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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하다

부활절 조회 수 12547 추천 수 3 2010.05.09 20: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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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에스겔 36:22-28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하다

(겔 36:22-28)

 

 

이스라엘의 운명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할 예언자들의 영혼은 늘 고독하고 더 나아가서 위태로웠습니다. 그들에게는 이중의 과제가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청중 앞에 선다는 것입니다. 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들어야 하는 것이며, 후자는 그것을 청중들이 알아듣도록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사람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작업니다. 청중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이해타산에만 민감하게 반응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청중 사이에 자리한 예언자의 영혼은 백척간두에 올라선 것처럼 위태롭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을 읽은 에스겔 36:22-28에서도 우리는 에스겔의 영혼이 처한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활동한 시기는 기원전 594년에서 571년입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한 때가 기원전 587년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 시대가 얼마나 불안했을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분명합니다. 바벨론과 이집트라는 주변의 강력한 제국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던 유대의 처지는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요시야의 개혁 운동도 실패로 끝났습니다. 바벨론이라는 제국의 힘을 현실적으로 인정해야 하지만 유대 집권층은 이집트와의 공조를 내세우면서 무모한 반(反)바벨론 연합투쟁에 동참했습니다. 결국 나라가 망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사실을 철석같이 믿고 있던 예언자들은 이런 역사적 운명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갈피를 잡기도 힘들었습니다. 예언자들은 다음과 같은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사실 앞에 서야했습니다. 하나는 유대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부정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은 이미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게 임한 것으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반복해서 주어졌습니다. 약속의 내용은 후손과 땅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약속이 파기되는 것과 같은 사건이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포로로 잡혀갔고, 땅은 이방인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에스겔이 처한 현실이었습니다. 마치 오늘 경쟁 만능주의로 인해서 인간다운 삶과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이 현실과 비슷합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약속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지킬만한 능력이 없는 분인가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일까요? 에스겔은 이런 질문에 대답해야만 했습니다.

     그 대답의 중심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죄가 자리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적이지만 무조건적이지는 않습니다. 단서가 있습니다. 유대 민족이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과 죄가 병행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게 예언자들과 무당의 큰 차이입니다. 무당은 사람의 죄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무조건 악한 영을 축출하고 좋은 영을 불러오기만 합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사람의 죄에 의해서 취소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한 이유는 궁극적으로 죄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은 완전히 끝난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의 죄를 능가합니다. 사람의 죄만 본다면 세상은 비극적입니다. 성서는 죄의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하지만 그것 너머에서 활동하는 하나님의 행위를 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운명을 회복시킨다는 사실을 겔 36:7-15절에서 언급했습니다. 비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이 유효하다는 뜻입니다. 그 내용은 물론 사람과 땅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유지되려면 사람이 늘어나고 땅이 있어야 합니다. 성읍에 사람이 많아지고, 집도 많아지고, 가축도 많아질 것입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땅이 복구되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15절에서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축복을 설명합니다. “내가 또 너를 여러 나라의 수치를 듣지 아니하게 하며 만민의 비방을 다시 받지 아니하게 하며 네 나라 백성을 다시 넘어뜨리지 아니하게 하리라.”

     위의 사실을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지금 처한 상황은 그걸 말하기에는 너무 암울합니다. 에스겔의 이런 예언을 어떤 사람들은 허황되다고 말했을 겁니다. 이게 바로 앞에서 제가 말씀드린 대로 예언자의 영혼이 처한 위기입니다. 미래가 불확실한 상태에서 무조건 잘 될 거라는 말을 하면 무책임한 일입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침략당하기 전에 에스겔이나 예레미야와 대립했던 예언자들은 모든 일이 잘 될 거라고 설교했습니다. 당시에 에스겔과 예레미야는 그들과는 반대로 유대가 망할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실제로 유대가 망한 다음에 에스겔은 이전에 거짓 예언자들이 말했던 내용으로 설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유대 민족을 붙드시고 힘을 줄 것이라고 말입니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언제 선포하느냐에 따라서 거짓 예언도 되고, 참된 예언도 됩니다. 그걸 예민하게 구분할 줄 아는 예언자가 바로 참된 예언자이겠지요.

