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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귀신

주현절 조회 수 14318 추천 수 0 2009.02.09 10: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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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가복음 1:29-39 
 

예수와 귀신

(마가복음 1:29-39)


치병과 축귀

오늘 우리가 설교의 주 텍스트로 읽은 본문에는 세 가지의 비슷한, 그리고 짧은 이야기가 연속적으로 나옵니다. 첫 이야기는 29-31절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습니다. 예수님이 그 손을 잡아 일으키자 열병이 나았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32-34절입니다. 저물어 해 질 때 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35-39절입니다. 새벽녘에 기도하러 나가신 예수님을 따라온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사람들이 주님을 찾는다고 알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전도의 사명에 관해 거론하신 뒤에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며 전도하고 귀신을 내쫓으셨다고 합니다.

이 세 이야기의 공통점은 예수님의 치병과 축귀 사건입니다. 고대인들에게 치병과 축귀는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복음서 기자는 시몬의 장모 이야기에서 열병이 떠났다고 표현했는데, 그것은 곧 귀신이 떠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다른 두 이야기도 치병과 축귀를 같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병이 낫는다는 것은 곧 귀신이 쫓겨난다는 의미였습니다.

복음서에는 왜 이런 귀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올까요? 그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고대인들의 세계관에서는 그런 게 자연스러운 겁니다. 그들은 이 세상을 주술적으로 이해했습니다. 악한 영이 인간의 운명에 개입해서 파괴한다고 말입니다. 그런 운명을 극복하려면 악한 영을 쫓아내야 했습니다. 질병도 그런 현상 중의 하나였습니다. 특히 불치병이나 난치병들은 더 심각했습니다. 그들은 그런 병이 왜 시작하는지,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 의학적인 정보가 없었습니다.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어떤 힘이 작용한다고 보았습니다. 그 힘이 바로 귀신이었습니다. 

속칭 귀신파라고 불리는 기독교인들 중에는 여전히 고대인들의 주술적 세계관을 그대로 추종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넘어져도 귀신의 작용이라느니, 감기에 결려도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귀신을 직접 본다고도 합니다. 정통교회에서도 이런 간증들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옵니다. 어느 신자의 턱에 붙어 있는 일곱 귀신을 보고 내쫓아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안수 기도를 통해서 불치병이나 장애를 치료했다는 말은 자주 듣습니다. 크게 보면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운명을 바꿔보겠다는 생각, 십일조 헌금을 통해서 축복을 받아야겠다는 생각들도 여기에 속합니다.

이런 신앙 현상이 한국교회의 저변에 넓게 퍼져 있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당혹스럽습니다. 이런 생각은 상식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하고 신앙적으로도 건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코페르니쿠스 이후의 지동설 시대에 살면서도 여전히 그 이전의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복음서가 말하는 축귀 사건도 천동설과 같이 잘못된 거냐, 하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그런 질문은 방향이 잘못된 것입니다. 귀신은 그 당시의 세계관이었습니다. 우리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이 세계를 읽는 통로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자연과학의 방식으로 세상을 읽는 것과 똑같았습니다. 복음서는 그 당시의 세계관을 통해서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습니다. 일종의 손가락질처럼 어떤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이 귀신을 제어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귀신의 능력

오늘 설교 본문의 세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귀신을 내쫓으신 분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 앞 구절인 막 1:21-28에서도 예수님은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복음서는 귀신이 예수님 앞에서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공생애 초기의 세 가지 시험에서도 예수님은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귀신, 또는 마귀가 예수님에게 완전히 제압당했다는 복음서 기자들의 주장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예수님이 모든 귀신과 마귀를 완전히 제압한 게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부분적인 전투에서는 이겼을지 모르지만 아직 싸움이 끝난 게 아닙니다. 귀신의 작용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귀신은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근원적인 세력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에도 온갖 귀신이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것이 얼마나 강력하고 끈질긴지 우리가 오히려 지쳐 나자빠질 지경입니다.

오늘의 국내외 정치, 교육의 문제는 여기서 반복해서 길게 말씀드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귀신이 들리지 않았다면 오늘의 정치인들이 이렇게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지는 않을 겁니다. 귀신이 들리지 않았다면 교육 당국자들이 어린 청소년들을 입시 지옥으로 몰아가지는 않을 겁니다. 오늘 한국의 교육은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 없을 거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게 사교육을 통해서 진행되니까요. 큰 도시의 웬만한 집의 자녀들은 선행학습을 받는다고 합니다. 일부에서는 이미 공교육이 무너졌습니다. 이런 것에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들도 웬만해서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모두가 그런 방식으로 나가고 있으니까요. 귀신들림 현상과 비슷합니다.

오늘의 가장 전형적인 귀신은 자본주의이겠지요. 돈이면 무엇이나 가능하다는, 돈만이 최고의 가치가 있다는 물신주의가 귀신입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모두 경제발전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웁니다. 잘 살아야겠다는 말이지요. 그런 생각 자체를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요. 문제는 그것이 절대 가치로 자리를 잡는 것입니다. 자본과 물질 만능주의가 오늘 우리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이런 물질 만능주의는 이제 우리가 손 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우리의 삶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력은 분명히 귀신입니다.

더 근본적으로 우리는 삶의 만족을 느낄 줄 모른다는 귀신에 들려 있는 건 아닐는지요. 우리 마음의 한 구석이 늘 비어 있다는 느낌말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죽음 앞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실존적 허무일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끝없는 자기연민으로 인한 허무일 가능성도 높습니다. 인간이 자기연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야 없겠지만 거기에 종속되는 것은 분명히 귀신 들림과 다를 게 없습니다.

오늘의 귀신이 무엇이냐를 설명하기 위해서 앞에 열거한 내용들은 웬만큼 성서와 세상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여기서 정작 궁금한 것은 예수님이 귀신을 제어했는데 왜 이런 귀신의 세력들이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날뛰는가에 있습니다. 공생애만 본다면 엄밀하게 말해서 예수님은 귀신과의 싸움에서 졌습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부분적으로, 일시적으로 귀신을 내쫓기는 했지만 결국은 그들에게 당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귀신에게 완전히 당했습니다. 그 십자가 사건 이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고, 들짐승도 제 집이 있지만 당신 자신은 머리 둘 곳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싸움은 분명히 진 싸움입니다.

