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의 한 제사 종교에서 회당을 중심으로 한 율법(말씀) 종교로 바뀌는 역사적 분기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이들이 바리새인들이다. 그들은 예루살렘 근처 얌니야에 랍비 학교를 세워서 율법 전통을 공고히 했다. 얌니야는 지금의 야브네(Yavne)인데, 텔아비브 남쪽 20킬로미터 지점에 있다. 기원후 90년 그곳에서 얌니야 공회(Council of Jamnia)가 열렸다. 그 공회에서 결정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39권의 거룩한 문서를 유대교의 정경으로 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교와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당시까지만 해도 회당 출입이 어느 정도는 자유로웠다. 그리스도인 공동체 스스로 유대교와 분리할 생각이 없었다. 유대교 안에서 나사렛파로 자리를 잡으면 충분했다. 그런데 서기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로 율법 종교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당시 바리새파 유대인들과 갈등이 심각해지다가 급기야 회당에서 쫓겨난 것이다. 루터를 중심으로 한 개혁자들이 당시 교황청의 파문을 당한 형국과 비슷하다. 회당에서 축출되었어도 교회 전통은 여전히 회당 전통을 이어받았다. 일정한 시간에 함께 예배 처소에 모여서 말씀을 읽고 찬양했다. 여기에 성찬식이 곁들여졌다. 그리고 먼 훗날 397년 카르타고 공회에서 교회는 바리새파 유대교가 경전으로 결정한 구약 39권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어쨌든지 유대교에서도 없어진 성전 개념을 한국교회 일부가 주장한다는 것은 교회 개념을 오해한 데서 오는 잘못이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나 교회당은 거룩하지 않으며, 교회당은 거룩하지 않으나 교회 공동체는 거룩하다. 이게 무슨 뜻인가?
성경에는 거룩하다는 표현이 종종 나온다. ‘거룩하다’라는 우리말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카도쉬’와 그리스어 ‘하기오스’는 분리되거나 구별된다는 뜻이 있다. 제사장은 일반 사람과 구별되기에 거룩한 사람이다. 성전 제단에 놓인 제물도 구별된 것이기에 거룩하다. 예루살렘 성전도 다른 지역과는 구별된 공간이라서 거룩하다. 신약에서는 말하는 성도는 구별된 무리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라는 말은 곧 그가 구별된다는 뜻이다. 교회가 거룩하다는 말은 교회가 세상에서 구별된다는 뜻인 셈이다. 교회가 세상 조직과 똑같은 원리로 작동한다면 거룩하다고 말할 수 없다. 교회가 자본주의에 물들었다면 거룩하다고 말할 수 없다. 교회가 기복주의에 떨어졌다면 거룩하다고 말할 수 없다. 교회가 권력 지향적이라면 거룩하다고 볼 수 없다. 구별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성경에 근거해서 좀 더 살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