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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유혹 앞에서

사순절 조회 수 15716 추천 수 138 2008.02.10 14:2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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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태복음 4:1-11 
mms://61.100.186.211/pwkvod/dawp/dawp_080210.wmvmms://wm-001.cafe24.com/dbia/080210.mp3악마의 유혹 앞에서
2008.2.10 마태 4:1-11

악마가 사람을 유혹한다는 이야기는 드물지 않습니다. 구약의 욥기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동방의 의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욥을 악마가 파멸로 몰아갑니다. 욥은 자식, 재산, 아내, 건강을 모두 잃습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는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가 등장합니다. 그는 파우스트 박사에게 젊음을 제공하는 대신 그의 영혼을 농락할 수 있는 권리를 신에게 허락받습니다. 성서와 문학이 악마를 언급하는 이유는 그 방식이 아니면 인간의 타락과 인간에게 임하는 저주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아름다운 이 세상에 일어나는 타락과 저주의 이유는 모두 죄이며, 그 죄를 일으키는 장본인이 바로 악마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구약성서 본문인 창 3:1-7절이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아담과 이브로 하여금 선악과를 선택하도록 유혹하는 뱀은 바로 그런 악마를 상징합니다.
오늘 신약성서 본문인 마태복음 4:1-11절이 진술하고 있는 예수님의 유혹 이야기에도 이런 악마가 등장합니다. 이 이야기가 다른 공관복음서인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도 들어 있는 걸 보면,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 잘 알려진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생활했던 공생애와 달리 그 이전에 일어난 오늘 본문 이야기가 이렇게 초기 기독교 안에 잘 알려진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직접 전해주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 하더라도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아주 자세한 이야기를 전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성서신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초기 기독교가 처한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 상황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급박해졌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인가?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악마에게 받은 유혹이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유혹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십 일 동안 금식을 하신 예수님 앞에 악마가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3절) 두 번째 유혹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악마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의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 보시오.”(6절) 악마는 시편 9:11,12절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이 천사들을 시켜서 다치지 않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세 번째로 악마는 예수님에게 세상의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당신이 내 앞에서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유혹했습니다.
이 세 번에 걸친 유혹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냐, 하는 질문과 연관됩니다. 첫 번과 두 번째의 질문은 노골적으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이라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세 번째 질문에는 그런 단서가 없지만 그 안에 담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세상을 지배해야 하는데, 그 세상은 바로 악마가 지배하고 있으니 악마에게 굴복하라는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습니다. 바로 그 사실이 기독교의 정체성입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주변에서는 그걸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증거를 대라고 압박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증거가 무어냐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기적이 바로 그런 증거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기적들은 다른 종교에서도 일어나는 것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그런 증거라고 말하시겠어요? 십자가로 죽은 사람은 예수님만이 아니랍니다. 예수님 이전에도, 이후에도 십자가에 처형당한 사람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습니다. 오해는 마세요. 예수님에게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이 바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고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눈에는 명명백백한 증거이지만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증거가 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실은 우리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부활이야말로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증거라고 말하시겠어요? 물론 그것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확인해주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교회 밖의 사람들의 눈에는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자신들이 보았어도 그것을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경험해보지도 못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로 받아들일 리가 없습니다.
초기 기독교가 처한 이런 영적인 위기는 예수님 스스로에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었을까요? 아예 처음부터 예수님이 그것을 확신하고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중에 자신이 감당해야 할 십자가 처형을 가능한대로 벗어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순간에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십니까!) 하고 외치셨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사실을 확신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이런 표현이 어떤 분들에게는 불경하게 들릴지 모르겠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처한 영적인 불안이 무엇인지 이해해야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실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그 능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일어난 사건은 단지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프로그램의 기계적인 작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이고 역동적인 순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돌을 빵으로 만들어보라는 첫째 유혹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내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세상의 굶주림을 일시에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하고 말입니다. 사람들을 배부르게 하지 못하면서 무슨 하나님의 아들이 될 자격이 있나, 하고 말입니다. 예수님이 돌을 빵으로 만들 수 있다면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 수 있었을까요? 그게 바로 메시아의 가장 중요한 증거일까요? 이런 질문은 지금도 우리에게도 아주 강력하게 일어납니다. 오늘 이 세상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돌로 빵을 만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메시아처럼 받아들여집니다. 정치와 경제는 물론이고, 예술과 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돌을 빵으로 만드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두 번째 유혹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했겠지요. 내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손오공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초능력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하고 말입니다. 세상은 바로 그런 사람을 메시아로 인정합니다.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을 환호합니다. 악마에게 절하라는 세 번째 유혹도 이와 비슷합니다. 명실상부하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이 세상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해야 하는데, 그것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악마와 손을 잡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유혹을 받을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유혹은 오늘도 여전합니다. 오늘 우리는 옳은 것인지 아닌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세상에서 힘을 얻는 데만 마음을 쏟고 삽니다. 악마의 힘을 이용해서라도 화려한 세상을 얻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를 대라는 요구는 초기 기독교 안팎에서 아주 절실했으며,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예수님 스스로도 피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아무도 이런 요구를 피해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대답은 무엇인가요? 성서가 뭐라고 대답하는지 보십시오.

