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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알리라!

사순절 조회 수 17092 추천 수 0 2011.04.11 14:3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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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에스겔 37:1-14 

여호와를 알리라!

에스겔 37:1-14, 사순절 다섯째 주일, 2011년 4월10일

 

     에스겔의 환상

     구약의 에스겔은 에스겔이라는 선지자가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에스겔은 기원전 587년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함락되기 전부터 시작해서 함락 직후 10년 까지 활동한 선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유다가 몰락해가는 역사적 현장에 있었습니다. 생존하기 위해서 어떻게 몸부림을 쳤는지, 이집트와 바벨론 사이에서 어떻게 줄다리기 외교정책을 펼쳤는지, 그 과정에서 유다 왕들이 얼마나 무모하거나 무기력했는지를 목격했습니다. 결국 예루살렘 성전을 비롯해서 도시 전체가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초토화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는 과정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는 다른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민족의 비참한 운명 앞에서 신앙의 근본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왜 자기 백성의 몰락을 방관하시는 걸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이유를 뭐라고 해명해야만 할까요? 그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로 마음고생이 심하던 에스겔은 이상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내용이 오늘 설교 본문인 겔 37:1-14절입니다.

     1-10절은 환상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이고, 11-14절은 환상의 의미에 대한 해설입니다. 에스겔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영을 뼈가 가득한 골짜기로 데려갔다고 합니다. 골짜기의 바짝 마른 뼈들이 산을 이룬 모습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끔찍한 장면입니다. 마치 쓰나미로 인해서 수천수만 명이 떼죽음을 당한 일본의 후쿠시마 지역과 비슷합니다. 에스겔은 뼈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외치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 주 여호와께서 ...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 너희가 살아나리라.” 이런 건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공동묘지나 납골당에 가서 어떤 사람이 이렇게 외친다면 미쳤다는 말을 들을 겁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그 명령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뼈들이 서로 부딪치며 연결되는 소리가 났습니다. 해골과 목뼈, 척추와 팔다리뼈가 우두둑 거리며 제자리를 찾았다는 겁니다. 오래된 무덤을 열었을 때 발견할 수 있는 뼈만 남은 사람의 형체를 머리에 그려보십시오.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씌어졌습니다. 그러나 생기는 없었습니다. 아직 숨을 쉬지 못했습니다. 에스겔은 다시 소리를 듣습니다.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붙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에스겔은 그 명령을 따랐습니다. 골짜기의 모든 뼈들이 사람으로 살아나서 큰 군대를 이룰 정도라고 했습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들은 없겠지요.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일어나서도 안 됩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은 세계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에 원하기만 한다면 이보다 더 놀라운 일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능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한계를 근본적으로 뛰어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세계의 생명 원리를 어떤 필요에 따라서 일시적으로 파괴하지 않습니다. 물을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르게 한다거나 죽어서 이미 썩은 사람의 몸을 다시 피가 돌게 하는 방식으로 살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뜻대로 살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전쟁이 터져 폭탄 세례를 받으면 온몸이 산산 조각이 납니다. 하나님은 그 순간에 폭탄 파편을 부드러운 솜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에스겔이 본 마른 뼈와 생기 이야기는 어떤 영적 가르침을 전하기 위한 환상입니다. 고대 유대인들은 이런 방식의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그것을 묵시문학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다니엘, 이사야, 에스겔입니다. 이사야는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살고, 표범과 어린 염소가 함께 노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이런 세상은 현실이 아니라 메시아가 직접 다스리는 평화의 세계를 가리킵니다. 오늘 본문도 똑같습니다. 에스겔은 미래에 대한 어떤 희망을 이런 환상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본문이 그것을 친절하게 가르쳐줍니다. 뼈들은 이스라엘 온 민족입니다. 뼈가 말랐다는 것은 희망이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고 합니다.(37:11b) 에스겔은 마른 뼈에게 외쳤던 말을 다시 이스라엘 민족에게 외쳐야만 했습니다.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12절) 골짜기의 마른 뼈가 서로 연결되고 살과 가죽이 덮이고 생기가 들어가 군대를 이루었듯이 바벨론에 의해서 완전히 죽었던 것과 같았던 이스라엘이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부터 해방된다는 사실이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결정적으로 중요할지 모르겠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실존적인 차원에서 어떤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도 때로는 마른 뼈와 같은 상태에, 바벨론 포로와 같은 상황에 빠져듭니다. 원인은 둘째 치고 그런 일은 흔히 일어납니다. 사업이 망할 수도 있고, 실연을 당할 수도 있고, 큰 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와 주변에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한민족의 역사에도 그런 일은 많았습니다. 일제식민 체제와 지금의 분단체제는 그런 상황에 가깝습니다. 오늘 본문에 따르면 마른 뼈와 비슷한 상황에 빠져 있는 이들을 하나님이 살려주신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를 영적인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남이 부러워할 정도로 풍요롭고 원만하더라도 영적으로 마른 뼈와 같을 때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황폐한 삶을 말합니다. 개인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습니다. 며칠 전에 수재들만 모인다는 카이스트 대학교 학생이 또 자살을 했습니다. 금년 들어서 4명이 자살을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징벌적 등록금 제도로 대표되는 무한 경쟁시스템이 한몫 했던 것 같습니다. 모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학교였는데 지금의 총장이 부임한 뒤로 학습의 효율성을 위해서 학점이 낮은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내게 하는 제도가 도입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오늘의 시대는 겉으로는 아주 역동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마른 뼈와 같은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은 거기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말합니다. 6절과 12절이 똑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마지막 구절인 14절도 그 사실을 정확하게 정리합니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본문은 바로 그 사실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마른 뼈와 해방 사건은 그것 자체로 궁극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역사에는 계속해서 그런 일들이 반복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50년간의 포로생활을 끝내고 큰 희망을 안고 고국으로 돌아와서 국가 재건을 위해서 모든 힘을 쏟았지만 희망은 잠시 뿐이고 결국은 민족 전체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예루살렘은 반복해서 수탈을 당하고, 예루살렘 성전도 재건과 파괴가 반복되었습니다. 에스겔에게 중요한 것은, 특히 그의 신탁을 읽고 있는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본문이 전하는 그 사건을 일으키신 분이 바로 여호와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알 것이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강조했습니다.

