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성서읽기 종강 파티 안내!

조회 수 3677 추천 수 13 2005.06.08 00:00:23

종강 파티!

지난 3월 첫 화요일 부터 시작된 2005년도 전반기
인문학적 성서읽기가 6월21일로 끝난다.
두 달 쉬고 9월에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마지막(21일) 시간에는 공부 대신 아래와 같은 모임을 갖기로 했다.

1. 식사: 6시30분에 모여 가까운 곳의 '삼계탕'집에서 저녁을 먹을 계획.
2. 담소: 식사 후 다시 공부방으로 모여 지난 이야기, 서로의 관심에 대해서 담소.
3. 준비: 이미 식사는 두 분이 갈라서 내기로 했고, 어떤 분은 수박을 사오기로 했으니까
         다른 분들은 아무런 준비가 없어도 됨.
         혹시 섭섭한 분들은 음료수나 한병 들고 오시든지.
4. 대상: 이번 전반기 모임에 한번이라도 참석한 분은 누구나 가능.
(다음 주 화요일 모임은 평상시처럼 8시에 그대로 진행된다.)


아래는 오늘 모임의 뒷이야기이다.

오늘 우리는 2시간의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진지하게, 열렬하게 격론을 펼쳤다.
성서와 신앙의 주제에 관해서
자신의 모든 실존을 던진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한 주제는
성서가 언급하고 있는 ‘기적’을
오늘의 신앙현실에서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에 있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를 초월한다는 점에서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은 불문가지이다.
그러나 성서는 기적 자체에 호기심을 보이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오늘 우리가 일반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기적을
신앙의 중심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하나님의 능력이 어떻게 실행되는지
성서와 전혀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삶의 지평에서 이해하고 해석해야만 한다.
물론 오늘도 하나님은 이런 기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우리에게 나타내보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이 세상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종말론적으로 열려 있다는 점에서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에
내일이라도 당장 태양이 멈추고 한강물이 말라버린다는 예언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단절이 종말에 의해서만 가능할 뿐이지
그 이전까지는 연속적이라는 사실을 전제하지 않으면
이 세상의 모든 해석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앞서의 다른 연구와 연속된 것이지
초역사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오늘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자신들의 욕구에 따라
이 세상의 역사를 쉽게 단절해버리는 분으로 착각하는 우리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 문제는 우리가 보통 마귀, 또는 사탄, 또는 성령이라고 부른 개념에도 해당된다.
그런 힘들이 우리의 삶에 개입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를 단절하고 우리의 삶에 개입하지는 못한다.
예컨대 시험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학생이 기도함으로써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영이 역사를 파괴해야만 가능하다.
그렇다고 역사가 늘 기계적인 인과관계에 의해서 진행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우연한 일들이 우리의 역사 안에서 발생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역사의 틀을 근본적으로 허물지는 못한다.
독일의 통일이 갑자기 이루어졌지만
단지 역사학자들이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지
그것도 역시 역사의 흐름 안에 있는 사건이다.
어쩌면 우리나라도 금년 안에 통일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지니까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런 갑작스러운 통일도 역시 역사 안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님이 우리의 예상을 깨고 이 역사를 이끌어 가시기 때문에
여러 현상들이 기적처럼 보일 뿐이지
우리의 역사 자체가 단절되거나 허물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만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계와 그 삶에 의미가 확보된다.