그런 주장은 기독교 신앙과 상관없는 패배주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치병과 축귀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신 분이니 승리자라고 말입니다. 아닙니다. 그런 능력을 행한 사람들은 세상에 많습니다. 그런 초자연적 능력을 보인 카리스마로만 말한다면 엘리야나 엘리사가 예수님보다 뛰어날 수도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도 그런 능력을 보인 사람들은 허다했습니다. 그런 것만으로 본다면 예수님은 별로 특별한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런 능력을 행했어도 십자가 사건 앞에서 아무도 그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복음서의 보도에 따르면 시몬 베드로도 예수님을 부인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악의 (존재론적) 세력 앞에서 예수님의 운명도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그와는 정반대로 승리주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세속적인 성공신화가 기독교 신앙의 이름으로 싸구려 약처럼 팔리고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를 일종의 처세술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바울도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유대-기독교인들과의 싸움에서 밀려나 마케도니아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뿌린 복음의 씨가 어떤 결실을 거둔지를 알지 못한 채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죽었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은 내 사전에 불가능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불가능이 많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귀신, 또는 마귀나 악마와의 싸움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싸워봐야 승산도 없고 별 소득도 없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처형당했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그런 악한 세력과의 투쟁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귀신은 너무 교묘하기에 우리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이 이상하게 들리시나요? 보십시오. 지금 우리 인류의 문명이 겉으로는 풍요롭고 멋스러워 보이지만 실제 내용적으로는 궁핍하다는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정의와 평화를 위한 투쟁에 나선 이들에게도, 노동해방과 역사혁명을 꿈꾸는 이들에게도 계속해서 인간의 삶을 파괴하려는 욕망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서 무슨 구원이 가능하겠습니까?


승리자 예수

귀신과의 싸움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에게서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싸우십니다. 우리는 실제로 상대방을 굴복시키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자기를 굴복시킴으로 싸움을 이기십니다. 강함이 아니라 약함이 하나님의 방식이었습니다. 신약 공동체는 바로 그것을 보았습니다. 빌 2:6-8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기자는 계속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위 구절에서 “지극히 높여”는 부활과 승천을 가리킵니다. 새로운 생명으로의 변화입니다. 소위 ‘케노시스’라고 일컬어지는 이 빌립보서의 송영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싸움은 질적으로 차원이 다릅니다. 강함이 아니라 약함입니다. 높음이 아니라 낮음입니다. 채움이 아니라 비움입니다. 증오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이런 싸움을 누가할 수 있나요? 사람이 할 수 있을까요?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못합니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귀신과의 싸움 자체를 폐기처분하셨습니다. 죽은 자로부터의 부활이 그것입니다. 부활생명으로 모든 싸움은 끝났습니다. 귀신은 악을 도모해서 개인이나 공동체를 상하게 하거나 심지어 죽게 할 수는 있지만 부활 생명에 더 이상 개입할 수는 없습니다. 이 부활생명은 오직 이 세상을 창조하고 완성할 하나님에게만 가능한 종말론적 구원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종말론적 구원과 그 승리를 믿고 희망하는 우리는 우리 앞의 악을, 즉 생명파괴 세력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든 걸 하나님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기도나 하고 예배만 드리면서 그 승리의 순간을 기다려야만 할까요? 궁극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기다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가 현실로 드러나기까지 우리는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악한 영인 귀신과의 싸움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치병과 축귀를 행하며 사셨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오늘 설교의 주 텍스트로 읽은 막 1:29-39에 나오는 세 이야기는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세상의 실체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너무 낭만적으로 대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인류가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는 악의 존재론적 세력인 귀신이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 귀신이 보이나요? 보이지 않는다면 싸울 의지도 생기지 않겠지요.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귀신론자들처럼 모든 걸 귀신의 탓으로 돌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주술적으로 해석해도 좋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악의 뿌리가 존재론적으로 아주 깊다는 뜻입니다. 그게 얼마나 깊은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바로 우리 자신일 때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부단히 자기를 주님의 빛으로 성찰해야 하겠지요. 그런 성찰을 그치면 순식간에 우리는 악한 귀신의 세력에 휩쓸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싸움은 부활의 예수님에게 기대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귀신의 저주인 폭력과 싸움과 죽음을 종말론적으로 극복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증거하고 있는 치병과 축귀 이야기는 이런 종말론적 승리의 예표이며, 예증이며, 징표입니다. 그것으로는 아직 완전한 승리는 물론 아닙니다. 이 세상은 여전히 귀신의 놀이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세력은 이미 끝장났습니다. 그 마지막이 다만 유예되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21세기 대명천지에 귀신의 폭력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그렇고, 세계 곳곳도 그렇습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게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힘을 내십시오. 귀신은 예수님에 의해서 이미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얼굴이 회색빛으로 변한 걸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악의 권세를 허물었습니다. 그 주님을 찬양합시다. (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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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6]병훈

February 0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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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란 삶을 파괴하는 세력들이라는 말씀.. 우리가 학벌이라는 귀신, 재물이라는 귀신에 들려있다는 말씀은 "바로 그거야!!" 하며 무릎을 치게 하지만 또한 우리 스스로 그렇게 귀신들려가고  있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 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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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February 09, 2009
*.120.170.235

병훈 군, 그렇지요?
나의 무의식이 어떤 악한 힘에
조종당하고 있다는 느낌은 정말 섬뜩한 거요.
그렇지만 예수님이 거룩한 엑소시스트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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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4]저별과 달

February 0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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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에 서울에서 내려온 형님께  목사님의 글 몇편을 보여 주었습니다.

참고로 저희 형은 어머님이 교회가자고 말하면

(어머님.. 저는 하나님이나, 부처님이나 다 어머님이 말씀 하시는 하나님으로 보이는데요

라고 말하며 세상의 종교는 다좋은 가르침을 가지고 있다, 예수는 인류의 위대한 스승 정도로    생각 하는  사람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학교를  나온 사람이기도 하구요..

저의 형님이 정 목사님의  설교나 시평코너 이야기들은(예를들어  이명박 정권과 한국교회) 

신학자이자, 목사라는 직분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 정치적인 사안들에 집중되어 있는것 같다고 하더군요.



오늘 설교 부분의 마지막 결론 말씀은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의 한 사람인 저를
 참으로 우울하게 하는 메세지 같습니다.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또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대변하는 공적인 설교의 자리에서
목사님의 정치적 한풀이가 설교의 자리로 까지 계속 확대 된다는건
여러 목사님들의 설교를 비평한 비평가로서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저는 대한 민국에서 살아가는 것이 감사하고 행복 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첫째는 저의 어머니 이 병희 권사의 자녀로  한국땅에 보내 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하구요

아침에 일어 나서 맑은 새벽공기를 한껏 들이 마시며,

오늘도 주님이 허락해 주시는 하루를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 갈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주시고
내가 땀흘려 노력 한만큼 결과가 나타나서 (노력 한만큼 이익이 발생 안되는 날도 많지만요)
어머님과  오순도순 살아 갈수  있다는 것이 감사 하구요.
 이 하루도 저에게 건강한 육신을 주시고, 만나는 사람들과 대상을 통해서
 매 순간, 매 시간 마다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영적인 촉수를 세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사에서 그 분의 인도하심과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보면 감사 할 것이 참 많은것 같은데요..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예수와 제자들이 가르친 이런 성경의 말씀들은 활자로서 책속에 묻혀 있을때 보다는
이런 소중한 가르침을 내가  먼저 체험하고 실천할때야  비로서 예수가 가르치고자 한 
참 진리요, 참 가르침이 되는 것이  아닌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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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7]늘오늘

February 09, 2009
*.239.101.213

 

저별과 달님은 장례식장에 가서 이렇게 들이대진 않으실 겁니다.

