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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1일, 창조절 둘째 주일

조회 수 873 추천 수 0 2011.09.09 22:02:28

 

구 샘 터 교 회 주 보

 

2011년 9월11일, 창조절 둘째 주일

 

오늘의 설교 (마태복음 18:21-35/ 그리스도교 윤리의 근거)

 

위 본문의 구성은 세 단락이다. 1) 21, 22절은 용서에 대한 베드로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이다. 2) 23-34절은 용서의 은혜를 모르는 자에 대한 비유다. 1만 달란트 빚을 진 사람이 탕감을 받았다. 1만 달란트는 5천만 데나리온이다. 그는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친구를 기어코 옥에 가뒀다. 3) 35절은 비유에 대한 해석이다.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아버지께서도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 6:12)라는 구절과 상응한다.

오늘 설교의 주제인 용서에 대한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용서의 능력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짚어야 한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단순한 윤리 도덕이 아니다. 윤리와 도덕은 사람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이루어낼 수 있다. 도로교통법을 지킨다거나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일도 가능하다. 복지문제도 이런 윤리 문제이다. 일종의 휴머니즘의 강화이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본래적으로 주어지기도 하고, 사회적 전통과 습관에 따라서 학습되기도 한다. 그리스도교 윤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그 뿌리를 둔다. 오늘 본문의 비유가 그 사실을 정확하게 말한다. 동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은 이 사람은 먼저 임금에서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외면한 것이다. 그의 근본 문제는 임금과의 관계가 왜곡된 것이다.

이런 사실을 깨닫는다고 해서 그리스도교의 윤리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윤리는 깨우침에 머물지 않고 실제의 행동까지 말해야 한다. 다시 신앙과 윤리의 변증법적 관계가 요청된다. 무제약적 용서가 불가능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을 건 물어야 한다. 이런 책임 추궁은 자기만 의롭다는 자만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 즉 하나님의 정의에 순종해야 한다는 믿음을 토대로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또는 사회나 정부와의 관계에서 어디까지 용서하고 어디까지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의 객관적인 기준은 아무도 제시할 수 없다. 종말에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각자가 판단해야 할 것이다.

************************

예배처소: 대구시 수성구 상동 66-7 공간울림

예배시간: 주일 오전 11시/ 수요성경공부: 수요일 오후 8시

담임목사: 정용섭 010-8577-1227/ 전도사: 전남정(019-528-8044)

 

 

주일공동예배순서

 

[개회예전]

예배의 부름…………………………………………………………………………… 목사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얼마나 크고 놀랍고, 은총이 넘치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기쁨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겠습니다.

*찬송 25장…………………………………………………………………………… 다같이

*오늘의 기도………………………………………………………………………… 다같이

홀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우리 모두 진리와 영으로 당신께 예배드리나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아무리 대단해보여도

한낱 피조물로서 얼마 가지 않아 낡고 늙고 병들고,

그리고 사라질 수밖에 없나이다.

하나님만이 늘 새롭고, 또 영원히 존재하심으로

유한한 피조물을 내어주고 받아주는 분이시나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유는

하나님 안에서만 참된 생명을 얻기 때문이나이다.

일시적이고 자극적인 삶으로 만족한다면

하나님을 믿을 필요도, 따를 필요도,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예배를 드릴 필요도 없이

자기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기만 하면 되겠지만,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하늘 꼭대기에 올려놓아도

결코 영적인 만족을 얻지 못한다는 엄정한 사실을 알기에

당신 앞에 나와 예배드리지 않을 수 없나이다.

지금 한 순간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우리의 전체 실존과 전체 운명이

오직 하나님과 결합되기를 간절히 원하나이다.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승천하신,

생명 완성을 위해서 다시 우리에게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사죄기도………………………………………………………………………………다같이

목사: 자비로우신 하나님, 이 시간 우리 자신과 세상의 죄를 고백합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야 할 존재들이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소비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공동체와 지구의 평화를 파괴했나이다.

회중: 주여, 우리를 용서해 주소서.

목사: 세상의 죄보다 우리 믿는 사람들의 죄가 더 엄중하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았으며, 그것을 전할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나 얼마나 믿음이 없이 사는지 부끄러움으로 머리를 들 수 없나이다.

회중: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목사: 한국에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모두 제 각각만 생각했습니다. 북한 교회를 업신여기고, 모든 다른 종교를 배격하기만 했습니다. 일치와 평화의 능력으로 우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외면했나이다.

회중: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목사: 지난 한 주간에도 저희는 바알 신앙에 굴복한 적이 많았습니다. 공연히 걱정하고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생명의 영이신 성령에게 의지하기보다는 세상의 욕망에만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다같이: 아멘!

