다

 

                                         김사인

 

 

 

     나의 옛 흙들은 어디로 갔을까

     땡볕 아래서도 촉촉하던 그 마당과 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개울은, 따갑게 익던 자갈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앞산은, 밤이면 굴러다니던 도깨비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도 의젓하던 옛 동네어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누님들, 수국 같던 웃음 많던 나의 옛 누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배고품들은 어디로 갔을까 설익은 가지의 그 비린내는 어디로 갔을까 시름 많던 나의 옛 젊은 어머니는

     나의 옛 형님들은, 그 딴딴한 장딴지들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의 옛 비석치기와 구슬치기는, 등줄기를 후려치던 빗자루는, 나의 옛 아버지의 힘센 팔뚝은, 고소해하던 옆집 가시내는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무덤들은, 흰머리 할미꽃과 사금파리 살림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봄날 저녁은 어디로 갔을까 키 큰 미루나무 아래 강아지풀들은, 낮은 굴뚝과 노곤하던 저녁연기는

     나의 옛 캄캄한 골방은 어디로 갔을까 캄캄한 할아버지는, 캄캄한 기침소리와 캄캄한 고리짝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의 옛 나는 어디로 갔을까, 고무신 밖으로 발등이 새카맣던 어린 나는 어느 거리를 떠돌다 흩어졌을까

 

 

* 감상- 김사인 시인은 1955년 충북 보은에서 났다. 그런 탓일까.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긴 했으나 주로 시골 같던 천호동에서 경험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깊이 간직하고 사는 나에게 김사인의 시에 소재로 사용되는 내용들은 아주 친숙하다. 우리의 삶은 구름과 같아서 결코 하나로 정지되지 않는다. 이런 모양을 이루다가 흩어져 다시 저런 모양으로 나타난다. 그 모든 것은 흔적도 없이 다시 흩어진다. 그게 어디로 흩어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의 결국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구름을 누가 잡겠으며, 그 변화를 예상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무언가를 잡아보려고 애를 쓴다. 세월이 흘러 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게 없다는 걸 결국 알게 되고, 그제야 허전해하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 늦기 전에!


[레벨:8]쩡쩡이

2014.02.05 14:57:53

저는 68년 생인데도 저 시의 어느 한 내용도 모르는게 없고 한폭의 그림이 되어 아련하게 다가오네요.

어릴땐 신기 했어요 어째 온마을에 굴뚝의 연기는 같은 시간에 올라 오는지,냇가서 고무신엔 든 모래를 씻어내며 이따 저녁답에 거서 보자한 아버지 들은 어떻게 똑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지...시간이 흘러도  나는 아직도 그 그림속에 앉아 있고  피어나는 연기의 냄새가 느껴지고 어른들이 있던 그 큰 나무 밑에서 놀고 있습니다...

어릴적 최초의 교회에 대한 기억은 첨 나온 색동 고무신을 신고 유치부에 가던 그날 그 예쁜 신발을 잃어버린 것입니다.신발장 앞에 앉아 집에도 못오고 대성통곡을 했었습니다.인생 최고의 상실감을 겪었던것 같습니다.ㅎㅎ

이 모든 기억들은 자주 자주 떠 오릅니다

그럴때면 꺼이 꺼이 우는 아이 옆에 다가가선 이렇게 말합니다 '난 아직도 간혹 뭘 잃어 버리고 운단다..근데 점점 안 울게 될거야... 그리고 그 그림속에 앉아있는 아이에게도 이젠 일어나라고,충분히 아름다웠으니 이젠 가자고 말합니다.

오늘부터 공부하게될 칼 바르트에 대해 눈이 빠지도록 공부하다 이 시를 잠깐 보게 됐습니다.

바르트의 신학과 이 시는 별개의 세상 같았으나 바르트로부터 조금 깨달은 바 있어 

나의 가는 길은 이제 더는 늦지 않게 일어나 가야할 다른 아름다운 길이기에 스스로를 재촉해 봅니다

훌훌 털고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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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4.02.05 17:23:38

동해 어느 어촌 비슷한 마을에 살던 어린 소녀가

자신의 미래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집마당, 교회당, 시내, 들과 산, 야생화와 곤충을 친구 삼아

뛰노는 모습이 그려지는군요.

훌훌 털고 가다보면 오늘이 다시 그리워지기도 하겠지요.

바르트는 우리를 기독교 영성의 중심, 또는 보고로 바르게 안내해줄 가이드입니다.

바르트와 그가 가리키는 영성의 중심을

내가 어느 정도나 전달할 수 있을는지, 음

부담이 되나, 가는 데까지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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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3]웃겨

2014.02.05 19:51:21

올려주신 이 시가 가슴에 촉촉히 와 닿는 저녁입니다.

김사인의 시도, 목사님의 감상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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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4.02.05 23:32:16

어린시절, 사춘기, 청년시절까지

가깝게, 혹은 멀게 시골교회 사택에서 지내신 분이니

김사인의 저 시가 풍기는 정감을 물씬 느끼실 수 있겠지요.

비록 풍족하지는 못했어도 모든 것이 맛있고, 멋있고, 재미있던 시절이었지요.

죽음 이후에 이생을 기억할 수 있다면

오늘 우리가 어린시절을 기억하는 거와 비슷한 느낌이 아닐는지요.

주님의 평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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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0]새하늘

2014.05.13 22:29:56

충북 보은과 옥천은 같이 인접해 있습니다.

수려한 산 줄기와 금강과 남한강의 줄기라서  곳곳에 시냇물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그곳의 살았던 옥천의 정지용 시인과  보은의 김사인 시인은 서로 공통점이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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