“하늘에 햇님이 빛나고, 들판에 예쁜 꽃들 피어있는데, 당신은 왜 슬퍼하십니까?”


지금 님이 껄끄러운 것은,

우리들의 탐욕이 빚어내는 이 땅의 참극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공범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입니다.

그리고 가공할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님의 이번 댓글처럼, 엉뚱한 데다 삽질을 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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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February 09, 2009
*.120.170.235

ㅇㅎㅎㅎ
저별님의 대글에는 유구무언이오.
내가 설교자리에서 정치적 한풀이를 했다는 지적이신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안 보이니
내가 귀신에 씌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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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4]저별과 달

February 09, 2009
*.206.88.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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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21세기 대명천지에 귀신의 폭력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그렇고, 세계 곳곳도 그렇습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게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힘을 내십시오. 귀신은 예수님에 의해서 이미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얼굴이 회색빛으로 변한 걸 보십시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악의 권세를 허물었습니다. 그 주님을 찬양합시다

목사님의 이  말씀은  분명히 이번  용산 시위 화재 사건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이 맞으시지요?
이런 메세지는 정치적 한풀이 메세지 까지는 아니라고하더라고
목사님의 정치적 반감이 작용한 설교가 아니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또한 목사님은 현 정권을 악의 실체이자  귀신의 폭력으로 묘사한것 맞으시죠...
제가 밑에 대글에서도  말했듯이 과연 용산시위 사건에 악의 기운이 먼저 누구에게 임했느냐를
올바로 가늠 하자는게 저의 의견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래 칸에 있는 저의 대글을 보시고 의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어거스틴이 이런 글을 남겼더군요..
마귀가 사람의 마음에 올라 타면 그 사람은 미친 말이 된다.
미치 광이 처럼 날뛴다..
평강의 영인 주님의 방법은 결코  
과격하게 미친 말처럼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이런 사안으로 화염병을 던지거나
자신들의 주위에 신나를 뿌리는 무모한 행동은 않겠지요..
이런 과격한 선동자 들에게 악한 기운이 임하였다는게 저의 의견이기도 합니다.
유니스 님 대글 바로 위에 있는 저의 대글을 한번 보시고 난 후 이에 대한 목사님의 의견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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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February 09, 2009
*.120.170.235

저별달님,
선입견이 너무 강해요.
용산 참사만이 아니라
부녀자 연쇄살해,
제주 여대생 납치 살해가 포함되구요.
팔레스틴의 가자지구 전쟁,
이라크 전쟁, 그뿐만 아니라.
지금 세계 곳곳에서
내전 및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답니다.
저별님은 평소에는 안 그런데,
이런 문제만 나오면 그렇게 경솔하게 대글을 쓰는지 모르겠네요.
신학적인 진술을 정치적인 진술로 받아들이면
끝없는 오해가 생긴답니다.
주의 은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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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4]저별과 달

February 10, 2009
*.206.88.145

목사님의  설교 결론 부분이 그런 보이지 않는
 의미가 함축 되어 있었다면  정말 송구 스럽습니다.
늘오늘 님이나 권요안 님, 정성훈 님의 대글을 보면
이 분들도 이 번 설교 결론 부분의 귀신과 악의 실체를 
저와 비슷하게  해석 한것 같기두 한데요.. 
목사님께서  저에게 신학적인 진술을 정치적인 진술로 받아 들였다고  하시니  
이 글의 설교자이신 목사님의 취지를  제가 잘못 받아 들였다고 밖에 볼수 없군요..
그렇다면 무척 송구 스럽게 되었습니다.
저를 이해해 주신것 같으니 감사 합니다!
그럼 목사님 편히 쉬십시요. .
저도 내일 부터 열심히 일하러 가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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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5]권요안

February 09, 2009
*.62.47.6

늘오늘님의 유머를 보여주세요. 
목사님 말씀대로 싸움은 이미 끝났잖아요.
불편하고 싫고 두렵기 때문에 엉뚱한데다 삽질하는 것,
그건 슬픈 일이지 화낼 일은 아닌것 같아요.
악의 뿌리는 존재론적으로 아주 깊어서 누구나 귀신을 볼 수 있는 건 아닌데
그게 보이지 않으면 그냥 아름다운 껍질만 볼 수 있을 뿐이잖아요.
슬프지만 분노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힘을 내요. 부활하신 예수님께 기대서.
유머를 보여주세요. 화내면 지는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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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February 09, 2009
*.120.170.235

아주 가끔 들어오는 권요안 님의 대글은
늘 촌철살인이네요.
"화내면 지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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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2]머리를비우고

February 09, 2009
*.146.226.241

목사님... 교회력에 관심이 있어서 책을 하나 보는데... 정장복 교수님이 쓴 책을 보고있는데요.
목사님 하시는 설교 말씀과 봉독하는 말씀이 일치 되는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는데...
금주 같은 경우 제가 보는 정장복 교수의 <예배와 설교 핸드북>이라는 책을 보면
구약과 서신서는 샘터 교회 주보나 위의 책이나 일치 하는데 복음서는 차이가 좀 있습니다.
막5장29-39의 야이로와 혈루증 여인의 이야기 인데 왜 차이가 나는건지 궁금합니다.
교회력에서 여러 판이 존재 하는건가요?
또 교회력에 관련해서 볼 만한 책좀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전에 한번 언급하신 적이 있는데... 도통 찾을 수가 없습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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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7]시드니

February 09, 2009
*.167.253.3

비우고님, 여기 보이는 교회력은 샘터교회와 일치하는데요?

