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목에서 아킬레스건은 미국이다. 한국교회가 닮고 싶어 하는 모델은 미국교회다. 미국교회만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한국 그리스도인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다. 미국의 상류층을 가리키는 WASP, 즉 White Anglo-Saxon Protestant(백인 앵글로-색슨계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미지가 우리의 이런 정서에 크게 작용한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엑소더스의 심정으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온 영국의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가 미국이라는 말을 어린이교회학교 시절부터 듣고 자랐으니 어쩔 수 없긴 하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은 대개가 청교도 전통에 속한 이들이었다. 지금 우리나라 신앙의 중심 정서도 청교도적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청교도 신앙과 신앙부흥 운동의 결합이다. 한편으로는 경건하며 다른 한편으로 선교적 열정이 뜨거웠다. 내가 서울신학대학 학부에 재학하던 시절인 1970년대에 빌리 그레함 목사가 여의도 광장에서 대중 집회를 열었다.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그 이후로 대한민국 교회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빌리 그레함 목사 한 사람 때문이라고는 할 수는 없으나 큰 영향을 끼친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실제로 미국은 6.25 전쟁에서 유엔군으로 참전하여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남한을 지켰다. 이후 전쟁고아를 돌보고 전후 복구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지금도 남한에는 적지 않은 숫자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미국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면서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올 수 있었다. 미국 유학파는 한국의 내로라 하는 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고, 신학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이런저런 많은 이유로 한국교회는 미국 사대주의라고 할 거까지는 없어도 친미적인 경향을 강하게 보였고, 지금도 그런 경향은 여전하다. 우리의 지정학적 상황과 오늘날 세계 최강국이 미국이라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친미를 무조건 배척할 수는 없다. 다만 정신까지 종속된다는 것이 문제다. 소위 ‘태극기 부대’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태극기만이 아니라 성조기까지 손에 든다. 코미디 같은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외에는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형님’ 같은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여긴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북한은 마귀이자 사탄이다.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집단이다. 17세기의 일본 ‘에도’ 시대에 기독교인을 색출하려고 예수 그리스도나 마리아상이 새겨진 목재나 금속판인 ‘후미에’를 밟게 했다고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북한은 악의 축’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좌파 빨갱이 딱지를 붙이곤 한다. ‘동성애는 죄’라고 말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매도한다. 퀴어 축제에서 기도했다고 하여 목사를 출교한다. 동성애자들이 공공의 장에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200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궐기 대회를 열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게 제 정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