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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일 - 주현절후 첫째 주일

조회 수 1180 추천 수 0 2011.01.31 14:12:38

 

대 구 샘 터 교 회 주 보

 

2011년 1월9일, 주현절후 첫째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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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초)

(본문 마 3:3-14, 제목: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위 본문은 예수의 세례에 대한 이야기이다. 네 복음서가 모두 이 사건을 보도한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짤막하게 보도하고 말지만 마태복음은 요한과 예수의 대화를 곁들인다. 마태복음이 요한과 예수의 대화를 끌어들인 이유는 예수 세례 사건이 교회에서 논란이 되었다는 데에 있다. 1) 죄 없는 예수가 왜 죄 씻음을 의미하는 세례를 받았는가? 2) 예수는 세례요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월하신 분인데 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는가? 타당한 질문이다. 예수가 세례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영적 권위에 손상이 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마태복음은 그 대답을 ‘모든 의를 이루는 것’(15절)에서 찾았다. 의는 구원과 똑같은 의미이다. 하나님 나라, 또는 생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수의 세례가 왜 의를 이루는 일인지를 설교자는 알고 있어야 한다. 예수의 세례는 그의 성육신에 대한 징표다. 하나님의 낮추심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이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핵심 사상이었다.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다. 따라서 예수는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인간이다. ‘vere Deus, vere homer’ 반신반인이 아니라 온전한 신이며 온전한 인간이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온전한 인간이라는 부분을 약화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교부들은 그런 시도를 이단으로 배격했다. 세례는 오늘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의식이듯이 당시 경건한 유대인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세례를 받았다. 세례 사건에 대한 보도는 예수의 인간적 요소를 수용한다는 의미이다. 성육신 신앙에서 필수적인 조건이다.

예수의 세례사건이 정작 말하려는 핵심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다. 세례 장면에 대한 묘사는 신화적이다. 예수가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왔다고 한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났다. 하늘이 열렸다는 게 무슨 뜻인가? 설교자는 이런 성서 언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무조건 “하늘이 열렸습니다.” 하고 외치면 곤란하다. 그런 외침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청중들은 신화적 세계관에 머물게 되고, 결국 성서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결국 오늘의 세계관과 충돌한다. 소모적인 논란에 휩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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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수성구 상동 66-7 공간울림(예배처소)

예배시간: 매주일 오전 11시/ 수요성경공부: 매수요일 오후 8시

담임목사: 정용섭 010-8577-1227/ 전도사: 전남정(019-528-8044)

 

 

주일공동예배순서

 

[개회예전]

*예배를 여는 교독

<목사>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회중>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빌 1:12-14)

*오늘의 기도………………………………………………………………………다같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우리를 선택하시고 구원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

오늘 주현절후 첫째 주일을 맞아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당신의 은혜에 감사하며,

당신의 영광을 찬송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나타나심이며,

하나님의 임재임을 믿나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어디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겠나이까.

나사렛 목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생명이며, 구원이며,

참된 빛이심을 믿나이다.

이 어둠의 시절에도

우리가 희망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기 때문이나이다.

그 모든 일을 오래 전 계획하시고 실행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바치나이다.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고,

마지막 때 생명을 완성하기 위해 다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찬송……………………………………(33장)…………………………………다같이

*사죄기도…………………………………………………………………………다같이

목사: 자비로우신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회중: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목사: 지난 일주일 동안 저희가 행한 부끄러움과 잘못을 주님의 사랑으로 감춰주소서.

회중: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목사: 수많은 소와 돼지들이 구제역으로 떼죽음을 당하고 있나이다. 먹을거리를 무절제하게 탐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자신의 소유로 여기는 사람의 죄가 끝이 없나이다.

회중: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목사: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명령을 들었지만 말만 앞세울 뿐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고, 사랑받는 것에만 애를 썼나이다.

회중: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목사: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평화를 생각하지 않고 살았나이다. 남한과 북한의 평화를 위해서 노력하지 못했고, 자연과의 평화도 모른 척 했나이다. 저희의 굳은 마음을 용서해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다같이: 아멘!