 

 

더럽혀진 하나님 이름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과의 약속을 회복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런 설명이 바로 거짓 예언자들이 에스겔과 같은 참된 예언자를 흉내 낼 수 없는 능력입니다. 에스겔은 끝까지 청중들의 비위를 맞추지 않았습니다. 막연한 낙관주의를 설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주도적 구원 행위에 집중했습니다. 겔 36:22b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37절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고, 그리고 그것은 곧 당신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에스겔의 고유한 영성에서 나온 놀라운 선포입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이런 차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하나님이 유대 민족을 사랑하시어서 돌봐주신다는 것만 볼 줄 압니다. 그들에게서 이스라엘 민족은 철없는 아이와 같습니다. 자기만 아는 마마보이나 자폐아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역사를 이끌어가는 하나님의 행위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선포했습니다.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영적 눈높이가 달라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자기 이름을 거룩하게 해야만 할까요?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주신 가나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사실을 먼저 살펴야만 찾을 수 있습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지적했습니다.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렵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23a)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본질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 바로 이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본질과 어긋나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겉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면서 실제로는 우상숭배와 다를 게 없는 일들을 행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십계명에도 이 사실이 언급됐겠습니까? 세 번째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 20:7)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요? 가나안의 종교인 바알과 아세라 앞에 가서 제사를 드린 것일까요? 당시에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 안에는 바알과 아세라 신상이 놓인 적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중들이 그걸 원하기 때문에 만들었겠지요. 바알과 아세라는 풍요의 신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통치에만 온전히 매달려서 살아가기 힘들었다는 사실은 이해할만 합니다. 사사시대 말기에 왕을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의 일입니다. 주변의 왕정국가에 비해서 자신들의 공동체가 초라하다고 느낀 겁니다. 가나안의 풍요로운 문명에 비해서 자신들의 삶이 촌스럽다고 느낀 겁니다. 그들은 자기 나라를 그 어떤 인간적 방법으로 통해서라도 강한 나라로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개인들도 그런데만 마음을 썼습니다. 예언자의 눈에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군사와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강한 나라가 되는 것보다는 정의와 평화가 올곧게 실행되는 것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좀 혼란스러운 생각이 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성서의 가르침은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말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따르는 이들이 세상에서도 좀 잘 살아야 하지 않느냐, 하고 말입니다. 대한민국도 빨리 선진국이 돼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세워가려고 해도 세속적인 힘이 좀 필요하다는 논리입니다. 일부러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나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면서도 세상의 먹고 마실 거를 동시에 추구할 수는 없습니다.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게 삶의 신비입니다. 한 가지를 선택해서 최선을 다 하면 다른 것도 주어진다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신비입니다. 이것은 거꾸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두 마리 토끼라는 논리는 혼합주의입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혼합주의적 요소는 극에 달했습니다. 하나님과 바알을 동시에 섬깁니다. 한 가지만 예로 들면 성장지상주의입니다. 다른 교회의 예를 들어서 미안하지만 서울의 ‘사랑의교회’가 2천억 원 이상의 돈을 들여서 교회당을 건축한다고 합니다. 반응이 여러 가지입니다. 속으로 부럽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고, 한국교회 전체가 영적 피로증에 걸려 있는 마당에 대형 교회당 건축이 웬 말이냐 하고 불편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요. 또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회당 하나 쯤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교회당 건축을 결정한 사랑의 교회 교인들은 다 생각이 있겠지요. 제가 보기에 이번 일은 교회성장지상주의에 따른 한 결과물입니다. 교회성장지상주의는 하나님 나라, 정의와 평화, 교회 일치, 교회 빈익빈부익부의 극복보다는 물량적 확대를 통한 교회성장에만 신자와 교회의 역량을 집중한다는 뜻입니다. 구약 예언자들이 피를 토하듯이 경고했던 혼합주의 신앙과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이 곧 우상숭배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반복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더럽힌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그런 일을 하실 수 있을까요? 그 길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공중에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원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드러내지 못하고 우상숭배를 통해서 오히려 더럽혔습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서 벗어나는 것이 곧 하나님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거기서만 이스라엘은 정결해질 수 있습니다. 에스겔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라고 말입니다.(26b) 이런 부드러운 마음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키고 행할 수 있습니다. 굳은 마음은 고정관념입니다. 자기 집중입니다. 업적주의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약속에 성실할 수가 없습니다. 아주 쉽사리 혼합주의 신앙으로 빠져듭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신다는 에스겔의 설교를 유심히 보십시오. 어마어마하고 신출귀몰한 사건들을 보여준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홍해를 가르겠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에스겔은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새로운 마음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실제로 마음이 기울어지는 삶의 태도를 가리킵니다. 이런 마음으로 바뀌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잠시이지 다시 자신의 욕망에 빠집니다. 다시 마음이 굳어집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새 영을 주신다고 말합니다.(26a) 그 새 영은 바로 하나님의 영입니다.(27a) 하나님의 ‘루아흐’가 우리에게 들어오면 우리의 영혼은 봄에 씨앗이 떨어져 싹이 잘 트고 잘 자랄 부드러운 밭이 됩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단초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실 거라는 에스겔의 예언은 곧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라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 이스라엘이 거룩해지는 데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다는 사실이 증명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과 명령 앞에서 실패했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라는, 동시에 우리도 거룩해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우리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지혜로운 것도 아니고 더 경건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거룩해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부활 생명의 빛이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이 빛 덕분으로 우리는 거룩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아십니까? 이 사실을 생생하게 경험하셨나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십시오. 거룩하게 사십시오. 무슨 말인가요? 하나님이 행하시는 생명의 능력에 여러분의 영혼을 활짝 열어놓으십시오. 이것이 바로 새 이스라엘인 우리 그리스도인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며, 동시에 은총입니다. (부활절 여섯째주일, 5월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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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May 10, 2010
*.108.219.82

