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1일 하나님의 나라 (8)

조회 수 5093 추천 수 17 2006.05.11 23:24:45
2006년 5월11일 하나님의 나라 (8)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우리에게 가까이 온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혹은 이 땅의 나라와 일단 구별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 밖에 없다면, 또는 하나님의 나라와 이 세상의 나라가 동일하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무의미하니까요.
예. 분명히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의 나라와 구별되며, 구별되어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하다고 말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은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스도교 교리의 차원에서 본다면 이 세상은 파라다이스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의 후손들이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삶이 있었습니다.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하는 질문은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구약성서에 근거해서 약간의 윤곽을 잡을 수는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이브의 타락 이후에 인간이 짊어져야 할 실존적 고통이 없는 삶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타락한 이후에 몇 가지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남자는 노동을 통해서만 생존을 영위할 수 있으며,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이브 두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최종적인 운명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타락 이전의 삶은 노동과 해산의 고통이 없었으며, 죽음이 없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성서는 인간이 그런 에덴동산에서 삶을 잃어버리고 현실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게 곧 이 땅의 나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땀을 흘려야만 먹을 수 있습니다.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만 후손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향해서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입니다. 그것이 과연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린 징별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훨씬 심각한 신학적 논쟁거리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성서에 의하면 이 땅의 삶은 창조의 원초성과는 다릅니다. 완전했던 창조의 생명과는 다른 삶을 지금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갑니다.
물론 이 땅의 나라는 아름답습니다. 강, 산, 꽃, 구름, 바람, 어린아이, 젊은 연인들 등등,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는 아름답고 인간의 삶도 아름답습니다. 인간의 죄도 역시 이 큰 아름다움에 비하면 별 것은 아닙니다. 이 땅의 삶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현실이기 때문에 존재론적으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설령 그렇지 않은 대목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힘을 모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그렇게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삶의 형식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물론 영원하지 않은 것 자체를 우리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생명 현상을 절대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젊음과 건강은 화살처럼 갑니다.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생명체들은 죽습니다. 그 죽음을 통해서 또 하나의 생명이 시작하지만, 이런 순환을 우리는 궁극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성서는 우리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온다는 뜻입니다. 아직 은폐의 방식으로 이미 우리에게 와 있지만 아직은 종말론적으로 성취될 그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온다는 이 사실에 그리스도교의 신앙이 토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신앙이 바로 그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그런 완전한 생명의 시간을 희망할 수 있나요? 지금 실제로 희망하고 있나요?

주님, 이 땅의 나라를 소중하게 생각하되,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희망하는 사람으로 살기 원합니다. 아멘.

[레벨:6]한밀

2011.02.28 00:59:11

목사님,

 

"우리에게 가까이 온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혹은 이 땅의 나라와 일단 구별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 밖에 없다면, 또는 하나님의 나라와 이 세상의 나라가 동일하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무의미하니까요."

 

처음에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로 이해한다면, 이땅에 하나님의 의와 사랑, 하나님의 통치를 위해서

우리의 시선을 이땅에 고정시키고 이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요.

과연 이땅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으로 가고있느냐는

다른 문제인것 같고, 이땅이 지금은 갈등과 반목의 모습 그대로일찌라도

우리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이 다른 어떤곳이나, 종말론적인 은폐의 방식으로 이해될때

아니 그렇게 이해된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인 하나님 나라의 실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땅,

에덴의 상태로의 회복을 위해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는것이 어떨지요.

구원은 또 다른 세계로의 이전이 아니라 창조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요.

특히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플라톤의 이원론적인 입장에서

저멀리 있는 다른곳으로의 이동, 우리의 신앙생활의 최종목적이 그곳에 들어가는 티켓을 따기위한

노력들로 이해되어지고, 오늘 이곳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위한 신앙인의 노력

(하나님의 통치는 전적인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우리 인간들이 해야할 일이 있다는 측면에서...)

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하나의 아편과 같은 역할로

전락해 버리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계속 주님과의 여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사역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여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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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27일 예수의 동생들과 누이들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막 3:32) 예수를 찾으러온 가족 중에는 어머니 마리아만이 아니라 동생들과 누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동생들이 몇 명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오늘 본문에 따르면 제법 여러 명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예수님이 세상을 떠난 후 예루살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였습니다. 야고보 이외에도 교회 지도자 역할을 한 동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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