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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과 해방

성령강림절 조회 수 17104 추천 수 3 2010.08.22 22:5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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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누가복음 13:10-17 

안식일과 해방

(눅 13:10-17)

 

    18년 된 여자 꼽추 이야기

     예수님은 당시에 유랑 랍비처럼 활동하시면서 틈틈이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목사가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거나 설교를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 자리에 어떤 여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여자는 18년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면서 허리가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도 그런 분들이 많았습니다. 속칭 꼽추라고 부릅니다. 성서기자는 이 여자가 귀신이 들렸다고 합니다. 고대인들이 질병을 귀신들림 현상으로 보았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들은 병리적인 현상을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가 언제부터 이런 몹쓸 병에 걸렸는지는 성서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여자가 몇 살이나 되었을까요.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났다면 지금 꽃 같은 열여덟 살입니다. 아기를 낳다가 이런 병을 얻었는지, 시집살이에 지쳤는지,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는지 궁금하지만, 성서는 말이 없습니다. 18년 동안 허리가 꼬부라진 병을 앓고 있는 이 여자는 사람대접도 받지 못했겠지요. 이럴 바에야 죽는 게 차라리 낫다고 여길만합니다. 자살을 시도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골방에 숨어서 지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여자의 운명이 얼마나 기구했을지 상상이 갑니다.

     왜 이런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요? 이런 불행한 운명 앞에서 우리는 말문이 막힙니다. 이 세상에는 정말 억울한 죽음도 많고, 억울한 재난도 많습니다.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다른 건 접어두고, 어린아이들이 당하는 고난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계속 병원 신세를 지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심각한 장애도 많고, 소아암에 걸린 아이들도 많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면서 동시에 전능하다면 왜 이런 비참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무죄한 이들의 고통을 보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20세기 후반에 세계 신학의 화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기도가 가능한가?” 구약성서도 이런 질문을 합니다. 동방의 의인이었던 욥이 순식간에 저주를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자식들이 다 죽고, 재산도 없어지고, 몸은 견딜 수 없는 피부병에 걸렸습니다. 재를 뒤집어쓰고 기와로 자기 몸을 긁으면 한탄했습니다. 하나님이 욥을 다시 축복하시어 이전보다 더 많은 자녀들과 재산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 짧은 이야기를 42장에 담고 있습니다. 무죄한 이들의 고난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직접 이런 불행을 당했습니까? 자기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분은 없나요? 거꾸로 이런 불행이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모든 일들이 잘 풀려서 만족스럽다고 말입니다. 그런 불행이 닥칠까 염려하느라 한 순간도 평안하지 못한 분들도 있고,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열심히 살기만 하는 분들도 있겠지요. 어떤 자리에 있든지 여러분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면 18년 된 여자 꼽추 이야기를 회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게 인간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여러분 가족이나 손자나 그 후손 중에서 이런 운명에 처한 이들이 분명히 나올 겁니다.

 

    두 시각

     예수님은 이 여자를 불러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그리고 안수하셨고, 그러자 이 여자의 허리가 펴졌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 여자에게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예수님에게는 축귀와 치병 이야기가 종종 따라다닙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자를 고치셨고, 중풍병자나 시각장애인을 고치기도 했습니다. 귀신들린 자를 고친 일도 있습니다. 심지어 죽은 사람을 살렸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걸 완전히 부정하고, 어떤 이들은 그걸 무조건 사실이라고 주장합니다. 대개는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으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갑니다. 성서는 그것을 의학적으로 증명하지 않습니다. 이 여자가 치료되었다는 사실만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불치병이 치료된다고 생각하는 건 성서를 잘못 보는 겁니다. 예수님을 만난 모든 병자들이 다 치료받은 것도 아닙니다. 만약 그런 능력이 예수님에게 있다면 “온 세상 사람들의 병은 다 물러갈지어다.” 하고 외치셨겠지요.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영원하게 살지어다.” 하고 외쳤겠지요. 예수님이 무기력하게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무슨 말인가요? 축귀와 치병 이야기는 다른 어떤 근원적인 것을 전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는 뜻입니다. 그 다른 것이 무엇일까요?

