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구원(57)

조회 수 495 추천 수 0 2025.03.18 21:03:22

사람이 죄를 지어 타락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기에, 그리고 실제로 세상에 악과 불행이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도 분명하기에 사람을 무조건 거룩한 존재로 보는 건 너무 순진한(naive) 생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일종의 낙관적인 생각에 치우치면 타락한 세상과 교회가 구별되지 못한다고 말이다. 일리가 있다. 어떤 그리스도인에게 교회는 노아의 방주와 같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그려지는 대홍수에서 구원받으려면 노아 방주에 들어가야 했던 것처럼 악한 세상에서 구원받으려면 교회에 들어와야 한다고 선전한다. 내가 알기로 사이비 신천지는 요한계시록(7:4, 14:1)에 나오는 144,000이라는 숫자가 신천지에 들어온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런 숫자를 상징과 은유가 아니라 사실 언어로 착각한다.

성경에는 분명히 타락과 심판 개념이 나온다. 그러나 그것 자체로 실증적인 개념은 아니다. 그것보다 더 상위 개념에 따라서 해석되어야 한다. 상위 개념은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창조 행위가 보시기에 좋았다고 반복해서 표현한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1:31) 보시기에 좋은 창조의 완성이 심판이지 심판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떻게 심판하실지는 우리가 전혀 모른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으로 보내고, 믿는 사람은 천국으로 보내는 방식의 심판이 아닐 수도 있다.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사람은 구더기 밥이 되게 하고, 착한 사람은 아브라함 품에 안기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처음 창조가 좋았다면 창조의 완성은 더 좋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더 좋은 창조의 완성을 위해서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한다는 생각은 비유적으로 옳으나 실질적으로 옳지 않다.

심판 개념을 이렇게 이해하는 게 바람직하다. 하나님의 창조와 은총과 사랑을 모르는 것 자체가 바로 심판이라고 말이다. 빛을 모르면 어둠에 갇힐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존재의 기쁨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불행 아닌가. 어쨌든지 지금 우리는 창조와 완성 사이를 산다. 그 사이는 창조의 보존이다. 처음 창조와 창조의 보존과 창조의 완성은 그리스도교의 창조 영성이 가리키는 거대하고 거룩한 구원 드라마다. 우리는 그 구원 드라마가 실현되는 데에 각각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 안에 하나님의 선하심이 어떻게 깃들어 있는지를 충분히 인식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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