2009년 교회력 성서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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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2]머리를비우고

February 09, 2009
*.146.226.241

감사합니다. 제가 본 책은 정장복 교수의 <예배와 설교 핸드북>이란 책인데요...
그 책의 내용과 샘터 교회 주보의 예언서와 서신서는 일치하는데 복음서 부분만 달라서 여쭤 본 겁니다.
혹시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교회력도 조금식 차이가 있나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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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February 09, 2009
*.120.170.235

정장복 교수님의 책은 내가 잘 모르니
대답을 드릴 수 없군요.
교회력은 독일 루터교회,
미국장로교회 등,
서로 다른 게 있습니다.
아마 성공회와 로마가톨릭도 다를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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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7]바우로

February 10, 2009
*.62.26.5

성공회는 세계 기독교 공동의  성서정과인 RCL(개정공동성서정과)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RCL을 사용하는 교회라면 어느 교파이던 성공회의 성서정과와 거의 같습니다. 그 증거로 정용섭 목사님께서 사용하시는 성서정과는 RCL을 기준으로 만든 것인지, 성공회에서 사용하는 성서정과와 거의 같습니다.한국 루터교회도 RCL을 사용하기 때문에 성공회와 거의 같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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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2]머리를비우고

February 10, 2009
*.146.226.241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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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8]정성훈

February 09, 2009
*.55.137.106

악의 존재론적 뿌리는 아무한테나 보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
타잔과 맹수의 싸움을 지켜보는 제인과 치타는 흥미진지 하겠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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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February 09, 2009
*.120.170.235

언젠가는 우리가 직접 싸워할 순간이 온다오.
그때를 예비해서 연습 좀 해두시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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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1]이방인

February 10, 2009
*.118.129.226

언젠가는 우리가 직접 싸워야할 순간이 온다는 말씀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네요..
악에 대한 싸움을 막연히 추상적인 언어로 치부해 왔었던 저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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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4]저별과 달

February 09, 2009
*.206.88.145

 

저는 솔직히 누구에게 사악한 귀신의 세력이 먼저 붙었는지 짚어 봐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예를 들어 용산 참사가 일어 나기 전에 건물 곳곳에 위험한 신나를 다량 배치한 사람,

(저는 데모에 참여한 철거민 모두가 이런 강경적이고 전투적인 농성자 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이 중에는 분명히 신나와 화염병으로 공격 하자고 분위기를 몰고 선동한 자가 있었겠지요..

화재의 위험이 다분한 다량의 신나와  화염물질을 지니고, 건물에  뿌려 놓은  이 사람들은

과연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이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누가  선량한 철거민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최초의 단초를 제공 하였는지

진정코 악의 세력이  미쳐 날뛰게 한 악의 힘이 누구에게 먼저 작용 하였는지

우리는 냉철히 되돌아 봐야 할것입니다.


예전에 20대 초반쯤에 저희 동네 모퉁이 벽에 "눈물젖은 빵을 먹어 보지 못한 자는

인생을 모른다" 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는데요

저는 당시에만 해도 이 글귀가 저의 뇌리와 가슴에 와 닿지도 않고 무의미 했었습니다.

30대 후반에 동료들과, 선,후배들에게 배신을 당하며 인생의 쓰라린 고통을 경험 했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하는  생각이 살면 뭐하겠노, 차라리 죽어 버릴까 라는

극심한 상황까지 갔었습니다.

 세상은 살 가치가 없이 피폐하고 황량한 그런 내적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어떠한  반전 끝에 희망의 끈을 붙잡고 다시 열심히 살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예전에 동네 모퉁이에 적혀 있던 눈물 젖은 빵의 의미를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시위의 방법은  잘못 되었다고 생각 합니다.
꼭 이 방법만 있었을까요? 아닐 테지요..
악한 영은 언제든지 기회를 타고 이런 자리에 좌정해서 사람의 마음을 조정 하기도 하지요..

이번 죽음의 데모를 계획하고 선동한 세력은 반드시 죽어서도 공의의 심판을 받겠지요..

선량한 철거민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닌줄 아시겠지요..

용산 참사 화재의 원인은 심판자이자 입법자 이신 하나님은 아시겠지요..

인화 물질과 화염병으로  시위를 주도한 자도 아실 테구요..

앞으로 시위를 하더라도  이런 어리석고 무모한 선동자 들에게 꼬여 들어
선량한 민초들이 희생 되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 할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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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차성훈

February 10, 2009
*.44.109.143

뭐, 저별달님의 말씀도 일리는 있다고 봅니다. 거기에 한가지 덧붙이고 싶군요. '약자'들을 '폭력과 억압'으로 '사지'에 몰고가고야 마는 '강자'들 역시, '악의 영'의 명백한 하수인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무거운 책임을 피해갈 수 없겠지요. 하물며, 복음서와 예언서의 말씀들을 본다면, 누가 하나님께 더욱 큰 책망을 받을지는 자명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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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나이스윤

February 10, 2009
*.11.120.81

'선동한자가 있었겠지요..'라며 추정하시고는 바로 다음엔
어리석고 무모한 선동자가 악의힘에 의해서 한거라고 단정지우신듯 합니다.
화재의 원인을 하나님과 시위를 주도한 자만 알거라고도 하시구여..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90209193103336&p=hani&RIGHT_COMM=R12
사건 당일 칼라tv를 통해 과정을 오랜시간 지켜보고 관련기도회에 참석해서
유족들의 증언등을 듣고 많은 뉴스와 기사를 접하였지만
저별과달님을 설득시키거나 잘못 알고계신거라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위 링크글은 시간되시거나 원하시면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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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7]늘오늘

February 10, 2009
*.178.197.194

 

철거하려는 자와 철거당하지 않으려는 자.

누가 공격자이고 누가 방어자입니까?

물대포와 최루액 그리고 신나와 화염병.

어느 것이 공격용이고 어느 것이 방어용입니까?


선량한 철거민/민초와 무모한 선동자를 대비시키시는데,

철거용역들의 폭력과, 노골적으로 편파적이었던 경찰.

저별과 달님이라면 누구를 믿겠습니까?


‘이번 죽음의 데모를 계획하고 선동한 세력’

그들은 개발이익에 눈먼 조합과 시공사,

공의를 팽개친 검·경과 정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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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2]들꽃처럼

February 10, 2009
*.184.236.231

저별달님이 말하는 어리석고 무모한 선동자는 누구인가요?
혹시 빨갱이를 말하시는 건가요?

선동한 세력이라.....
아니, 자기가 가진 모든 소유를 하루아침에 다 뺏기고 온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고...
구청, 경찰, 온 나라가 합작이 되어서 심지어는 깡패들까지 나서서 죽이려고 덤비는데
어느 가장이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을까요...

나라도 거기에 올라갔을 겁니다.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보세요...
저별님이 그곳에서 은행 빚내서 투자한 사업장이 한 푼 건지지도 못하고
 구청에서 동원한 깡패들의 폭력에 쫒겨나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을 인용하셨네요....  참내..
그러면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고"의 의미도 아셔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산다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생각이 편향적인지...
저별님의 눈에는 힘없이 무지막지한 권력에 저항하다가 죽어간 사람들이 보이지 않나요?

그리고

말씀하시는 "선량한 민초" 는
 정부에서 몇푼 주면 그거 받아가지고
감사합니다  하고 막심한 손해도 아랑곳 없이
오랫동안 살던 삶의 터전을 그냥 떠나는 그런 사람이 선량한 민초인가요?

희생당하신 분들은 자기의 삶, 가족을 지키려고 했던 분들입니다.
그 분들의 죽음을 더럽히지 마세요...


글을 통해서
귀신들림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는데 웬 난데없는 삽질........