하나님이 대답이다.
세 번의 유혹에 대해서 예수님이 어떤 대답을 하셨는지 여러분은 이미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첫째 유혹에 대해서 예수님은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대답했습니다. 둘째 유혹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대답했습니다. 세 번째의 유혹 앞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시지 않았느냐?”(10절) 이 세 가지 대답의 특징을 살펴보십시오. 첫 대답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둘째 대답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것이고, 세 번째 대답은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 대답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자신들도 예수님의 이런 대답에서 보듯이 하나님만을 섬기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으면서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하겠지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신앙적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런 삶의 태도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성서에 이런 주제가 언급되었다는 것은 바로 그렇게 사는 게 힘들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으면서 하나님만을 섬긴다고 말만 하는지 모르지요.
‘빵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좀더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이 말을 빵도 중요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중요하다는 뜻으로, 그래서 세상에서도 출세하고 하나님도 잘 믿으면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이런 생각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믿으면 빵이 주어진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세상을 요령껏 살아가기 위한 도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에 ‘사랑의교회’ 원로이신 옥한흠 목사님이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에 속지 말라는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삶>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런 유의 책들은 기독교 신앙을 도구화하는 전형입니다. 하나님을 도구로 삼아서 자기의 삶을 실현해보려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말은 하나님을 도구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두 번째 대답도 따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 하나님이 창조자인지,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인지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증거는 사람들이 혹하는 기적들입니다. 하나님만을 경배하라는 세 번째 말씀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걸 못 견딥니다. 악마가 예수님에게 보여주었던 화려한 세상의 많은 것들에 관해서 관심을 끊고 하나님만을 경배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더라도 여전히 세상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저의 이런 설교가 어떤 분들에게는 너무 추상적으로 들릴지 모르겠군요. 또는 세상과 완전히 단절하고 수도원에 들어간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이냐, 하고 반론을 제기할 분들도 있을 겁니다. 물론 우리는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살아야 합니다. 인간이 겪어야 할 모든 삶의 과정을 그대로 겪어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되던 2천 년 전 초기 기독교인들도 역시 우리와 똑같이 이 세상에 부대끼면서 살았습니다. 악마의 유혹 앞에서 예수님이 주신 말씀은 이 세상과 아무런 상관없이 천사처럼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신약성서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 악마의 유혹 이야기는 기원후 60년대에 일어난 유대교의 열혈당원들이 반로마 무력투쟁을 벌이던 맥락에서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무력으로 로마 황제를 제거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세계의 중심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이런 계획이 성공하려면 성전 꼭대기에서 밑으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는 하나님의 기적이 따라와야만 했겠지요. 이스라엘의 이런 주장은 바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기독교인들에게도 매우 심각한 도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한다면 당연히 그 당시 악의 본산이었던 로마 제국을 힘으로 압도하고 이스라엘을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바로 설교 앞 대목에서 짚은 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가 이 세상의 정치, 경제 영역에서 명백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주장과 똑같은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런 도전과 주장을 모두 일축했습니다. 그들이 메시아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은 예수님은 이 세상의 승리자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독립 운동가가 아니었습니다. 경제 문제를 해결시키는 기업가도 아니고 정치가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먹고 사는 문제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계획하는 그런 수준의 세상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꿈꾸는 지상낙원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의 계획은 늘 승리주의로 나타납니다. 정의와 평화를 세우는 것도 여전히 권력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그런 다툼 가운데서 십자가에 처형당했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아주 무기력하게 돌아가셨습니다. 모두가 돌을 빵으로 만들겠다고, 기적을 일으키겠다고, 화려한 세상을 만들어주겠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투쟁 가운데서 참으로 무기력하게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십자가에 달린 이유는 오직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에게 자신의 운명을 온전히 맡긴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닌지를 증명하려고 하지 않고 모든 걸 하나님에게 맡겼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참된 생명으로 불러내셨습니다. 이런 생명은 우리가 투쟁해서 성취해내는 게 아니라 창조자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참된 구원사건입니다.
우리는 지금 계속해서 우리 자신이 무언가를 성취하도록 이 세상으로부터, 즉 악마로부터 강요받습니다. 여러분은 평생 그렇게 시달리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운명을 자기의 계획으로 끌고까지 않고 하나님의 은총에 온전히 맡겼고, 초기 기독교도 그것만이 참된 대답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기독교 신앙으로 살아가는 우리도 하나님에게만 우리의 운명과 미래를 맡깁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것의 훈련과정입니다. 악마는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우리를 달콤하게 자극할 겁니다. 우리의 자만심과 성취감을 교묘하게 자극할 겁니다. 속지 마십시오. 악마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책임을 지지 않는 무책임한 존재들입니다. 그럴 능력도 없는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운명을 책임지는 분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뿐이십니다. 악마의 유혹에 겁을 먹지 마십시오. 십자가에 처형당한 예수님을 새로운 생명으로 살리신 하나님만이 여러분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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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수우