오늘 공부의 끝머리에 ‘제사’ 문제가 나왔다.
어느 회원은 제사를 우상숭배라고 생각한 것 같다.
보기에 따라서 다른 주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내 생각을 독단적으로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을 피력한다면,
부모님들의 제사 행위를 극구 말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조상 신을 섬기니까 우상숭배가 아닌가 하고 반대하겠지만
이런 식으로 말하면 지금 우리는 모두가 ‘돈’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다.
심지어 어떤 교파는 십자가 모양도 우상이라고 보고
교회당 안에 십자가를 걸지 않기도 한다.
부모님이 술을 좋아하시면
술도 따라드리는 게 마땅하다.
물론 아버지가 술을 드시기만 하면 횡포를 부리신다거나
주정이 심하다면 그건 또 다시 생각해봐야하겠지만
웬만하면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고 즐겁게 해드리는 게 가장 지혜롭다.
자신의 신앙을 이유로 집안의 제사에 일부러 빠진다거나
술을 마시는 건 죄라고 생각해서 아버지에게 술을 못 마시게 한다는 건
어느 쪽으로 생각해도 신앙적이지도 않고 지혜롭지도 않다.
그렇다면 도대체 기독교 신앙이 세상의 삶과 다른 게 무언가, 하고 질문할 것이다.
삶의 형식에서 다른 건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삶에 대한 태도가 다를 뿐이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갈 뿐이다.
자기를 성취하는 데 삶의 중심을 두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히는 데 삶의 중심을 도는 것이 다를 뿐이다.
제사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할 수 있고,
아버지에게 술 한잔 따라드리면서도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힐 수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제사 드리지 않고,
술을 입에도 대지 않고,
주일을 꼬박꼬박 지키고,
십일조 떼어먹지 않는 형식을 기독교인의 삶으로 생각하는데,
그게 그렇게 나쁜 건 아니지만 바른 자세도 아니다.
성령은 교회 안에만 머물고 계신 게 아니라
이 세상 전체에 가득하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그 장소만이 아니라
시장 바닥에도 그 영이 활동하신다.
스스로 의롭고 도덕적이라고 생각했던 바리새인보다는
죄인이라고 생각했던 세리와 창녀들이
하나님 나라에 가깝다는 예수님을 말씀을 기억한다면
기독교인의 삶이 어떤 일정한 형식 안에 닫혀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이 자칫하면 풍차를 적장으로 착각하고 싸움을 걸었던 동키호테처럼
신자들로 하여금 이 세상을 향해서 공연한 적개심을 품게 함으로써
삶의 에너지를 소진시킬 위험성이 있다.
(물론 이런 문제는 니이버가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여러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하듯이
교회사적으로 매우 복잡한 사정이 들어 있다.)
일단 이런 패러다임이 고착되면 거기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내면에서 혁명적인 전환이, 이게 곧 메타노이아(회심)인데, 일어나야만
기독교 신앙의 생명 지향적 영성에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다.
조금씩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천천히 가자.

이길용

2005.06.08 00:38:42

제사 문제의 경우.. 우선은 한국 개신교에서 유교적 제사의 본질에 대한 공부부터 선행해야 하지않았을까 싶습니다.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단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알고있는 신유학자들은 (이황이나, 이이 등이 다 신유학자, 그러니까 성리학자들이었죠) 모두 유물론자들입니다.

유물론자가 어떤 이들인지는 아시겠죠? 예 그들은 세계 이해에 있어서 합리성, 혹은 이성의 영역을 벗어나는 존재를 상정치 않는 이들입니다. 철저히 완성된 폐쇄적 세계관 속에서 세계에 대한 해석을 내리던 분명한 유물론자들입니다.

유물론자들이 신께 제사를 지낸다? 좀 그렇죠~ 그럼 그들이 드리고 있었던 제사의 의미는?

바로 여기서 한국 개신교의 문화적 이해의 천박함이 드러납니다.

물론 유교의 제사도, 앞서 언급한 엘리트 성리학자들의 제사와 민간신앙과 습합된 민중들의 제사가 다른 양태를 보이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좀더 이 부분에 대해서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아직은 한국 개신교 내에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이길용

2005.06.08 00:42:03

여하튼 이 점에서 한국을 위시한 동아시아 문명권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터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 봅니다.

[레벨:6]유희탁

2005.06.08 06:42:44

두 분의 말씀이 모두 타당합니다. 모든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거나 어떤 고집에 집착한다면 어쩌면 그것이 본래 의도하려는 것들로 부터 멀어질 수도 있겠죠

이길용

2005.06.09 00:23:19

그나저나 유목사님 새 사진이 근사합니다^^

제사 문제는 제가 추후 논문으로 정리해볼까 생각 중에 있긴 합니다. 다행히 유교부분이 제 전공분야에 속한지라, 역사적 검토 속에 문화사적 의미를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미 중국에서는 교황청과 중국 황실간의 2백년여 걸쳐서 전례논쟁이 있어왔구요. 그런 사례가 있으니까 잘 정리하면 적잖은 도움이 될 것도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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