*참회의 묵상기도……………………………………………………………………다같이

*용서의 선포…………………………………………………………………………목사

<목사> 우리의 하나님은 자비가 한량없으신 분이십니다. 그 자비가 아니라면 우리가 어떻게 그분 앞에 나올 수 있으며, 감히 사죄의 기도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비에 의지해서 여러분에게 선포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아뢴 모든 죄는 용서받았으니, 기뻐하시고 이웃의 잘못도 용서하십시오.

<회중> 아멘!

*평화의 인사…………………………………………………………………………다같이

<목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형제와 자매들에게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회중> 예배를 인도하는 주의 종에게도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앉으십시오.)

찬송: 국악찬송 37장, 하늘에 가득찬 영광의 하나님…………………다같이

김정준 시, 나운영 곡

 

[말 씀 예 전]

설교전기도……………………………………………………………………………다같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영혼의 귀를 활짝 열고 기다리고 있나이다.

육신을 배부르게 할 밥만이 아니라

영혼을 풍요롭게 할 말씀이 절실히 필요하나이다.

세상의 온갖 소리에 마음을 빼앗겨서

우리의 영혼이 무뎌질 대로 무뎌졌으니

지금 성령으로 정결하게 씻어주옵소서.

말씀을 읽는 사람, 말씀을 듣는 사람,

말씀을 해석해서 선포하는 사람은 뒤로 물러나고

말씀의 주인인 성령만이 이 시간을 주도하시어

온전히 말씀의 잔치 자리가 되게 인도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제1독서 출애굽기 14:21-31…………………………………………김성곤 집사

성시교독 45, 시편 103편……………………………………………목사와 회중

제2독서 로마서 14:1-12………………………………………………김성곤 집사

*제3독서 마태복음 18:21-35…………………………………………김성곤 집사

설교 <그리스도교 윤리의 근거>……………………………………정용섭 목사

설교후기도…………………………………………………………………정용섭 목사

찬송 399장…………………………………………………………………다같이

 

[봉 헌 과 친 교 예 전]

신앙고백 사도신경……………………………………………………다같이

*헌금 51장3절……………………………………………………………다같이

중보기도……………………………………………………………………정용섭 목사

주기도………………………………………………………………………다같이

알림…………………………………………………………………………정용섭 목사

 

[파 송 예 전]

*송영 6장…………………………………………………………………다같이

*위탁의 말씀………………………………………………………………정용섭 목사

이제 예배를 마쳤으니

각자 삶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예수님도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다가

늘 사람들이 사는 동네와 시장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여러분들이 그 삶의 자리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를 전하십시오.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의 기쁨을 놓치지 마십시오.

생명의 영이신 성령께서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십니다.

*축복기도…………………………………………………………………정용섭 목사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알리는 말씀]

* 9월부터 다시 가정예배가 시작됩니다. 류시경, 이일녀 집사 가정(동 구역)에서 24일(토) 저녁 6시30분에 모이겠습니다. 수성구 범어동 가든하이츠 307동 101호. 다음 달에 원하는 가정(서 구역)은 전도사에게 신청해주세요.

* 수요일 성경공부 모임이 매 수요일 저녁 8시에 있습니다. 돌아오는 수요일에는 시편 139편 공부할 차례입니다.

* 지난주일(9월4일) 헌금: 562,000원

 

 

매일묵상(‘다비아’에서 인용)

 

미용사와 외과의사

 

오늘 나는 단골 미장원에 갔었소. 지난 1월에 난생 처음으로 파마를 했다가 그 뒤로 시간이 잘 맞지 않아서 못했소. 급기야 오늘 시간을 냈소. 옆에서 많은 사람들이 파마가 나에게 잘 어울린다고 부추기는 바람에 다시 또 간 거요. 그 이전에는 미장원에서 머리만 깎았소. 작년까지 5천원이었는데, 올해부터 6천원으로 올랐소. 파마는 2만 5천원이오. 청구아파트 내 서재에서 바로 건너가 보이는 미장원이오.

파마를 다 말아놓은 뒤에 대충 30분 정도 기다려야 하오. 미용사 아줌마는 내 머리에 씌어놓았던 비닐과 수건을 풀면서 “어떻게 됐나 보겠습니다.” 하고 말을 했소. 그분의 태도와 동작을 보고 멘트를 들으면서 마치 개안수술을 집도한 의사, 또는 위암 수술을 집도한 외과 의사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소. 미용사나 의사 모두 자기의 전문적인 기술을 통해서 고객이나 환자 몸의 어떤 부분을 고치는 이들이오. 물론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미용사 일과 사람의 생명 자체를 다루는 외과 의사의 일을 똑같은 비중으로 평가할 수는 없소. 그렇지만 양쪽 모두 기술자라는 점에서는 다를 게 하나도 없소.

