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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대림절 조회 수 18711 추천 수 2 2010.12.20 22:4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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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로마서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롬 1:1-7), 12월19일, 대림절 넷째 주일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오늘 설교 본문인 롬 1:1절에서 자기가 누구인지 세 가지로 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사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택함을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의 정체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복종한다는 뜻입니다. 사도라는 단어는 바울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 표현은 자신이 복음 전도자라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별로 어려운 내용은 없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복음’(유앙겔리온 데우)을 전하기 위해서 택함을 받았다는 세 번째 요소가 가장 중요합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쓰는 이유도, 또한 로마를 방문하고 싶다고 한 이유도 결국 복음을 전하려는 데에 있었습니다. 로마서 전체의 주제도 복음에 대한 해명입니다.

     ‘유앙겔리온’, 즉 복음은 무엇인가요? 사전적인 의미는 ‘좋은 소식’(good news)이라는 뜻입니다. 대학시험을 본 학생들에게는 합격 통지서가 좋은 소식이겠지요. 몸이 크게 나빠져서 건강진단을 받은 사람에게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소견이 좋은 소식입니다. 성서는 그런 것을 유앙겔리온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처음에만 우리의 기분을 들뜨게 할 뿐이지 시간이 지나면 시시해지기 때문입니다. 세월과 더불어서 시들해지는 것을 복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바울은 2절에서 복음을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복음입니다. 그 약속의 내용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겠다는 약속이 복음입니다. 이 말이 복잡하게 들리나요? 이렇게 정리하겠습니다. 유앙겔리온은 하나님의 임재(parusia)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복음인 이유는 하나님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구원과 동의어나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자는 메시아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은 곧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메시아가 온다는 약속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유대인들은 왜 그런 약속에 매달렸을까요? 메시아는 왔을까요, 아니면 아직도 안 왔을까요? 이런 질문들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두 가지 관점에서 그렇습니다. 하나는 메시아를 생각할 정도로 세상살이가 한가롭지 못하다는 관점입니다. 지금 당장 먹고 사는 게 바쁘기 때문에 메시아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배부른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메시아를 기다리기보다는 사람이 직접 나서서 세상을 고치는 게 더 현명하다는 관점입니다. 이 세상의 일은 우리 인간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약속된 메시아를 기다린다는 것이 이 세상에서 성실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할 일이 없어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의 삶을 무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이 세상의 삶이 완성되기를 절절하게 바라는 마음이 바로 메시아 대망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이 세상과 삶이 도저히 완성될 수 없습니다. 구원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걸 유대인들은 역사에서 충분하게 경험했습니다. 우리도 충분히 경험했습니다. 세상과 역사라는 거창한 차원은 접어두고 우리 개인의 일상만 놓고 볼 때도 이것은 옳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한 인격이나 정신 상태를 이룰 수 없을 겁니다. 궁극적인 평화와 기쁨도 우리에게서 거리가 멉니다. 마음을 갈고 닦는다고 해서 완전한 인간성을 성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돈이 넉넉하면 삶이 풍요로울 것처럼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 삶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추구하던 모든 것들은 그것이 성취되는 순간에, 혹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시시한 것들이 되고 맙니다. 인간으로부터의 구원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메시아가 오는 것 외에는 인간에게 구원의 가능성이 없다는 성서의 가르침은 옳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그 예수님은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바로 그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두 본성

