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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 받으신 예수 (마 4:1-11)

사순절 조회 수 18333 추천 수 0 2014.03.09 21:16:46
설교듣기 : https://youtu.be/jHKT-uw64vM 
성경본문 : 마태복음 4:1-11 

유혹 받으신 예수

4:1-11, 사순절 첫째 주일, 201439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독일의 대문호로 불리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대표작은 <파우스트>입니다. 이 작품은 괴테가 20대에 착상을 시작해서 죽기 직전인 82세에 완성했다고 합니다. 자그마치 60년에 걸쳐 집필된 작품입니다. 그 작품의 기본 골격은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악마가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파우스트 박사를 유혹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악마는 노년의 파우스트에게 젊음을 통한 삶의 향락을 허락해주는 대신 죽을 때 영혼을 자기가 소유하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자 파우스트는 그런 조건으로 악마와 계약을 맺습니다. 이런 구상은 구약의 <욥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욥도 악마의 유혹을 받았지만 파우스트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인간은 크고 작은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유혹과 전혀 상관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의 제1독서는 처음 사람인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은 받아서 타락했다고 말합니다. 그게 인간의 실존이라는 뜻입니다. 믿음 생활을 아무리 잘해도 유혹을 받습니다. 수도원에 들어가도 유혹은 있습니다. 죽어야만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예수님주기도에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내용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 당신도 유혹을 받으셨다고 복음서 기자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인 마 4:1-11절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이 출가 후 광야로 나가셨을 때 마귀가 나타나서 예수님을 세 가지로 유혹했고 합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이 마귀와 대화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교육받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좀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마귀가 실제로 나타난다는 건 만화나 소설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라고 말입니다. 하기야 교인들 중에는 성서에 묘사된 마귀를 뿔이 달리고 시커멓게 생긴 어떤 실체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으니, 오해할만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신데 어떻게 시험을 받냐, 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의문점을 염두에 두고 본문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를 통해서 의문점이 저절로 해결될 것입니다.

 

1) 마귀가 예수님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당시 예수님은 40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의 모든 게 먹을 거로 보였을지 모릅니다. 마귀의 요구는 예수님에게도 아주 실존적인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요구는 더 근본적인 유혹이었습니다. 먹을거리 문제는 인간 생존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그걸 해결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일단 먹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인간 문명도 가능하고 현실적으로 신앙생활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그걸 약속으로 내겁니다. 몇 년 후에 3만 달러, 4만 달러 소득을 올리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밥 먹듯이 내뱉습니다. 국민들은 그런 말에 솔깃해합니다. 마귀의 유혹은 이렇게 매력적인 겁니다. 4절에 의하면 예수님은 마귀에게 신 8:3절을 인용해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2)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면 뛰어내려봐라.’ 하고 유혹하면서 시 91:11절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시켜서 예수님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안전히 지켜줄 것이라는 겁니다. 마귀도 성경을 인용합니다. 성경이 인용되었다고 해서 그게 다 옳은 게 아니고, 오히려 악하게 사용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성경을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사용하고 해석을 왜곡하는 겁니다. 마귀의 이 유혹도 아주 매력적인 겁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자신에게 초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입니다. 소위 신유집회가 한국교회에서 오랫동안 유행했고, 지금도 그런 치유사역을 전문적으로 하는 집단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큰 병에 걸린 사람을 기도로 고치겠다고 약속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합니다. 허황된 말이라도 혹시나 해서 귀를 기울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이렇게 이용하는 것은 예수님에게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마귀의 유혹과 다를 게 없습니다. 예수님은 신 6:16절을 인용해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3)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주고, 자기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주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마귀가 허튼 약속을 한 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유혹은 그럴 듯합니다. 그가 약속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보십시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 제국과 그 위엄을 가리킵니다. 로마의 황제나 귀족이 되거나 로마의 경제 권력을 잡는다고 가정해보십시오. 당시 여기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마귀의 이 유혹은 예수님 당시 사람들보다는 오늘 우리에게 더 실감이 납니다. 요즘 젊은이들을 비롯해서 모든 현대인들은 부정한 방법을 통해서도 돈과 권력을 손에 넣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외치시고, 6:13절을 인용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위에서 간단히 설명한 마귀의 세 가지 요구, 또는 약속, 또는 유혹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돌을 떡으로 만들어서 모든 굶주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려도 새처럼 가볍게 땅에 내려앉을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상의 권력과 명예를 손에 얻을 수 있는 인생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마귀의 유혹이라고 말합니다. 세 번째 유혹 앞에서 예수님은 사탄아!’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고난과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예수님의 운명을 막으려던 베드로를 향해서 예수님이 던지신 말씀(16:23)과 표현이 똑같습니다. 고난을 무조건 저주하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부추기는 것은 곧 사탄의 유혹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더라도 이왕이면 그런 능력이 있으면 좋지 않으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그런 능력을 성취하는 게 바로 예수를 믿는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믿지 않으면 인생이 거덜 날 것처럼 위협하는 교회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철저한 기복주의이고 세속주의 신앙입니다. 그게 바로 마귀의 유혹입니다. 한국교회는 상당한 정도로 성령이 아니라 악령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말이 될까요?