     이것이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의 주관자가 여호와라는 사실을 아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게 쉬웠다면 선지자가 그걸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배웁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셨고, 모세를 선택하셔서 출애굽의 역사를 일으키신 것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일어난 매우 놀라운 사건들에 대해서 조상으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종종 우상을 따랐습니다. 사사시대에는 그것이 반복되었고, 왕정시대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고, 바벨론포로 귀환 이후에도 사실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말은 곧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고, 따라서 여호와와 우상을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호와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방식으로 규정할 수 없습니다. 질그릇이 토기장이의 뜻과 행위를 알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확실하게 아는 것처럼 말합니다. 우상이 무엇인지 구분해낼 수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들은 불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타종교를 우상이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래서 우상을 타파하겠다는 생각으로 땅밟기를 시도합니다. 또는 어떤 이들은 세속적인 것들을 우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걸 교회 중심으로만 생각합니다. 부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는 틀렸습니다. 그건 영적인 사태를 잘 모르는 데서 나오는 생각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여호와와 우상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다는 보장이 있을까요? 예컨대 개교회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한국교회는 우상을 숭배하는 겁니다. 같은 지역에 있으면서 어떤 교회는 기초 생활도 불가능한 상태이고, 어떤 교회는 돈이 넘쳐난다면 분명히 우상의 기운에 사로잡힌 겁니다.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교회와 가장 큰 교회가 다 대한민국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어떤지를 알려주는 지표입니다. 다시 거론하기도 싫지만, 일전에 한국사회에 크게 알려진 한기총의 돈 선거는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속으로는 우상에 철저하게 기울어져 있으면서 겉으로만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그럴듯한 포즈를 취할 뿐입니다.