     바울은 3절부터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본성을 설명합니다. 즉 예수님의 본질에 대한 설명입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육신의 차원입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예수님이 육체적으로는 다윗의 후손이라는 뜻입니다. 이 사실을 마태복음 기자는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서 분명하게 지적했습니다.(마 1:6) 족보 끝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마 1:16) 요셉은 야곱의 아들이자 예수의 아버지입니다. 마태복음 기자는 요셉이 예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이라면 분명히 요셉의 아들인데도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기자가 요셉이라는 말을 굳이 피하고 마리아를 내세운 이유는 예수님의 출생설화에 놓여 있습니다. 그 설화에 따르면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한 채 성령으로 예수님을 임신했습니다. 요셉과 상관없이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겁니다. 동정녀 사건입니다. 많은 이들은 동정녀 사건이 예수님의 신성을 담보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는 반대입니다. 예수님의 신성이 동정녀 사건을 담보합니다. 그 신성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제일 먼저 기독교 신앙으로 자리를 잡았고, 동정녀 사건은 이 교리를 뒤따라 나오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약간 복잡하게 들릴 겁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 교리가 역사의 긴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많은 요소들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그런 복잡한 역사 과정을 생략하면 기독교 신앙의 내용은 독단이 되고 맙니다. 고단하더라도 우리는 그 속사정을 알아야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신앙도 깊어질 수 있고, 세상을 향해서 기독교의 진리를 정당하게 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으니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면 올바른 판단 능력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여기서 핵심은 예수님의 육신에 대한 강조입니다. 동정녀 사건도 그렇고, 오늘 본문이 말하는 ‘다윗의 혈통’도 그렇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하는 사도신경의 한 구절이 말하려는 것은 예수님이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셨다는 사실에 대한 강조입니다. 초기 기독교에 나타난 이단 중의 하나가 영지주의적인 가현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육신을 부정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 추한 인간의 몸을 입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실제 몸이 아니라 그림자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교부들은 이 가현설을 배격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과 똑같은 몸으로 사셨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 육신으로 사신 예수님은 당연히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고 합니다. 헬라어 성경은 이를 ‘카타 사르카’라고 했습니다. 사르카는 사르크스의 격변형입니다. 사르크스는 시공간의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는, 단백질로 된 이 육체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육체로 세상에 오셨고, 그렇게 사셨다는 뜻입니다.

     이런 설명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중요합니다. 초기 그리스도교가 벌인 심각한 신학논쟁의 역사가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예수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이 당시의 가장 치열한 신학논쟁이었습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예수님의 정체성이 처음부터 완성된 게 아닙니다. 그것은 신학투쟁의 결과입니다. 진리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세상에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명제 중의 하나가 “vere homo, vere Deus”(참 인간, 참 하나님)입니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하나님이라는 게 아니라 온전히 인간이며 온전히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두 속성이 적당하게 혼합되어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의 속성이 다른 것에 종속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을 물리적 실험으로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 본질의 신비입니다. 특히 ‘참 인간’이라는 요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참 하나님이라는 점은 잘 알아듣는데, 참 인간이라는 점은 못 알아듣습니다. 영지주의적인 가현설에 기울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본성이 참 인간이라는 말은 ‘카타 사르카’ 우리와 똑같다는 뜻입니다. 이걸 부정하면 이단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본성을 설명하는 또 하나는 영적인 차원입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라고 합니다.(롬 1:4) 여기서 ‘성결의 영으로는’이라는 표현은 앞에 나온 ‘육신으로는’과 대비됩니다. ‘카타 프뉴마 하기오수네스’라는 헬라어입니다. 각각 ‘카타’(따라서)라는 전치사가 붙어 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우리와 똑같이 다윗의 후손이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부활의 능력과 연결됩니다. 부활로 인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과 동일한 영적 권위가 있는 존재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의 본질이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호모우시오스’라는 신학용어로 고백했습니다.

     위에서 예수님의 두 가지 본질을 바울의 신앙고백에 따라서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카타 사르키)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으며, 영적으로(카타 프뉴마) 부활의 실체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참된 사람이며, 다른 한편으로 참된 하나님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 두 본성을 지닌 분이십니다.