 

제가 보기에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의 신앙이 자체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신앙의 내용은 내세적이고 초월적인데 실제 삶의 내용은 철저하게 기복적이고 세속적입니다. 신앙이 성속이원론에 치우쳐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권력 지향적이고 자본주의적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단지 신앙의 형식으로만 남아 있고 교회의 힘을 세속적으로 나타내는 것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그런 행태를 보이기에 일반 신자들은 그게 옳은 것으로 여깁니다. 지난 주 목요일(36) 서울 코엑스 D홀에서 제46회 국가조찬기도회가 열렸습니다. 소식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서 정, 교계 인사 3천여 명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국가를 위해서 기도하겠다는 생각은 누가 뭐라 할 게 없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신자도 아닌, 오히려 불교에 가까운 대통령까지 앉혀놓고 기자들 카메라 세례를 받으면서 조찬을 겸해서 기도회를 연다는 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땅바닥으로 낮추는 가장 거룩한 종교행위인 기도회라기보다는 권력을 추종하는, 또는 기독교의 힘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 모임에 가깝습니다. 세상 모든 나라와 영광을 주겠다는 마귀의 유혹과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본문에서 마귀가 예수님에게 요구한 세 가지 항목을 하나로 묶으면 당신이 메시아라는 증거를 보여라.’입니다. 그 세 가지를 성취할 수 있다면 메시아로 추앙받을 수 있을 겁니다. 예수님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자신이 메시아라는 증거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 없이 메시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돌에게 명령을 내려서 떡이 되게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요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게 초능력이 있다면, 그리고 세상의 모든 권력을 손에 쥘 수 있다면 사람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습니다. 마귀의 이런 요구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처한 역사적 상황과도 연관됩니다. 로마제국을 향한 유대인들의 무력독립운동인 유대전쟁은 기원후 70년에 실패로 끝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여러 곳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힘만으로 로마 제국과 맞선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기대할 수 있는 건 로마 제국을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메시아의 도래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향해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실제적인 힘으로 보이라고 요구했습니다.

 