     꼽추로 18년을 산 여자를 예수님이 고친 사건을 보고 회당장은 분을 냈다고 합니다. 이건 분을 낼 일이 아니라 박수를 칠 일입니다. 그런데 회당장은 분을 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인정머리가 없는 사람일까요? 예수님과 경쟁 관계래서 그런 걸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회당에서 말씀을 전할 기회를 주었다는 걸 보면 그가 원래 예수님에게 호의적이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이 분을 냈다는 게 이상합니다. 그는 거기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에게 직접 말하지 못하는 걸 보니 뭔가 찔리는 데가 있긴 한가 봅니다.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눅 13:14) 이 사람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병을 고친 것 자체를 문제로 삼는 게 아닙니다. 병을 고치는 일은 안식일이 아닌 나머지 엿새에 하면 됩니다. 18년 동안 장애를 앓은 이 사람이 하루 뒤에 치료된다고 해서 크게 억울한 것은 없습니다. 안식일 법도 지키고 여자의 병도 고칠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왜 안식일에 이런 일을 해서 법을 어기느냐는 것입니다. 그럴듯한 논리이죠? 합리적인 주장이지요? 이 회당장의 논리를 잘못이라고 말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회당장을 가리켜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위선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안식일에도 사람들은 소나 나귀 등의 가축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서 외양간에 풀어내고 또 그렇게 물도 먹였습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규칙을 어긴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보기에 따라서 법을 준수한 것이기도 합니다. 안식일에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가 있습니다. 대략 5백 미터 정도 됩니다. 그 거리 내에서 가축을 몰고 간 것이니까 안식일 법을 지킨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노동을 금지한 상위법은 어기고 하위법을 지킨 것입니다. “하루살이는 걸려 내고 낙타는 삼킨다.”(마 23:24)는 말씀과도 일맥상통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위선이라고 비판하셨습니다.

     요즘 정치권에서는 총리, 장관 청문회로 열기가 뜨겁습니다. 위장전입은 거의 일반화된 현상입니다.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서 쪽방 촌에 투기한 분도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이런 불법은 대통령이 지명하기 전에 완벽하게 걸러진다고 합니다. 만약 미국의 장관 지명자들에게 요즘 우리의 경우에서 보는 것 같은 사실들이 드러났다면 스스로 포기하든지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할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슨 조화인지 여론의 눈치를 살피면서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위선의 일상화입니다. 물론 사람이 늘 도덕군자로 살기는 힘듭니다. 실수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냥 자연인으로 살면 됩니다. 문제는 사회지도층이 되려는 사람들입니다. 법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 또는 합법을 가장하고 불법을 저지른 사람이 장차관, 총리, 대통령을 하면서 법 준수를 외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왜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느냐고 분을 내는 회당장과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눅 13:16) 회당장은 이 여자가 18년을 기다렸는데 하루 더 기다리지 못하냐, 하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이미 18년이나 기다렸는데 하루라도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회당장과 예수님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건 인격이나 성품이나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각입니다. 회당장에게는 법이 중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매임에서 푸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회당장에게 법이 목적이고 사람은 수단인 반면에 예수님은 정반대였습니다. 이것은 서로 안식일에 대한 신학적인 견해가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보수적인 시각이고, 어떤 사람은 진보적인 시각이라는 차이가 아닙니다. 근원과 본질을 보고 있느냐, 외면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오늘 본문 사건은 안식일을 중심으로 벌어졌습니다. 안식일의 뿌리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창조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제 7일에 안식하셨으니까 사람도 7일에는 안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식은 생명 사건입니다. 둘째는 출애굽입니다. 애굽의 억압으로 해방시키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구약성서가 말하는 안식일의 근본은 생명과 해방입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곧 생명에 집중한다는 것이며, 또한 해방의 능력에 사로잡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여자는 생명을 얻었습니다. 해방되었습니다. 이것이 회당장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외친 안식일 법의 근본 의미였습니다. 그걸 놓치면 아무리 안식일에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안식일에 매달릴수록 위선적인 사람이 될 뿐입니다.

