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1. 설교
  2. 주보
  3. 성가대
대구샘터교회 주보 게시판

9월18일, 창조절 셋째 주일

조회 수 971 추천 수 0 2011.09.16 22:10:04

 

대 구 샘 터 교 회 주 보

 

2011년 9월18일, 창조절 셋째 주일

 

오늘의 설교 (빌립보서 1:21-30/ 복음은 싸움이다!)

 

위 본문의 첫 문장인 21절은 진지하다 못해 비장(悲壯)하다. 바울은 자기에게 생명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한다. 이런 고백은 아무나 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는 나의 생명!”이라는 명제와 영적으로 일치될 때만 가능하다. 바울이 말하는 생명은 도대체 무엇인가?

바울은 이어서 22절에서 육신으로 사는 것이 자기 일의 열매라고 말한다. 죽는 것은 유익한 일이고, 사는 것은 열매다. 죽어서 얻는 유익은 자기의 것이고, 살아서 맺는 열매는 빌립보 교우의 것이다. 23절에서 그런 영적 갈등을 더 분명하게 말한다.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자기에게는 더 좋은 일이지만 빌립보 교우들의 유익을 위해서 육신으로 살아간다고 말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치열하다는 사실을 거론하는 중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생명에 직결된다. 생명을 얻기 위해서 진력해야 한다. 여기에 집중하는 사람은 구도적일 수밖에 없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거나 범사에 감사하는 말은 모두 이런 삶을 가리킨다. 이것이 곧 영성이며, 수행(修行)이다.

이런 삶을 빌 1:27-30절의 개념으로 바꾸면 ‘싸움’이다. 스테판 에셀의 책 <분노하라>에 어울리는 개념이다.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군사들의 싸움처럼 묘사한다. 빌립보 교회 교우들은 실제로 ‘대적하는 자들’(안티케이메노이)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었다.(28절) 그들의 사정이 어땠을지는 상상이 간다. 로마 정치와 헬라 사상으로 고도의 문명을 구가하던 빌립보 지역의 사람들에게 십자가에 처형당한 이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며 그의 재림을 기다리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미련한 사람들로 치부당하기 마련이다. 따돌림을 당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신체적인 박해를 받았다.(고후 11:23 이하 참조) 이건 전혀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십자가 사건 자체가 세상의 걸림돌이 아닌가. 세상은 복음을 불편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주변에서 이런 따가운 시선을 받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투쟁적이지 않을 수 없다.

************************

예배처소: 대구시 수성구 상동 66-7 공간울림

예배시간: 주일 오전 11시/ 수요성경공부: 수요일 오후 8시

담임목사: 정용섭 010-8577-1227/ 전도사: 전남정(019-528-8044)

 

 

주일공동예배순서

 

[개회예전]

예배의 부름…………………………………………………………………………… 목사

요한복음 기자의 증언에 따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요 1:12) 우리는 그가 증언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의 영혼을 다 바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입니다. 우리 모두 기쁨으로 찬양을 드립시다. 일어나십시오.

*찬송 14장…………………………………………………………………………… 다같이

*오늘의 기도………………………………………………………………………… 다같이

권능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랑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

오직 하나님께 삶을 맡기고 사는 믿음의 가족들이

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오니 받아주소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모든 곳에,

이미 알고 있는 곳만이 아니라 모르고 있는 곳까지,

보이는 곳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모든 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공기처럼, 햇살처럼 가득하나이다.

사람들이 인식하든지 인식하지 못하든지,

사람들이 인정하든지 인정하지 않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이 세상에 영광으로 자신을 드러내나이다.

그것이 하나님께만 가능한 창조와 종말의 능력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구원 능력이고,

지금도 성령을 통해서 확장시키는 생명의 통치이나이다.

구원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모든 이들이 깨달아 알고 믿게 되는 것이

곧 하나님이 받기 원하시는 영광이나이다.

그 영광을 지금 바치오니 받아주소서.

