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구원(38)

조회 수 629 추천 수 0 2025.02.20 19:35:17

유대인들의 율법은 오랜 세월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준수해야 할 각종 규범이다. 오늘날 문명국가에서 실정법이 없으면 사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듯이 유대인들에게 율법이 있어야만 그들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 모세오경에 나오는 율법만이 아니라 그 이외의 시행 규칙도 많았다. 율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서기관들과 율법을 삶으로 실천하는 바리새인들의 노력으로 유대 사회는 70년 예루살렘 함락 이후에도 율법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율법에는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받을 만한 내용이 많다. 한 가지만 예로 들겠다. 안식일이 그것이다. 일주일에 하루는 노동이 금지되었다. 안식일에는 노예들도 노동하지 못한다. 인간은 모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들이라서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만은 노동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의 노동해방 운동의 뿌리도 따지고 보면 안식일 전통이다. 안식일에서 기원하는 안식년은 더 근본적인 인간 해방을 의미한다. 팔렸던 땅과 사람은 칠 년째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만 한다. 밭도 칠 년째는 농사를 쉬어야 한다.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다음 해인 희년 개념은 안식년 정신을 더 분명하게 하는 율법이다.

본래 인간 해방을 위한 율법이 세월이 흐르면서 오히려 인간을 옥죄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노동해방 이데올로기가 이상적이기는 하나 현실에서는 실패했듯이 말이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장애인을 고친 일을 두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었다. 안식일 정신은 쏙 빼놓고 안식일 규정에 문자적으로 묶인 이들이다. 그들이 볼 때 예수는 율법 해체주의자다. 그런 자는 죽어야 한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는 유대의 종교법인 율법과 로마의 정치법인 실정법이 똑같이 결부되었다. 인간과 그 삶을 가장 풍요롭게 해줘야 할 율법과 실정법이 죄가 없었던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교회는 바로 이 사건에서 출발했다. <1027> 집회는 예수라는 이름을 걸고 2천 년 당시와 똑같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아닐는지.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두 기둥이라 할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인간이 율법으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한 선언이다. 실정법으로도 인간은 구원받지 못한다. 종교법이든 정치법이든 법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법이 없으면 세상이 카오스로 떨어지나 법의 과잉은 생명을 죽인다. 예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율법 과잉 사회에 저항하셨다. 율법이 필요하기는 하나 인간의 손에 의해서 불의하게 다뤄진다는 점을 정확하게 뚫어본 것이다. 위에서 짚었던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에서 그 사실이 드러난다. 율법에 충실했던 바리새인은 교만했다. 율법을 잘 지키면서 교만한 자보다도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하면서 겸손한 자가 하나님 보시기에 옳았다. 다시 말한다. <1027> 집회에 나온 사람들이 바로 교만한 바리새인이 아니었을까?

예수로 인해서 율법은 그 효능이 다했다. 복음 패러다임이 오자 율법 패러다임이 물러간 것이다. 율법의 길이 아니라 복음의 길이 열렸다. 복음의 길은 율법처럼 무겁지 않고 가볍다. 복음의 길은 율법처럼 남과 비교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생명을 얻는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다시 보자. 바울은 십자가 사건을 유대인에게 거리끼는 것이고 이방인에게 미련한 것이라고 고전 1:23절에서 밝혔다. 실제로 그랬다. 유대인들은 나무에 죽은 이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라고 보았다(21:22-23). 예수께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라고 고함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로마 사람들에게 십자가 처형은 로마 시민권이 없는 반역자들에게 해당하는 징벌이었다. 종교법인 율법과 정치법인 실정법이 예수를 정죄한 것이다. 무슨 말인가? 율법과 실정법은 더는 진리를 드러내는 절대 기준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처형하는 법이 어떻게 진리가 될 수 있겠나. 예수의 제자들은 율법 무용론에 떨어지지 않으면서 거기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의 인생은 가볍다. 자유를 얻는다. 법을 성실하게 지키면서도 더는 법에 예속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레벨:11]소유와존재

2025.02.21 16:15:34

법에 의존하지 않고 법을 성실하게 지킨다....

때로는 존재론적 자유를 누리면서 살 때, 

그것이 실정법을 어기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가벼움, 매달리지 않는 삶이 때로는 실정법과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 것 같아서요...

profile

[레벨:100]정용섭

2025.02.21 20:45:56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1) 신앙과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야겠지요. 

2) '나는 죄인입니다.'는 고백을 죽을 때까지 반복하는 겁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sort 조회 수
6665 교회 구원(76) new 2025-04-28 49
6664 교회 구원(75) 2025-04-24 130
6663 교회 구원(74) 2025-04-23 122
6662 교회 구원(73) 2025-04-22 137
6661 교회 구원(72) 2025-04-21 130
6660 교회 구원(71) 2025-04-11 360
6659 교회 구원(70) 2025-04-10 215
6658 교회 구원(69) 2025-04-03 358
6657 교회 구원(68) 2025-04-02 308
6656 교회 구원(67) 2025-04-01 317
6655 교회 구원(66) [1] 2025-03-31 401
6654 교회 구원(65) 2025-03-28 462
6653 교회 구원(64) 2025-03-27 370
6652 교회 구원(63) 2025-03-26 483
6651 교회 구원(62) 2025-03-25 448
6650 교회 구원(61) 2025-03-24 480
6649 교회 구원(60) 2025-03-21 555
6648 교회 구원(59) 2025-03-20 496
6647 교회 구원(58) 2025-03-19 550
6646 교회 구원(57) 2025-03-18 501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