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28절부터 인간에게 나타나는 악한 일들을 열거한다.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거림, 비방, 하나님을 미워함, 자랑, 악 도모, 부모 거역, 우매, 배약(신의 없음), 무정, 무자비이다. 이런 모든 악행은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데서 나온다. 로마 문명권에 대한 바울의 분석이다. 동성애에 관해서 한 마디 언급하는 고전 6:9절에서도 바울은 동성애만 콕 집지는 않고 당시의 여러 불의한 행태 중에 하나로 본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로마 제국은 겉으로만 세련되었지, 실제로는 우상숭배와 불의에 기울어져 있다. 그들에게는 롬 2장이 말하듯이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린다. 그 하나님의 심판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다. 율법 준수나 로마 문명으로도 이 죄와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 의로움은 오직 하나님께 있을 뿐이다. 로마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실제로 삶이 의로워진다는 사실을 붙들어야 한다. 롬 8:38-39절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관점은 본문의 맥락이다. 바울은 종교적으로 탁월한 사람이나 세속적으로 세련된 사람도 모두 죄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전하려고 동성애 현상을 언급한 것이다. 동성애 자체가 글쓰기의 목적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명시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비판이 언급되었다고 해서 그 구절을 근거로 동성애를 비판하고 매도하고 혐오하는 태도는 바른 성경 읽기가 아니다. 물론 그 본문을 쓴 바울에 따르면 그것이 부끄러운 행위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성애만이 아니라 인간의 수없이 많은 생각과 행위가 부끄러운 일이라는 사실도 분명하다. 만약 동성애 현상을 비판하고 싶다면 다른 것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로 비판해야 한다. 21세기 바알숭배라 할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서는 동조하거나 침묵하면서 유독 동성애만 ‘콕 찍어’ 200만 연합예배로 밀어붙인다는 게 한국교회의 슬픈 현주소다.
알레고리적 성경해석으로 설교를 하면 '동성애'라는 단어 하나가지고 한시간 하죠.
하지만 역사적 맥락으로 잡아서 설교를 하면 그만큼 분량이 안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