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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기이한 빛 (베드로전서 2:1-10)

부활절 조회 수 17902 추천 수 0 2011.05.16 22:39:13
성경본문 : 베드로전서 2:1-10 

예수의 기이한 빛

베드로전서 2:1-10, 부활절 넷째 주일, 2011년 5월15일

 

     오늘의 제2독서인 벧전 2:1-10절은 그냥 눈으로 읽어서만은 무슨 뜻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일단 단어 자체가 낯섭니다. 몇 가지 단어를 열거해보겠습니다. 신령한 젖(2), 보배로운 산 돌(4), 신령한 집, 신령한 제사, 거룩한 제사장(5), 버린 돌과 머릿돌(7),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기이한 빛(9). 여기에 열거된 아홉 개 단어 중에서 한 가지만 설명하려고 해도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전체를 관통하는 한 가지를 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각 단어를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해서 생각하면 본문이 말하려는 핵심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5절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거기에 전체를 뚫고 나갈 수 있는 실마리가 있습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이 말이 예배를 잘 드리라는 뜻일까요?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가 되라는 말씀일까요? 이 말씀은 목사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더구나 로마가톨릭과 달리 개신교회는 모든 신자들을 제사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특별히 종교적인 업무를 맡아야 한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제사는 구약의 가장 중요한 종교 행위였습니다. 동물을 잡아서 피를 제단에 뿌리고 고기를 태워서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의 핵심은 죄를 용서받는 것입니다. 이런 말에 실감이 가지 않을 겁니다. 자기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기껏해야 도덕적인 잘못만을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모든 세력은 죄입니다. 교만, 자기열망과 욕망은 우리의 삶을 파괴합니다. 오늘의 교육이 학생의 삶을 파괴한다면 그것도 역시 죄입니다. 성서는 그 죄의 결과로 사람은 죽을 운명에 처했다고 말합니다. 제사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용서를 통해서 죽음을 면하고 생명을 얻게 하는 의식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세상으로 생명을 얻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얻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어떻게 살면 제사장이 되는 걸까요?

     많은 분들이 여기서 혼란을 느낍니다. 거룩한 제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뭔가 자기를 철저하게 희생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오지에 선교사로 가거나 어려운 이들을 위한 일에 발 벗고 나섭니다. 직업을 포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결혼을 포기합니다. 우리나라에 와서 평생 나환자를 돌보며 지낸 의사, 신부, 간호, 목사님들도 많습니다. 지금도 문명이 닿지 않는 아프리카나 동남아 지역에서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 덕분으로 그리스도교가 세상으로부터 어느 정도 인정을 받습니다. 교회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그런 분들의 인생은 누구나 본받을 만합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권장할 만합니다. 저의 딸들도 그렇게 살겠다고 한다면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만으로 우리가 거룩한 제사장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적으로 가치가 있는 일들이지 절대적으로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이런 자기희생적인 삶을 모두가 실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삶의 경지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거룩한 제사장의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오해하실까 해서 노파심으로 다시 말씀드립니다. 자기희생적인 삶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귀하다고 하더라도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제사는 절대적인 생명 사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베드로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설명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으신 제사가 바로 신령한 것입니다.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한 제사의 제물입니다. 이 제사를 통해서 우리는 용서를 받게 되었고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리스도교 교리의 초보입니다. 그걸 더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이게 말이 될까요? 세례를 받았으니까 당연히 믿는다고 생각하시겠지요. 세상 사람들도 이걸 인정할까요?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 할 겁니다. 이걸 억지로 믿으라고 강요할 수 없습니다. 우선 거룩한 제사장이 된, 되어야 할 우리라도 먼저 분명하게 깨달아야겠습니다.