     종교적인 안식일 법이 가리키는 생명과 해방은 세속의 법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법을 지켜야 할 이유도 생명과 해방을 확장시키는 데 있습니다. 그것 없이 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법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는 태도입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법이 절대이념이 되고 사람은 수단이 되고 맙니다. 이런 법 절대주의는 18년 동안 꼽추로 산 여자에게 지금까지 잘 참았는데 하루 더 참지 못하냐고 윽박지릅니다. 이런 일들을 우리는 일상적으로 경험합니다. 지금 우리는 경제성장 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한국경제가 더 좋아질 때까지 좀더 참으라고 요구합니다. 파이를 더 키우고 나중에 나눠주겠다는 논리입니다. 그 나눔과 분배의 그때가 언제일까요? 예수님을 향한 회당장의 비판이 당연시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생명과 해방 영성

     정치 경제적인 복잡한 문제를 우리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일에 책임을 맡은 정치인들도 아닙니다. 교회가 직접 발 벗고 나서서 그런 일을 할 수도 없습니다. 더 엄밀하게 말해서 그 어떤 위대한 정치 지도자가 나와도 완전한 해결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각자가 처한 형편에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분명한 방향을 놓치면 안 됩니다. 안식일이 말하는 생명과 해방 영성이 그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보이는 것만큼의 영적 수준에서 살아가게 될 겁니다. 그것이 전혀 준비가 안 된 사람이라면 이 시대가 흘러가는 대로 적당하게 적응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가겠지요.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는 사실 앞에 정직하게 선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삶의 문제를 구원의 차원에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해방의 영성에 진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구도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가 바로 18년 동안 꼽추로 살아온 이 여자처럼 무언가에 매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각자의 삶에 따라서 다릅니다. 우리로 해방의 영성을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것을 단순히 병이나 잘못된 습관, 기구한 운명으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비판한 회당장도 역시 꼽추와 다를 게 없습니다. 그의 영혼은 안식일 법에 매여 있었습니다. 교양이 있고, 웬만큼 재산도 있고, 자식들도 다 잘 됐지만 정신적으로 그는 꼽추입니다. 그는 해방의 영성을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 시대 자체가 꼽추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요.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방의 영성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요? 이것을 여러분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를 모든 매여 있는 것에서 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문제는 그것을 머리로는 아는데 실제 삶으로는 별로 실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더 깊이 공부하십시오. 그리고 해방의 영성을 추구하는 믿음의 동지들과 같은 길을 가보십시오. 사람을 매임에서 푸는 이 세상의 해방 운동에 참여해보십시오. 성령이 여러분을 놀라운 생명과 해방의 세계로 인도하실 겁니다. 아멘. (성령강림절 후 열셋째 주일, 8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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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park20130627

August 23, 2010
*.69.184.180

 

설교 감사합니다. 목사님. 예수님처럼 정말 중요한 것을 지키고 살려가는 모습을 저도 조금이라도 닮아가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듭니다.  한편으로 나 스스로는 그런 것을 판단할만한 경험이 많이 부족하고, 나 혼자서는 독선적일수 있기 때문에 늘 배우고 같이 길을 만들어 갈 친구들, 공동체와 만날 필요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제가 군대 복무시절 병장으로 진급할때 시각을 잃으셨는데요, 집에서는 제가 걱정할 것이라고 해서 실명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제대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충격이 컸습니다.  저는 정말 그런 일이 나의 어머니께 일어날 줄은 생각을 못하며 살았습니다. 얼마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것도 어느정도 예측을 하기는 했어도( 친구들의 부모님들께서 재작년쯤부터 몇몇 분들은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많이 갔었기 때문에요..) 갑자기 나의 아버지께서 그런 상황이 되시니 현실을 받아들이기 참 어려웠습니다. 아직까지 사실 어렵습니다.  삶은 생각치도 못하게 인간적인 아픔과 불행이 일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말씀의 메세지처럼 예수님이 누구신지 계속 공부하고 조금이라도 그분이 추구하셨던 길을 따를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잘 못지켜나갈수 있지만, 너무 욕심을 안가지고 기도하고 기다려가면서 노력하겠습니다. 어머니의 일, 아버지의 일은 아들인 제가 솔직히 해드릴수 있는 도움이 없었습니다. 가족이다보니 사실 너무 편하게, 쉽게 생각했던 태도들도 있었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을 바랄때 가져지는 사랑이나 정의로움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글이 조금 추상적인 것 같기는 하지만... 예수님 통해서 보고 들었던 일들, 하나님의 구원, 해방적인 구원하심을 저의 부모님과 친척들, 그리고 제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보고 싶고, 만들어 가고 싶어집니다. 

 

어떻게 구체적인 길들은 아직은 없지만, 정치정당이나 시민단체 활동등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것 같기도 하구요. 무엇보다도 오늘 메세지에서 가져지는 처음의 마음 잘 기억하며 방향을 살펴보는 태도를 가지고 기도하며 친구들을 만나가고 싶어집니다.

