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교회에 "헨리 나웬의 영성"을 소개했었습니다. 그랬더니 전도사님중의 한 분이 헨리 나웬은 말년에 가서 여러 가지 추문으로 얼룩진 인생을 살았다고 하네요.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 보았더니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여간 그 전도사님 왈 "동성애자였고 만인구원설을 주장한 헨리 나우웬을 영성의 거인으로만 보는 편협함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더군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야 하는지 아니면 어는 정도 설명을 해 주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여러분들의 지혜로운 답변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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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글이 인터넷에서 찾은 김삼(ssvc02@gmail.com)이라는 분의 글입니다.

"지난 90년대부터 카톨릭은 물론, 한국 개신교계마저 헨리 나우웬의 영성적 가르침에 깊이 천착해왔다. 바로 이 시간에도 수많은 개신교인들과 교계언론이 나우웬을 대단한 영성신학자로 부각시키거나 존중하고들 있다. 그의 서적과 글에 감동 받아 펑펑 울기까지 한다.

일찍이 나우웬의 영성에 감화 받아본 적이 없는 필자로서는 이런 현상이 퍽 우려스럽다. 대부분 겉으로 나타난 그만 알고 있지, 숨겨진 그를 모르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나우웬의 영향력을 기독교작가 C.S. 루이스나 카톨릭의 저명 신학자 토머스 멀튼에 비견하는 데, 멀튼은 모를까, 루이스에 견주려 들다니 말도 안된다. 여태 개신교의 영성이 카톨릭의 나우웬보다 못하단 말인가? 솔직히 말해서, 현 교계 서점들이 나우웬의 책을 팔아 남기는 이익이 그 영성보단 비중이 더 크지 않나 싶다.

알고보면, 나우웬은 어릴적부터 죽기까지 동성애자, 동성애 옹호론자였고, 말년에는 보편구원론 내지 만인구원설을 주장하며 내리막길을 걸어갔다. 그의 '안식여정-최종일기'(Sabbatical Journey, The Diary of His Final Year)를 보면, 그가 중심 삼는 여섯 주제중 보편론적 구원사상이 나타난다. 즉 "(로마) 카톨릭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전통적 신념으로부터 "나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집의 문을 열려고 오실 때, 모든 인간들이 예수님을 알든 모르든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썼다.

카톨릭 밖엔 구원이 없다는 믿음도 우리가 볼 때 문제지만, 예수님을 알든 모르든 누구나 구원받는다는 보편구원 사상도 가히 이단적이다. 바로 다름아닌 로마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자신이 2000년 12월 6일 성 페트로 광장에서 한 말과 거의 같은 내용이다.

그즈음 나우웬은 자신이 봉사하던 라르슈 공동체에서 신자든 아니든 누구나와 성만찬을 나눈 까닭도 이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참 기독교의 모습이 아니란 사실을 우린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또 일기 속에서 자신의 깊은 속 비밀에 대한 동성애공포증(homophobia)으로부터 모든 '선천적' 동성애자들과의 강한 결속에 대한 확신으로 전이돼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네덜란드 출신의 석학이자 명문대학교 교수, 카톨릭 사제였던 나우웬은 명석한 사고의 작가이자 탁월한 연사였다. 흔히 '상처 입은 예언자'로 불린 그는 훗날로 갈수록 이성 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는 편이었다. 그의 글을 보면 자신의 정서적인 말들이, 깊이 있는 성경 인용과 성경 풀이를 능가하고 있음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웨인 홀스트가 지적한 대로, 그는 창의적이기보다 기존개념을 대중화시켰다. 그는 자신의 아픔을 솔직히 노출시키는 감정이입 내지 공감대 형성에 뛰어났다. 자신은 해답을 모르지만, 체험과 규명을 통해 더 잘 파악할 수 있다는 식의 제언가였다.

나우웬은 1932년 화란에서 태어나 1957년 사제서품을 받은 뒤 심리학 연구에 몰두한다. 1964년부터 81년까지는 메닌저 클리닉, 노틀데임, 니메건, 예일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했다. 50세를 지나서는 '그리스도의 내리막길'을 좇아 6개월간 볼리비아, 페루 빈민선교를 거쳐 멕시코, 니카라과, 온두라스에서 사역을 한뒤 잠시 교수생활로 되돌아왔다가 말년까지 정신장애우들을 위한 카나다 라르슈 공동체에서 일했다.
  
나우웬은 자타가 시인하는 소극적/비공개적 동성애자였다. 단적으로 마이클 포드가 쓴 전기 '헨리 나우웬의 초상'에 명기돼 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자신이 '타고난 동성애자'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평생 동성애적 애욕에 내적인 갈등을 겪었지만, 외적인 선행과 인고로써 극복해나갔다. 그래서 더욱 반사적으로 사목생활에 침잠했던 것이다.

어느 정도 믿어야할지는 모르나, 1996년 9월 21일 그가 숨지고 난 뒤, 동성애 옹호단체 '의식있는 복음주의자들'의 뉴스레터인 '레코드' 96년 가을호는 "지난 4반세기 동안 나우웬은 '두 남성들, 또는 두 여성들 사이의 강한 상호애착에 바탕을 둔 깊은 대인관계에 대해 옹호적이었다"면서 1971년 나우웬이 "동성애 감정을 지니지 않은 척 하는 사람은 심장이 잆이도 살 수 있는 척 하는 사람과 같다"고 썼다는 글을 인용했다.  