     베드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거룩한 제사가 무엇인지를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지금 우리가 성경을 인용하듯이 베드로도 구약을 인용했습니다. 세 군데입니다. 첫 구절은 이사야 28:16절을 인용한 본문 6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보배로운 모퉁잇돌’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구절은 시 118:22절을 인용한 본문 7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보배이지만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라고 합니다.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셋째는 사 8:14절을 인용한 본문 8절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이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좀 복잡하지요? 여기서 돌이라는 메타포가 등장합니다. 모퉁잇돌, 버린 돌, 부딪치는 돌, 넘어지게 하는 돌이 그것입니다. 돌은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서 그 역할이 크게 달라집니다. 집의 기둥을 받치고 있으면 더 한 나위 없이 든든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 팽개쳐져 있으면 굉장히 불편한 돌이 됩니다. 예수님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보배로운 모퉁이 돌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부딪치는 돌이라는 말씀입니다. 전자는 믿는 이들이고, 후자는 믿지 않는 이들입니다.

     먼저 부딪치는 돌이라는 말씀을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누구나 직면하기 싫은 사건입니다. 이것을 직면하면 인류의 죄가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무죄한 이가 십자가에 처형당한 사건에 인류가 연루되었습니다. 복음서가 전하는 이야기를 따르면 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을 비롯한 유대교 지도자들과 로마 총독인 빌라도, 그뿐만 아니라 바라바를 살려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 예루살렘 민중들도 똑같이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언행을 신성모독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일종의 인민재판이자 마녀사냥이었습니다. 이런 일에 가담한 사람들은 이 사건을 빨리 잊고 싶은 법입니다. 설령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심리는 비슷합니다. 불의를 방관했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결국 예수가 잘 죽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만 저들의 마음이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부딪치는 돌과 같습니다.

     거꾸로 믿는 이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모퉁잇돌입니다. 그 돌을 주춧돌로 삼아 신령한 집으로 세워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통잇돌, 주춧돌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이 아니면 우리의 삶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게 신앙의 역설입니다. 버린 돌이 모퉁잇돌이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거나 귀찮아하는 십자가 사건이 우리의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이게 가능한 말인가요? 우리의 자가당착은 아닌가요? 이런 우리의 믿음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이비 이단들의 신앙행태와 똑같아 보이는 건 아닐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모퉁잇돌로 한 멋진 집에서 여러분은 살고 있나요?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나요? 그 설계 도면이 있나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바로 내 삶의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해명할 자신이 있나요?

     힘들 겁니다. 예수를 믿은 뒤에 변화된 모습도 확실한 증거는 아닙니다. 사업이 잘 된다는 사실이나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것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믿지 않은 사람들만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도 모두 십자가를 불편해 합니다. 그게 우리의 일상적인 삶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예수님을 뜯어 말릴 지경이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그것을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습니다. 버린 돌이 모퉁잇돌이 되었다는 말은 부활에서만 설득력이 있습니다.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반복되었듯이 한 의로운 선지자의 억울한 죽음과 비슷합니다. 부활로 인해서 십자가는 전혀 다른 빛으로 드러냈습니다. 십자가가 당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듯이 신으로부터의 버림받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가 되었습니다. 믿는 자들이 이런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려면 당연히 부활의 생명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전제조건입니다. 그런 경험이 없으면 세상을 바르게 하려는 개혁자, 도덕선생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제사장이 될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부활 경험이라는 게 무엇일까요? 궁극적인 생명 경험이라는 게 무엇일까요? 우리는 지난 4월 24일 부활절부터 계속해서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부활절 절기가 6월 첫 주일 까지 계속됩니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읽고 서로 나누긴 했지만 부활이 실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은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것에 관해서 관심이 없는 신자들도 많습니다. 평생 교회를 다녔어도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걸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가족이나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했겠지요. 신앙생활을 종교적인 교양이나 취미생활로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해도 그럭저럭 교회생활을 할 수 있겠지만, 오늘 사도 베드로가 말하는 것처럼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 수는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부활을 경험할 수 있는지 방법을 알고 싶으신가요? 여기에 어떤 방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닙니다. 운전이나 수영처럼 배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시는 것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예술가들에게 영감이 스치듯이 말입니다. 방법은 없어도 준비는 필요합니다. 최선의 준비는 먼저 부활을 경험한 이들의 고백을 전해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서와 사도들의 편지를 자주 읽고 귀를 기울입니다.