그런데도 미용사와 외과의사에 대한 사회의 평가는 크게 다르오. 그들이 받는 돈도 하늘과 땅 차이오. 미용사는 내 머리를 정성스레 다루었소. 머리카락 한올한올을 작은 갈비뼈 같이 생긴 플라스틱 막대기에 감아 마는데 대략 15분, 머리에 파마 약을 바르고 기다리는데 30분, 파마 상태를 확인하고 다시 약을 바르고 기다리는데 15분, 머리 감기는데 5분, 말리고 커트하고 다듬는데 15분 정도 걸렸소. 합계 80분이오. 손님에게 립서비스도 많이 하오. 의사들 중에서 이런 미용사처럼 친절한 분을 나는 아직 만나본 적이 없소. 자기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는 듯했소. 이렇게 수고한 보답이 재료비 포함 2만5천원이오.

동일한 경력의 미용사와 외과의사의 연봉이 1:2 정도만 되어도 이 세상은 달라질 거요. 그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오. 미안한 말인지 모르겠으나 의사 분들께 크게 손해나는 일도 아니오. 목사도 미용사 정도의 수고비만 받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오. 미용사 수입도 천차만별이니 이런 문제를 일괄적으로 처리하기는 어렵긴 하지만, 그냥 방향만이라도 그렇게 잡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오.

 

죄의 법을 섬겨라!

 

어제 설교의 성경 본문은 로마서 7:15-25절이었소.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한 대목이 있어서 여기에 보충하오. 특히 25b절이 그렇소. “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미 25a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했으면서도 바울은 죄의 법 운운했소.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을 대립적인 개념으로 보면 이 문장을 이해할 수 없소. 그리스도인들에게 죄의 법은 무조건 나쁜 걸로 되어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소. 설교에서 짚었지만 죄의 법은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의 육체적 삶을 견인해가는 규범을 가리키오. 그것과 상관없이 살 수는 없소.

우리는 먹지 않으면 생명을 부지할 수가 없소. 남녀의 성관계가 아니면 아이들을 낳을 수가 없소. 식욕과 성욕은 죄의 법이오. 나쁜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 몸을 지탱해가는 원리라는 뜻이오. 그런 것을 신앙의 차원에서 해결할 수는 없소. 류영모는 50세 초반에 해혼(解婚)식을 거행했다 하오. 아내와 함께 살기는 하지만 성관계는 하지 않기로 한 거요. 류영모라는 분의 삶 자체가 정신적으로 워낙 차원이 높고, 또 기인이라 불릴만한 요소도 많아서 그게 가능할지 모르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안 되는 거요. 류영모는 아이를 낳기 위해서만 성관계를 해야 한다고 고집하셨다 하오. 완전히 엄격한 청교도들과 비슷한 입장을 보였소. 하루에 밥도 한 끼만 드셨다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주장하오. 결혼 문제도 그렇소. 젊은이들이 결혼을 주제로 기도하오. 자기가 원하는 조건을 늘어놓소. 기도하고 만난 상대와 늘 좋은 부부관계를 맺는 게 아니오. 믿음이라는 게 실제 삶에서는 허약하기 그지없을 때가 많소. 신앙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인격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행복한 결혼 생활에서 더 좋은 길이오. 세상의 삶을 너무 신앙적으로만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오.

죄의 법을 섬긴다는 바울의 주장은 마틴 루터의 ‘두왕국론’과 비슷하오. 하나님 나라와 세상의 나라, 거룩한 나라와 세속의 나라로 구별할 수 있소. 이것은 성속이원론이 아니오. 두 나라 모두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지만 작동원리가 다른 것이오. 서로 다른 원리를 하나로 묶어낼 수는 없소. 그래서 루터는 영주들의 정치에 깊이 개입하지 않았소. 정치 원리를 신앙으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오. 이에 반해서 칼뱅은 제네바에서 신정정치를 펼쳐보려고 했소. 신앙의 원리로 정치를 한 거요. 칼뱅의 제네바 신성정치는 실패했소.

거룩한 질서와 세속의 질서를 이렇게 구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인하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현실 삶에서 불가능한 것이오. 물론 그런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되도록 노력해야겠지만 그것이 가능한 것처럼 말할 수는 없소.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모인 교회에서도 나름으로 질서가 필요하고, 법이 필요하고, 강제력이 필요하오. 그게 바로 죄의 법이오. 죄의 법을 섬긴다는 바울의 고백을 좀더 깊이 생각해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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