February 10, 2008
*.9.80.208

화면이 깨끗하게 잘 나옵니다. 목사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자본도 넉넉치 않은데 백성을 위하여 진땀 빼시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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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맑은보배

February 10, 2008
*.82.45.163

저는 전혀 안보이고 안들려요..ㅠㅠ 우리 컴이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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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February 10, 2008
*.181.51.93

맑은보배 님,
안들리고 안 보이면 컴이 문제, 맞습니다.
큰 문제는 아닐 거에요.
컴을 잘 아는 분에게 부탁하면 간단히 고쳐줄 겁니다.

수우 님,
자본은 넉넉합니다.
저, 이래뵈도
인세를 받는 사람이라구요.
소리만 해도 되는데,
요즘 동영상 강의와 연결해서
설교를 영상으로 보내는 작업을
우리 교회 교우가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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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6]LVCF

February 11, 2008
*.108.169.239

말씀 감사합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다시 새롭게 다가오며 조명됩니다
왜 죽으셨느지 그리고 왜 살아나셨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부끄러운 모습이 있음을 느낍니다
내마음대로 말씀을 해석하고 설교 할려고 했던 것
성도들에게 듣기 좋은 말로 ,
마치 예수님을 수퍼맨 같이 만들어 버리는 모습들
목사님 말씀에 항상 걸음을 멈추게 하며 새롭게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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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8]김민욱

February 11, 2008
*.199.146.185

예배실황(?)을 접하니 정말 좋습니다.
일전에 하신 말씀 같은데, 모니터를 노려보는 것보다,
듣고, 보는 것이 훨 나은 것 같습니다. 스~ 어쨌든 모니터 노려보는 건 같은건가요?^^

업그레이드 된 다비아 화이팅!

추신. 음성이나 영상 다운로드도 가능했으면 하는 소망있습니다.
정말 들을 지는 모르겠지만, 들어보라고 줄 수도 있구요,
제가 들을 수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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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8]流水不爭先

February 11, 2008
*.173.40.129

목사님 차일피일 미루다 여기까지 왔네요
올 한해 좋은 나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 컴도 동영상이 되지를 않는데
되는게 좋은건지 안되는게 좋은건지
보이면 보이는대로 안보이면 안보이는대로 좋습니다만
그래도 목사님께서 업그레이드를 하셨다는데
우찌하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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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February 11, 2008
*.150.14.168

설교를 영상으로 보내기 위해서
박원관 교우의 수고가 많았습니다.
캠코더로 녹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편집, 축소 등의 과정을 거쳐야하고
이 파일을 저장할 수 있는 서버도 확보해야 합니다.
충분한 서버가 구축되면 예배 전체를 녹화를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최종 목표는 인터넷 방송국으로 가는 겁니다.
위에 대글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구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것 같아 다행입니다.
모두들, 좋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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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1]이방인

February 12, 2008
*.118.129.226

저는 그 동안 동영상이나 음성화일로 나오는 줄 모르고 글로만 설교를 읽고 있었는데요. 목사님 음성으로 듣고 눈으로 뵈니 그 의미가 더 깊게 다가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성취주의, 성공주의로 몰입되게 하는 것이 악마의 속성이라고 말씀하신 부분에 크게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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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February 12, 2008
*.181.51.93