 

수련회 잘 다녀 오시길 바랍니다. ^^  저는 공장 아르바이트 일정이 있어서 날짜가 안맞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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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August 23, 2010
*.120.170.243

박준용 님,

지금 당면한 상황이 힘들지요?

외롭기도 하구요.

중심을 놓치지 말고

길을 가 봅시다.

상황이 괜찮고,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삶도

따지고 보면 별로 다를 게 없답니다.

존재론적인 고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이에요.

어떤 형편에 있든지

우리 모두는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좋은 형편도 지나가는 거고

나쁜 형편도 그런 거에요.

형편을 좋게 만들려는 의지를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떤 형편에서도 가능하다는 뜻이에요.

덥고 힘들겠지만 일단 공장 아르바이트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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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August 23, 2010
*.251.192.155

생명의 창조 후에 최초의 안식...
그 후에는 묶임으로부터의 해방, 그것이 안식이다.
안식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고, 누리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안식에 대한 고정된 생각은 또다른 묶임이 될 수 있다.
다이나믹하게 안식에 대한 사유를 하자.
진리가 자유케한다는 것은, 안식에 대한 계속적인 진리의 개입을 전제해야한다.
진리가 무궁무진하며, 진리의 은폐가 온전히 드러나기까지 안식도 끊임없이 드러나기를 기대한다.
안식은 빨간 날이 아니다.
안식은 그 날이다.
 
목사님, 죄송합니다...반 말을 주욱...써서요.
생각나는대로 적다가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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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August 23, 2010
*.120.170.243

유니스 님은

이렇게 조금만 더 진도가 나가면

영성가가 되겠군요.

사실 뭐 영성가 아닌 그리스도인은 없지만요.

창조, 안식, 해방, 진리가

한 묶음으로 이해가 되지요?

성서의 세계는 오늘 우리의 세계보다

훨씬 성숙한 세계랍니다.

생각의 흐름을 좇을 때는 반말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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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1]더럼

August 23, 2010
*.17.92.47

정 목사님

영국에서 인사드립니다.

논문을 뻘리 마감하고 한국에서 할 일 많은데

하나님은 저에게 더 연단할 게 있는 듯 합니다.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 지리라 믿습니다.

 

목사님 설교글을 읽으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해방의 영성에 근거한 해방적 사회적 복지 실천 방향 모색을 위한 노력해 볼까합니다.

이제까지 해방적 영성을 제외한 해방적 복지 실천에 관한 논문을 썼습니다.

해방적 영성 대신 이곳 영국사회복지 학자들은 효과적인 사회복지을 위해 '반성적(reflective) 성찰적(reflectivity) 비판적(critical) 실천(practice)'이라는 용어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약자들은 돕는 활동과 가치에 대한 반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천에 부닥치는 모순적인 난감란 상황을 해쳐나가는 방향을 모색하는 방법입니다.

복지 실천에 영성(sprituality)을 도입하는 학자들도 있지요.

신학에 보는 해방적 영성과 복지에서 제기하는 영성과 차잉하 유사성에 대한 공부는 더 해야 겠다는 생각을 설교접하면서 느꼈습니다.

 

목사님

설교에서 대통령이나 장관 임명의 경우 미국사회 예화로 드셨섭니다.

영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100여전에  영국의 보수당 토리당과 제 3의 당인 자유 민주당(liberal democracy)이 서로 연합하여 연립내각을

구성하였습니다. 그 때 자유 민주당의 국회의원인 우리나라로 치면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 되었습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장관으로 임명된지 8일만에 임명자가 자진해서 사직한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 장관은 gay로서 자기 남친에게 국회의원 세비로 방값을 지불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언론에 발표되지자 본인 스스로 장관직을

그만두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청문회를 통해서 위법한 사실이 밝혔졌는데

그만두겠다는 후보자가 없는 것 보면서

먹물 집단의 한 일원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현정부가 공정(fair) 사회 향해 나아갈 것이라는 방향을 제시하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보수지향하는 정부가 공정 사회로 발전 시키겠다는 방향 설정,

일면 잘 설정 했다는 평가를 하면서도, 아러니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영국의 총선에서(한국에서 대통령선거입니다 내각제 이기 때문에)  노동당 정부 선거 슬로건이

무엇이었냐 하면 'all fair for future' (미래를 위해 모두에게 공정) 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좌빨로 간주되는 정치 집단의

슬로건을 한국 보수 정부가 도입입했으니 말입니다. 크게 변화의 모습을 보였으니  경축할일이 아닙니까.

