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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북안면 사무소 마당 한 켠데 작은 도서관이 있습니다. 도서관 이름이 '버들숲 작은도서관'입니다. 사서는 심한 장애를 입은 분입니다.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몇번 들렸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빌린 책 중의 하나가 김훈의 黑山입니다. 흑산도도를 가리킵니다. 가톨릭의 박해가 그 역사적 배경입니다. 정약용, 정약전 등등의 형제들이 나옵니다. 김훈 선생의 문장은 유달리 힘이 있습니다. 형용사와 부사가 거의 없습니다. 실체를 치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글을 씁니다. 그러니 관념적인 용어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설교자로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감정과 수사를 대폭 줄이고 실체로 접근할 때가 글이 힘이 있다는 겁니다. 이 책 <흑산>에는 제가 얼마 전에 방문한 무안이 등장합니다. 정약전이 흑산도로 귀양을 갈 때 배를 탄 곳이 무안입니다. 무안은 섬들이 다닥 붙어 있지만 흑산은 대해에 떠 있습니다. 그 장면을 김훈이 잘 잡아내는군요. 일전에 어떤 분에게서 김훈의 소설을 읽는다는 말을 듣고 나도 워낙 그분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에 이 책을 손에 넣었는데, 재미도 있으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김훈 소설처럼 설교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래는 속 표지입니다. 한번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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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뒤에는 후기와 참고문헌과 연대기와 낱말풀이까지 나옵니다. 대단한 소설입니다. 김훈 선생은 더 대단한 소설가이구요. 이 책을 읽으면서 박경리 선생의 <토지>가 생각났습니다. 비슷한 힘이 느껴졌습니다. 아래는 차례입니다. 제목을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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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에 나오는 소제목만 잘 따라가도 많은 걸 배울 수 있습니다. 저런 소제목에 대한 통찰력이 삶의 능력입니다. 가톨릭교회의 박해받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소설가의 시각으로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심한 장애를 앓는 사서는 2월7일이 납기일이라는 것을 아주 힘들게 발음했습니다. 설날 연휴 다음날이군요. 저는 어제 '고등어'까지 읽었는데, 아무래도 설날 연휴 때나 다 읽을 수 있겠네요. 앞으로 김훈 선생의 소설을 좀더 찾아서 읽어봐야겠습니다. 제 적성에 맞네요. 요즘 젊은 소설가들의 소설은 너무 개인의 감정과 심리 묘사가 많아서 지루할 때가 많습니다.
설날 연휴에 특강 준비도 하면서 김훈 선생의 <黑山> 읽기도 끝냈습니다.
한 마디로, 좋았습니다.
'후기'의 마지막 단락을 여기 소개합니다.
나는 말이나 글로써 정의를 다투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다만 인간의 고통과 슬픔과 소망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나는, 겨우, 조금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이나 글로써 설명할 수 없는 그 멀고도 확실한 세계를 향해
피 흘리며 나아간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또 괴로워한다. 나는 여기에서 산다.
늘, 너무나 많은 말을 이미 해버린 것이 아닌지를 돌이켜 보면
수치심 때문에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
이 책을 쓰면서도 그러하였다.
혼자서 견디는 날들과, 내 영세한 필경의 기진한 노동에 관하여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2011년 가을에
김훈은 쓰다
목사님이 언급하신것 처럼 저도 최근작가들의 작품에는 큰 흥미가 없어 소설읽기를
쉬고있었는데... 이 책 흑산은 꼭 한번읽고싶다는 생각이듭니다.
그러고 보니 칼의 노래 이후 김훈의 작품은 읽지않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