 

    그는 주다

     이 두 본성이 우리의 신앙, 또는 우리의 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일까요? 바울은 로마서 도입부에서 이렇게 까다로운 이야기를 한 것일까요? 그 대답은 아주 분명합니다. 그 두 본성을 지닌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롬 1:4b) 이 표현은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관용어처럼 사용되었습니다. ‘주’는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로마 황제에게 붙여진 타이틀입니다. 당시 황제는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는 신의 대리자였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을 ‘퀴리오스’, 즉 주로 믿었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황제를 주인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흔드는 정치권력, 경제권력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근본적으로 그런 시대정신을 거부합니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이고, 영적으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로 믿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중요합니다. 이는 나사렛에서 목수의 아들로 살았던 역사적 실존 인물을 가리킵니다. 그는 마리아의 아들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 역사적 인물인 예수가 바로 우리의 주이며, 우리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오늘 어떤 이들은 다중 그리스도를 주장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대로 이웃을 사랑하는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민중해방을 부르짖는 이가 그리스도입니다. 이런 관점으로는 전태일도 그리스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제 삶으로 받아들이자는 좋은 뜻이긴 하지만 이런 다중 그리스도론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위배됩니다. 이런 주장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변질시키고 왜곡시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신성이 부정되고 인간적 실존만 부각되기 때문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의 인간성을 부정하고 신성만 강조한 영지주의를 몰아냈을 뿐만 아니라 신성을 부정하고 인간성만 강조한 에비온주의도 거부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이런 논쟁과 투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대림절 넷째 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을 기리는 성탄절을 바로 앞에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약속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를 주목하십시오. 그는 육신으로 우리 사람과 동일하고, 영적으로 하나님과 하나이십니다. 그만이 우리 사람의 위치로 내려오신 하나님이고, 그만이 하나님으로 들림 받은 사람입니다. 그만이 우리의 고통을 그대로 아시고, 그만이 부활 생명의 능력이 있으십니다. 바울은 그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언합니다. 그에게 여러분의 현재와 미래의 운명을 온전히 맡기십시오. 그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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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참믿음

December 21, 2010
*.177.73.140

목사님 안녕하세요^^  목사님의 설교 말씀은

정말 저에게 생명력을 느끼게 해줍니다

아마 목사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우울한 신앙생활을 했었을 겁니다.

요즘  하루하루 힘겨운 삶이  오히려 생명을 유지시키시는 힘을 의식할수 있다는게

목사님 이런 환경이 감사함으로 와닿다니 신기합니다.

아주 사소한곳에서 하챦은 구석에서 구원이 있다는것, 어떤 원천적인 힘이 나를 

지배하는 체험 이런 기분 처음입니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생명의 힘으로 이것들을 버티는 긴장관계  

정말 주님만이 나를 아시고  나같은 보잘것 없는 자를 인정하시니

어찌 그분께 모든걸 의존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그분만이 부활생명의 능력이 있으시며 저도 바울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드립니다. 아멘^^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성탄절은 또 특별한 성탄 기다림 입니다..

 

목사님께서도 기쁨과 평안의 성탄 되시고 

다가오는 새해 새롭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목사님의  말씀은 기독교의 획심에서 벗어나는 내용이 하나도 없네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연결된 설교가 항상 새롭게 생명력으로

  다가 옵니다.  절대 지루하지 않으면서 긴문장을 끌고가는 능력

  목사님께서는 참 좋은 은사를 받으 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감사함을 느낌니다^^.

 

 그리고 누군지 모르지만 가까이 계시는거 같은 느낌을 받는 "라라집사님께"도

올해 가기전 감사함을 전합니다.

글을 통한 수고에 많은 도움 받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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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December 21, 2010
*.120.170.250

참믿음 님,

안녕하세요?

저의 설교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그건 제 설교가 특별한 게 아니라  

참믿음 님의 영혼이 이미 그럴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이 말은 겸손으로 드리는 게 아니에요.

실제로 그런 겁니다.

저의 역할은 단지 기독교 신앙의 중심을

성서가 말하는 그대로 전하는 것뿐입니다.

어쨌든지 참믿음 님의 덕담을 들으니 힘이 나는군요.

