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공부, 201599일 저녁 7:30, 대구샘터교회

12장 소발에 대한 욥의 대답

 

전체 42장에 이르는 욥기의 대부분은 욥과 그 친구들의 논쟁이다. 친구들은 유대의 전통인 지혜사상에 선 사람들이다. 그들의 논리는 구약성서 전체에 깔려 있어서 친구들의 발언만 따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은혜로운 말씀을 들릴 것이다. 욥도 원래는 그런 전통에서 살았지만 이유 없는 고난 앞에서 그런 전통을 고수할 수 없었다. 이들의 논쟁에서 핵심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유 없는 고난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1) 욥의 냉소(1-6)

욥은 친구들과의 논쟁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처리하지 않고 감정이 상할 정도까지 격한 어조로 대처한다. 1-6절은 친구들을 향한 비아냥거림이다. 겸손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문학적인 특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2절은 친구들이 지혜를 독점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야유다.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일종의 교언영색(巧言令色)이자 현학(玄學)이다. 소발은 11장에서 욥을 향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면 구원을 얻는다고 지혜 전통에 근거해서 역설했는데, 욥은 그걸 지금 비판한다. 그런 지혜는 자신도 아는 것이니 그런 말로 자기를 설득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과 인간 삶의 관계에서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을 남겨두어야 한다. 둘째, 하나님 경험은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종말까지 열려 있다. 즉 논쟁적이다. 과거의 경험으로 모든 것을 재단할 수 없다.

 

2) 지혜와 자연(7-12)

욥의 친구들은 자신들의 지혜가 대단한 것처럼 외쳤다. 욥은 그들을 향해서 그 지혜가 별 거 아니라고 말한다. 모든 짐승들과 새들과 바다의 고기들도 그걸 안다. 그뿐만 아니라 땅도 지혜를 가르친다. 저희 살림집이 있는 원당에서는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다. 내가 서재에서 가장 자주 보는 모습은 창문 너머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다. 대나무는 바람에 자기를 완전히 맡기는 방식으로 생명의 세계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성령에게 완전히 맡기는 삶과 비슷하다. 지난봄에 해바라기를 심었다. 그게 자라는 모습과 지금 말라비틀어진 모습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욥은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자연에서 많은 지혜를 배우지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11절과 12절에서 그 지혜를 분별하려고 한다. 지혜라고 해서 늘 옳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배타적 능력(13-25)

이 대목에서 욥은 하나님의 배타적 능력을 구구절절하게 논한다. 이런 방식은 욥의 친구들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건 글쓰기의 방식이라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욥이 친구들과 비슷한 말을 하지만 근본에서는 다르다. 교회에서도 구원을 말하지만 어떤 의미로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하나님의 배타적 능력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폭군처럼 마음대로 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곧 세상의 우연성이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구원의 근거라는 사실을 당시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인과관계로 일어난 게 아니라 우연하게 일어난 것이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