다비아에 들어와서 이렇게 불쾌하긴 첨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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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4]저별과 달

February 10, 2009
*.206.88.145

자기의 삶과 가족들을 지켜려 한다면 꼭 이런 강경한 방법으로 건물에서 위험한 시위를 해야 합니까?
저는 이들의 잘못된 위험한 시위  방법이  이번 화재 사고의 원인이 되었다고 봅니다.
이들에게 건물 옥상에 망루를 설치 하는방법, 화염병과, 화염총등을 만드는 방법등을
누가 가르쳐 주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용산 철거민 스스로가 이런  아이디어를 냈다고 생각하시나요..
건물 내부에  화염병 120개,염산 박카스병 100개. 대형 쇠파이프 50개,LPG가스통 5개
철근, 빠루, 새총 발사대 8개 이런 준비 과정이 철거민들 스스로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순진한 생각을 하시는건 아니시겠죠.

과연 정상적인 선량한 시민들이 취해야 하는 방법 치고는 너무 심하지 않나요..
죽음과도 직결 될수 있는  무모한 방법을 가르쳐준 조종 세력들의 가르침이 
결국은 재산때문에  철거민들의 생명까지 잃게 한 것 아니겟습니까..

그리고
 구청, 경찰, 온 나라가 합작이 되어서 심지어는 깡패들까지 나서서 죽이려고 덤비는데 라고 하셨는데요

정말 나라에서 먼저 그들을 죽이려고 했나요..
그들이 죽음의 위험을 느끼고 그래서 결국 용산 상가를 점거하고 그런 위험한 투쟁을 했나요?
그들이 과연 이런 과격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한걸음 양보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분명 지금도
살아서 가족들과 함께 맜있게 식사도 하고 웃기도 하겠지요..
그래서 저는 이들에게 이런 악독한 시위 방법을 전수해준 세력들이 더 직접적으로 이들을
사지로 몰아 넣었다고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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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7]늘오늘

February 10, 2009
*.178.197.194

 

앞으로의 철거민들은 이번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저별과 달님이 위에 열거하신, 저런 아이디어로는 택도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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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이길용

February 10, 2009
*.141.163.143

저별과 달님.. 이 문제는 단순히 기계론적으로 합법성, 폭력성 운운할 성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가장 큰 폭력은 합법화된 공권력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보통의 폭력은 법의 저촉과 제약을, 그리고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공권력이라고 하는 폭력은 사람들을, 구체적으로는 납세자들을 보호해 달라는 뜻으로
납세자가 특정기관에게 제공한 폭력이라고 봐야겠지요.
물론 공권력 역시 법적 제한 내에서 폭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공권력이 가지는 폭력의 무서움과 파괴력을 알기에 개명한 문명사회일수록
세밀한 조항과 잣대로 공권력의 폭력사용을 제한하고 매뉴얼화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보여준 공권력의 그것은 폭력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여러 점에서 폭력을 진압한다고 해서 세밀한 매뉴얼의 지침까지 어기면서
무리한 작전을 써서는 안되죠. 왜냐하면 폭력은 꼭 희생을 낳기때문이죠.

그런데 이번 또다른 공권력, 즉 폭력적이 될 수 있는 공권력을 제어해야 할 또다른 공권력에서는
오히려 특정 공권력의 폭력사용을 정당화하는 결정을 해 버렸더군요.

아 그런가요.. 제가 지금 그런 나라에서 살고있는 건가요?
이제 향후 유사한 사고가 난다면 이 특정 공권력은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고 특공대 출동시키고, 위험물질이 있건 없건,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건 말건, 그 시신들 신원확인이 할 수 있는 상태인데도 가족들 확인도 없고
심지어 그들 동의도 없이 1시간 만에 후다닥 부검해버리고
며칠이 지나도록 가족들에게 시신 인수도 하지 않고 등등의 일을 해 버려도
이제 제어할 장치가 전혀 없는 셈이네요.

그럼 또 누군가 죽어나가도 화염병 들었다는 이유로 거대 새총을 쐈다는 이유로
오히려 기소당하고, 테러리스트가 되는 곳이 대한민국인가요?

누구는 핵심지역 재개발로 수조원의 이익을 얻고
단지 그 지역에 집을 소유했다는 이유로 또한 수억, 수천만의 이익을 얻는데
누구는 그곳에 수년, 수십년을 세입자로 살았다는 죄로
달랑 몇푼의 이주비만 받았도
심지어 죽음의 공포를 부르는 용역요원들의 쇠망치 소리를 들어도
아무런 문제의식나 사회적 도움이 필요없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인가요?

그럼 도대체 우리가 살고있는 이 대한민국은 어떤 사회인가요?
도대체 이 나라 공권력의 시민 살인면허는 누가 준건가요?

용산참사는 사고가 아닙니다.
공권력과 거대 자본에 의해 자행된 일종의 합법적(?) 살인행각이지요.
사람은 죽었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실종된 매우 이상스런 살인사건을 우리는 보고 있는 셈이지요.

이런 말도 안되는 사회적 살인행위 앞에서
우리사회가 할 일은 공적 분노 외에 또 있을까요?

납세자를 테러리스트로 둔갑시키는 사회에 도대체 어떤 희망으로 살아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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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4]저별과 달

February 10, 2009
*.206.88.145

이번 사건은 합법적 살인이라는 말씀은 지나 치신것 같구요..
경찰도 진압 과정에서 이런 인명 사고까지 날줄은 미쳐 몰랐겠죠..
솔직히 순식간에 이 건물 내부에서 불이 번져   참사가 벌어 진것 아니겠습니까?
이 점에서 당황한건 철거민들이나 경찰이나 같이 느낀 상황 이었을테구요..

 

 

용산 철거농성의 현장은 서울 도심 한복판의 주요 간선도로인 남일당 옆 8차선 한강대로이며, 일반시민과 1일 시간 당 약4700대의 차량이 통행하는 주요간선도로에 바로 인접한 건물이다. 농성자들은 지나가는 차량과 도로에 무차별적으로 화염병 100개, 염산40개, 벽돌 1000개를 투척하고 새총발사대로 골프공 300개, 유리구슬 400개를 쏘았다.


그로 인하여 1.19일 살수차에 화염병을 투척하다가 살수차 옆 건물 1층에 화재가 발생하였고, 남일당옆 공가에 하염병 10개를 투척하여 화재가 발생하였고, 1.20일 남일당 뒤편 건물에 화염병투척으로 화재발생하였고, 크레인에 화염병을 투척하여 화재가 발생하였다.


불법으로 건물을 점거하고 일반시민과 차량을 향해 화염병등을 무차별 투척하고 새총을 쏘아 차량들이 도로를 다니지 못하게 하고, 대치중인 경찰에게 벽돌과 화염병을 던지고 새총을 쏠때 정조준해서 투척을 하였다. 이는 겁을 주고 접근을 막는 것이 아니라 위해를 가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하는 행위로 도심의 테러수준이었다.