목사님, 이 곳 맨해튼에서 이 설교를 읽으니 각별한 생각이 듭니다.

저는 도시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그러나 마천루의 숲을 다니다가 모래알 님과 달팽이 님의 사진이 또다른 울림으로 옵니다.

이번 여행에는  일종의 반대정신을 가지려고 했는데요,

거기에 포인트가 맞추어지는 것 같기도 하네요.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드러운 마음은

차갑고, 딱딱하고, 건조한 마음이어보아야 진정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지독한 도시에 와보아야 자연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것 처럼요.

주님께서 늘 부드러운 마음을 주실 것에 민감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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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9]정용섭

May 10, 2010
*.120.170.243

구행자 집사님,

도시를 좋아하시니

이번 뉴욕 여행이 참 즐겁겠군요.

벌써 그 아까운 일주일이 다 갔네요. ㅎㅎ

에스겔에 따르면 부드러운 마음은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주님의 영을 받아야 된다네요.

주님의 영은 받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보이지도 않도 만져지지도 않는데요.

거꾸로 생각하면 답이 나와요.

부드러운 마음이 되었다면 주님의 영을 받을 거죠.

더 근본적으로 부드러운 마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겠군요.

우유부단한 정신을 말하는 건 아닐 텐데요.

뉴욕의 도시다움을 마음껏 즐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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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8]눈꽃

May 10, 2010
*.187.19.193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라 그동안 수도 없이 들은 설교말씀인데 .....

 

"하나님이 행하시는 생명의 능력에 여러분의 영혼을 활짝 열어놓으십시오"

"이것이 바로 새 이스라엘인 우리 그리스도인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이며, 동시에 은총입니다"

 

오늘 처럽 명쾌하고 선명하게 다가 오는 건 처음입니다

요즘 실타래 처럼 엉긴 것들이 조금씩 단순해짐을 느낌니다

 

목사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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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9]정용섭

May 10, 2010
*.120.170.243

목옥균 집사님은

그 나이에(죄송) 신학의 맛을 아시다니,

참 특이한 경웁니다.

나이가 들면 대개는

어떤 신앙적인 틀에 묶이고 만답니다.

