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6,664
다른 하나는 우리 기독교인에게만 주어진 역사 경험이다.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북한에 있던 기독교인들이 공산당의 박해를 피해서 대거 남쪽으로 내려왔다. 평양을 가리켜서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부를 정도로 기독교 세력이 강력했었다. 김일성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특히 외가가 그렇다. 내가 알기로 외조부 강돈욱은 장로였다. 김일성도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서 교회에 다녔고 교회 활동도 했으며 세례도 받았다고 한다. 해방 이후 북한 공산당은 기독교와 협력관계를 맺지 못하고 박해하기 시작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접어두고 핵심만 짚겠다. 38선 이북 있던 많은 기독교인이 쫓기다시피 남한으로 내려와서 교회를 세웠다. 대표적으로 영락교회와 한경직 목사다. 한 목사는 신의주 제2교회 목사로 시무하다가 북한의 박해를 피해 월남하여 1945년 12월 2일 월남 피난민들과 함께 교회를 설립했다. 영락교회는 반공주의를 모토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반공주의를 내세운 이승만 정권과도 결이 맞아서 그런지 모르나 영락교회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피난민과 6.25 미망인과 고아를 구제하거나 교육 사업에서도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임으로써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교회로 자리를 잡았다. 이후로 한국교회는 반공주의의 메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현상은 지금도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