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5일 등경 위의 등불

조회 수 4505 추천 수 64 2007.02.15 08:39:43
2007년 2월15일 등경 위의 등불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막 4:21)

성서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21-25절에 나오는 두 개의 말씀은 원래 이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라 편집자가 이곳에 삽입한 것이라고 합니다. 1-20절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이고, 26-3절은 자라나는 씨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중간에 등불과 헤아림이라는 말씀이 들어갔습니다. 신학비평 문제는 우리의 묵상에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맙시다.
오늘 본문은 고대 유대인들이 어떻게 방을 밝히며 살았는지를 알아야 우리 머리에 확 들어옵니다. 그들은 밤에 등불을 긴 다리가 달린 등경 위에 올려놓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등불의 원료로 올리브유를 사용했는지, 아니면 송진 같은 것을 사용했는지 제가 충분하게 조사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긴 해도 등불이라고 해봐야 지금 우리가 볼 때 형편없는 것이었겠지요. 본문에 말이 나옵니다. 말은 곡식의 양을 재는 기구입니다. 한 홉들이, 또는 한 되들이 말들이 있었겠지요. 그들은 곡식의 십일조를 떼기 위해서 이 말을 방안에 두었다가 등불을 끌 때 이걸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불을 밝히려고 할 때 등불을 말 아래 둘 수는 없습니다. 평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누워 자는 평상 밑에 등불을 두지 않습니다.
신약학자들은 이 구절을 일종의 그림말(Bildwort)이라고 합니다. 그 상황이 우리에게 그림처럼 선명하게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부부와 아이 몇 명이 등불을 밝힌 방에서 오순도순 이야기하거나 아니면 밥을 먹는 장면을 상상해보십시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집에 비해서 훨씬 어둠침침한 곳이겠지만 그곳에 평화가 있다면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작은 등불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구원과 생명의 단초입니다. 그것을 말 아래에 넣어두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레벨:0]복음자랑

2007.02.15 19:11:53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행하시는 구속 역사를 등불로서 비유하심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어두움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에게 빛을 비추고 계시는 것임

그 일은 꺼져서 실제적인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하려고 하심 - 말 아래, 평상 아래 둠 -이 아니라
실제적인 열매를 맺도록 하려는 것- 등경 위에 둠 -임

그러한 하나님의 역사로 인하여 어두움의 이스라엘에게 빛이 비취어 구원이 있게 되었고
나아가 어두움의 세상에 빛이 비취어 구원이 있게 되었음

오늘날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음은 그러한 하나님의 역사로 인한 것임

동시에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들을 통하여 그 역사를 지속하시고자 하심

과연 교회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세상에 빛을 비추고 있는가?
등경 위에 있는가? 아니면 말 아래, 평상 아래 있는가?
아니 그 이전에 과연 교회가 세상에 빛으로서의 존재성을 보존하고 있기는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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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7.02.15 23:33:24

복음자랑 님,
무엇을 말씀하는 건지요.

[레벨:0]복음자랑

2007.02.16 08:55:13

여기는 정용섭 목사님의 성경 이해만 적는 곳은 아니라고 여겨져서 제가 이해하는 그 본문의 의미를 적은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까?
문제가 된다면 다음부터는 읽기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복음서가 일차적으로 예수님의 자기 계시라고 생각하기에 그 사실을 증거한 것입니다.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독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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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07.02.16 09:04:42

복음자랑 님,
그렇군요.
본인의 생각을 그냥 적은 것이군요.
나는 내 묵상에 대한 대글인 줄 알구요.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문제인가 하고 생각해보았지요.
자신의 생각을 그냥 적은 건 잘 하신 겁니다.
"복음서가 일차적으로 예수님의 자기계시"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복음서를 예수님이 쓰셨다는 건지,
아니면 복음서의 내용이 곧 예수님이라는 건지요.

[레벨:0]복음자랑

2007.02.16 19:48:54

예수님의 행하심(행동과 말씀)이 예수님 자신을 증거 - 자신이 누구인가와 자신이 행하실 새 시대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경 기자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행하심이 기록되었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함이라는 것이고요.

그래서 복음서를 읽을 때에 예수님이 누구라고 증거되고 있는가와 그분을 통하여 이루어질 새 시대에 대하여 먼저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그에 대하여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적용함에 있어서는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에 의해 본문을 통하여 제시되는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레벨:23]브니엘남

2007.02.17 23:03:03

말은 곡식의 양을 재는 기구이다. 만일 빛을 말 아래 둔다면 그 빛을 비출 수 없다. 말은 곡식의 양을 재는 기구이므로 우리의 생활의 염려를 상징한다. 우리는 발광체이다(빌 2;15). 그런데 만일 우리가 생활의 염려 때문에 빛을 감춘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수 없다는 것이 본문의 가르침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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