예수님이 마귀에게 준 세 가지 대답을 기억하시지요?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게 하나이고,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게 다른 하나이고,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라는 게 또 하나입니다. 각각 신명기에 근거한 말씀입니다. 이걸 하나로 묶으면 하나님만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메시아의 능력을 보이라는 마귀의 요구와 하나님만 믿으라는 예수님의 대답은 서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마귀의 요구는 아주 실제적이고 실용적이고 구체적입니다. 사람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것들입니다. 이에 반해 예수님의 대답은 막연해 보이고, 추상적인 것처럼 보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입니다. 하나님만을 신뢰하라는 게 손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속된 표현으로, 하나님을 믿는 게 밥 먹여주나,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현실적으로 필요한 문제들을 간과한 채 하나님만을 신뢰하라고 말씀하신 걸까요? 그 답은 분명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떡이 필요하고,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고, 세상의 영광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그런 걸 완전히 떠나서 사는 게 아닙니다. 마귀의 요구는 우리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들입니다. 예수님도 그것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수단들이지 생명 자체는 아닙니다. 그것에 매달리면, 또는 그것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면 생명을 얻는 게 아니라 오히려 훼손시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귀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하나님만 신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도 이 말씀에 근거해서 예수님의 메시아 능력을 제시하라는 요구를 거부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통해서만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 신뢰하면서 사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걱정거리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만이 아니라 기독교인들도 걱정거리를 머리에 이고 삽니다. 자신의 인생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마귀의 요구에 길들여져 있다는 게 그 대답입니다. 마귀의 방식으로 생명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도 어떻게 하면 돌을 떡으로 만들지, 기도를 얼마나 해야 이런 능력이 생길지에만 신경을 세우고 삽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자기에 대한 염려입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그런 자기염려에 빠지라고 유혹합니다. 본문이 말하는 세 가지 유혹은 결국은 자기염려입니다. 자기가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성취하려는 염려이자 연민이며 열망입니다. 이것보다 더 강렬한 것도 없습니다. 현대 문명은 그걸 자극시켜서 상품을 팝니다. 티브이 프로그램도 이런 걸 자극하기 위해서 막장으로 내닫습니다. 성서가 말하는 죄는 바로 그것입니다. 자기에게 집착할수록 점점 더 생명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동의하시나요?

 

어떻게 하면 마귀의 달콤한, 그리고 상당히 그럴듯해 보이는, 그러나 결국은 미망과 죄와 죽음에 빠지게 하는 마귀의 유혹에서 벗어나서 하나님만 온전히 신뢰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게 과연 가능할까요? 비관적으로 보면, 아담 이후로 우리는 죽을 때까지 마귀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운명으로 태어났는지 모릅니다. 제가 여기서 어떤 뾰족한 길을 안내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당장 내일 아침부터 완전히 새로운 삶과 믿음의 차원에 들어갈 수 있는 왕도를 제시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성서가 가르치는 길을 대신해서 전해드릴 수 있을 뿐입니다.

 

오늘의 제2독서인 롬 5:12-19절은 아담과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한 바울의 설명입니다. 19절에서 이르기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앞의 한 사람은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취한 아담이고, 뒤의 한 사람은 마귀의 유혹을 물리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우리는 의인으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에 집중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는 전혀 새로운 삶의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뻔한 설교라고 생각하시나요?

 

세상의 원리로 설명해야겠네요. 사람들은 존경받는 사람 곁에 가면 그 사람의 기운을, 또는 영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명훈 같은 지휘자가 함께 있으면 음악적인 기운이 전달되는 거와 같습니다. 거꾸로 돈만 밝히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그런 기운이 전달됩니다. 예수님이 옆에 있다면, 즉 우리가 그분의 생각과 그분의 운명에 가까이 간다면 예수님에게 일어났던 생명이 전달됩니다. 예수님에게 가까이 있는 사람은 어쩌다가 유혹에 떨어졌다가도 다시 벗어납니다. 여러분이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지 모르겠으나, 다음의 한 가지 사실만은 잊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똑같이 마귀의 유혹을 받으셨으나 이기시고 생명의 주인이 되셨으며, 바로 그분이 지금 신비한 방식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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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8]부스러기 은혜

March 12, 2014
*.192.53.116

"네 배만 불릴 셈으로 떡을 구하고자 나를 의지함이 곧 나를 시험하는 것이니

너는 나를 시험하지 말라!"

 

준엄하신 그 분의 명령에도 우린 여전히

떡,떡 떡에만 온 신앙적 시선이 함몰된 채,

설마 나는 그 분을 시험하며 믿는건 아니겠지...  자기 기만속에

그닥 흠결없는 신자임을 자처하며 열심을 내고 있겠지요

십계명의 제2, 제3의 계명 또한 오늘 '떡을 위해 나를 시험치 말라'는 명령과 동일한 맥락의 말씀이 아닌가요?