     그 경험을 베드로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셨다고 말입니다.(9절) 기이한 빛이 무엇일까요? 사도들은 부활의 주님을 왜 이런 식으로밖에는 말할 수 없는 걸까요? 이런 것은 좀 막연한 이야기가 아닌가요? 기이하다는 말은 놀랍다는 뜻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의 주님을 놀라운 빛으로 경험했습니다. 여기서 빛을 물리적인 태양빛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오늘 우리는 고대인들과 달리 빛은 태양으로부터만 나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주의 모든 별들이 빛을 냅니다. 성경이 말하는 빛은 생명의 원천을 가리키는 일종의 메타포(은유)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놀라운 생명의 원천을 경험했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속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초기 그리스도인에 비해서 너무 세속적입니다. 신앙의 원천에 대한 경험이 없다는 게 확연히 나타납니다. 신앙생활도 세속적으로 합니다. 세속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할 뿐입니다. 어쩔 수 없지, 세상살이가 다 그런 거지, 우리가 어떻게 사도들의 신앙을 따라갈 수 있어, 하고 좌절하지 마십시오. 베드로 사도의 가르침을 다시 기억하고 용기를 내십시오. 사도는 우리에게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라고 말합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놀랍고 기이한 빛의 세계로 들어갈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그 빛이 우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죄와 죽음이 이미 물러갔습니다. 부활의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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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5]희락당

May 16, 2011
*.76.137.37

"오늘 우리가 속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초기 그리스도인에 비해서 너무 세속적입니다. 신앙의 원천에 대한 경험이 없다는 게 확연히 나타납니다." 목사님, 너무나 날카로운 통찰입니다. 목사나 성도나 '신앙의 원천'에 대한 경험 없이 모두 함께 헤매고 있습니다. 한국이나 여기 미국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교회성장'이 신앙의 원천인 양 거기에 몰두하고 있는 교회들을 보면 마음이 슬픕니다. '교회성장'에서 자유롭고 싶고 해방되고 싶습니다. Libera me Do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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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May 17, 2011
*.120.170.250

희락당 님,

오늘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성장일원론이라는 바벨론 포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목사 개인이 이를 뚫고 나갈 길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희랑당 님이 '리베라 매 도미네' 하고 외칠 수 있다는 건

영적으로 살아있다는 증거겠지요.

구조에 완전히 빠져버리면

아픔마저도 느끼지 못하는 거지요.

힘을 냅시다.

우리 영혼에 놀라운 생명의 빛을 비쳐주시는 분이

우리를 이끌어주고 계시니까요.

주님의 은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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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거북도사

May 17, 2011
*.176.141.46

모퉁이돌이 아니라 부딪치는 돌 넘어지게 하는돌 이 되어버린, 기독교인 아니 개독교인로 전략했습니다. . 그저 문화생활 취미생활로 만족하는 교인들을 볼 때 어떻게 가르쳐야 할 지 고민입니다. 1년이 지나면 성도가 몇명 늘었느냐  예산은 얼마나 되었느냐에 온갖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거룩한 제사장 ,부활의 증인으로 살라고 노력해봅니다. 넘어지게 하는 돌 부딪치는 돌의 자리에서 보배로운 모퉁이돌의 자리가 되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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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May 17, 2011
*.120.170.250

거북도사 님,

그리스도교 신앙이 문화와 교양, 심지어 취미 수준으로 떨어졌네요.

그래서 많은 신자들이 가능하면 인테리어가 좋은 교회당에 나가려고 하나봅니다.

오늘 뉴스를 보니 사랑의 교회가

주일에도 교회당 공사를 계속했다는군요. 음.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군요.

우리 개인과 교회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만을 모퉁이 돌로 지어지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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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9]신짱구

May 17, 2011
*.196.241.92

목사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나의 영을 깨우고 울리는 말씀......목사님과 다비아를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어제는 서울에서 성경 공부가 있으신던데... 가 볼까 했는데 가지 못했어요.