◆ 경찰특공대를 왜 투입시켰는가?

    누가 보더라도 도심교통을 마비시키고 현저한 위험을 끼치는 행위로 긴급하고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경찰은 소방펌프차 9대, 화학소방차 2대, 경찰 물대포5대 동원배치하고, 소화기 500대를 배치하고 건물주변에 안전매트 46개설치, 구급차 14대, 의료진을 현장에 배치하고 경찰특공대를 투입시켰다.


◆ 화재는 왜 발생하였는가?

    ‘망루화재발생원인은 화재 감식이 나와야 최종원인이 나오겠지만 검찰수사본부 본부장 서울 중앙지검 1차장 검사의말에 망루화재의직접적인 원인은 화염병에 의한 화재로 판단한다. 화염병을 누가 의도적으로 던진젓인지, 날아온 것인지 확정할 수 없지만 경찰이 화재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만한 증거도 없다(1.22일자 연합뉴스 용산참사 수사본부장 문답)고 했다.


검찰관계자는 농성자 10명정도가 위층으로 쫒기는 과정에서 불이 붙은채 들고 잇던 화염병 때문에 인화물질이 가득 찬 망루에 불이 옮겨 붙었다.(연합뉴스 화염병 참사원인)고 했다.


누가 보더라도 이것은 신나. 화염병등 위험시위용품을 쌓아놓고 화염병을 던져 이슈를 만들기 위한 상습대모꾼들의 행위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은 출동 할수 밖에 없었고 또 이번 사고가 얘기치 않게 진행 된것 같습니다.
객관적으로 봤을때
이번 사고는 정부나, 과격 시위자 양측에게 책임이 있는건 아닌가요..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이번 용산 참사 시위는  이런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독한 시위 방법을
가르쳐준 세력들이 더 직접적인 살인 용의자들 일것입니다.
이들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이 분들 지금 살아서 가족들과 한 이불을 덮고 살아가고 있겠죠.. 
두번 다시는 이런 전철이 되풀이 되지를 않기를 바랍니다.
아 저 오늘 일하러 가야 하는데요...

 
profile

[레벨:6]月光

February 10, 2009
*.179.231.4

보통 다비안들과 저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저는 ★◐님의 글은 꼭지글이고 댓글이고를 막론하고 읽지를 않는데,
여기 다비안들은 끈질기게 설명하고 납득시키고자 애를 쓰시네요.
아무래도 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인내력과 내공을 갖추신 분 들이란 생각을 합니다.
계속 외면하다가 여기에 왜 이리 많은 댓글이 달리고 왜 이런 글의 내용들이 댓글로 달리는가가 궁금해져서
저도 마침내 읽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뱉어지는 한마디말, "ㅈㄴ 짜증나네, ㅆㅍ"

내용없이 위의 답글로만 끝내면 안되겠기에 부득이 답글을 달아봅니다.

위에 이길용박사님이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슴에도 이분은 이해를 하지 못하시거나 받아들이지 못할 것으로 여기지만,
혹시나 하는 맘으로 좀 더 설명해 보겠습니다.(물론 이정도 모르시는 분이 있겠습니까마는 정말 이해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용산참사의 원인을 화재의 발생요인을 그 원인으로 인식하는 것이 정부관계자입니다만,
그것은 기계적인 화재의 발생원인에 불과하며,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바로 사회적, 정치적으로 참사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재개발이란 주거환경개선이란 미명하에 일어나지만,
실지로 그곳에 사는 주민들이 다시 그 동네로 들어가 사는 비율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습니다.
(제가 자료를 찾아올 시간이 없어서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세입자는 아예 불가능하고, 집주인일지라도 돈 없고, 집하나 달랑 가진 사람들도 돌아가지 못합니다.
왜냐면 뉴타운에 입주하기에는 그들의 재산이라는게 너무나 보잘것 없어서요.
그러면, 보증금에 이주비까지 줘서 보내는데 왜 문제냐 그러겠지요?
예를 들어 ★◐님이 지금 사시는 곳에 사는 이유가 뭐지요?
다른 좋은 곳 다 놔두고 왜 하필 그곳에 사시나요?
바로 그 이유가 세입자들의 문제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그 곳이 그들의 생활을 영위하는데 최상은 아니지만 현실적 대안인데 그곳을 떠나서는 더 많은 비용과
지출이 늘어나서 현재의 삶을 이어갈 수 없다는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산시 서면에서 생활의 터전이 있는 사람한테 그곳을 떠나 김해나 양산, 아니면 용호동으로 가서 살라면서 이사비용을 준다고 해 보시면 누가 그러겠다고 그렇게 쉽게 예하고 떠나겠습니까?
그나마 주거 세입자는 이사해서 살 수도 있으니 그렇다고 칩시다.(주거세입자 철거민들이 듣는다면 열받겠지만서도...)
그런데 영업용세입자는 장난이 아닙니다.
재개발이 되는 상업지역은 어느 정도 상권이 없으면 재개발 안합니다.
따라서 재개발되는 상업지역의 영업세입자들은 권리금없이 들어가 경우는 거의 없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떤때는 주인이 세를 놓으면서도 권리금을 챙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 용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보가 빠삭한 사람은 이미 권리금받고 팔아치우고 나갔고,
나머지 사람들은 보상을 바라고 들어온게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서(어떤 사람은 1억씩 권리금 내는 사람이 무슨 먹고 살기 위해서냐고 하겠지만 그거 자기 전재산이거나 빚낸것입니다.) 뭣도 모르고 권리금내고 인테리어해서 영업하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약 20~30%의 보상을 주면서 나가라고하면 님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그들에게 축복하면서 떠나겠습니까?
아님 맞아죽더라도 폭력배들의 횡포에 맨몸으로 나서서 원리원칙을 따지겠습니까?
그들은 아무리 외쳐도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고,
매스컴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기에,
자기와 똑같은 경험을 먼저 치룬 전국철거민연합회에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지 않고, 사람 특히 과격단체에 도움을 청한것이 어리석다고 말하겠습니까?
아마 님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듯 하지만 말입니다.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고,  폭력배들의 난동에 저항하기 위해서 망루를 설치하고 올라갔고,
혹시 있을 그들의 진압에 대응하고자 선배들의 대책에 따랐던 것입니다.
뭐, 정부는 그러지요. 보상이 나오면 나눠먹는다구요. 한마디로 ㅈㄲㄴ 소립니다.
그런 사람들이 없다는 보장은 저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속을 알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하나 그것이 본질이 아니란 말입니다.
개발이익을 노리는 건물주들과 건설사들, 그리고 지자체의 이익을 위해서
아무런 법적 권리가 없는 약자들을 물리력으로 몰아내려고 했던 재개발이란 그것이
또한 안전에는 개뿔도 관심이 없이
진압과정에 어떤 불쌍사가 생기든 관심없이
오롯이 진압 그 자체에만 관심이 있었던 공권력이 이 사건의 원흉이자 악한 세력이지
망루에 올라서 누구에게 어떤 시민에게 위해를 가한다고 그들이 테러리스트라고 하는지 참으로 그 말을 듣고 믿는
사람들이 한심하기 그지 없습니다.(그들은 저를 한심하다고들 하겠지요?)