 

우리의 눈과 귀와 영혼을 끊임없이 넋이 빠지게 하는 세상의 거대한 교훈과 풍조 앞에서

한편으론 늘 바람 앞에 촛불같기만 한  약하디 약한 우리 실존의 한계를 갖고

또 한편으론 시류에 영합하여 살고자 하는 태생적 죄성을 매일 부인해가며,

두렵고 떨림으로 그 추상같은 명령에 자기를 쳐 복종해야만 하는 이 선한 싸움을

매일 깨어 싸워야만 얻을수 있는  구원의 길이

새삼 좁고 좁은 문이요, 지난한 과정임을 통감합니다.

 

교회안에서조차 시나브로 세상의 풍조와 교묘히 영합된채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둔갑시키는  무서운 열심 앞에서

":너희들의 그런 예배에 신물이 난다.  차라리 성전 문을 닫아라!"

"독사의 자식들아!"

 어쩜 오늘 우리를 향한 분노와 탄식이 아닐런지요?

 

  도대체 어떻게 믿어야 할지 두렵기만 합니다.

 

  율법과 자기의와 경건의 모양에 갇혀있고, 기득권에 갇힌채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저 유대인과들과 조금도 다를바 없는,

  스스로를 속이고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오늘 우리의 위선과 가증한 열심의 그 벌거벗은 속살을 직시할수 있도록 

  탐심과 세상의 유혹에 가리워진 우리의 눈꺼풀을 벗겨주시길 간구할 뿐입니다. 

 

  목사님의 오늘 말씀을 통해 새삼 온전한 신앙의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도전을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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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March 12, 2014
*.94.91.64

예, 신앙의 도전을 받는다는 건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뜻이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신앙의 깊이로 들어가게 됩니다.

어느 순간에 신앙의 희열을 맛보다가

다시 저 나락으로 떨어지더라도 절망하지는 마세요.

신앙의 기본틀을 유지하고 있으면

점점 더 눈이 밝하질 겁니다.

주님의 평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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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7]물가의나무

March 13, 2014
*.210.97.78

요즈음 '하나님은 창조 이래 돌을 떡으로 변화 시킨적이 있으신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 가지면서 목사님 성구 묵상에 '물과 포도주'에서 그 답을 얻었습니다. 쌀로 떡을 만드시지 돌로 떡을 만들지 않으신다는 것을,

그런데 본질이 변화 된 사건은 오직 부활에만 있음에도(모든 성도가 그런 약속을 받았음에도) 대다수의 신자들은 돌로 떡을 만들어 달라고 갖은 치성을 들이고, 또 그것을 목사는 부추키는 현실을 봅니다.

참고로 서울 안암제일 교회 조윤 목사님께서 표절과 선포하는 신학적 내용의 변질(?)로 인해 많은 곤욕을 치르고 계시다구요. 그런데 그분 표절 설교의 내용중에 우리 정목사님의 설교가 있다구요~~~ㅎㅎㅎ 출처를 밝히지 않으신데다 총신대 출신의 목사님에게 코페르니쿠스님이 출현하신듯 보입니다. 좀 조심하시지~~

허긴 저역시 그 진통을 끝내가고 있는 중입니다만 다행히도 저희 교회 교인 수가 몇 안되는지라

암튼 하나님과 목사님과 다비안 여러분 감사합니다.

 

아! 목사님 질문요~~ '돌로 떡을 만든 것과 같은 방불한 사건은 오직 예수님의 부활에서만 선취 되었고, 신자들에게 약속 된 유일회적 사건이다' 라는 시각은 틀리진 않은것인가요?

 

질답 게시판에 정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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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March 14, 2014
*.94.91.64

물가 님, 지난 신학공부 모임에서 만났네요.

온라인으로만 보다 직접 보니 더 반가웠습니다.

질문이 무슨 말인지 대충 알긴 하겠으나

문장이 명확하지 않아서..., 음

예수님의 부활은 종말 생명의 선취라는 건데요.