매주 글을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매주 기대하며 기쁨으로 읽고 영혼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항상 목사님께 감사할 따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바로 내 삶의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해명할 자신이 있나요? "

해명할 자신이 없네요. 예수그리스도가 나의 삶의 모든 것이라고 말은 하는데......정말 부끄럽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생명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시도록 늘 깨어 준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여 귀를 기울이고, 다비아 글도 열심히 읽고...... 해야 겠습니다.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놀랍고 기이한 빛의 세계로 들어갈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그 빛이 우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죄와 죽음이 이미 물러갔습니다. 부활의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십시오."

부활의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거룩한 제사장,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목사님 건강 유의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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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May 17, 2011
*.120.170.250

신짱구 님,

매주 셋재 주일이 지난 월요일 오전에

대방역 옆에 있는 서울여성회관에서

설교공부 모임이 있습니다.

신짱구 님이 오셨으면 정말 반가웠을 텐데요.

설교공부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성경공부입니다.

설교는 성서해석이 핵심이니까요.

다음에 한번 오세요.

신짱구 님이 위 대글에서

제 설교의 핵심을 그대로 인용해주셨네요.

놀랍고 신비로운 생명의 빛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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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2]삼송

May 17, 2011
*.109.42.2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한번 깊은 묵상을 하게 됩니다. 성공 욕망 주술적인 신앙적 태도를 버려야 하겠고요 사람이  믿음이 있다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한번 더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우리의 삶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말씀이 가슴을 파고 듭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아무말도 할수가 없습니다 침묵밖에는요 정말 어려운 숙제를 안고 하루를 보냅니다. 진심으로 주의 은총을 구합니다. 목사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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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May 17, 2011
*.120.170.250

삼송 님,

정확하게 짚으셨네요.

우리의 욕망과 호기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통치에

우리의 영혼이 몰입되었으면 합니다.

주님의 은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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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훈쓰

May 18, 2011
*.66.47.12

목사님 안녕하세요...박세훈 입니다. 안녕히 잘 지내고 계신지요.

제가 종종 찾아 뵙고 연락도 드려야 하는데 여의치가 않네요. 죄송하구요....이렇게 라도 안부 여쭙겠습니다.

저는 목사님 덕분에 학교 생활 잘 하고 있습니다.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요새 공부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드는데요, 참 신학의 여정이란게 쉽지 않아 보입니다. 잘 해낼수 있을지 걱정도 되구요. 다행히 몇 년간 목사님 설교 몇 년간 꾸준히 들었던 게 조직신학 공부하면서 큰 도움이되고 있습니다. ㅋ 특히 판넨베르크와 몰트만 이해에서요.

어찌됐든... 목사님 건강하시구요. 방학 때 대구 내려가면 교회가서 꼭 찾아 뵐께요.

ps 아 오늘 목사님 설교 말씀 참 좋네요. 큰 은혜 받고 갑니다. 여러번 느끼지만 목사님 설교문은 정말 굉장하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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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May 18, 2011
*.120.170.250

박세훈 전도사,

반갑네.

신학 공부에 열심을 내고 있다니 잘 됐네.

생각만큼 진도가 나가지는 않을 거네.

일단 신학공부에 마음을 붙이기가 이러저런 사정으로 쉽지 않고

마음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단계에 이르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니 말이네.

그래도 일단 이 길을 가기로 작정했으니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집중해보게나.

방학 때 보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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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9]신짱구

May 18, 2011
*.196.241.92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담에 꼭 가도록 하겠습니다.

주님 안에서 행복한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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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1]지리산

May 18, 2011
*.154.137.183

아침 마다 걷는  산책로에서 새로돋은 나뭇잎과 꽃을 보면서 생명에 대해 또한 부활에 대한 묵상을 해봅니다.

자세히 보고 또 보노라면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고 경의롭습니다.

