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땅

출 3장에는 모세의 소명 이야기가 나온다. 1절은 이렇다.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에게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출 18:13절 이하에 따르면 출애굽 이후 광야를 지나면서 모세가 백성의 모든 송사 문제를 직접 다루는 걸 본 이드로는 여러 지도자를 세워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조언했다. 이드로는 아브라함 전통에 따른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미디안 원주민들이 믿는 종교의 제사장이다. 모세는 그의 데릴사위로 40년을 살았다. 그 과정에 관해서는 성경이 말하지 않지만 모세가 이드로의 영향을 어느 정도는 받았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구약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호렙산은 미디안 종교의 성지이다. 본문은 호렙을 ‘하나님의 산’이라고 부른다. 히브리어 발음으로 ‘하엘로힘 하르’이다. 하엘로힘은 보통 신(神)으로 번역하는 ‘엘로힘’의 소유격이다. 모세는 40년 동안 미디안 제사장인 장인에게서 호렙산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불이 붙었으나 떨기나무가 타지 않는 이상한 현상을 목격한 모세에게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 미디안 종교의 성지인 호렙산의 그 장소만 거룩할 리는 없다. 그곳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소명을 경험한 곳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거룩한 땅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모든 땅은 거룩하다. 하나님이 창조했기 때문이다. 하나님 경험한 사람에게는 만물이 거룩하다. 소소한 사물도 거룩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거룩하게 경험된다. 문제는 우리가 만물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