그건 보통 말하는 초자연적 기적과는 다른 사건이에요.

물론 그것은 예수님에게만 유일회적으로 일어난 사건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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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8]하늘소망

March 14, 2014
*.28.109.153

아멘..    마지막에  쉽게  설명해주셔서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생각과  예수님의 운명에  가까이 갈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자꾸만  세상일.. 고민 걱정으로  예수님을  자꾸   잊어버리곤 합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주위에   주님을  사모하는 사람이  안보여서  참   외롭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니.. 더욱  주님을  사모하는  맘이 커지는건  서글프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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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March 14, 2014
*.94.91.64

하늘소망 님이 정말 중요한 맥을 잡은 겁니다.

예수 사건, 그의 운명에 가까이 가는 게

기독교인에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주님만을 더 사모하게 되는 건,

한편으로 서글프지만 실제로는 기쁜 일이겠지요.

주님의 위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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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5]lutecia

March 16, 2014
*.212.3.56

아~멘~ 

오늘 주님의 말씀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진리와 생명의 말씀으로  빛과 어둠과 이 땅 위에  모든 식물, 생명을 만드신 건, 그 만드신 진리대로 살라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믿고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받은신 3 가지 유혹은 많은 걸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그 3 개의 유혹을 예수님처럼 거침없이 모두 뿌리칠 때,  이 아름다운 세상이 - (주님이 만드신 이 세상은 정말 아름답거든요. 모든 식물들... 동물들... 산과 강들...  헤아릴 수 없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주셨거든요)-, 하나님의 나라가 되겠지요?  근데 그렇게 될 날이 언제가 될런지요?    저는 반은 낙관적, 반은 비관적입니다.  ( 이 정도면 제가 살고 있는 지구의 점수를 꽤 후하게 준거 같긴해요. ^^ )    근데...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라는 예수님의 기도가 과연 정말 지구 상에서 실현이 될까요? 

저의 생각이 짧아서 그렇습니다. 목사님의 현명한 말씀을 기다리면서...  주님의 평화가 목사님게!~  

허 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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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March 16, 2014
*.94.91.64

ㅎㅎ 어려운 질문이군요.

하나님의 뜻이 지구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는 건

그분이 그렇게 하실 것에 대한 희망과 기다림이면서

그런 순간에 부응해서 살겠다는 결단이기도 합니다.

이루어지고 아니고는 우리가 판단할 수 없겠지요.

주님의 평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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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진인택

December 09, 2014
*.176.175.230

떡,능력,영광... 올드보이 박찬욱감독이 영화를 구성할 때 필요한 요소들과 아주 매치가 되는 요소들 같습니다. 박감독은 죽음, 돈,사랑 그리고 끝은 타올랐습니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를 본 느낌이었습니다. 두 영화는 세상의 한 가운데, 생의의 한가운데를 잘라서 잘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을 보고 느낄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혹 받으신 내용, 매일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번 넘어가다 브레이크를 겁니다.

결과를 알면 알수록 재빨리 멈추고 늦추고해서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생명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빛 과 길을 안내해 주셔서.

오늘 말씀은 사이비들이 뜻도 모르면서  늘 써먹던 내용을 목사님께서 제대로 명쾌하게 풀어주셔서 속이 시원합니다. 가까이 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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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December 09, 2014
*.94.91.64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시는군요.

우리가 죽을 때까지 유혹을 받긴하겠지만

거기에 걸려 넘어지지는 않겠지요.  

