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6일, 저녁 7:30

대구샘터교회, 공간울림

욥기 공부 네번째

욥기 공부, 201556일 저녁 7:30, 대구샘터교회

 

4장 엘리바스의 충고(1)

 

4장부터 친구들과 욥의 논쟁이 본격화된다. 엘리바스, 빌닷, 소발의 충고가 나오고 욥의 반론이 이어지는 형식으로 31장까지 계속된다. 32-37장은 엘리후의 충고, 이에 대한 욥의 반론은 없다. 38-41장은 하나님의 대답이고, 42장은 결론이다. 발언 순서는 나이 순이기도 하고, 내용의 강도 순이기도 하다. 욥에 대한 비판이 더 노골적으로 변한다. 이런 방식의 논쟁은 지혜 학교와 왕궁에서 실행되었다. 왕상 10:1에 따르면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어려운 문제로 시험해보려고 왔다. 헬라 철학자들과 논객들도 이런 논쟁을 자주 했고, 로마에서 가장 인기 있던 공부인 웅변술도 기본적으로는 다른 이들을 자기 논리로 굴복시키는 공부다.

 

<1-6>

엘리바스는 욥을 충고한 네 명의 인물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기도 하고 가장 원만한 입장을 보인다. 2절에서 그는 우선 자기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입장을 해명한다. 불행에 빠진 욥 앞에서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이 민망하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회개하지 않고 신세 한탄을 한 욥의 처신에 있다는 것이다. 욥의 태도는 지혜로운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3,4절에서 엘리바스는 욥의 과거를 인정한다. 욥은 그 지역의 원로이자 스승으로 살았다. 모든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자신이 막상 큰일을 당하자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는 것이다(5,6). 이는 마치 설교자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당황하거나 불신앙적인 행동을 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그런 일들은 흔하게 일어난다. 어느 유명한 신학자가 암에 걸려 시한부의 처지에 떨어지자 신앙심을 잃어버렸다. 죽는 순간에 하나님을 부정했다.

 

<7-11>

엘리바스는 욥에게 일반적인 경험을 통해서 충고하려고 한다.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7).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불행은 반드시 죄의 결과였다. 그런 삶의 내력이 8절 속담으로 자리를 잡았다. 9절은 이것만 따로 놓고 보면 명백한 진리다. 하나님의 입 기운과 콧김에 사라지는 멸망하고 사라지는 운명들이다. 젊은 사자가 아무리 용맹스러워도 하나님에 의해서 이가 부러지면 사냥이 불가능하고, 결국 죽는다. 엘리바스의 주장은 유대 지혜 전통의 모범이다.

 

<12-21>

엘리바스는 자신의 입장을 강조하기 위해서 자신의 특별한 경험을 말한다. 일종의 계시 경험이다. 어떤 세미한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잠결에 환상도 보았다. 큰 두려움에 빠졌다. 그 경험은 누미노제으로 나타났다. 횔덜린의 시를 해석하는 글에서 하이데거는 반신(半神)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 반신의 세계를 보는 것이 시()작업(Dichtung)의 기본이다. 성서에 나오는 천사와 사탄은 그가 말하는 반신이라고 할 수 있다.

계시의 내용은 17-21절에 나온다. 의로운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천사도 역시 미련하다. 인간은 말할 것도 없다. 흙집에 사는 인간, 하루살이 정도의 삶을 사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욥이 주장하는 의는 잘못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