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공부, 2015930일 저녁 7:30, 대구샘터교회

15장 엘리바스의 충고(2)

 

연장자인 엘리바스가 앞서 4,5장에서 욥을 점잖게 타일렀다. 욥이 받아들이지 않자 이제 15장에서 강하게 비판한다. 이 내용만 따로 떼어내 읽으면 신앙적인 충고로서 부족할 게 없지만 욥과의 관계에서는 잘못이다. 성경을 읽을 때 일반화의 잘못을 조심해야한다.

 

1. 욥을 죄인으로 단정(1-6)

엘리바스는 욥의 말이 모두 자기변명으로 들렸다. 욥은 13:2절에서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하지 않으니라.’고 말하면서 자기 논리를 전개했다. 그런 태도가 엘리바스에게는 헛된 지식이자 허풍(2),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이자 무익한 말(3)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죄로 인해 심판을 받은 게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친구들만이 아니라 하나님께도 따지듯이 대드는 욥은 이제 기본적인 신앙 자체를 포기한 사람으로 간주되어야한다. 4절의 하나님 경외는 두려움을, ‘하나님 앞에 묵도하는 것은 반성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도 모르고, 자기반성도 할 줄 모르는 욥은 이제 구제 불능이라는 뜻이다. 욥의 진술 자체가 바로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6). 욥은 수시로 하나님과 변론했다(13:3).

 

2. 종교적 우월감(7-16)

엘리바스는 욥과의 논쟁에서 말로 제압할 수 없음을 알고 자신들이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사실을 앞에 내세운다(10). 일종의 권위주의다. 사람은 이런 권위 앞에서 주눅이 든다. 목사와 장로, 검사와 판사, 교수와 선생이라 권위가 오늘날에서 통하는 것과 같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자신들이 욥보다 훨씬 더 잘 안다는 것이다. 요즘 식으로, 어른이 하는 말을 왜 듣지 않느냐는 충고다. 그들이 볼 때 자신들은 욥을 위로하고, 은밀하게 대하는 중이다(11).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그들은 유대의 지혜 전통을 확실하게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선의로 충고하는데 욥은 그 충고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불만스러워하고 눈을 부라리고(12), 더 나가서 하나님께 분노한다(13). 하나님을 향한 분노가 이들이 볼 때 욥에게 가장 큰 잘못이고, 그가 악하다는 사실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다. 요즘도 권위적인 사람들은 내용보다 태도를 더 불편하게 여긴다. 엘리바스는 14-16절에서 일반론적인 사실에 근거해서 욥을 공격한다. 여인에게서 난 자는 의롭지 않다. 하늘(천사)도 하나님 앞에서는 깨끗하지 않다. 인간은 악을 물마시듯이 행한다. 죄의 실존을 그림자처럼 안고 사는 인간으로서 떳떳하다고 떠드는 욥은 잘못이다.

 

3. 악인의 운명에 대해(17-35)

엘리바스는 악인의 운명에 대해서 길게 말한다. 이것은 욥에게 직접 해당되는 것이면서 동시에 당시 지혜 전통이 말하는 일반적인 내용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구절만 몇 개 간추리자. 20- 악인은 평생 고통을 당하고, 빨리 죽는다. 24- 환난과 역경이 그를 두렵게 한다. 26- 갑옷과 방패로 무장하고 하나님께 달려든다. 29- 재산을 잃게 되고, 땅도 늘리지 못한다. 31- 허무한 것에 떨어진다. 34- 후손을 얻지 못하고, 거주할 곳을 빼앗긴다. 35- 재난과 죄악과 속임에 떨어진다. 엘리바스의 말 자체만 놓고 본다면 틀린 게 아니다. 문제는 그것으로 다 해명될 수 없는 인간 삶의 심층까지 이것으로 재단한다는 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