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공부, 2016323일 저녁 7:30, 대구샘터교회

총 정리

 

구약에서 욥기의 자리는 특별하다. 모세오경, 예언서, ()문서라는 구조에서 성문서에 속한다. 경전으로서의 위치는 약한 편이지만, 그 신학적 의미는 오히려 깊다.

 

1. 세상과 재앙

세상에는 재난과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사람의 잘못도 있다. 테러와 전쟁은 다 사람의 책임이다. 자연재해는 불가항력이다. 선천성 불치병의 원인은 너무 깊어서 우리가 알 수 없다. 재앙은 가난한 나라만이 아니라 복지가 잘 갖춰진 나라에서도 일어난다. 먼 미래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욥기는 인간에게 임하는 재앙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그 방식은 지혜 전통과의 논쟁이다.

 

2. 하나님과 재앙

하나님이의 창조행위가 선하다면 이런 고난과 재앙은 왜 일어나는가? 성서의 대답은 죄다. 욥기에 등장하는 친구들은 욥을 향해서 회개하라고 충고했다. 성서의 입장과 친구들의 입장이 비슷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르다. 성서가 말하는 죄는 인간의 불행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에서 왔다. 죄는 인간이 의지와 이성으로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차원에서 작동한다. 친구들의 죄 운운은 재앙의 책임을 욥에게 묻는 것이다. 양쪽 모두 죄를 말하고 있지만 범주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연결해서 말하면 곤란하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면 인간을 죄나 재앙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었어야만 한다. 왜 그렇게 못하셨나, 안 하셨나? 욥기는 재앙을 야기하는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을 얻은 것으로 말한다. 이건 틀린 게 아니다. 악마저 하나님의 통치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악한 게 아니라 악을 허락했을 뿐이다. 기독교 반대자들로부터 비판받을 수 있는 대목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훨씬 큰 이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3. 자연신학의 가능성

38-41장에는 자연의 신비에 대한 일련의 시편들이 나온다. 자연(세상)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하나님을 말할 때 자연과 세상을 제외할 수 없다. 자연신학은 포괄적인 차원으로 전개된다. 물리학과 철학도 자연신학에서 중요하며, 심리학이나 인공지능도 역시 인간과 자연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대상이다.

 

4. 기독론적 토대

자연신학은 그것 자체로가 아니라 기독론과의 관계에서 기독교적인 자리가 확보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자연신학의 바탕에 두어야 한다. 욥도 무고한 이의 고난을 당했고, 예수도 그랬다. 양자를 똑같은 차원에서 접근할 수는 없다. 욥은 개인의 재앙 때문에 전통 신앙에 저항한 인물이라고 한다면, 예수는 인류 구원을 위해서 기존의 유대 전통에 저항한 인물이다. 욥은 자연신학이 가리키는 하나님의 존재신비를 통해 무고한 이의 고난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다면, 예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 근거해서 자신에게 임한 십자가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