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공부, 2015916일 저녁 7:30, 대구샘터교회

13장 신앙의 절정

 

하나님은 누굴까?’ 라는 질문은 성서 전체에 기초를 이루고 있다. 하나님은 종말에 완전히 그 정체를 보여주실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서로 다른 경험들이 충돌한다. 욥기도 그중의 하나다. 안도현은 시에 미혹되어 살아온 지 30년이다. 여전히 시는 알 수 없는 물음표이고, 도저히 알지 못할 허공의 깊이다. 그래서 나는 시를 무엇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으므로 다만 시적인 것을 탐색하는 것으로 소임의 일부를 다하고자 한다.’고 했다(가슴으로도 쓰고..., 머리말).

 

1. 돌팔이 의사(1-13)

욥은 친구들의 주장을 쓸모없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욥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며, 둘째는 인간 삶에는 그런 지혜 전통으로는 해명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다. 친구들은 돌팔이 의사와 같다(3). 돌팔이는 병 치료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돈 버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인간과 병의 근본에 대한 지식이 없다. 오늘의 목사도 돌팔이의 위험성이 있다. 욥은 이제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과 직접 변론하려고 한다(3). 그 변론은 20절 이하에서 시작된다. 욥은 친구들이 하나님을 말하는 거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7절 이하에서 길게 설명한다. 하나님을 속이려는 사람들이다(9). 그들의 말은 재 같은 속담이고 힘없는 토성에 불과하다(12). 그런 친구들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다. 그들을 피하기 위해서 극단적인 표현을 한다. 자기의 저주스런 운명을 자기가 짊어지겠으니 참견하지 말라는 것이다(13).

 

2. 절정의 신앙(14-19)

욥의 실존은 사면초가다. 이런 상태라면 주변의 주장과 절충한다거나 모든 걸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하거나, 해결해달라고 하나님께 무작정 매달린다. 그러나 욥은 친구들에게, 하나님에게 저항하고, 숙명 앞에서도 쓰러지지 않는다. 14절은 의문문이라기보다는 고통을 피하지 않겠다는 결기다. 15절에서 욥의 신앙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나를 죽여도 나는 그로부터 떠나지 않을 것이며, 그를 항상 바랄 것이다.’는 뜻이다. 이건 절정의 신앙이다. 하나님을 믿을만한 상황이 전혀 아닌데도 믿는 차원이다. 73:25,26절도 이와 같다. 이게 어떻게, 그리고 왜 가능한가?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변화무쌍하고, 근거가 약하다. 그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에게 삶의 토대를 둘 때 이런 신앙이 가능하다. 십자가에서 예수는 하나님 손에 자기의 운명, 미래를 맡긴다고 기도했다.

 

3. 욥의 기도(20-28)

욥은 모든 것이 없어져도 좋으니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는 길만 허락해달라고 요구한다. 이를 위해서 두 가지가 필요하다. 1) 손을 대지 말라(22). 2) 나를 불러 달라(22). 욥은 자신에게 일어난 이 처참한 운명의 이유를 모른다면서 하나님께 따진다. 자신은 낙엽이고 마른 검불이다(25). 젊었을 때 지은 죄로 인한 것이라는 대답 밖에는 찾을 이유가 없다. 그런 죄로 자기의 발에 차꼬를 채운 것이다(27). 끝까지 하나님께 따지고 든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기본적인 신앙은 흔들리지 않는다. 불가해한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