신앙의 오감을 깨우시는 오미자차와 닮은

 목사님의 설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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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May 18, 2011
*.120.170.250

지리산 님,

아침마다 걸으세요?

와, 멋지네요.

생명 현상이 참으로 놀랍지요?

놀라울뿐만 아니라 신비롭지요?

그 안에 우리가 들어 있다는 것은 더 놀랍지요?

지리산의 정기가 여기까지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달팽이 님 근처에 사신다니 가깝게 느껴집니다.

언젠가는 지리산 님을 한번 볼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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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진인택

May 19, 2011
*.239.93.193

매주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때마다 느낍니다. 사도바울께서 빌립보,에베소서,로마외 원거리에 있는 성도들에게 사랑과 예수님의 부활을 서신으로 보내는 것이 다비아를 통해서 온 세계에 보내는 것과 흡사합니다.

여기는 울산입니다.

오늘 말씀은 돌, , 제사의 흐름을 굽이쳐서 역시 부활의 폭포수로 종결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어둠이라고 하시며 예수님을 빛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없음이 어둠이 아니라, 죄를 낳을 수 있는 것들이란 사실에 부끄러웠습니다. 난 어둡게 살지 않았는데, 내가 특별히 죄진 적이 없는데 나를 어둠이라니.. 삶을 파괴하는 교만, 욕심, 죽일 수 있는 만큼의 살인적인 경쟁, 주님이 다시 재림하셔도 언제든지 못박을 준비가 설계된 자기사랑. 이모든 게 알리바이가 형성 안된 진짜 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주님을 시험하려 들었던 교만한 어둠을 가졌을 때, 주님께서는 빛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란 것을 알았습니다.

어둠은 빛에 비해 모자라는 게 아니라 빛이 될 수 없고 같은 차원이 아니다. 빛이 와야 어둠이 빛으로 된다. 빛으로 죄가 사라지고 새롭게 부활한다고 듣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이 부활이라지만 그 부활을 바라보는 나는 아직까지도 현재의 내가 어둠이 아닌 것 같이 자주 행동합니다. 그게 아주 답답한 점입니다. 나의 노력은 한줌을 퍼서 보면 맑아 보이나 담아놓은 통을 들여다보면 구정물입니다. 씻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빛을 스스로가 거부하는 인생에 동조하면서 다른 쪽으로는 빛이여 오소서 하는 심사가 여전히 어리석습니다. 이런 내가 부활이란 말이 나올 때 마다 시험지 문제의 답을 떠올리듯이 알려고 애를 씁니다.

소감은 한마디로 괴롭습니다. 부활의 경험이란 말씀자체가 어렵지만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의미이자 나아갈 목표임을 알고 있습니다.

부활의 경험이 잡을 수 없는 별이지만 볼 수 있는 별이요, 곧 오실 빛의 별임을 늘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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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May 19, 2011
*.120.170.250

진인택 님,

자신의 영적 실존에 대해서

매우 엄중한 입장을 보이시는군요.

그게 쉽지 않은 일인데요.

한줌의 맑아 보이는 물의 실체가

결국 한통의 구정물이라는 표현이

정곡을 찌르는군요.

부활의 영성이

화염처럼 우리를 불사르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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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4]저별과 달

May 23, 2011
*.111.236.22

목사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번주는 여행 좀 다니느라고 이제서야  설교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예수를 하나님으로 고백할수 있었던 