     에스겔은 여호와의 말씀에 기대해서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리라.” 도대체 뭘 보고 알 수 있을까요? 여호와가 행하신 일이 그 대답입니다. 여호와의 일을 마른 뼈의 되살아남과 같은 이스라엘 해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별로 큰 의미가 없다고 앞에서 저는 설명을 드렸습니다. 서로 모순되는 말이 아닙니다. 이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면 분명한 답이 나옵니다. 핵심은 ‘살리는 능력’입니다. 여호와는 살리는 능력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여호와만이 살리는 능력, 즉 생명의 근원입니다. 여러분이 생명의 힘을 느끼는 곳에, 바로 그 순간에 여호와가 일하십니다. 생명의 힘을 사랑의 힘이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거꾸로 탐욕의 기운을 느낀다면 그것은 우상입니다. 생명과 사랑의 능력은 모든 것을 살립니다. 일시적으로 폭력적인 형태로 나타날지 모르지만, 마치 폭풍이나 장마나 화산처럼, 결국은 사람과 세상을 살립니다. 탐욕의 능력은 매혹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라 하더라도, 우리를 부자가 되게 할 것처럼 보여도 결국 생명을 파괴합니다. 이 둘을 구별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성령과 악령은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악령도 역동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입니다.(막 13:22 참조) 

     우리는 생명의 원천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에스겔이 경험한 그 여호와의 능력은 예수님의 운명과 일치되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은 생명의 근원이며, 여호와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구약시대가 아니라 신약시대에 살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모호했던 여호와의 능력을, 즉 생명의 능력을 예수님의 운명에서 알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믿음이 막연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것보다는 자신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 더 실감이 나시나요?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통치에 더 집중해보십시오. 여러분은 생명의 능력을 분명히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생명의 순리를 따라야한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곧 여호와를 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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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눈사람

April 11, 2011
*.179.74.98

하나님께서 세상 주관자라고 말하면

성도들은 모든 일상 생활을 하나님께서 조종하신다고 생각하여

시시콜콜한 것까지 하나님께 물어보고 응답 받은대로 행해야 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유명했던(저는 안 읽어보았지만 아내가 읽었었지요. 교회에서 권해서.

물론 저는 그 교회를 떠났고, 아내에게는 읽은 것 잊어버리라고 권유했습니다만^^)

긍정의 힘에 마트에 물건 사러 갈때도 하나님께 여쭤보라고 했다니...

 

하나님께서 생명을 살리신다고 하면

죽은 자도 살리시고, 암도 낫게 하신다 하여 치유 은사라는 것을 졸졸졸 쫒아다니거나

현대 의학의 힘을 빌어 치료받기 보다 기도에 더 의존하는 경향이

소위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니...

 

모두가 자기 중심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서 나온 오류일 것입니다.

저는 다비아를 통하여, 정 목사님을 통하여

그런 오류에 빠지지 않는 것을 감사합니다.

 

" 여호와만이 살리는 능력, 즉 생명의 근원입니다. 여러분이 생명의 힘을 느끼는 곳에, 바로 그 순간에 여호와가 일하십니다. 생명의 힘을 사랑의 힘이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거꾸로 탐욕의 기운을 느낀다면 그것은 우상입니다"

 

마음 팍에 이 말씀이 꽂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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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April 11, 2011
*.120.170.250

눈사람 님,

하나님을 오해하는 일이 참으로 많지요?

이렇게 말을 많이 하고 글을 많이 쓰는 나 자신도

하나님을 오해할 때가 적지 않을 겁니다.

구약의 반복되는 우상숭배는

인류의 역사 자체입니다.

오늘도 그래도 반복됩니다.

그것은 바로 참 하나님과 우상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이게 참으로 어려운 문제에요.