죽음으로부터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으며,

궁극적인 생명의 완성을 위해 다시 우리에게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사죄기도………………………………………………………………………………다같이

목사: 자비가 끝없으신 하나님, 지난 한 주간 동안에도 우리가 행한 불의가 산더미와 같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합리화하고, 이웃을 비판하며, 자기 의에 사로잡히고 이웃을 내 삶으로부터 분리해낸 적이 많았나이다.

회중: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목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께 아룁니다. 우리는 형제 나라인 북한을 귀찮게 여기면서 우리 자신과 분리해내려고만 했습니다. 우리는 생각이 다른 사람을 거부하는 일에 너무나 익숙해졌습니다. 우리의 이기심이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고 있나이다.

회중: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목사: 주님, 지금 우리는 경제만능, 성장만능, 경쟁만능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모든 대상을 이용하는 일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며 살았나이다.

회중: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목사: 우리는 믿음이 없습니다. 믿는 모양은 갖추었으나 믿음의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부끄러움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성령이여, 우리의 영혼을 붙들어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회중: 아멘!

*참회의 묵상기도……………………………………………………………………다같이

*용서의 선포…………………………………………………………………………목사

<목사>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마 9:6) 사죄의 권능이 주님께 있다는 사실을 믿는 여러분은 죄를 경계하되, 두려워하지는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용서받았습니다. 이웃의 잘못도 용서합시오.

<회중> 아멘!

*평화의 인사…………………………………………………………………………다같이

<목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형제와 자매들에게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회중> 예배를 인도하는 주의 종에게도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앉으십시오.)

찬송: 국악찬송 41장, 내가 산을 향하여…………………………………다같이

임성숙 시, 정미 곡

 

[말 씀 예 전]

설교전기도……………………………………………………………………………다같이

예언자들을 통해서,

그리고 사도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하나님,

그 말씀이 다시 읽히고 선포되는 이 시간에

우리의 영혼을 한 곳으로 모아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나이다.

우리의 영혼이 아직 미숙하거나

세상의 소문으로 혼란스러울 때가 많사오니

생명의 영이신 성령을 저희에게 충만히 내려주시어

순전하고 풍요로운 영혼으로 살게 하소서.

세상에 계실 동안 임박한 하나님 나라를

치유와 교훈과 선포로,

그리고 전체 운명으로 증거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제1독서 출애굽기 16:2-15…………………………………………고성대 목사

성시교독 63, 시편 145편……………………………………………목사와 회중

제2독서 빌립보서 1:21-30……………………………………………고성대 목사

*제3독서 마태복음 20:1-16…………………………………………고성대 목사

설교 <복음은 싸움이다!>……………………………………………정용섭 목사

설교후기도…………………………………………………………………정용섭 목사

찬송 341장…………………………………………………………………다같이

 

[봉 헌 과 친 교 예 전]

신앙고백 사도신경……………………………………………………다같이

*헌금 633장………………………………………………………………다같이

중보기도……………………………………………………………………정용섭 목사

주기도………………………………………………………………………다같이

알림…………………………………………………………………………정용섭 목사

 

[파 송 예 전]

*송영 586장 1절…………………………………………………………다같이

*위탁의 말씀………………………………………………………………정용섭 목사

믿음의 길을 한 마음으로 가는 성도 여러분,

이제 예배를 마쳤으니

기쁨과 평화를 안고 세상으로 돌아가십시오.

그 세상에서 감당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더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순간도 있고,

빨리 지나기를 바라는 순간도 있을 겁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것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그것도 너무 빨리 지나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모든 시간의 유일한 주인이신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축복기도…………………………………………………………………정용섭 목사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알리는 말씀]

* 9월 가정 예배는 류시경, 이일녀 집사 댁(수성구 범어동 가든하이츠 307동 101호)에서 오는 24일(토) 저녁 6시30분에 모이겠습니다. 가능한 분들은 반찬 한 가지씩 가져오세요. 10월은 정교승 성도 댁이고, 11월은 이영희 집사 댁으로 예정되어 있고, 12월도 대략 결정되었습니다.  

