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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物) 042- 종
미로 비슷하게 얽힌 우리 집에서
부엌 쪽으로 가는 통로 벽에
얼마 전부터 저 사진의 종이
평소에는 묵묵히 달려있다.
한 번 종을 치면
가족 구성원은 모일 준비를 천천히 하고,
두 번 울리면
가능한 한 빨리 모이고,
땡, 땡, 땡!
세 번 연달아 울리면
당장 부엌으로 집합해야 한다.
주로 아내가 종을 친다.
주물로 만들어진 종이라
잔향이 제법 길다.
중국제로 알고 있다.
주일에는 내가 친다.
출발 5분 전 오전 9시25분에 한 번 치고,
9시27분에 두 번 치고,
그래도 모이지 않으면
9시30분에 세 번 연달아 친다.
종을 매달아 놓으니
“세 명이 사는 우리 집은 가족 수도원이다.”라는 명분이
그런대로 조금 살아나는 듯하다.
정말 작은 수도원이네요...
종 하나로 수도원 분위기를 만드셨군요.
언젠가 카르투시오 수도원에서
기도와 식사 노동시간을 알리는 종을 울리는 걸 TV로 본 적이 있어요.
목사님 댁에서도 저 작은 종이 울리면 조용조용 식당으로 거실로 모여들겠군요.
잔향이 있다니 종소리가 어떨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