성경만 죽도록 읽는다로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기도만 많이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신학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겠지요.

신학적인 개념으로 그 이유를 한 가지만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간접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다는 말이지요.

최선의 길은 우리의 영적 인식 능력이

통전적인 차원으로 올라서는 것이겠지요.

인간, 삶, 역사, 세상을 전체로 뚫고나갈 수 있는 힘을 말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또 부분적인 공부가 필요하겠구요.

또 복잡한 말이 됐습니다.

살리는 힘을 우리가 어떻게 경험하고

그 힘과 일치할 수 있는지

꾸준히 성찰하고 연대하고 투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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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신짱구

April 11, 2011
*.196.241.92

목사님♥ 부족하지만 오늘도 글을 올려 봅니다.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삶도 때로는 마른 뼈와 같은 상태에, 바벨론 포로와 같은 상황에 빠져든다”는 목사님 말씀 정말 맞습니다.

“내가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리라.”  제가 정말 여호와를 알고 있는지……

“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은 생명의 근원이며, 여호와의 능력입니다.”  저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생명의 근원이요, 여호와의 능력이 되길 소원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구원 통치에 더 집중해야 겠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능력을 분명히 경험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목사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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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April 11, 2011
*.120.170.250

신짱구 님,

뭘 부족하다고 하세요.

그럴 거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마음의 여유가 있으신 분 같은데요.

신짱구 님이

.... 되길 소원합니다, 하고 말씀하셨지요?

그게 그냥은 잘 되지 않구요,

약간의 공부가 필요합니다.

전문적인 학문이라기보다는

근원을 향해 마음을 여는 공부에요.

1) 성서의 놀라운 세계를 아는 것

2)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삶을 아는 것

이 두가지를 깊이 있게 공부하면

소원이 이루어질 겁니다. ㅎㅎ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나구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공부하는 게 빠르기도 하고

시행착오를 줄이는 길입니다.

신짱구 님이 다비아 곳곳에 들어 있는 글들을 읽는다면

이미 그런 공부를 시작한 겁니다.

공부 중단하지 말고 꾸준히 가보세요.

주님의 은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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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신짱구

April 12, 2011
*.196.241.92

목사님 감사 감사 드립니다. 그동안 다비아 곳곳에 들어 있는 글들을 다 읽지는 못했는데…

앞으로 열심히 읽고 끊임없이 공부에 열중하겠습니다.

목사님께서 올리시는 매일 말씀, 매일 묵상의 글을 통해 많은 깨달음과 많은 것을 알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추천하신 김동건 박사님의 ‘현대인을 위한 신학 강의’ 책 꼭 사서 보려고 합니다.

정말 디비아를 통해, 목사님을 통해 귀한 것들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근데 질문이 하나 있는데 괜찮으신지요?

열왕기하 13장14-19절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지요?

어떤 분이 저에게 ‘믿음’을 말씀한 것 아니냐  해서요.

답글 좀 부탁드립니다. 목사님…… 바쁘실텐데 죄송해요. 영육간에 강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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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April 12, 2011
*.120.170.250

신짱구 님,

질문하신 그 본문은 엘리사와 요아스 이야기네요.

요아스는 바로 앞 대목에서 죽었는데,

여기서 다시 등장합니다.

요아스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따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일종의 퍼포먼스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네요.

그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ㅎㅎ

너무 매달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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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진인택

April 13, 2011
*.239.93.193

하나님의 구원 통치안에서 주어지는 생명의 근원, 사랑의 힘이 여러가지로 나타남을 봅니다. 가까이 다가온 현상의 얼굴만 보고 맞 드라이브를 걸어서 이리가고 저리 뛰어 다닙니다. 목사님의 에세이식의 전개를 잘 읽고 잘 받아들이면서 가슴속에 깊게 간직합니다.