그게 편하거든요.

단순해지는 걸 느끼신다구요.

또 복잡해질 때도 있을 거에요.

실망하지 마세요.

방향이 잡혀 있으면

다시 단순한 마음으로,

거기서만 참된 평화가 가능한데,

돌아갈 겁니다.

좌고우면 없이 진리의 영을 따라서

아직 남아 있는 길을 가 봅시다.

주님의 은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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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황 기

May 10, 2010
*.247.9.21

유니스님..맨해튼에서 까지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설교 말씀 듣는군요..

어제 목사님 설교 결론이 가물가물해서 다시 들으려고 잠깐 들렀는데 조우하는군요..

어제 어머니 예배 보시고 잘 다녀가셨고요..

마천루 너무 올려 보다가 목 삐끗하지 말고 두루두루 잘 보고 지내다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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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9]정용섭

May 10, 2010
*.120.170.243

황기 집사님,

대단하군요.

대개는 설교를 들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고,

좀 희미해도 다시 듣지 않는데요.

학생들에게 학점을 주시는 분이래서 그런지

설교도 학점 따듯이 들으시네요. ㅎㅎ

설교 시간에 필기 노트 하시잖아요.

제 설교에 집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 그런데요.

제 설교에는 결론이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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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May 11, 2010
*.108.219.82

넵, 집사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늘 예배 이모저모를 잡아주시는 집사님께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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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모래알

May 12, 2010
*.56.59.35

목사님!

도대체 교회성장지상주의가

어떻게 그리고 왜 교회 안에 들어섰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기독교 신앙에 대해 저희가 어렸을 적 교회에서 배운 것들을 지금 생각해 보면

잘못 배운 것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싶거든요.

그 당시 목사님들이나 전도사님들이 일부러 잘못 가르쳐 준 것이 분명 아닐테니

그 분들을 비난할 수도 없는 것일 테구요.

 

열린 마음 부드러운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지내기를 소망하며

감사드립니다.  

 

참.. 목사님 프로필 사진( 댓글에 나오는 사진) 근사해요.

근데 뒷배경이 너무 겨울스러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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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9]정용섭

May 13, 2010
*.120.170.243

모래알 님,

생각이 깊으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까지 넓은신 분이군요.

주님의 영이 아니면

우리 스스로 부드러운 마음을 갖기가 참으로 힘든 것 같습니다.   

그렇게 곱게 늙어가시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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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훈쓰

May 17, 2010
*.165.223.82

목사님 안녕하세요. 올해 설날 석호동 형제와 같이 대구 셈터 교회에서 인사 드렸던, 신학교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유학갈

까 생각 중이라던, 그 형제(기억하실른지 모르겠습니다. 책도 주셨었는데.) 인데요.  평소에 다비아를 보며 질문하고 싶은게 있어서요.

 

우선 목사님의 깊이 있고, 성실한 설교 말씀과 글쓰기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유학 준비 하면서 틈나는 데로, 잘 읽고 배우고 있습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목사님 설교 끝은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완성하신, 그리고 완성하실 생명, 즉 그 생명되시고 부활하신 예수에게 희망을 걸고 우리의 정신과 인생을 집중하자인 것으로 이해하는요,  저도 이 것이 가장 기독교의 핵심이며, 중요하다고 생각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 하늘과 새 땅, 궁극적인 새 생명에 희망을 걸고 사는 사람이라도, 이 세상의 악(창조, 생명 파괴 현상)에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데요. 제가 잘 못 이해한 것인지, 아니면 괜한 노파심이 스스로 생겨서 인지, 그 대처 방식이 문제인식의 단호함 치고는 좀 소극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물론 그 소극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목사님이 평소 주장하시는 데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동의하고 있구요. 우리는 맑스주의자들 처럼 역사 진보가 인간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믿으니까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개입이 없는 그 진보가 허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을 기대하고, 또 기다리더라도 우리가 현실에서 부딪히는 그 부조리등에 좀 성실히 대응할 필요는 있는 거 같습니다.  제가 인생을 너무 빡시게 살라고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순간 한순간 세상의 논리와 부딪히는 일들이 너무 많은거 같아서요. 특히 평신도로 사시는 분들은 더 잘 느끼실 꺼라 생각 됩니다.