이방인 님,
아이콘이 닉네임과 매치가 안 되네요.
왜 그런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요.
실 없는 이야기를 했군요.
그건 그렇고,
악마의 속성 운운 한 것이야 뭐 모두가 알고 있는 건데요,
그 설교에서 더 중요한 대목은
악마가 무기력하다는 진술이랍니다.
물론 그걸 한번 지적하고 지나갔지만
사실은 아주 중요한 기독론적 진술이에요.
악마의 속성은 두 가지입니다.
무책임과 무기력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그런 속성을 경험한 사람들이랍니다.
그들은 잠시, 아주 일시적으로,
하나님이 허락한 범주 안에서만
우리를 유혹하고 넘어뜨릴 뿐이지요.
아이고, 또 설교 조로 나갔군요.
이 직업병을 하루빨리 고쳐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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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나그네

February 13, 2008
*.124.140.140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목사님 설교 잘 읽고 갑니다. 부족한 견해이지만 목사님의 설교는 제겐 추상적으로 들리지 않네요. 주님을 인격적으로 믿고 따라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실존적으로 들리고 힘을 얻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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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정경성

February 15, 2008
*.152.112.113

잘 읽었습니다. 목사님의 건승을 빕니다. 기상에서 설교비평을 못 봐서 아쉽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목회하고 있습니다. 혹시 교회력을 어떤 것을 쓰고 계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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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솔나무

February 16, 2008
*.233.247.205

목사님,
큰 일 났습니다.
"악마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책임을 지지 않는 무책임한 존재들입니다.
그럴 능력도 없는 존재들입니다."라고 전국에 비밀이 노출되었으니...
아마 악마들은 2000년전 예수님과 제자들 이후에 가장 위험한 때를 만난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다비안 외에 아무도 믿지 않으려 할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병들어있는 이땅의 교회와 그 안에 함몰된 교인들은 삶의 모습은 그래도 먹거리(빵,이적)에 눈이 갈 겁니다.
돌로 만든 빵을 먹고 살다가 주님의 오셔서 하시는 말씀..."그 빵, 다시 돌이되거라"...
갑자기 화장실 일보기 위해서 뒤를 움켜쥐고 뛰는 사람들 많아 질 듯 하네요.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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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5]오명철

February 16, 2008
*.53.228.122

이런 말씀을 저는 언제쯤 스스로 해석하고 선포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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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February 16, 2008
*.181.51.93