 500년 전에도 스페인,포르투갈에서도 동일본 지진 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독실한 카톨릭국가가 엄청난 재앙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프랑스의 지성들은 하나님에 대해 불신과 의문, 신에대한 배반적인 포기 메세지를 날렸습니다. 하지만 복구 과정에서 혁신적이고 과감한 리더가 나타나서 회복을 시키고 본격적인 지진의 연구와 건축,안전,보건을 연구 하였습니다. 지진은 살아 있는 지구의 호흡입니다. 그리고 환태평양 불의 고리의 형성은 누구도 알 수 없는 비밀입니다. 그 고리가 만약 남,북극으로 연결 되었다면 이세상은 벌써 노아의 방주가 한번 더 띄워져야 했을 것입니다.

목사님, 마른뼈란 말을 들으니 몇달 전 무지 연습많이 했던 찬양 내용하고 겹칩니다. 성경내용을 인용한 가사들을 헥헥거리면서 힘주고, 외치고, 숨죽이고, 길게빼고 ...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만 해도 마른뼈, 힘줄이 생기고 살이 붙어 숨쉬어 걸어간 군대를 깊게 생각하진 못했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능력, 사랑하기 때문에 주시는 부활의 생명을 넓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매일 마른뼈와 같은 저를 버리지 않는 주 예수님의 사랑의 힘을 감사히 생각합니다. 오늘도 생기불어 넣어진 군대로 , 십자가의 보혈로 새롭게 나를 사랑의 힘으로 거듭나게 하신 사랑의 힘앞에 나의 여러 가지 죄를 생각합니다.

 

 나를 넘어 서시는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이 계심을 내가 존재하기에 믿습니다. 

 

 

목사님 결혼전에 읽었던 이청준작가의 "당신들의 천국"이 요즘들어 교회를 갈때면 생각이 납니다.

들어가서 놀지 못하는 잔디밭

무엇하나 쉽게 만지지 못하는 물건들

어지럽히지 못하는 마당

아무때나 지나 다니지 못하는 길들..

문둥병자인 나를 위한  소록도라고  알고 왔었는 데 언제 부터인가 당신들이 요구하는 데로 가야하는 길을가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소설에는 카이스트 학생들이 자살하는 것과 똑같이 신발을 벗고 바다로 뛰어 듭니다.

 

교회가 마찬가지로 마른뼈가 쌓이면서 크기만 커져가고 십자가 부활의 참된 생명을 작게 취급합니다.  구원의 잣대를 들이대고 그 귀한 구원의 환희를 평가 합니다. 평가가 새신자 전도의 가마우지의 골격사이즈로, 그리고 가장 인간적인 계량경제로 숫자 발표를 합니다.

상향목표 설정으로  압박을 주는 당신들의 천국입니다.

거대한 교회처럼 생긴 하나님의 우상앞에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이런 무거운 발걸음으로 교회로 들어가서 나의 마음의 갈피를 잡으려 기도하니 생각만 많아 집니다. 내가 잘못을 하는지 아니면 나의 ego가 이제 더 이상 주 예수께 못나가게 쥐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제 가 겪는 지금의 상황도 성장통인가요?

압박을 무시하고 전 직장에서 돌아오면 곧 바로 모든 것 셧다운 시키고 성경책부터 읽기 시작합니다.  이런 상황도 주님께서  내게 주신 나의 미래인지 갈등 생깁니다. 

지금까지 내안의 참지 못할 얘기를 안고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 왔습니다.  

오늘은 도저히 그걸 감출 수 없어서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옆의 교회에서는 가관이 벌어집니다. 엄청 빠른 말로 뭐라 알아 듣지 못하게 내 뱉습니다. 찬송가도 굉장히 빠른 템포로 가끔씩 부릅니다. 

 

옆집 울타리에서 계속울고 있는 어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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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April 13, 2011
*.120.170.250

진인택 님,

지금 겪고 있는 정신적인 혼란은

진인택 님의 영혼이 여전히 건강하다는 증거에요.

건강하지 않으면 진통을 느끼지도 않는답니다.

완전히 세뇌된 사람들은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아요.

