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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구원의 근원

기타 조회 수 12857 추천 수 38 2006.04.02 18:35:10
성경본문 : 히브리서 5:1-10 
http://wms.kehc.org/d/dabia/06.04.02.MP32006. 4.2.        히 5:1-10
영원한 구원의 근원  

대제사장
히브리서는 신약성서 중에서 아주 특별한 텍스트입니다. 이 텍스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다룬 복음서도 아니고, 사도들의 활동을 담은 사도행전도 아니며,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을 격려하는 서신도 아닙니다. 학자들의 일반적인 설명에 따르면 히브리서는 최초의 신학 논문입니다. 특히 기독론을 다룬 논문입니다. 요즘도 마찬가지이지만 신학논문은 평신도들이 읽기에 좀 따분합니다.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들이 논의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신학은 신앙을 골치 아프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그 토대를 확실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만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면 그런 신학적인 글에서 훨씬 풍부한 영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건 흡사 노래방에 가서 신나는 유행가를 부르는 것도 좋겠지만, 클래식 연주장에서 고전으로 이름 난 음악을 들으면서 훨씬 풍부한 음악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를 신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예수님을 구약의 인물들과 유형론적으로 비교해서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천사보다 뛰어나신 분이며(1:4-2:18), 모세보다 더 위대하고(3:1-19), 여호수아보다 더 뛰어나다는(4:1-13)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인물, 종교행위, 제사장을 초월하는 완전하고 영원한 대제사장(4:14-7:28)이십니다. 오늘 본문도 역시 예수님이 영원한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대제사장 직과 연관해서 구약의 두 인물이 제시됩니다. 한 사람은 모세의 형인 아론인데, 그는 이스라엘의 광야 시절에 대제사장으로 활동했습니다.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영예로운 직무는 자기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얻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대제사장의 직무가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다는 사실을 통해서 예수님의 대제사장 직도 역시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대제사장 직과 연결해서 거론되는 또 다른 구약의 인물은 멜기세덱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멜기세덱의 대제사장 직을 이어받았다고 두 번이나 언급했습니다. 한번은 시편 110:4절을 인용한 본문 6절 말씀이고, 다른 한번은 오늘 본문의 결론에 해당되는 10절입니다. 10절을 읽어보실까요? “하느님께로부터 멜기세덱의 사제 직분을 잇는 대사제로 임명받으셨습니다.” 도대체 멜기세덱은 어떤 사람인가요? 이 이름이 여분에게 상당히 낯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따른다면 그가 대제사장이었다는 건 분명한 것 같은데, 그 이외에는 다른 설명이 없군요. 이 사람은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인물이니까 조금 더 검토하는 게 좋겠습니다.

멜기세덱
멜기세덱에 관해서는 창세기 14장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최초 족장으로 알려진 아브라함 설화 안에 등장합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생지인 갈대아 우르에서 유프라테스 강을 거슬러 올라가 그 강의 발원지 근처인 하란에서 당분간 살다가 아버지 데라가 죽은 다음, 조카 롯을 데리고 남쪽의 가나안 땅으로 내려온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살림을 내주었습니다. 롯은 그 유명한 소돔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고, 아브라함은 그냥 가나안에 남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부족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소돔에 살고 있던 롯 일가는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아브라함은 318명의 부하를 이끌고 롯을 사로잡아간 왕들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롯과 재물과 부녀자들을 되찾았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여러 왕들이 마중 나왔습니다. 그중의 한 사람이 곧 멜기세덱입니다. 그는 지금의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살렘 왕이었다고 합니다. 창 14:18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였다.” 고대는 왕이 제사장을 겸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멜기세덱이 다른 왕들과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을 마중 나왔다 이야기는 그렇게 특별한 게 아닙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멜기세덱과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새롭게 진행됩니다.
창세기 14:19, 20절에 따르면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이 복을 빌어주었다고 합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은 내리소서. 그대의 원수를 그대의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어라.” 이렇게 복을 비는 기도가 있은 후에 아브라함은 자기가 가신 것 전부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이 구절을 십일조 헌금의 성서적 근거로 삼는 분들도 있지만, 이 설화는 십일조가 아니라 훨씬 근원적인 것을 이야기합니다.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섬기는 제사장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때의 제사장은 역사가 한참 흐른 다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교권을 행사하던 그런 대제사장들과는 다릅니다. 아브라함 시대는 성전도 없었고, 율법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모세의 하나님 경험도 없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생지인 갈대아 우르 출신인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정착하던 그 시기에는 아직 유대교의 종교적 전승이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창세기 기자는 이 멜기세덱을 이스라엘이 섬기는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묘사합니다. 왜냐하면 멜기세덱이 섬기던 신은 지극히 높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 신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멜기세덱의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세상의 창조자라는 점에서 동일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멜기세덱이 유대교라는 일정한 종교가 형성되기 이전의 보편적인 종교의 제사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특정한 종교를 뛰어넘는, 우주론적 차원에서의 제사장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곧 그가 멜기세덱에게 머리를 숙였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을 마중 나온 많은 왕들 중에서 아브라함이 머리를 숙인 왕은 멜기세덱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 멜기세덱은 이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지금 아브라함이 머리를 숙이고 축복의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멜기세덱의 직분을 잇는 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유대인들도 머리를 숙여야 할 대제사장이라고 말입니다.