매우 불행한 일이다. 성경적으로 볼 때, 타고난 동성애자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란 누구나 강한 의지로써 크리스토 앞에 마음 문을 열고 나오기만 하면 고침 받을 수 있다. 스스로 못말리는 동성애자라고 믿게끔 만드는 것은 성경이나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과 악령들이다. 바로 사탄의 졸개인 '동성애의 영'(spirit of homosexuality)이 그렇게 만드는 장본인이다.

나우웬이 자신은 동성애자로 태어났다고 믿기 시작한 시기는 그가 사제가 되고싶다는 '소명'을 받은 시기와 엇비슷한 때였다. 그는 고미다락방을 어린이 채플로 개조하기까지 했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세계곳곳에서 우후죽순격으로 터지고있는 사제들의 아동성추행 배상소송들의 배경을 보면, 전통적으로 다수의 사제들에겐 동성애/남색의 악령과 악습 및 그 저주가 맥맥히 이어지고 있음을 간파한다.

말하자면, 나우웬은 이 점에서 평생을 악령에게 속아 산 셈이다. 동성애는 (비록 어릴 적부터라고 해도) 동기를 막론하고 악령의 장난과 자신의 욕정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며 거기 마음을 두는 한은 악령에게 조종받는다. "남자들도..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롬 1:27).
이 점에서 그가 '상처' 받은 것이 있다면, 사탄과 그의 졸개들에게 상처받은 것이다. 그것은 크리스토의 구속과 해방사역에 의해 치유받았어야 하는 부분이다. 일생을 두고 끼고 있을 필요가 없는 상처다.

거듭난 이는 모든 것에 변화받은 새 피조물이다. 옛 사람과 구습을 버린 존재가 중생인이다. 다른 모든 죄와 욕정과 마찬가지로, 동성애도 버린 사람이 거듭난 사람이다. 동성애 애욕 하나를 온전히 버리지 못하고서야 무슨 깊은 영성이 나오겠는가? 아니 '영성'이란 말 자체가 카톨릭에서 나오지 않았나? 거기 개신교인들이 목을 맬 필요가 뭣인가?

포드에 따르면, 나우웬은 생애 전반기보다 후반기에 더욱 모종의 애욕을 느낀다. 독신자인 사제여서인지 동성애자여선지, 정서적 아픔과 애정과 개인적 관심, 우정을 향한 갈구를 토로하곤 했다. 그는 늘 대중의 관심에 굶주렸다. 관심과 주목의 주 대상이길 원했다. 전세계에 친구들의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었고 한밤에도 전화를 걸어 외로움을 호소하곤했다.

신체적인 접촉도 자주 갈망했다. 한번은 연설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한 친구에게 포옹해달라고 황급히 간청했다. 그 친구는 훗날, "그가 격렬하게 내게 매달려왔고 나도 꼭 껴안아줬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인정이 그리웠던 그에게 일말의 연민이 가는 대목이다.

이러한 그를 두고 포드는 나우웬의 동성애적 바탕을 염두에 두지않고는 "그의 인간됨의 복잡미묘함과 고뇌를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썼다. 메닌저 클리닉에서도 그는 자신의 '장애'이자 이겨내야 할 '십자가'인 동성애적 성향과 씨름해야 했다. 반면, 하버드에서는 동성애 학생들을 엄하게 대하면서 "동성애는 악의 존재상태"라고 일러줬다.

그는 수많은 동성애자 친구들과 사귀면서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공개하고픈 유혹과 압력을 받았다. 그러나 일부 친구들은 카톨릭 작가와 신학자로서의 그의 명성에 치명적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말렸다. 생애 말기로 다가갈수록 그는 남녀 동성애자들에 대한 옹호의 목청을 더욱 높여갔다. "그들은 기독교공동체에 고유한 소명을 갖고있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그가 더 살았다면 동성애 연구에 관한 중요한 저술을 했을 것이라고 포드는 미뤄말했다.

나우웬은 그의 성적인 오리엔테이션을 사람들이 알고 그를 배척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포드는 말한다. "그 엄청난 정서적, 영적, 신체적 부담이 그의 조기사망에 기여했을지 모른다."  
나우웬은 지나칠 정도로 손이 넓어 수많은 친구들에게 여러가지 이유를 달아 돈과 꽃, 선물을 자주 보내곤 했다. 그러나 일부 친구들은 나우웬의 강요성 때문에 부담이 커서 선물을 돌려보내곤 했다. 친한 친구 네이턴 볼('라르슈 데이브레이크' 대표)도 이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둘의 '플라토닉 러브' 관계로부터 슬슬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이때문에 나우웬은 한동안 의기소침에 빠져 정서불안증 치료를 받아야했다.

나우웬의 글과 말이 호소력이 있던 주된 까닭은 이런 깊은 내면적 정서와 고통을 드러내어 말했기 때문이다. 책 '사랑의 내적 음성'에서 그는 이렇게 내리읊는다.

"우정은 당신의 큰 고통의 바탕이 되어있습니다. 그것을 너무나도 바라기에 때로는 참된 친구를 찾아 자주 자신을 잃곤 합니다. 당신이 바라던 우정이 구체화되지 못했을 때 또는 큰 기대를 걸었던 우정이 지속되지 못했을 때, 많은 경우 절망적이 돼버립니다."

나우웬의 경우 위 방정식의 '우정'은 '동성애'로 대입될 수 있다고 봐진다. 우정으로 포장된, 우정의 얼굴을 가진 동성애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가 정신장애우들을 그처럼 피부에 닿게, 살갑게 돌봐준 것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된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