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공부, 2015624일 저녁 7:30, 대구샘터교회

11장 소발의 충고

 

욥기는 욥의 불행에 대한 논쟁을 다루고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은 누군가?’가 주제다. 친구들의 주장은 유대의 전통적인 지혜 신앙이다. 하나님이 이유 없이 재앙을 내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욥은 그것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나 자신의 재앙에 이유가 없다는 사실만은 굽히지 않는다. 이런 논란은 지금도 여전하다. 메르스 사태를 동성애 퀴어 축제를 막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느 정도나 알고 있을까? 하나님을 말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모세는 왜 하나님의 얼굴이 아니라 등만 보았나? 기독교는 왜 예수의 승천과 재림을 말하나? 이런 질문들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생명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자리한다.

 

<1-6> 지혜의 오묘함

이제 욥의 친구 세 명 중에서 마지막 타자가 나섰다. 겉으로 나타난 그의 충고는 구구절절이 옳다. 성경읽기에서 중요한 것은 글자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이다. 방향이 잘못되었으면 아무리 은혜로운 말이라고 하더라도 잘못된 것이다. 소발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혜 전통에만 사로잡혀서 욥이 당하는 육체적인 정신적 고통을 외면한 채 계몽하기에 바쁘다. 소발이 욥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욥이 친구들의 가르침을 받지 않으려는 것이고(3), 둘째는 자신의 결백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4). 소발은 욥의 불평((10:3-7)에 대해서 지혜의 오묘함으로 답변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너무 오묘해서 욥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기억나지 않게도 하신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만 보면 소발의 신앙이 욥보다 더 깊은 것 같다.

 

<7-11> 하나님의 전지전능

소발은 지금 큰 재앙 가운데서도 당당한 욥을 비난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말하는 중이다. 큰 소리 치지 말라는 것이다. 이제 7절부터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역설하다. 이 대목은 욥기 후반부에서 하나님이 욥에게 하신 말씀과 비슷하다. 7절은 하나님을 전능자로 말한다. 이런 신앙은 신구약전체를 관통하는 개념이다. 사도신경도 하나님을 전능한 분으로 진술한다. 전능자를 독재자로 보면 곤란하다. 우리의 예상을 깨는 방식으로 세상을 통치한다는 뜻이다. 가장 무기력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는 방식이 하나님의 전능이다. 소발은 옳은 주장을 통해서 욥을 비난한다. 악한 자가 심판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말은(11) 욥에 대한 것이다.

 

<12-20> 돌아서라

욥을 향한 소발의 비난은 친구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 굴복하라는 것이다. 욥이 돌아오면 희망이 있으므로 안전할 것’(18)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눈이 어두워서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하고...’ 결국 희망 없이 죽는 것뿐이다. 소발의 주장은 앞에서 나오는 엘리바스와 빌닷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흠잡을 데 없어 보이지만, 두 가지의 근본적인 오류를 피할 수 없다. 첫째, 욥의 고통을 실제로 이해하지 못했다. 둘째, 하나님을 자신들의 전통적 견해에 제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