그렇다고해서 방황, 혼란 가운데만 머물러 있으면 곤란하겠지요.

이전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은 오솔길을 가야하니까요.

그래도 그 길로 들어선 사람은

자유와 평화를 경험합니다.

외롭지만 즐거운 발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주님의 은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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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신짱구

April 13, 2011
*.196.241.92

네♥목사님

언제나 세심하고 자상하게 글을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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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4]저별과 달

April 13, 2011
*.111.236.149

목사님, 이 땅에서 생명의 순리를 따라야 한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드는군요..

 

또 한편으론 이사야나 선지자들은 왜 이런 순리에 따라 쉽게 표현하면 될 이야기들을 현실 세상에서

납득하기 힘든 그런 이야기들로 성경에 그려 놓았는지 또 한편 궁금합니다.

성경은 참 비밀에 쌓인 언어들로 가득한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 그것을 앞으로도 계속 풀어 주시기를 기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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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April 1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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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달 님,

선지자들의 이야기가 복잡하나요? ㅎㅎ

그럴 수도 있겠군요.

이상한 이야기도 많으니까요.

그게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을 겁니다.

순리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걸 구분하고 그대로 따라 사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랍니다.

우리나 성서 시대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경험하고 배운 것들은 그런 순리와는 다른 것이었으니까요.

벌써 이번 주간도 목요일이 지나가는군요.

도대체 세월이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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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삐쭉이

April 14, 2011
*.182.131.202

잘 읽고 갑니다. 항상 설교를 읽으면서 몇가지 크고 작은 각성이 울리는데 아직 분명하게 잡히지는 않는 군요. 하지만 점점 질문을 구체화하면서 좀더 관심을 끌게 됩니다. 목사님을 통한 말씀이 공명하시는 모든 분께 주님의 축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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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April 14, 2011
*.120.170.250

삐죽이 님,

뭔가 영적인 공명은 되는데,

분명하게 잡히는 게 없다고 하신 거지요?

좋은 증상입니다.

너무 분명하면 그건 사이비입니다.

하나님의 행위를, 그의 통치를, 그의 섭리를

우리가 무슨 수로 명확하게 파악한다는 말인가요.

그 불명확성 앞에서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것이 그리스도교 영성의 중심입니다.

진도만 잘 나가면 세월이 지나면서

다시 보이기도 하고, 다시 흐려지기도 하면서

어떤 생명의 힘을 인식하게 되겠지요.

천천히요. 정말 천천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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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진인택

April 14, 2011
*.239.93.193

목사님. F=m*a , 힘=무게*가속도가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법칙으로 알고 있었는 데 다른 방향으로도 많은 걸 표현하게 하시네요.  혼란이 큰 저에게 굴착기 끝의 마지막 다이아몬드 같은 말씀을 주셔서 감사 합니다. 이렇게 저의 길에 격려자가 되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몇일 동안 새벽마다 잠이 들어서 그런지 몸도 피곤합니다.

 머리가 장시간 목을 압박하여서 머리 돌릴 때 소리가 납니다.  두두둑.. 그리고 제가 하는 일은 기계설계입니다.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부분은 일반용접기가 아니고 특정 프로젝트에만 소용되는 별스런 용접기를 그때 그때 설계하기에 머리 쓰는 일이 만만챦은 일입니다. 하지만 다비아에서 큰 감동을 느낄 때 마다 정신이 새로와 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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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April 14, 2011
*.120.170.250

너무 늦게 잠자리에 드시는군요.

너무 빨리 다리다보면 다리에 쥐가 날 수도 있구,

너무 빨리 먹다가는 체할 수 있으니

좀 천천히 가보세요.

신체 리듬이 감당할만 하면

경우에 따라서 속도를 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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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진인택

April 15, 2011
*.239.93.193

목사님, 추천 도서 목록을 오늘 다시 한번 보니 전에 읽었던 책들이 보여서 반가웠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은

오쇼 라즈니쉬 - 장자 道를 말하다. , 예수 道를 말하다.