그 힘으로 내년에도 설교작업에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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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나무늘보

December 25, 2010
*.118.118.167

성탄절 아침, 교회에 갈까 .. 잠시 고민하다 그냥 다비아에 로그인하였습니다. 다비아를 만난 덕분에 생긴 작은? 변화의 하나입니다.   30여년 동안 근본주의, 열광주의 신앙인으로서 살아온 저로서는 아직도 이길이 맞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긍정적인 확신과 자유함을 느끼고 있답니다~

 

온라인 공부로 다비아를 처음 접했을때 제안에  처음 부딪힌 문제가 동정녀 탄생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성서에 기록된 문자대로 믿어왔던 저에게 목사님의 물음들은 충격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주장하시는 인문학적 성서 연구란,  귀납적 성서연구와 비슷한 개념인 것 같습니다. 위로부터 주어진 연역적 믿음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출발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설명가능한 믿음'을 강조하신다고 보는데요...  하나님에 대한 물음 칼럼에서도 개인의 하나님 경험을 상식의 차원으로 설명할수 있어야 한다고 하신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납적 접근만으로는 결국 하나님의 내제와 초월, 삼위일체 같은 궁극의 개념들은 풀어낼수 없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도 하나님으 도교나 불교의 궁극의 원리의 차원과 혼동해서는 안되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전제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결국 인문학적/귀납적 해명의 한계점에서  우리의 믿음이 시작되는 것이겠지요.

 

오늘 설교 말씀 중 예수님이 여자의 몸에서 나신 사실이 영지주의에 대항한 기독교 전통이라고 하셨지요. 동정녀 탄생 문제는 귀납적(의학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교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에 담긴 기독교 전통이라는 점에서 이 역시 무시하기 보다는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전제로 받아들일수는 없는 것인지요?

 

질문을 .. 글로써 풀어놓기가 쉽지가 않네요... 그래도 질문이 많아지는 것은 좋은 징조라는 목사님 말씀에 힘을 얻습니다.

 

복된 성탄과 건강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소서  

 

* 설교 동영상이 5분쯤 지나면 곰인코더라는 글씨가 목사님의 인자하신 얼굴을 다 가려 버리는데요... 그리고 요즘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성가곡을 끄는 방법을 못 찾겠어요. 설교 들을때 방해가 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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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December 26, 2010
*.120.170.250

나무늘보 님,

그제 성탄 이브, 어제 성탄, 오늘 성탄후 첫 주일을

의미있게 보내셨는지요.

모든 것에 의미를 찾는 것도 때로는 부질 없는 일이기도 하고,

의미를 찾는 것 자체가 상투성에 떨어지기도 하지만요.

저는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 대구샘터 교우들과 겨울 수련회를 다녀왔어요.

어느 일들이 있었는지 참석하지 않은 분들에게 설명하기는 힘듭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모임이 어떤 것이었을지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음....

기독교 신앙의 귀납적인 접근과 연역적인 접근이 상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귀납적인 접근으로 도달한 어떤 명제가 자리를 잡으면

그것이 연역적인 접근의 근거가 되는 겁니다.

예컨대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사실만 봐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신비를 볼 때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어떤 분의

계획과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결국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입니다.

이 신앙에 근거해서

다시 이 세상의 모든 역사는 해석될 수 있습니다.

동정녀 사건은 신성의 전제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느나고 말하셨지요?

설교에서 언급했지만

그것은 신성의 전제가 아니라 신성의 결과랍니다.

예수의 신성은 부활에 담겨 있어요

그가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과 동일한 권위를 갖게 되었다면

그의 출생도 당연히 일반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겁니다.

기독교 신앙은 부활로부터 시작했고,

동정녀 사건은 그것의 논리적 귀결이라는 뜻이지요.

곰인코더 글씨는 나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가곡를 지우려면 Esc를 누르면 됩니다.

금년도 5일이 남았군요.

도대체 세월, 시간의 실체가 무얼까요?

감감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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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나무늘보

December 28, 2010
*.102.200.79

겨울 수련회를 다녀오셨군요... 부럽습니다... 2009년 다비아 첫 여름 수련회때 '목사님과 떠나는 겨울여행'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나요?...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올 해도 아무 언급이 없어서 좀 서운했습니다..   편하게 식사하고 주변 구경도 하고 충분한 대화도 나누는 시간들, 다비안들을 위해서도 만들어 주시면...

