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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

조회 수 2381 추천 수 0 2019.02.19 14:57:41

오늘은 눈이 녹아 물이 된다는 뜻의 雨水입니다. 한자가 상형문자라서 그런지 글자가 예쁘고 실감이 나네요. 24절기의 한 대목이 입춘-우수-경칩-춘분-청명-곡우로 진행됩니다. 겨울과 봄이 겹치는 때입니다. 여기 원당에는 새벽부터 시작된 비가 하루종일 내립니다. 1년에 한번 열리는 마을 총회 날이기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비오는 풍광을 사진에 잘 담아보려고 여러 장면을 찍었는데, 시원치 않습니다. 한장만 올립니다.

2019.02.19.jpg EXIF Viewer사진 크기1024x655

총회 마치고 서재로 올라와서 창문에 맺힌 빗방울을 찍었습니다. 별 거 아니지요. 빗방울 맺힌 유리창이 뿌였습니다. 그 뒤로 몇몇 피사체가 희미하게 잡힙니다. 횡 막대처럼 보이는 건 2층 베란다 철제 펜스입니다. 저 펜스에 얽힌 사연도 많다면 많습니다. 그걸로 한 시간쯤 '썰'을 풀 수 있습니다. 사선으로 놓인 붉은 두 점이 궁금하게 보이겠군요. 별 거 아닙니다. 혹은 별 거 아닌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른쪽 아래 흰색 사각형은 닭장 지붕입니다. 거기에 붙어 있는 오른 편 집에는 오래 병을 앓고 있는 60대 후반 나이로 보이는 부부가 삽니다. 집이 부분적으로만 나왔네요. 자식들 부부가 가끔 찾아옵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나 언젠가 딸과 어머니가 언성을 높인 적이 있습니다. 오늘 총회에 그들 부부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원래 모든 모임에 나오지 않았고, 아내는 간혹 얼굴을 내보이긴 했습니다. 아마 몸이 점점 더 쇠약해지는 탓이겠지요. 이 간단한 사진 안에 많은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제가 매일 수십번 눈길을 주는 건너편 풍경입니다. 계절에 따라서 색깔이 달라집니다. 곧 화사한 색깔로 단장될 것입니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종종 봅니다. 가을에는 배추가 자랍니다. 수많은 풍경과 사연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다시 생겼다가 사라집니다. 그쪽 집에 사는 사람들은 또 저를 볼 겁니다. 우리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제 서재가 있어서 그들에게 잘 보일 겁니다. 늦은 밤까지, 때로는 자정 넘어서까지 불이 켜진 2층 집에 사는 저를 궁금하게 생각하겠지요. 앞으로 50년 후에는 이 서재에 누가 살게 될까요. 이 작은 원당에서 벌어지는 일만으로도 무궁무진한 사연과 사건이 숨어 있다는 게 분명하니, 지구 전체를 생각하면 아득할 뿐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저 사진에서 보듯이 희미하기도 하고 또렷하기도 한 대목들이 서로 겹쳐 있습니다. 삶의 심층이라고나 할는지요.  우리 개인의 삶이 그렇고, 호모 사피엔스가 그렇고, 우리의 몸이 그렇고, 영혼이 그렇고, 우주 전체가 그렇습니다. 말하다보니 추상화 예술 사진을 제가 찍었군요. ㅎㅎ. 제목: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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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쿠키

February 19, 2019
*.123.54.208

서울에서는 오늘 제대로 '우수'를 보냈어요. 오전내내 굵은 눈송이가 떨어졌는데 바로 물이 되었거든요.

몽환적인 색감으로  아주 멋진 작품이 되었네요. 거기에 해설까지 더해져서..

빨간 두 점이 무엇일까요? 점 아래에는 사람 그림자가 비치는거 같고 숨은 그림 찾기 같아요.


요즘에는 삶의 순간 순간이 문득 그림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내가 나를 바라보게 되요.

맑은 날 똑같은 곳의 사진이 궁금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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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February 19, 2019
*.182.156.135

예, 몽환적인 거 맞습니다.

삶 자체가 근본에는 몽환적이기도 하겠지요.

오늘 마을 사진 한장 붙입니다.

IMG_1297.JPG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개울입니다. 뿌연 물이 흐릅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흔적도 남깁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게 되요." 이게 유지되면 평화와 안식과 자유를 얻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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