이렇게 같은 사건을 두고 접근하는 방향과 해석이 전혀 다른 사람에게서 대화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그래서 결국은 비폭력저항이든 폭력저항이든 아님 무저항이든 어떤 행동이 아니고서는 자신들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기에 결국은 죽음의 자리로 올라갔던 겁니다...
비록 예수님처럼 남을 위하여 죽지는 않았는지는 모르지만(자신이 인식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들의 죽음이 다시 살아나 지금 재개발과 이 정부의 폭압에 대해서 고발하고 있으니 그들을 추모하고 기리는 것입니다.
비록 그들의 몸은 불에 타 재로 변했지만, 그들의 희생으로 많은 국민에게 현 재개발의 부당성과 이정부의 폭력적이고
독재적인 모습을 일깨워주었으니 어찌 열사라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쓸데없는 말을 한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이미 대다수의 다비안들은 알고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기에 말할 필요도 없겠다는 것이 제 판단이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저 악한 세력의 혀에 놀아난 자들이 자꾸만 딴 이야기를 하기에 한 번 답글을 올렸습니다.

제 글에 맘이 상하신 분은
주님께 치유를 부탁하셔서라도 많이 안아프면 좋겠습니다.
지난 주에 제 글투에 충격받고 상처받으신 분 들이 몇 분 계셔서 조심한다고 했는데
오늘 갑자기 울컥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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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2]들꽃처럼

February 10, 2009
*.184.236.231

저들이 죽음의 위험을 느꼈냐구요?

삶의 터전에서 강제로 내어쫒기는게 죽음의 위협 아닌가요?

용역깡패들이 몰려다니며 당신의 집앞에서 어른 키만한 쇠갈고리로
바닥을 내려치며 위협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경찰에 신고해도 경찰은 오지도 않고...
용역깡패들이 불을 질러서 119 불렀는데 출동한 무슨 명령을 받았는지
발화지점에 서성거리기만하고 불을 끄지도 않고...

누구도 그들을 폭력으로부터 구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나라에서 그들을 죽이려고 했냐고 물으셨죠?

예 ....
그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죽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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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1]이방인

February 10, 2009
*.118.129.226

저별과 달님,
"죽음의 데모를 계획하고 선동한 세력이 누구인가요?"라는 질문 속에 이미 용산 참사 화재 원인을 바로 선동세력으로
규정하고 계신 시각이 드러나는데요. 선동세력과 순수한 철거민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시각은 이번 참사의 원인제공 세력에 대한 책임을 묻어버리고 면죄부를 주시는 겁니다.. 

이번 참사에 희생된 분들이 신나와 화염병을 들고 옥상에 올라가서 희생된 거라고 생각지 않지만, 설령 그랬다 할지라도 그와 같은 최후의 수단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 정권과 용산구청관계자들에게 더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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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4]저별과 달

February 10, 2009
*.206.88.145

이빙인님, 철거민을 충분히 설득치 못한 서울시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또한편 재개발 보상을 미끼로 뒤에서 철거민들을 조정하고 이번 용산 상가의 위험한  시위를
선동한 세력이 없었다면 아까운 목숨이 희생 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 되는군요..
이분들의 사고 원인은  확실하게 신나와 인화 물질에 불이 번져서 참사가 일어 난것 맞습니다.
자신들의 요구를 이런 위험하고 과격한 방법으로 관철 시키려 했던 행위에 대해서
깊이 숙고 해보지 않을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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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February 09, 2009
*.217.40.94

목사님, 이 글은 질답 방으로 가야할 수도 있지만요..
오늘 본문의 배경설정은 예수님, 귀신(악한 영), 인간입니다.
항상 그러하듯이 말이어요.
피해자는 인간이며,
귀신의 존재를 명확하게 인식하시고 제압하시는 분은 예수님,
제압되는 것은 귀신입니다.
창조 후로부터 암약하던 악은 이미 완성된 종말에서 패배자이나
그 이전의 시간과 공간대인 역사에서는 아직 끊임없는 활동자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 인간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논리적 언어의 부족으로 사물에 비유할 수 밖에 없는데요...
인간이 '깔대기'는 아닐까요?
우주와 초우주에 걸쳐있는 '악'을 패배자의 폐기처분용 병(bottle)으로 집어넣기위해
사용된 '깔대기'말입니다.
그 병에 몰아넣은 후에 봉인을 하는 겁니다.
승리한 싸움에 당하고 살아야하는 '그 날'까지가 억울해서 해본 소리입니다.
적어도 이런 면에서 인간 존재의 이유를 하나 더 확보하고 싶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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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February 09, 2009
*.120.170.235

하나님이 우리를 깔대기로 사용하신다?
재미 있는 그림이군요.
마귀, 귀신들을 영원한 무저갱에 몰아넣고
봉인을 하시겠지요.
그들에게는 그곳이 천당일 거에요.
자기에게 가장 어울리는 곳이 천당이라고 하면요.
근데 깔대기는 좀 심하군요.
뭐 더 적당한 표현이 없을까?
그건 그렇고,
이 세상의 역사에 악마, 귀신은 역시 조연에 불과하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통해서 열어가는
대하 드라마 아니겠소?
행인 1, 행인 2로 이름 붙여진 그들에게 겁 먹지 말고
우리에게 맡겨진 중요한 역할을 잘 해봅시다.
레디,,,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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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February 10, 2009
*.104.195.66

좀 삐긋하게 생각이 넘어가던 것이
목사님의 답글로 제자리를 찾는 것 같습니다.
가슴을 펴고 턱을 당기고...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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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8]첫날처럼

February 10, 2009
*.54.79.126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죠...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실족케 하는 자는 연자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사람을 실족케 하고 죄인으로 만드는 더 큰 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요... 그 것에 대한 고찰과 반성도 없이 그냥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만을 보고 그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크리스찬으로서 마땅한 자세일까요...

하기사 저별과 달 님이나 저나 이런 비극적인 상황 하에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는 무에 그리 다르겠습니까만... 똑같죠... 
profile

[레벨:6]月光

February 10, 2009
*.78.202.20

 
profile

[레벨:26]병훈

February 10, 2009
*.223.90.153

월광님 설교 본문에서 약간 어긋난 면은 없지 않지만 설교 말씀이 첨예한 현실에 문제를 바라보는 또다른 틀을 제공했다는 면에선 댓글들이 의이 없어 보이진 않습니다.. 그냥 두시는게 어떨까요? 저도 한마디 거들려다가 보니 비슷한 이야기들이 많아 그만 두었습니다..아무래도 저별과 달님은 조선일보를 보시는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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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솔나무

February 10, 2009
*.32.86.28

이런다가 혼날 듯 하지만...