제자들의  예수를 통한 생명 경험 사건을 우둔한 저를 위하여서 조금만더 자세하게  풀어서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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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 사순절 여호와를 찾으라, 부르라! (사 55:1-9) [17] [3] 2013-03-03 23350
915 성령강림절 토기장이 하나님 [11] 2010-09-06 22935
914 부활절 ‘여호와 이레’의 믿음 [23] [39] 2009-05-11 22835
913 창조절 이방인 나병환자의 믿음 (눅 17:11-19) [10] 2013-10-13 21883
912 성령강림절 엘리야의 승천 이야기 [17] 2010-06-27 21718
911 성탄절 은총의 깊이로! [14] 2010-12-26 21586
910 사순절 빛의 자녀, 빛의 열매 [25] 2011-04-03 21423
909 성령강림절 성령을 받으라! [13] 2011-06-12 21331
908 주현절 은사와 성령 (고전 12:1-11) [6] 2013-01-21 20959
907 사순절 에스겔의 마른 뼈 환상 (겔 37:1-14) 2017-04-02 20770
906 창조절 마지막 심판과 생명 완성 (마 25:31-46) [15] 2011-11-13 20724
905 부활절 부활의 증인 공동체 [17] 2011-05-01 20690
904 성탄절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3] 2009-12-28 20647
903 성령강림절 모세의 무덤이 없는 이유 [28] 2008-10-19 20247
902 주현절 두려워 말라! (사 43:1-7) [11] [1] 2013-01-13 19878
901 성령강림절 기도와 믿음 file [20] 2010-10-19 19845
900 기타 다윗의 통곡 [1] 2006-08-27 19738
899 성탄절 그리스도의 평화 (골 3:12-17) [9] 2012-12-30 19647
898 기타 성만찬 공동체 [2] [1] 2006-09-10 19608
897 성탄절 영광과 평화의 노래 2010-12-26 19433
896 성령강림절 영적인 사람 [11] 2008-05-11 19332
895 창조절 하나님께 마음을 두라! (살전 2:1-8) [6] 2011-10-23 19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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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6 성령강림절 나아만과 게하시 (왕하 5:1-14) [6] 2013-07-08 17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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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9 창조절 예수 재림과 영적 각성 (살전 4:13-18) [11] 2011-11-06 17628
878 성령강림절 영원한 본향 하늘나라 [8] 2010-08-09 17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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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5 창조절 불행한 부자 이야기 (눅 16:19-31) [10] 2013-09-29 17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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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9 사순절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 [18] 2011-03-27 17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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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 대림절 임마누엘 예수 [17] 2007-12-23 16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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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 성령강림절 믿음과 행함의 긴장관계 [25] 2009-09-14 16342
847 기타 생명이 죽음을 삼키다, 7월2일 2006-07-02 16335
846 성령강림절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눅11:5-13) [10] 2013-07-29 16311
845 성령강림절 예수 그리스도는 누군가? [16] 2010-07-19 16285
844 성령강림절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 (삼상 17:32-49) [8] 2015-06-21 16245
843 창조절 제자의 길과 소유의 길 (눅 14:25-33) [10] 2013-09-08 16150
842 기타 하늘생명의 밥 [1] 2006-08-20 16136
841 성령강림절 예수는 생명의 밥이다 [22] 2009-08-10 16096
840 주현절 성령 임재와 마술 [21] 2010-01-11 16084
839 성령강림절 요한의 죽음과 예수의 죽음 [17] 2009-07-27 16052
838 성령강림절 은혜의 보좌 앞으로! [28] 2009-10-26 16038
837 주현절 하나님의 ‘선택의 신비’ [10] 2011-01-17 16024
836 성령강림절 천국, 질적인 변화의 세계 [18] 2011-07-24 15989
835 기타 낡은 것과 새것 [2] 2004-07-02 15968
834 주현절 이사야 예언의 성취 (눅 4:14-21) [7] [1] 2013-01-27 15963
833 사순절 “나는 아니지요?” [23] 2011-04-18 15913
832 성령강림절 세례 요한의 죽음 (막 6:14-29) [10] 2015-07-13 15849
831 기타 메시야니즘의 기초 [1] 2008-05-01 15817
830 기타 하나님을 알자 [4] 2004-06-30 15815
829 주현절 가난한 사람들 [23] 2011-02-06 15797
828 기타 신앙적 일상과 재림신앙 [2] 2006-10-15 15751
827 사순절 여호와를 알리라! [16] 2011-04-11 15736
826 성령강림절 하나님과의 평화가 답이다 [6] 2008-06-08 15731
825 주현절 영적 자유의 토대 [22] 2011-02-27 15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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