* 수요일 성경공부 모임이 매 수요일 저녁 8시에 있습니다. 돌아오는 수요일에는 시편 140편 공부할 차례입니다.

* 이영희 집사는 한달간 예정으로 미국 뉴욕에 있는 둘째 딸 집에 갔습니다.  

* 지난주일(9월11일) 헌금: 원

 

 

매일묵상(‘다비아’에서 인용)

 

예배(1)

그대는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소? 그렇지 않다면 속히 예배에 참여하도록 하시오. 그리스도교는 기본적으로 ‘예배 공동체’라오. 그것을 부정하면 모든 것이 해체되오. 봉사도, 친교도, 신학도, 그리고 더 나가서 삶도 그렇소. 왜 그런지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대가 잘 알 거라 믿소. 예배는 말 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종교 의식이오. 영광을 돌린다는 말을 상투적인 것으로 듣지 마시오. 그것은 궁극적인 생명과 관계가 있소. 우리 운명과도 직결되오. 그대가 생명을 얻었다면, 그리고 그것을 희망한다면 예배를 등한히 하지 마시오.

 

예배(2)

지금처럼 바쁜 세상에서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석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소. 그것은 세속화의 결과요. 유럽과 미국은 이미 오래 전에 그런 시절을 겪었소. 명분으로는 그리스도교 신자지만 예배에는 참석하지 않소. 참석하더라도 뜸하게 참석하오. 어떤 이들은 성탄절, 부활절, 추수감사절만 참석하오. 그들은 주일에도 공부하거나 돈 벌거나 취미 생활을 하거나 가족과 여행을 다니오. 삶을 즐기는 것이오. 한국교회에도 그런 경향이 밀려들고 있소. 앞으로 머지않아 예배 참석률이 뚝 떨어질 거요. 이런 점에서 교회당을 너무 크게 짓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오. 세속화를 무조건 나쁜 뜻으로 받아들이지는 마시오. 그것은 일종의 해방경험이오. 종교의 허위의식, 권위의식에서 벗어난다는 뜻이오. 이것이 바로 개인과 인류 미래를 위해서 바람직한 길이라고 생각하시오?

 

예배(3)

예배를 등한하게 여기는 이유는 예배를 드리나 드리지 않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오. 이런 생각도 예배를 드리면 복을 받는다는 생각과 마찬가지로 틀렸소. 양자 모두 예배를 실용적인 어떤 행위로 생각하오. 예배를 아무리 자주 드려도 복을 받는 건 아니오. 하나님과 복은 별로 상관이 없소. 성경에 복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그것은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복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오.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생각는 아주 단편적인 것이오. 예배를 통해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당장 얻는 것은 아니지만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우리의 생명이 새로워지는 길이오. 만약 그걸 평소에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대는 예배를 헛되게 드린 것이오. 잘못된 경험들에 포로가 된 것이오. 그런 경험이 없다는 것은 마치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듣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는 말과 비슷하오. 불행한 일이오.

 

예배(4)

지금 예배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아주 짧은 글을 쓰고 있소. 예배를 이렇게 짧은 글로 다 설명할 수는 없소. 책 한권으로도 부족하오. 그렇지만 우리 형편 상 어쩔 수 없소. 나는 가능하면 일주일에 한번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24시간, 일주일 전체, 일년 전체를 예배로 채우고 싶소. 그럴 정도로 내 영혼이 투명하지 못해서 엄두를 내지는 못하지만 중심으로는 그런 생각이 많소.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에게는 없기 때문이오. 나는 예배 열광주의자가 아니오. 내가 시무하는 교회에는 예배가 일주일에 딱 한 번이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오. 그러나 실제로는 매일 예배를 드리고 싶소. 이는 마치 매일 죽음을 준비한다는 말과 비슷하오. 죽음을 준비할 때만 삶이 확인되오. 사는 데만 매달려 있으면 삶이 무언지 오히려 혼란스럽소. 매 순간이 예배인 삶이 가능하겠소?