대림절의 평화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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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6 성령강림절 구름기둥과 불기둥 [25] 2009-11-23 30004
1045 사순절 하나님의 의와 사람의 의 [8] 2010-02-22 27848
1044 성령강림절 삼위일체의 하나님 [6] 2008-05-18 27794
1043 성령강림절 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인가? [8] [1] 2010-07-05 26546
1042 성령강림절 토기장이 하나님 [11] 2010-09-06 26489
1041 사순절 여호와를 찾으라, 부르라! (사 55:1-9) [17] [3] 2013-03-03 26292
1040 사순절 에스겔의 마른 뼈 환상 (겔 37:1-14) 2017-04-02 25981
1039 성령강림절 이삭의 하나님, 이스마엘의 하나님? [8] 2008-06-15 25714
1038 부활절 간질병과 믿음 (마 17:14-20) [8] 2008-05-04 25571
1037 부활절 ‘여호와 이레’의 믿음 [23] [39] 2009-05-11 25264
1036 창조절 이방인 나병환자의 믿음 (눅 17:11-19) [10] 2013-10-13 24762
1035 성령강림절 성령을 받으라! (요 20:19-23) [13] 2011-06-12 24597
1034 성령강림절 엘리야의 승천 이야기 [17] 2010-06-27 24343
1033 주현절 은사와 성령 (고전 12:1-11) [6] 2013-01-21 23803
1032 성탄절 은총의 깊이로! [14] 2010-12-26 23536
1031 성령강림절 모세의 무덤이 없는 이유 [28] 2008-10-19 23495
1030 성탄절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3] 2009-12-28 23455
1029 사순절 빛의 자녀, 빛의 열매 [25] 2011-04-03 23398
1028 창조절 마지막 심판과 생명 완성 (마 25:31-46) [15] 2011-11-13 23267
1027 창조절 하나님께 마음을 두라! (살전 2:1-8) [6] 2011-10-23 23097
1026 기타 성만찬 공동체 [2] [1] 2006-09-10 22991
1025 창조절 삭개오 이야기 (눅 19:1-10) [14] 2016-10-30 22707
1024 부활절 부활의 증인 공동체 [17] 2011-05-01 22446
1023 성령강림절 기도와 믿음 file [20] 2010-10-19 22360
1022 성탄절 그리스도의 평화 (골 3:12-17) [9] 2012-12-30 22311
1021 기타 다윗의 통곡 [1] 2006-08-27 21774
1020 성령강림절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 file [12] 2010-11-22 21740
1019 주현절 두려워 말라! (사 43:1-7) [11] [1] 2013-01-13 21736
1018 성령강림절 복음의 능력, 믿음의 능력 [10] 2009-11-02 21694
1017 대림절 소망의 하나님, 우리의 소망 file [5] 2010-12-06 21623
1016 성탄절 영광과 평화의 노래 2010-12-26 21612
1015 대림절 주의 길을 준비하라! (눅 3:1-6) [11] 2012-12-09 21485
1014 성령강림절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 (삼상 17:32-49) [8] 2015-06-21 21371
1013 창조절 불행한 부자 이야기 (눅 16:19-31) [10] 2013-09-29 21064
1012 성령강림절 믿음과 구원 file [4] 2010-10-31 21007
1011 부활절 나를 따르라 (요 21:15-19) [10] 2013-04-14 20831
1010 주현절 예수는 하나님의 지혜다 [3] 2011-01-30 20764
1009 성령강림절 영적인 사람 [11] 2008-05-11 20754
1008 사순절 우리의 생각과 다른 하나님 [2] 2010-03-08 20450
1007 성령강림절 의인과 죄인에 대한 질문 [3] 2008-06-01 20414
1006 사순절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 [11] 2010-03-29 20375
1005 대림절 성령 세례와 심판 [36] 2009-12-14 20310
1004 성령강림절 나아만과 게하시 (왕하 5:1-14) [6] 2013-07-08 20267
1003 대림절 임마누엘 예수 [17] 2007-12-23 20171
1002 창조절 하나님과 금송아지 상 (출 32:25-35) [7] 2011-10-17 20149
1001 창조절 예수 재림과 영적 각성 (살전 4:13-18) [11] 2011-11-06 20103
1000 부활절 예수의 기이한 빛 (베드로전서 2:1-10) [16] 2011-05-16 20089
999 기타 사람 차별 마시오! [1] [2] 2006-09-24 19913