정경성 목사님께서 교회력에 대해서 질문하셨군요.
저는 목회교육연구원이 펴낸(김종렬 목사)
<예배와 강단>을 따르고 있습니다.
예배와 강단은 아마 미국연합장로교회(?)의 교회력을 따오는 것 같습니다.
수년 전에는 독일교회를 따르다가 바꿨더군요.
위에 대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구요.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더불어서 구도정진의 자세로 다가가 보십시다.
좋은 주일을 맞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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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 부활절 죽임, 살림, 증인 [25] 2009-04-27 16218
324 부활절 복된 믿음 [29] 2009-04-20 13880
323 부활절 죽음을 무너뜨리리라! [7] 2009-04-13 13276
322 사순절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26] 2009-04-06 19367
321 사순절 그날이 오리라! [12] 2009-03-30 12811
320 사순절 구원의 신비와 선한 일 [11] 2009-03-23 13729
319 사순절 무엇이 구원의 표적인가? [13] 2009-03-16 14864
318 사순절 약속의 하나님 [29] [4] 2009-03-09 14373
317 사순절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22] 2009-03-02 16830
316 주현절 창조의 빛, 인식의 빛 [15] 2009-02-23 19862
315 주현절 바울의 두려움 [12] 2009-02-16 11961
314 주현절 예수와 귀신 [44] 2009-02-09 14323
313 주현절 무죄한 피 흘림에 대해 [9] 2009-02-02 11954
312 주현절 가난한 사람들 [9] 2009-01-25 10706
311 주현절 무화과 나무와 하늘 [9] 2009-01-19 11426
310 주현절 성령과 세례에 대한 질문 [6] 2009-01-13 13884
309 성탄절 크게 기뻐하라! [11] 2009-01-05 12414
308 기타 생명 상실의 두려움을 넘어서 [2] 2009-01-01 10730
307 성탄절 종이냐, 자녀냐 [26] 2008-12-29 12274
306 성탄절 하나님의 영광과 아기 예수 [8] 2008-12-25 16805
305 대림절 하나님의 영광인 예수 그리스도 [7] 2008-12-22 11667
304 대림절 광야의 ‘소리’를 넘어 [18] 2008-12-15 14120
303 대림절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8] 2008-12-08 14050
302 대림절 마지막 ‘때’ [11] 2008-12-01 12710
301 성령강림절 깨어 있으라! [10] 2008-11-23 16261
300 성령강림절 광야의 복된 삶 [14] 2008-11-17 11746
299 성령강림절 하늘나라 주인의 셈법 [19] 2008-11-09 14577
298 성령강림절 거룩한 하나님의 질투 [5] 2008-11-02 12475
297 성령강림절 형제관계의 자리로! [11] 2008-10-26 12713
296 성령강림절 모세의 무덤이 없는 이유 [28] 2008-10-19 23495
295 성령강림절 재림의 주, 구원의 주 [9] 2008-10-12 9603
294 성령강림절 생명이란 무엇인가? [25] 2008-10-05 12609
293 성령강림절 하나님과 정의 [6] 2008-09-28 10946
292 성령강림절 믿음의 위험성 [9] 2008-09-21 11486
291 성령강림절 만나 전승에 관해서 [9] 2008-09-14 10082
290 성령강림절 두려움과 믿음 [6] 2008-09-07 11934
289 성령강림절 율법과 사랑 [9] 2008-08-31 13137
288 성령강림절 예수의 제자로 산다는 것 [9] 2008-08-24 13757
287 성령강림절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 [8] 2008-08-17 10250
286 성령강림절 인간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구원신비 [4] 2008-08-10 12510
285 성령강림절 예수와 유령 사이에서 [9] 2008-08-03 13235
284 성령강림절 하나님의 얼굴 [8] 2008-07-27 13211
283 성령강림절 하나님의 ‘사랑의 실체’ [10] 2008-07-20 15256
282 성령강림절 하늘나라와 예수 [23] 2008-07-13 15831
281 성령강림절 말씀은 성취된다 [10] 2008-07-06 17894
280 성령강림절 율법을 넘어서 [2] 2008-06-29 18505
279 성령강림절 경계를 넘어서 [5] 2008-06-22 16298
278 성령강림절 이삭의 하나님, 이스마엘의 하나님? [8] 2008-06-15 25715
277 성령강림절 하나님과의 평화가 답이다 [6] 2008-06-08 16868
276 성령강림절 의인과 죄인에 대한 질문 [3] 2008-06-01 20414
275 성령강림절 대재앙 앞에서 [8] 2008-05-25 18239
274 성령강림절 삼위일체의 하나님 [6] 2008-05-18 27794
273 성령강림절 영적인 사람 [11] 2008-05-11 20754
272 부활절 간질병과 믿음 (마 17:14-20) [8] 2008-05-04 25571
271 기타 메시야니즘의 기초 [1] 2008-05-01 17653
270 기타 참된 안식 [1] 2008-05-01 17257
269 부활절 사랑과 계명 [7] 2008-04-27 16324
268 부활절 하늘이 열립니다! [4] 2008-04-20 15253
267 부활절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 (벧전 2:18-25) [17] 2008-04-13 13682
266 부활절 세례 받으라! [3] 2008-04-06 11999
265 부활절 보이지 않는 현실성 [19] 2008-03-30 14145
264 부활절 부활의 오늘과 내일 [15] 2008-03-23 15470
263 사순절 하나님을 찬양하라! [34] 2008-03-16 16362
262 사순절 살리는 영 [10] 2008-03-09 14758
261 사순절 구원의 현실 [9] 2008-03-02 13804
260 사순절 하나님과의 다툼 [13] 2008-02-24 16049
259 사순절 믿음이란 무엇인가? [11] 2008-02-17 18762
» 사순절 악마의 유혹 앞에서 [14] 2008-02-10 15716
257 주현절 예수 그리스도의 ‘파루시아’ [7] 2008-02-03 17648
256 주현절 캄캄한 땅을 비추는 빛 [4] 2008-01-27 13217
255 주현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2] 2008-01-20 12437
254 주현절 하늘이 열리다! [5] 2008-01-13 13287
253 주현절 야훼의 영광과 빛 [11] 2008-01-06 14860
252 성탄절 예수는 예언의 성취! [5] 2007-12-30 15248
251 성탄절 성탄에 참여하는 길 [18] 2007-12-25 19265
250 대림절 임마누엘 예수 [17] 2007-12-23 20171
249 대림절 거룩한 길이 열린다! [8] 2007-12-16 14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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