저별과 달님...
힘내셔요.
본인의 자리에서 그렇게 보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시각이 열릴때까지 갑시다.
직접 응원하지 못하는 것 알지요.
저역시 생각은 저별과 달님의 생각과 반대에 서 있지만 그래도 힘을내시기를...

화를 내면 진다고하니 화는 내지마시고요.

토론은 토론으로 대화는 대화로 마무리를 잘 합시다.
그럼...
profile

[레벨:26]병훈

February 10, 2009
*.223.90.153

볼테르의 유명한 말 "나는 당신의 사상에 반대한다. 그러나 당신이 그 사상 때문에 탄압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편에 서서 싸울 것이다." ( 안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과 같은 생각이군요...^^
누구나 자신이 생각을 가지고 토론할 수 있어야죠..^^
profile

[레벨:26]비가오는날

February 10, 2009
*.63.219.187

설교말씀 잘 보았읍니다.감사합니다.
profile

[레벨:13]토토

February 11, 2009
*.255.159.89

설교 청취에 동영상으로 볼 수도 있게 되었군요 그래도 텍스트로 읽는게 제일 좋아요
profile

[레벨:4]이삭과리브가

February 13, 2009
*.19.22.226

목사님 설교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배워가면서 닮아 가는  삶을 배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결과야 뻔하겠지만 그래도 시작해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항상 나를 쳐서 복종시키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나를 돌아보니 나를 유혹하는 귀신에 끌려가기도 하였고
내가 좋아하는 귀신을 쫓아 가기도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가르침을 묵상하면서
내 삶의 방향을 잡도록 항상 기도 하면서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목사님의 군종병입니다 


profile

[레벨:6]상수리

February 17, 2009
*.99.193.27

요즘 바빠서 또 뒤늦게 목사님 글을 읽고 다시 마음을 추스립니다.
근데, 저별과 달님의 댓글을 보고 왠지 모를 공허함이 밀려듭니다.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냉철한 머리만큼이나 따뜻한 가슴이 있어야겠지요.
물론 기독교인뿐아니라 우리 더불어 사는 인간이라면...

목사님께서 뜨거운 가슴으로 쓰신 글을 냉철한 머리로 판단하시고 정치적인 추임새까지 곁들이셨네요..
무엇가도 바꿀수 없는 귀한 목숨들이 희생되었죠.. 아마도 그들은 살아 있었다 하더래도
죽은 목숨과 같다는 심정으로 그곳에 있었겠죠.
왜 화염병 들고 신나를 뿌리고 왜 그런 방법으로 대치했었냐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은 아마도
그네들의 부모와 자식이어야 할겁니다.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았냐고..
감히 우리가 그들에게 던질 수 있는 그런 막말이 아닙니다.

화염병과 신나는 어쩌면 이 사회에 우리 가슴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귀신들을 태우기 위한 준비물이었을 겁니다.
아니 이제 현재진행형으로 내 가슴을 태우고 있습니다.

좀 더 접근해 볼까요..정치는 차선을 선택할 때가 많습니다. 최선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도 우리는 신중해야 합니다. 만약 둘 다 똑같은 놈들, 그게 그놈이야. 둘 다 잘못했어..라고 치부해 버리면
어떤 사안에 - 정책일 수도 있겠군요 - 대해 경중이 없어집니다.
중한것은 경한 것을 이해시킵니다.  소통시키고 화해시킵니다.
화염병을 든 것이 경한 것이라면 그들을 말하려 했던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중한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만약에 이 사실을 잊는다면 세상엔 모두 잘하거나 모두 잘못된 것으로 가득찰 수 밖에 없을 거라 봅니다.
정치적인 수사를 배제하려니 너무 관념적인 글이 돼 버렸지만,  아마도 어쩌면 저를 포함하여 저별과 달님 우리는
그네들이 품었던 그 뜨겁고 서러운 가슴을 평생 한번이라도 가져보지 못할 참 어정쩡한 인생이 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많은 생각이 듭니다.
목사님 매번 좋은 글 너무 감사하고 있습니다.
책도 신청한다 또 후원가입한다 하면서 왜 이렇게 게으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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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은사와 성령 (고전 12:1-11) [6]

  • 2013-01-21
  • 조회 수 23800

주현절 두려워 말라! (사 43:1-7) [11] [1]

  • 2013-01-13
  • 조회 수 21731

주현절 예수가 왕이다 (마 2:1-12) [3]

  • 2013-01-07
  • 조회 수 17957

성탄절 그리스도의 평화 (골 3:12-17) [9]

  • 2012-12-30
  • 조회 수 22305

대림절 우리를 구원하실 이 (미 5:2-6) [4] [2]

  • 2012-12-24
  • 조회 수 17031

대림절 관용과 주의 재림 (빌 4:4-7) [7] [3]

  • 2012-12-17
  • 조회 수 18101

대림절 주의 길을 준비하라! (눅 3:1-6) [11]

  • 2012-12-09
  • 조회 수 21474

대림절 그 날이 오리라! (렘 33:14-18) [16] [1]

  • 2012-12-02
  • 조회 수 17506

창조절 하나님을 기억하라 (신 8:11-18) [16]

  • 2011-11-21
  • 조회 수 18300

창조절 마지막 심판과 생명 완성 (마 25:31-46) [15]

  • 2011-11-13
  • 조회 수 23262

창조절 예수 재림과 영적 각성 (살전 4:13-18) [11]

  • 2011-11-06
  • 조회 수 20102

창조절 위선에서 낮춤으로! (마 23:1-13) [11]

  • 2011-10-30
  • 조회 수 16905

창조절 하나님께 마음을 두라! (살전 2:1-8) [6]

  • 2011-10-23
  • 조회 수 23093

창조절 하나님과 금송아지 상 (출 32:25-35) [7]

  • 2011-10-17
  • 조회 수 20147

창조절 신앙의 위기 앞에서 (빌 4:1-9) [6]

  • 2011-10-09
  • 조회 수 16828

창조절 하나님 나라의 열매(마 21:33-46) [8]

  • 2011-10-02
  • 조회 수 14713

창조절 명령하시는 하나님 (출 20:1-11) [16] [1]

  • 2011-09-26
  • 조회 수 12732

창조절 복음은 싸움이다! [6]

  • 2011-09-19
  • 조회 수 12762

창조절 그리스도교 윤리의 근거 (마 18:21-35) [6]

  • 2011-09-11
  • 조회 수 12640

창조절 심판의 하나님 (출 12:1-14) [12]

  • 2011-09-05
  • 조회 수 13353

성령강림절 종말과 생명 완성 (마 16:21-28) [16]

  • 2011-08-29
  • 조회 수 14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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