998 사순절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 [18] 2011-03-27 19904
997 주현절 창조의 빛, 인식의 빛 [15] 2009-02-23 19861
996 기타 무엇을 기다리는가? [3] [2] 2004-06-14 19797
995 부활절 막달라 마리아와 부활의 주 [17] 2011-04-24 19631
994 기타 높은 사람, 낮은 사람 [2] [2] 2006-10-08 19608
993 성령강림절 그리스도의 가난과 우리의 부요 [23] 2009-07-13 19582
992 대림절 주의 날과 십일조 [49] 2009-12-07 19535
991 성령강림절 영원한 본향 하늘나라 [8] 2010-08-09 19479
990 성령강림절 세례 요한의 죽음 (막 6:14-29) [10] 2015-07-13 19461
989 사순절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26] 2009-04-06 19367
988 기타 예배로서의 삶 [5] [1] 2006-09-03 19339
987 부활절 예수는 왜 선한 목자인가? [11] 2009-05-04 19320
986 성탄절 성탄에 참여하는 길 [18] 2007-12-25 19264
985 주현절 포도주 사건의 실체와 의미 [20] 2007-01-14 19247
984 기타 다윗왕조의 존재근거 [1] 2006-08-06 19245
983 성령강림절 하나님은 누구인가? file [8] 2010-09-26 19098
982 사순절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과 믿음 [27] 2010-03-22 19062
981 사순절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라! [13] 2011-03-21 19056
980 성령강림절 믿음과 종됨의 관계 file [18] 2010-10-04 19038
979 부활절 예수는 하나님이다! [12] 2011-05-22 18978
978 창조절 제자의 길과 소유의 길 (눅 14:25-33) [10] 2013-09-08 18974
977 주현절 이사야 예언의 성취 (눅 4:14-21) [7] [1] 2013-01-27 18948
976 성령강림절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눅11:5-13) [10] 2013-07-29 18935
975 성령강림절 은혜의 보좌 앞으로! [28] 2009-10-26 18920
974 기타 생명이 죽음을 삼키다, 7월2일 2006-07-02 18874
973 주현절 원수사랑, 가능한가? [16] 2011-02-22 18837
972 사순절 여호와는 가까이 계시다 (사 50:4-9) [10] 2013-03-24 18823
971 주현절 하나님의 은폐, 하나님의 침묵 [17] 2010-01-18 18814
970 주현절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24] 2011-01-09 18772
969 사순절 믿음이란 무엇인가? [11] 2008-02-17 18760
968 성령강림절 믿음과 행함의 긴장관계 [25] 2009-09-14 18738
967 대림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file [8] 2010-12-20 18717
966 성령강림절 한 말씀만 하소서 [17] 2010-06-07 18711
965 주현절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고전 1:18-31) [16] 2014-02-02 18575
964 성령강림절 율법을 넘어서 [2] 2008-06-29 18504
963 성령강림절 요한의 죽음과 예수의 죽음 [17] 2009-07-27 18346
» 사순절 유혹 받으신 예수 (마 4:1-11) [10] 2014-03-09 18333
961 기타 낡은 것과 새것 (고후 5:16-21) [2] 2004-07-02 18325
960 주현절 하나님의 ‘선택의 신비’ [10] 2011-01-17 18313
959 창조절 하나님을 기억하라 (신 8:11-18) [16] 2011-11-21 18302
958 성령강림절 예수 그리스도는 누군가? [16] 2010-07-19 18266
957 성령강림절 대재앙 앞에서 [8] 2008-05-25 18239
956 성령강림절 예수는 생명의 밥이다 [22] 2009-08-10 18175
955 성령강림절 솔로몬의 꿈 이야기 [27] 2009-08-31 18163
954 주현절 성령 임재와 마술 [21] 2010-01-11 18127
953 대림절 관용과 주의 재림 (빌 4:4-7) [7] [3] 2012-12-17 18114
952 사순절 “나는 아니지요?” [23] 2011-04-18 18026
951 대림절 인자가 오리라 file [8] 2010-11-28 17974
950 기타 하나님을 알자 [4] 2004-06-30 17969
949 주현절 예수가 왕이다 (마 2:1-12) [3] 2013-01-07 17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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