 

새해에는 목사님이 강조하시는 부활에 대한 묵상 시리즈도 이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초대교인들의 부활경험의 실체에 대해서도 많이 궁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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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LetGodBeGod

January 25, 2011
*.109.14.127

로마서 1장3~4절을 가지고, 예수의 두 본성 교리를 끄집어내시다니...

사도신경을 로마서 위에 덮은 듯한 인상이 드네요. 쩝...

 

여기서 '다윗의 혈통'과 '성결의 영'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가 '그리스도', 곧 '종말에 나타날 구세주'라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선포되셨으니'(인정되셨으니,확정되신 분)라는 말을 생각해 본다면,

여기서 지금 바울이 

예수의 '존재'를 설명하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상정하신 에비온파나 영지주의와의 대결 구도도,

좀 억지스럽게 보입니다.

(여기서 저는 로마서보단 사도신경이 떠올랐습니다!)

 

그럼에도 구태여 

이 본문에서 무리하게 두 본성론을 끄집어 내신다면,

앞으로 펼처질 로마서의 중요 주제인,

'율법과 복음'(롬3)의 긴장관계,

'아담 - 그리스도'(롬5) 대결구도,

'율법의 마침으로서의 그리스도'(롬10)등등을

어떻게 설명하실지 걱정이 됩니다.

 

로마서 전체 주제와 바울 신학의 핵심 주제 속에서

개별 주해를 해야 보다 설득력있고 적실성있는 설교가 나오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점에서 첫 단추에 해당하는

로마서 1장 3~4절 주해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생각되구요.

쩝...

 

어쨌거나 이런 문맥 속에서

예수가 '주', '그리스도'라는 말도,

설명되야 합니다.

 

결국 이 신앙 고백은

예수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세상에 대해 권리 주장하며,

교회로 하여금 낡은 세상의 한 복판에서

새로운 창조를 이끌어가도록 하시는 분이라는 뜻이겠지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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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January 25, 2011
*.120.170.250

안녕하세요,

렛갓비갓님.

생각과 글쓰기가 독특하고 강하시군요.

본인이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면

그대로 생각하세요.

주님의 은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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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LetGodBeGod

January 26, 2011
*.109.14.127

저의 독특한 생각이 아니라,

에른스트 케제만의 로마서 주석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목사님 보신다는 '국제성서주석'이요~

 