*참회의 묵상기도…………………………………………………………다같이

*용서의 선포………………………………………………………………목사

<목사> 하나님은 집을 떠나 방탕하게 살다 돌아온 아들을 아무런 선입견 없이 아들로 받아들인 아버지와 같으십니다. 여러분이 아뢴 죄는 아무리 깊고 절망적이라 하더라도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죄를 존재론적으로 제거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바로 그 능력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우리의 아빠 아버지이신 그분을 찬송하십시오.

<회중> 아멘.

*평화의 인사………………………………………………………………다같이

<목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형제와 자매들에게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회중> 예배를 인도하는 주의 종에게도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앉으십시오.)

찬송…………………(국악찬송 29장, 사랑으로 천지만물을)……………다같이

 

[말 씀 예 전]

설교전기도……………………………………………………………………다같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준비했나이다.

이 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기쁜지,

얼마나 소중한지 말로 표현할 길이 없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우리가 진리를 경험할 수 없고,

생명을 얻을 수도 없으며,

구원에 이를 수도 없나이다.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선포하는 자들이

온전히 그 말씀에 집중하게 하소서.

지금 한 순간만이 아니라 우리의 전체 삶이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들어가기 원하오니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구약봉독…………………………이사야 42:1-9………………………하해숙 집사

성시교독…………………………121, 주현절(1)………………………목사와 회중

서신서봉독………………………사도행전 10:34-43…………………하해숙 집사

복음서봉독………………………마태복음 3:13-17…………………하해숙 집사

설교……………………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정용섭 목사

설교후기도…………………………………………………………………정용섭 목사

찬송…………………………………(130장)………………………………다같이

 

[봉 헌 과 친 교 예 전]

신앙고백…………………………사도신경………………………………다같이

*헌금………………………………(50장 2절)……………………………다같이

중보기도……………………………………………………………………정용섭 목사

주기도…………………………………………………………………………다같이

알림……………………………………………………………………………정용섭 목사

 

[파 송 예 전]

*송영…………………………(오소서 평화의 임금)………………다같이

*위탁의 말씀………………………………………………………………정용섭 목사

주현절후 첫째 주일을 맞아

우리는 정성을 다 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제 세상에 나가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결단이 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이며, 생명이라는 사실을

말과 삶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영이신 성령이 늘 함께 하십니다.

*축복기도…………………………………………………………………정용섭 목사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알리는 말씀]

* 지난 주일에는 교인총회가 있었습니다. 교회 일꾼은 아래와 같이 선정되었습니다.

(부장) 예배부: 황기, 구제선교부: 유해숙, 교육문화부: 구행자, 봉사경조부: 김태형, 사무관리부: 김종성, 재정부: 서상규

(감사) 안경모/ (회계) 이일녀/ (동영상담당)신광혜/ (성찬담담)박성경

(집사) 강대호 강태주 곽영미 구행자 권은희 김미진 김병훈 김성곤 김정은 김종성 김준태 김태성 김태형 김혜옥 류시경 박경희 박민아 박성경 박원관 박은혜 서병우 서상규 신광혜 안경모 오수정 오임경 유해숙 이성민 이영희 이은희 이일녀 이재용 이태원 이현자 이화련 임부자 임은숙 전은혜 정성훈 정지윤 정진 조정환 최병수 하해숙 황기 황정희 황철환(47명)

* 연말정산을 위해 기부금 증명서가 필요한 분은 재정부에 말씀하세요.

* 이화련 임부자 집사 가족이 직장 문제로 광주로 이사를 갑니다.

* 2011년 1,2월 성경봉독 담당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1월- 2일 김종성, 9일 하해숙, 16일 류시경, 23일 강태주, 30일 정성훈

2월- 6일 구행자, 13일 곽영미, 20일 서병우, 27일 임부자

* 지난주일(1월2일) 헌금: 816,000원

매일묵상(‘다비아’에서)

 

 

하나님에 대한 질문(6)

개신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이라는 말을, 가톨릭교회에서는 ‘하느님’이라는 말을 사용하오. 그대는 어느 쪽이 옳다고 생각하시오? 이것은 국문학자가 대답해야 할 질문이오. ‘하나님’은 ‘하나’에 방점이, ‘하느님’은 ‘하늘’에 방점이 있는 것 같소. 하나가 중요한지, 아니면 하늘이 중요한지에 따라서 서로 의견이 나뉠 거요. 그뿐만 아니라 우리말 고어 ‘하’가 오늘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도 살펴보아야 하오. 지금 내가 말하려는 것은 우리가 믿는 ‘그분’께 이름을 붙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오.