칼릴 지브란 - 예언자

이영희 -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특히 라즈니쉬의 책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책이어서 신혼 때 독서에 방해를 받지 않으려 아내를 피해 가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강 열한 사회과학분야의 책은 역시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었습니다.

대학교 다닐 당시에 김수행교수님께서 기존의 마르크스 출판물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셨습니다.

당시 전두환, 노태우 군부정권하의 많은 젊은 막시스트에게 흥분을 안겨주었습니다.

마르크스 자신도 기존의 노동경제학 논문, 원시공산주의이론가들에게 비과학적이라 일갈하였습니다.

독일 철학과 중상주의 시대를 거쳐나가는 비 인간적인 영국의 자본주의 병폐를 명석한 두뇌로 마르크스는 꿰 뚫어 보았습니다. 그 결과 맹우 앵갤스와 투합해서 논문을 써 나갔지만 개인의 역량으로 산업혁명 이후부터 태동한 부르주아 자본주의의 해부는 원체 방대하여 요즘의 저처럼 지쳐 버렸습니다. 그리고 생김새가 중동티가 전혀 안나는 유대인 마르크스 자신은 쇠잔하여 안타까운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의 자본론은 러시아 혁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자르(1000년전 카스피해쯤,유대교를 받아들인 왕국)의 후예인 아쉬케나지들에게 자신들을 말살한 제정러시아의 전복에 필수적인 당헌,공산주의 이론을 쥐어 주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쉬케나지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연주한 러시아 출신 아쉬케나지가 아님 , 현재 이스라엘 엘리트 정당? 인 노동당 구성원은 독인유태인 아쉬케나지 ), 당시 최고의 공산주의 이론 행동자는 유대인 비극적인 말로를 맞이한 유대인 트로츠키였고, 물론 최고의 수혜자는 공산주의를 멋대로 뒤틀어 사회주의로 바꾸어 혁명을 올라탄 레닌이었습니다.

마르크스가 생전에 예언한 자본론의 핵심인 자본주의 하락이 실제로 1930년대에 닥친 대공황으로 입증이 되는 듯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세계의 물질에 답답해 하던 서구의 많은 젊은이들이 마르크스주의를 추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과학적(미시,거시, 분배,성장을 수학적으로 풀이한 경제 원리)인 이론이라 자부심을 가졌던 자본론이 반대로 살아 났습니다. 마르크스는 장차 변수로 작용할 기술혁신이 더 근 자본론의 성장엔진이 되리라곤 예측을 못했지요.

저도 일본에서 출판된 자본론, 김수행교수님의 자본론,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열심히 읽었지요. 뭐 지금은 남는 게 없지만..

참고로 대학 때 우리 교수님은 지금 영남대학교 총장님이신 이효수 교수님이십니다.

저처럼 한번 시작하면 링거 꽂고 끝장내는 타입입니다.

목사님께서 추천하신 도서목록에 제가 읽은 책들이 있으니 왠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언제가 될진 몰라도 옛날에 철학개론 시간에 맛만 보았던 신의 존재의 입증, 부정 그리고 변증법에 관하여 배웠으면 하는 맘이 생깁니다.

그게 안될지라도 인문학이 허용되는 다비아를 만나서 혼자서도 얘기하니 너무 좋고 하나님을 늦게 알게 된 게 아쉽습니다.

----- 응답글 달지 말아 주세요. 일고의 가치를 두지 않고 두서 없이 써 보았습니다.

특히 자본론에 관련된 내용은 너무 길어서 삭제 할까 하다가 그냥 올립니다.

 쓰는 것이  허용됨에 만족하여 그냥 써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과 함께함이 아름다운 날들이어서 행복합니다. 다비아의 모든 멤버들에게도 은혜가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요즘은 작은 것에 자주 신선한 충격에 받습니다.

Small is beautiful, small is wonder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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