요즘 많이 바쁘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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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 성령강림절 상을 받는다는 것 (마 10:40-42) [11] 2014-06-29 14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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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3 성령강림절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8] 2014-06-15 9703
542 성령강림절 성령과 은사 (고전 12:4-13) [8] 2014-06-08 9986
541 부활절 승천과 재림 사이에서 (행 1:8-14) [2] 2014-06-02 10165
540 부활절 사랑함이 사랑받음이다. (요 14:15-21) [14] 2014-05-25 10360
539 부활절 어둠에서 놀라운 빛으로! (벧전 2:2-10) [2] 2014-05-18 9259
538 부활절 예수는 양의 문이다 (요 10:1-10) [2] 2014-05-11 17495
537 부활절 회개, 세례, 성령 (행 2:36-41) [8] 2014-05-04 10764
536 부활절 예수 부활 이후 (요 20:19-29) [8] 2014-04-27 10215
535 부활절 빈 무덤과 예수 부활 (요 20:1-18) [10] 2014-04-20 12939
534 사순절 의인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산다. (사 50:4-9a) [16] 2014-04-13 9259
533 사순절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롬 8:6-11) [6] 2014-04-07 14519
532 사순절 다윗과 여호와의 영 (삼상 16:1-13) [5] 2014-03-30 12242
531 사순절 영원한 생수는 예수다! (요 4:5-26) [10] 2014-03-23 11472
530 사순절 아브라함의 하나님 (롬 4:1-5, 13-17) [5] 2014-03-16 11755
529 사순절 유혹 받으신 예수 (마 4:1-11) [10] 2014-03-09 18331
528 주현절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다. (출 24:12-18) [14] 2014-03-03 11497
527 주현절 원수사랑, 가능한가? (마 5:38-48) [26] 2014-02-23 15233
526 주현절 하나님은 생명이다! (신 30:15-20) [5] 2014-02-16 10370
525 주현절 법과 자유 (마 5:13-20) [18] 2014-02-09 10560
524 주현절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고전 1:18-31) [16] 2014-02-02 18566
523 주현절 하나님 나라와 제자도 (마 4:12-23) [4] 2014-01-26 11420
522 주현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 (고전 1:1-9) [3] 2014-01-19 10182
521 주현절 세례 받은 하나님의 아들 (마 3:13-17) [4] 2014-01-13 16088
520 성탄절 여호와는 구원자다! (렘 31:7-14) [6] 2014-01-05 9435
519 성탄절 시험받은 예수 그리스도 (히 2:10-18) [14] 2013-12-29 13665
518 성탄절 성육신의 신비 (요 1:1-14) [12] 2013-12-25 14042
517 대림절 임마누엘은 예수다 (사 7:10-16) [8] 2013-12-22 13475
516 대림절 메시아 질문 (마 11:2-11) [17] 2013-12-15 13000
515 대림절 희망의 하나님 (롬 15:4-13) [10] 2013-12-08 13964
514 대림절 여호와의 빛 (사 2:1-5) [13] 2013-12-01 15272
513 창조절 그리스도 논쟁 (눅 23:33-43) [4] 2013-11-24 10352
512 창조절 하나님의 평화, 평화의 하나님 (빌 4:4-9) [15] 2013-11-18 10965
511 창조절 삶과 죽음의 경계 (눅 20:27-38 [8] 2013-11-10 11180
510 창조절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합 1:1-4, 2:1-4) [10] 2013-11-04 14668
509 창조절 하나님 앞에서 '옳음'의 문제 (눅 18:9-14) [8] 2013-10-27 13887
508 창조절 약속의 하나님, 하나님의 약속 (렘 31:27-34) [10] 2013-10-21 14478
507 창조절 이방인 나병환자의 믿음 (눅 17:11-19) [10] 2013-10-13 24760
506 창조절 거룩한 부르심 앞에서 (딤후 1:1-14) [12] 2013-10-07 15443
505 창조절 불행한 부자 이야기 (눅 16:19-31) [10] 2013-09-29 21062
504 창조절 예레미야의 눈물 (렘 8:18-9:1) [8] 2013-09-22 13504
503 창조절 죄의 심연 (딤전 1:12-17) [6] 2013-09-15 11152
502 창조절 제자의 길과 소유의 길 (눅 14:25-33) [10] 2013-09-08 18972
501 창조절 헛되고 무익한 것 (렘 2:4-13) [16] 2013-09-01 13527
500 성령강림절 신앙과 위선 (눅 13:10-17) [6] 2013-08-25 14773