 

저는 오히려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이룰, 그 생명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성취되었고 언젠가는 더 완전해 질 것이라고 우리가 믿고 희망을 걸고 있다면, 설사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아니더라도, 이런 세상에서 좀 더 치열하게 살 이유가 맑스주의자 보다 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말은 그러니까. 제 개인적 성향인지 아니면 제가 아직 젊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목사님이 지적하시는 그 세상의 악(오늘 설교 본문에서는 야훼신앙과 바알을 혼합해서까지 자기를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진행되는 생명파괴 현상)과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좀 투쟁해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물론 오늘 목사님께서 하시는 오늘의 설교도 그런 행위의 부분일 것이지만, 좀 더 적극적인 포즈도 필요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충분한 문제 의식은 있는데 "행동하면 더 안 좋아질 가능성이 많다 "이런 식으로 자꾸 이해가 되서요. 세상일이 하다 보면 좀 기대와 어긋나게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는 일은 일종의 "실패주의" 아닐까요? 제가 이해력이 안 좋아 잘 못 이해하고 있다면 좀 부과적인 설명이라도 부탁 드립니다. 이 부분은 목사님의 개인적 의견을 좀 듣고 싶네요.

 

저는, 제가 가진 강박관념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관념적인건 예수 그리스도의 치열한 삶에 비해서는 좀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이 좀 과격하다면 용서를.. ) 

 

물론 치열한 삶으로의 촉구가 어떠한 형태든 일반화 될수 없다는 것은 압니다. 개인의 삶은 다 다르게 진행 되니까요.  그래서 부작용도 많구요. 또 그런 의식(실천적 부분을 강조할 시에 나타나는 부작용을 아는것) 때문에 더 조심하고 있다는 것도 알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적어도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 정도로 악한 사회라면, 오해의 소지를 감수 하고서라도 좀 더 열심히 소리 질러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질문인지, 지적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좀 못난 소리라도 이해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그래도 제 얘기를 의도는 충분히 전달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온라인으로만 참여하는 방관자적 입장에서 하는 소리라 주제 넘을 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다비아 같은 귀한 모임이 한국  기독교 문화에서는 드물고 개인적 기대도 많은 터라 댓글하나 답니다.

 

목사님께서도 늘 생각하시는 부분 이겠지만, 예전에 하셨던 설교 비평(그 때 상당히 힘드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 같은 거도 좋고, 샘터 교회나 다비아 성도님들도 모여서 좀 한국 기독교에 유익이 될 만한 여러가지 사회활동 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 바람으로는 다비아 설교를 통해 그런 동기유발 좀 더 당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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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9]정용섭

May 1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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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쓰 님,

잘 알구 말구요.

유학 준비 잘 하기 바랍니다.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통치를 기다리는 사람이

구체적인 현실의 악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 하는 질문이지요?

그런 악과의 선한 투쟁이

내 설교에서 좀 약하다는 말이지요?

그것은 지난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계속된 논쟁이랍니다.

조금씩 처한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악한 로마 제국 앞에서 바울도 그런 갈등을 겪었고,

뮌처와 루터의 갈등도 그것이고,

몰트만과 판넨베크의 차이도 그것이에요.

내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다면

악한 세력과의 투쟁은 끈질기게 펼쳐나가야 합니다.

그걸 위해서라도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지평을

명백하게 인식해야한답니다.

그래야만 악의 본질을 뚫어볼 수가 있거든요.

앞으로 유학 가서 사회윤리 등에 관한 공부 많이 하시고

한국교회와 사회를 위한 좋은 역할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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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훈쓰

May 1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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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성실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몇년동안 이어져 오던 고민이라 생뚱맞게 질문했습니다만,

 

그것이 오래된 역사적 논쟁 거리라면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더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올해 유학을 가든 가지 않든 조만간 대구내려 갈꺼 같은데, 그때 내려가서 교회에 한 번 찾아 뵙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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