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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자백입니다만, 사십년을 넘게 기독교인이라 살아오면서
예수님이 왜 하느님이고 제 구주인지가 솔직히 잘 와 닿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기도의 대상은 하느님이란 어떤 큰 존재에 의존하는 것이었지 역사 속에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과의 만남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가 왜 그 하나님인지 진지하게 추구해보지도 않은채...
그렇게 예수님은 뒷방으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느님 체험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즉, 나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존재는 분명한데 더 구체적으로 몸을 입고 오신
그 하느님, 예수와 나를 연관 시키지를 못했다는 얘깁니다.
가깝게 보내주신 예수는 멀고 먼 하느님이 저에게는 예수보다 가까웠다고나 할까요.
그게 그거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여지껏 저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걸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도 없이 예수는 내 구주라고 말 그대로
세뇌된 채, 지나왔네요.
동영상 강의를 들으면서, 또 매일 올라오는 큐티를 따라가면서 왜 진정 예수가 그리스도인가...
가 제 질문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서야...!참,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만요...
복음서를 다시 읽고 싶습니다. 다시 읽으며 예수가 그 하느님이고,
평생을 걸 만한 가치임을 스스로 확증하는 시간들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무지몽매함 속에서도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그 분의 힘과
또 이런 강의를 만난 것, 모두가 은총이군요...!
이 글을 쓰는데 알 수 없는 눈물이 납니다.
예수님이 왜 하느님이고 제 구주인지가 솔직히 잘 와 닿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기도의 대상은 하느님이란 어떤 큰 존재에 의존하는 것이었지 역사 속에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과의 만남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가 왜 그 하나님인지 진지하게 추구해보지도 않은채...
그렇게 예수님은 뒷방으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느님 체험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즉, 나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존재는 분명한데 더 구체적으로 몸을 입고 오신
그 하느님, 예수와 나를 연관 시키지를 못했다는 얘깁니다.
가깝게 보내주신 예수는 멀고 먼 하느님이 저에게는 예수보다 가까웠다고나 할까요.
그게 그거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여지껏 저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걸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도 없이 예수는 내 구주라고 말 그대로
세뇌된 채, 지나왔네요.
동영상 강의를 들으면서, 또 매일 올라오는 큐티를 따라가면서 왜 진정 예수가 그리스도인가...
가 제 질문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서야...!참,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만요...
복음서를 다시 읽고 싶습니다. 다시 읽으며 예수가 그 하느님이고,
평생을 걸 만한 가치임을 스스로 확증하는 시간들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무지몽매함 속에서도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그 분의 힘과
또 이런 강의를 만난 것, 모두가 은총이군요...!
이 글을 쓰는데 알 수 없는 눈물이 납니다.
2008.05.16 23:30:09

웃겨 님은 다비아의 동영상과 묵상글을 만났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본인 스스로 어떤 생명의 심층과 신비를 그리워했기 때문에
이제 기독교 신앙을 정색하고 직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거기에 다비아는 약간의 길안내를 했을 뿐이구요.
그 역할이 다비아의 존재 이유랍니다.
위의 글에서 한 가지 짚어도 되지요?
늘 선생 티를 내는 게 내 문제이긴 합니다.
<평생을 걸 만한 가치임을...>이라고 썼지요?
예수는 가치의 차원이 아니랍니다.
존재의 차원이에요.
가치는 상대적인 의미이거든요.
그러나 웃겨 님의 생각은 잘 전달되었답니다.
좋은 밤.
본인 스스로 어떤 생명의 심층과 신비를 그리워했기 때문에
이제 기독교 신앙을 정색하고 직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거기에 다비아는 약간의 길안내를 했을 뿐이구요.
그 역할이 다비아의 존재 이유랍니다.
위의 글에서 한 가지 짚어도 되지요?
늘 선생 티를 내는 게 내 문제이긴 합니다.
<평생을 걸 만한 가치임을...>이라고 썼지요?
예수는 가치의 차원이 아니랍니다.
존재의 차원이에요.
가치는 상대적인 의미이거든요.
그러나 웃겨 님의 생각은 잘 전달되었답니다.
좋은 밤.
하루 하루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냥 하루의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충만한 사랑과 계시와 은혜가 지금도 이 시간 가운데 끊임없이 부어 주시고
우리를 이끌어 주심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막연한 신앙,
습관적인 신앙속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다는것이 무엇인지 걸음마를 배우는 애기처럼 늘 신비롭습니다.
이 신비로움을 끝까지 안고 가야 할 텐데....
고백의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제가 더 힘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