499 성령강림절 하나님의 절망 (사 5:1-7) [1] 2013-08-18 11035
498 성령강림절 인자가 오리라! (눅 12:35-40) [5] 2013-08-12 13115
497 성령강림절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골 3:1-11) [10] 2013-08-04 10636
496 성령강림절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눅11:5-13) [10] 2013-07-29 18927
495 성령강림절 예수 그리스도 송영 (골 1:15-23) [2] 2013-07-21 12298
494 성령강림절 이웃에 대한 질문 (눅 10:25-37) [19] 2013-07-14 17927
493 성령강림절 나아만과 게하시 (왕하 5:1-14) [6] 2013-07-08 20259
492 성령강림절 제자의 삶과 하나님 나라 (눅 9:57-62) [6] 2013-06-30 16360
491 성령강림절 악령으로부터의 해방 (눅 8:26-39) [15] 2013-06-24 13590
490 성령강림절 율법과 십자가 (갈 2:15-21) [17] 2013-06-16 13256
489 성령강림절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 (왕상 17:8-24) [7] 2013-06-09 16202
488 성령강림절 복음을 위한 진리 싸움 (갈 1:1-10) [9] 2013-06-02 14016
487 성령강림절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 (롬 5:1-5) [8] 2013-05-26 14238
486 성령강림절 성령은 진리의 영이다 (요 14:8-17) [4] 2013-05-20 15778
485 부활절 상호내주의 비밀 (요 17:20-26) [5] 2013-05-12 12553
484 부활절 환상을 보는 사람들 (행 16:6-15) [12] 2013-05-06 15088
483 부활절 새 하늘과 새 땅 (계 21:1-6) [10] 2013-04-28 16780
482 부활절 예수는 하나님이다 (요 10:22-30) [8] 2013-04-22 13180
481 부활절 나를 따르라 (요 21:15-19) [10] 2013-04-14 20826
480 부활절 죽임과 살림 (행 5:27-32) [14] 2013-04-07 11339
479 부활절 생명과 죽음 (눅 24:1-12) [8] [1] 2013-03-31 16211
478 사순절 여호와는 가까이 계시다 (사 50:4-9) [10] 2013-03-24 18817
477 사순절 의식하지 못한 은총 (요 12:1-8) [10] [2] 2013-03-18 15499
476 사순절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후 5:16-21) [12] [1] 2013-03-10 17944
475 사순절 여호와를 찾으라, 부르라! (사 55:1-9) [17] [3] 2013-03-03 26286
474 사순절 예수와 헤롯 (눅 13:31-35) [8] [1] 2013-02-24 15555
473 사순절 “구원을 받으리라!” [7] 2013-02-18 12559
472 주현절 예수의 축귀 능력 (눅 9:37-43) [8] [2] 2013-02-10 12910
471 주현절 예레미야의 하나님 경험 (렘 1:4-10) [12] 2013-02-03 17010
470 주현절 이사야 예언의 성취 (눅 4:14-21) [7] [1] 2013-01-27 18941
469 주현절 은사와 성령 (고전 12:1-11) [6] 2013-01-21 23800
468 주현절 두려워 말라! (사 43:1-7) [11] [1] 2013-01-13 21731
467 주현절 예수가 왕이다 (마 2:1-12) [3] 2013-01-07 17957
466 성탄절 그리스도의 평화 (골 3:12-17) [9] 2012-12-30 22305
465 대림절 우리를 구원하실 이 (미 5:2-6) [4] [2] 2012-12-24 17029
464 대림절 관용과 주의 재림 (빌 4:4-7) [7] [3] 2012-12-17 18100
463 대림절 주의 길을 준비하라! (눅 3:1-6) [11] 2012-12-09 21471
462 대림절 그 날이 오리라! (렘 33:14-18) [16] [1] 2012-12-02 17506
461 창조절 하나님을 기억하라 (신 8:11-18) [16] 2011-11-21 18300
460 창조절 마지막 심판과 생명 완성 (마 25:31-46) [15] 2011-11-13 23262
459 창조절 예수 재림과 영적 각성 (살전 4:13-18) [11] 2011-11-06 20102
458 창조절 위선에서 낮춤으로! (마 23:1-13) [11] 2011-10-30 16905
457 창조절 하나님께 마음을 두라! (살전 2:1-8) [6] 2011-10-23 23093
456 창조절 하나님과 금송아지 상 (출 32:25-35) [7] 2011-10-17 20146
455 창조절 신앙의 위기 앞에서 (빌 4:1-9) [6] 2011-10-09 16828
454 창조절 하나님 나라의 열매(마 21:33-46) [8] 2011-10-02 14713
453 창조절 명령하시는 하나님 (출 20:1-11) [16] [1] 2011-09-26 12732
452 창조절 복음은 싸움이다! [6] 2011-09-19 12762
451 창조절 그리스도교 윤리의 근거 (마 18:21-35) [6] 2011-09-11 12640
450 창조절 심판의 하나님 (출 12:1-14) [12] 2011-09-05 13353
449 성령강림절 종말과 생명 완성 (마 16:21-28) [16] 2011-08-29 14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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