 

예배(5)

매 순간을 예배드리듯이 사는 건 어떻소? 밥을 먹을 때도, 글을 쓸 때도, 숨을 쉴 때도, 심지어 똥을 눌 때도 예배드리듯이 하는 거 말이오. 이런 말은 흔해 빠졌소. 자기가 지구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놀라워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말을 하오. 흔해 빠진 말이라 해도 그걸 새롭게 느끼기만 하면 되오. 모든 삶의 순간에 궁극적인 생명을 찬양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능하오. 여기서 궁극적인 생명을 찬양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오? 이런 말이 영적인 힘을 얻어야 할 텐데, 자칫하면 죽은 말이 되고 마오. 그걸 어떻게 살려내는가에 따라서 매 순간의 예배가 가능한지의 여부도 판가름 나오.

 

예배(6)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최선의 종교의식이오. 여기서 핵심은 하나님의 영광이오. 어떤 이들은 은혜를 받기 위해서 예배드리러 간다고 말하오. 그건 틀린 말이오. 예배는 은혜가 중심이 아니오. 영광을 돌리는 게 우선이오. 은혜는 그 다음이오. 오늘 한국교회 신자들은 은혜를 받으려고 너무 애를 쓰오. 경쟁하듯이 은혜를 받으려고 하오. 그래서 예배도 경쟁하듯이 드리오. 그렇게 은혜를 경험할 수 있겠소? 예배를 통해서 은혜가 임하는 것은 분명하오. 그런 은혜의 경험이 없이 어찌 예배의 영성이 가능하겠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는 예배의 중심 요소가 아니라는 것만은 알아 두시오. 은혜는 결과일 뿐이지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오. 다시 말하오. 예배의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오.


[레벨:21]이일녀

2011.09.17 10:38:59

반찬은 안가져 오셔도 됩니다.

그냥 몸만 오셔요^^

별로 할건 없지만 적게 드시면 다이어트에도 좋아요.

단 준비를 위해 오실분은 제게 알려주시면 음식에 낭비가 적을듯 합니다.

부탁드려요.

목사님, 광고 부탁합니다.

내일 뵐게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공지 성경봉독 방법 및 예시문 [5] 김태형 2011-01-31 17340
437 2월21일 사순절 1주 file 정용섭 2021-02-19 1215
436 8월14일 성령강림후 10주 file [3] 정용섭 2022-08-12 1214
435 1월 23일 - 주현절후 셋째 주일 김태형 2011-01-31 1214
434 12월 25일, 성탄절 file [2] 전남정 2011-12-23 1211
433 4월14일, 사순절 6주 file [1] 정용섭 2019-04-12 1211
432 9월1일 창조절 1주 file [2] 정용섭 2019-08-30 1208
431 5월1일 부활절 3주 file [2] 정용섭 2022-04-29 1207
430 1월2일 성탄후 2주 file [4] 정용섭 2021-12-31 1204
429 2012년 11월 18일 창조절 열둘째(추수 감사) 주일 file [3] 전남정 2012-11-16 1204
428 2012년 8월 4일 성령강림절후 열째 주일 file 전남정 2012-08-03 1204
427 1월19일 주현 후 2주 file [1] 정용섭 2020-01-17 1203
426 3월12일 주보 file [2] 정용섭 2017-03-10 1203
425 8월18일 성령강림후 10주 file [1] 정용섭 2019-08-16 1202
424 8월28일 성령강림후 12주 file [3] 정용섭 2022-08-26 1201
423 8월9일 주보 file [2] 정용섭 2015-08-07 1200
422 11월22일 창조절12주 file [1] 정용섭 2020-11-20 1199
421 3월10일 사순절 1주 file [1] 정용섭 2019-03-08 1197
420 7월14일 성령강림후 5주 file [1] 정용섭 2019-07-12 1192
419 2013년 12월 1일 대림절 첫째주일 file 전남정 2013-11-29 1190
418 6월24일 성령강림 후 다섯째 주일 file [1] 정용섭 2018-06-22 118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