공정으로 가는 방법이 쟁접이 될 수 있겠지요. 기회의평등 우선을 둘 것이나 아니면 결과의 평등 둘 것인지...

여하튼 대통령이나 그 보좌진들이 잘알서 선택한 용어라 인정 하면서도

슬로건은 선진국에서 잘도 받아들이는데(실제 결과는 두고 봐야 하지만)

영국 처럼 위법하고도 자진하여 사직하는 후보자가 없으니... 뻔빤한 사회를 만드는 주범들이 아닌지

대통령 말씀되로 10년이 지나면 선진국이 될 수있다 하는데

그 때 즈음이면 위법한 장관 후보자들이 대통령이 그만두라는 메세지가 없어도 스스로 그만 두는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까요.

하나님 향해 외쳐 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목사님

말이 길어 졌습니다.

수련회를 무사히 마치시길 바랍니다

안식일을 가져 할 때 되었지 않나요. 성령 충만을 위해서...

 

다비아 가족 모두

건강하시길...

 

영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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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August 23, 2010
*.120.170.243

더럼 님,

귀국 일정이 늦춰졌다구요.

액기스를 만들어 주시려고

그분이 특별하게 개입하시나 봅니다.

더럼 님이 전공하신 그 분야가

앞으로 한국 사회에 긴히 쓰일 겁니다.

기독교적인 영성에 근거한 복지 실철 모델을 찾는 거 말입니다.

아마 연구는 제법 되었을 텐데,

그래도 더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요.

앞으로 기대가 됩니다.

좋은 한 주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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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9]The One

August 23, 2010
*.39.160.254

일전에  T V 에서 '지구의 생명'이란 다큐를 잠깐 보면서,

지구가 용암 활동을하고 균열이 생기고 ,용틀임 현상을 하는 것이

지구의 제 모습 찾기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지구는 생명체'임을 실감 했습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하나님의 종말론 적 구원, 완성,

생명에서 해방으로, 매임에서 푸는 해방으로의 in  progress  에서

피조물 속성, 죄성, 한계성......등의 용틀임, 균열,  용암 활동으로

무고한 자의 고난, 어린 아이들의 고통, 아우슈비츠사건 등...

이런 것들이 개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들의 통합적인 책임이며, 그래서 같이 아파하고,

기도하고, 나누어야한다. 이런 결론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바른 해석인지는 모르지만....

 

제 입장에서 감히 '고통'에 대해 언급 할 순 없어나  어려움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앎, 깨우침이 삶으로의 체화에 집중하고 있기에, 남은 삶 속에서 18년 된 꼽추 사건이 일어나도

기꺼이 받아들이기를 하나님께 구합니다

제 개인 소견으로는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기도를 계속한다에 한표겁니다.

목사님, 수련회 수고하시고, 내년 수련회 참석 소망합니다( 지금 부터 내년 일정 조정 중임니다.)

항상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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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August 24, 2010
*.120.170.243

The One 님,

남은 삶에서 18년 된 꼽추 사건이 일어나도

기꺼이 받아들이기를 기도하신다구요, 음,

저도 그럴 준비를 하고 살지만

막상 닥치고 나면 꽤나 힘들 겁니다.

그래도 준비를 하고 있으면 버텨낼 수 있겠지요.

따기고 보면 우리 모두는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나이가 들면서 결국은 모두 꼽추가 되고 맙니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상태로 되면서

모든 생명현상과 격리되겠지요.

그 순간을 당겨셔 살아야겠습니다.

좋은 한 주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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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6]geunfeel

August 23, 2010
*.156.50.18

어제 중고등부 예배시간에 "내가 받고 싶은 것, 하나님이 주고 싶은 것"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말씀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얼마만큼 하나님을 믿는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이했했는지는 몰라도 삶의 태도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목사님 귀한 말씀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욥을 다시 축복하시어 이전보다 더 많은 자녀들과 재산을 얻었다고 합니다."

-자녀들은 같은 숫자로 회복 된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전에 이와관련한 공부를 한 기억이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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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August 24, 2010
*.120.170.243

geunfeel 님,

교회에서 중고등학교 교사로 봉사하시는군요.

힘을 내십시오.

욥이 나중에 얻는 자녀들이

잃은 자녀들과 숫자가 똑같다구요?

제가 별로 생각 없이 더 많다고 말했군요.

덕분에 이제 그것을 까먹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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