‘하나님’이라고 했든지 ‘하느님’이라고 했든지 그것을 이름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오. 이슬람교도들은 ‘알라’라는 이름을 사용하오. 불교나 힌두교에서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말하는 초월적이고 대상적인 신을 찾지 않으니 우리 논의에서는 배제해도 좋소. 구약성경은 야웨, 엘로힘, 아도나이 등으로 그분을 불렀소. 그렇다고 그 이름이 곧 그분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오. 이름 없이 그냥 ‘그분’이라고 부르는 게 본질에 가깝다고 할 수 있소. 우리가 늘 그분이라고 말할 수 없으니 하나님, 또는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거요. 예수님은 그분을 아버지, 또는 아빠라고 불렀소.

그대도 잘 알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한 전승을 말하겠소. 모세가 호렙 산에서 히브리 민족을 애굽에서 끌어내라는 소명을 받았을 때 이런 명령을 내린 당신이 누구냐고 물었소. 모세는 그 소명을 어떻게 인식한 거요? 실제로 목소리를 들은 것은 아닐 테고, 그렇다면 민족해방이라는 깨달음을 가리키는 건지도 모르오. 성서의 하나님 경험은 다양하니 그 속사정을 우리가 다 설명하기는 어렵소. 하나님의 응답을 모세는 이렇게 받았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 이름은 규정하는 힘이 있소. 나무라는 이름은 그 대상을 나무로 규정하오.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은 하나님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무엇에 의해서도 규정될 수 없다는 뜻이오. 그는 오히려 판넨베르크가 말했듯이 만물을 규정하는 현실성(die alles bestimmende Wirklichkeit)이오. 그분이 규정의 주체이고, 그 이외의 것은 대상이오. (2010년 11월27일)

 

하나님에 대한 질문(7)

간혹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을 만났다고 떠벌이는 사람들이 있소. 심지어는 천국에 다녀왔다고 약을 파는 이들도 있소. 예수님을 만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소. 주로 간증에서 나오는 이야기요. 다른 건 접어두고 예수님을 만났다는 말에 대해서만 생각해보시오.

예수님을 만났다는 말은 주로 교회 밖에 머물다가 안으로 들어온 이들에게서 자주 들을 수 있소. 이른바 모태신앙인들은 그런 경험이 별로 없소. 물론 완전히 없기야하겠소만 일반적이지는 않소. 왜냐하면 모태신앙인들은 거의 습관적으로, 의무적으로 교회에 나왔기 때문이오. 이런 신앙은 죽은 거니까 예수님을 꼭 만나라는 주장을 교회에서 자주 들었을 거요. 예수님이 꿈에 나타났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기도 중에 갑자기 어떤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도 있을 거요. 병으로 고생하다가, 가정불화로 고통스러워하다가, 사업의 부도로 가슴앓이를 하다가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도 많다고 하오. 도대체 예수님을 만났다는 말, 또는 그 현상, 그 경험의 실체는 무엇이오? 이게 왜 중요하냐 하면,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즉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존재라고 믿기 때문이오. 예수님 경험은 하나님 경험이라는 말이오.

그대는 신앙을 호도하는 말에 혹하지 마시오. 이런 일들은 이단들에게서 흔히 나타나지만 정통에서도 없는 게 아니오. 그들은 뭘 ‘보았다, 들었다’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내쏟소. 만병통치 효력이 있다고 떠드는 약장사들과 비슷하오. 무슨 말인지 알겠소? 기독교 신앙의 사태를 직면하라는 말이오. 아닌 것은 아니라 하고, 옳은 것은 옳다고 해야 하오. 그게 좀 두려운 일이오. 진리 자체가 원래 우리를 두렵게 하오. 두려워도 그 길을 가야 하오. 직면하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은 진리에 이르지 못할 거요. 자신에게는 예수님을 만났다는 경험이 별로 없는데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소. 다른 사람들은 다 경험한 것처럼 신앙적 포즈를 취하고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기도 하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소? (2010년 11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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