속죄의 주체
그런데 우리가 실제적인 대제사장의 역할과 예수님의 공생애를 비교하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 가문이 아니라 노동자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세례 요한야말로 제사장 가문에 속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제사를 집행할만한 권한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와 연관된 성전보다는 세속적인 삶의 한 복판에서 지낸 일이 많았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면서, 시장에서, 호숫가에서, 광야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병을 치료하고, 때로는 율법학자들과 논쟁했습니다. 그렇게 3년 가까이 생활하시다가 결국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대제사장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예수님은 대제사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들로부터 공격당한 분이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무슨 의미에서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고, 그것도 유대교를 뛰어넘는 보편적, 우주적 대제사장이라고 변증하는 것일까요?
우선 대제사장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십시오. 본몬 1절은 대제사장의 역할을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대사제는 속죄를 위해서 예물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속죄’입니다. 대제사장의 역할은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속죄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속죄가 필요한 이유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는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인간의 죄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관련된 말을 들으면 현대인들은 기분 나빠 합니다. 한편으로 자신들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산다고 합리화합니다. 여기서 죄라는 것을 단지 파렴치하거나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 또는 불의한 마음 같은 것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죄의 결과들일 뿐이지 죄 자체는 아닙니다. 죄는 훨씬 근본적인 것입니다. 성서는 선악과 설화를 통해서 인간의 원죄를 지적하고 있는데, 이런 가르침은 인간의 삶이 근원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도 우리는 내면적으로 분열의 길을 걸어갑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완전한 평화를 유지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게 곧 죄의 결과입니다. 완전한 평화이신 하나님과 일치하지 못한 인간의 삶은 결국 자기분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거죠.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을 때 우리는 완전한 평화이신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곧 ‘속죄’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대제사장들은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속죄를 바랄 뿐이었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직접 사죄를 선포하셨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이 모여 운신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사람들이 지붕을 뜯어내면서까지 한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에 데리고 왔을 때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눅 5:20). 예수님이 죄의 용서를 선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이미 현실 안에 들어온 하나님의 통치와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속죄의 주체라는 점에서 예수님은 참된 대제사장이십니다.

완전한 희생제물
둘째, 대제사장의 역할은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에서는 소, 양, 비둘기 같은 동물들이 바쳐졌습니다. 그들은 인간 대신 바쳐진 동물의 피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속죄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동물을 바치는 대제사장들과 달리 자기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곧 궁극적인 희생 제물입니다. 이런 말도 여러분에게는 별로 실감이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약간 진부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그 십자가는 하나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이 희생 제물이었다는 말은 그가 철저하게 하나님에게 복종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 8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복종하는 것을 배우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했다는 건 그가 하나님의 나라와 일치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괜찮은 인격과 학문을 겸비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못합니다. 자신의 의지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하게 복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의 구원 계획, 그의 통치에 완전히 복종했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십자가에 처형당했습니다.
예수의 복종, 그로 인한 십자가 처형은 궁극적인 희생 제물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동물의 피를 통해서 희생 제물을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희생 제물이 되신, 전혀 새로운 차원의 대제사장이십니다. 바로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완전한 평화이신 하나님과 갈라진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시는 구원자이십니다.

구원의 근원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후에 당신에게 복종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는 데서 머무는 게 아니라 구원의 주체가 되셨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이 어떻게 구원의 근거, 구원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까? 구원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가능한 사건이 아닙니까? 이 질문의 대답은 예수님이 ‘완전하게’ 되셨다는 데에 있습니다. 완전하게 되셨다는 것은 곧 그의 부활을 가리킵니다. 완전한, 궁극적인 생명이 곧 부활입니다. 우리와 똑같이 불완전한 몸으로 하나님의 통치와 일치하는 복종을 통해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예수님에게 완전한 생명인 부활이 일어났습니다. 이제 예수님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일어난 사건에만 집중합니다. 그에게 현재의 삶과 죽음 이후까지에 이르는 우리의 전체 운명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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