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잘 들었습니다.
첫 시간보다 훨씬 차분히 모아진 느낌이었어요.

질문 드리고 싶은 것은 우선
오늘 강의를 듣고--

"지금 여기를 사는 개인의 실존적 믿음과 결단은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역사 안에서 종속적인 것이다.
구원의 문제는 온전히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든 안믿든, 하나님께서는
종국적으로 구원의 역사를 우리 안에 실현하실 것이다."
고 하셨는데

인간이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 가든
종말론적으로는  결국 다 하느님께서 구원의 역사로 막이 내린다는 말씀이지요.
예를 들어
부시 대통령이  개인의 신앙적 결단으로 이라크를
침공하지 않겠노라고 단언했던지,
전쟁을 선포했던지...

역사를 창조해 나가는 것도 하느님이시고 종말에 구원을 이루시는 분도
하느님의 주권이라는.

그렇다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라는 거대한 물줄기 안에서
우리는 한낱 물방울 같은 존재겠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말씀하신 하느님의 종말론적 구원을 그렇게 이해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한 개인의 위대한 신앙적 결단이란 무슨 의미를 가질까요? 그 큰 뭉텅이 안에서..
그리고  시한부를 사는 오늘 우리에게는 지금 여기의 구원이 그렇게 멀리있는
종말론적 구원보다 더 시급하게 기다려지는게 사실이잖아요.
우리는 그런 종국의 종말을 믿고
희망하기에는 터무니없게 인내심이 없고 근시안적인데...
이 한계를 어찌 극복 하지요?

두번째 질문--

이건 처음부터 제 안에 있는 작은 의문인데요.
저는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면서
모태신앙으로 받아들인 기독교 신앙이
이제는 보다 확실한 제 신념으로
내 안에 녹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야만 제 삶의 여정이 외부의 변수들에 의해
휘청거리지 않으리란 믿음이구요.
그런 갈망으로 이 강의를 듣게 됬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인문학적인 성서이해를 강조하시고
또 기독교 이해도 그렇게 접근을 해 가시는데요...
제 의문은,
기독교이해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고 오늘도 말씀하셨지만
우리의 이성이 도저히 따라잡지 못할 그렇듯 크고 무한대인 하느님의 섭리를
이런 우리의 이성적 노력으로 얼마나 꿰뜷을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살짝 있습니다.
열심히 들으려고 하면서도  그런 마음이 솔직히 조금 있어요.
은총으로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세계가 이런 강의를 듣는다고 열릴까...하는.
오히려 이런 노력보다는 영성가들이 힘주어 말하는 묵상훈련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머리로 듣는 이런 시간들이  하느님의 현존경험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아, 쓰다보니 이것은 질문 할게 아니라 강의를 끝까지 들으면 풀릴 문제이겠네요.


제 질문이 말이 되는지 모르겠네요.
저 자신도 정리가  잘 안되는데..그래도 궁금해서 용기를 내 올립니다.
  
이런 문제들은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 보다
큰 통찰의 세계가 뚫려야 할텐데...하는 마음은 어렴풋이 듭니다.
이런 강의와 질문들이  그 세계를 여는데 도움이 된다면 망설임없이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일일히 응해주시는 목사님의 성의가 멀리까지 전해집니다.
목감기가 나으셨다니 다행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