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1. 설교
  2. 주보
  3. 성가대
대구샘터교회 주보 게시판

6월26일/성령강림절후 둘째 주일

조회 수 1337 추천 수 0 2011.06.24 23:08:55

 

대 구 샘 터 교 회 주 보

 

2011년 6월26일, 성령강림절후 둘째 주일

 

오늘의 설교(초)

(창세기 22:1-14/ 아들을 바쳐라!)

창세기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의 하나가 위 본문의 내용이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아들인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받는다. 그가 아들의 목에 칼을 대려는 순간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서 그를 말렸다. 사자의 말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들을 바치라’는 요구가 말이 되는가? 창세기 기자는 말도 되지 않는 이런 요구를 왜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브라함도 이것이 옵션의 차원이었다면 이삭이 아니라 자신을 번제로 바쳤을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자신이 아니라 이삭이었다. 그가 아들을 번제로 바칠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포기했다는 뜻이다.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실존이었다. 자신들의 미래를 자신들의 역량 아래에 두느냐, 아니면 자신들의 생각과 계획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통치에 두느냐 하는 양자택일을 요구받은 것이다. 아브라함처럼 그들도 후자를 선택해야만 했다.

이런 선택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통치는 우리의 기대에서 어긋나거나 혼란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예수님마저도 하나님으로부터의 유기(遺棄)를 토로하지 않았는가. 또한 그의 약속은 막연하거나 비현실적인 때가 많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다는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께 자신의 미래를 온전히 맡긴다는 것이 가능한가? 인간의 역사는 거의 실패했다. 구약의 이스라엘도 거듭해서 실패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운명에서만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라고 요구한 하나님은 자기 자신에게 그것을 요구했으며, 그 요구를 실행에 옮겼다. 예수를 십자가에서 처형당하게 했다. 하나님 자신이 거기에 달린 것이다. 놀랍게도 거기서 인류의 미래가 열리게 되었다.

************************

예배처소: 대구시 수성구 상동 66-7 공간울림

예배시간: 주일 오전 11시/ 수요성경공부시간: 수요일 오후 8시

담임목사: 정용섭 010-8577-1227/ 전도사: 전남정(019-528-8044)

 

 

 

주일공동예배순서

 

[개회예전]

예배의 부름…………………………………………………………………………… 목사

오늘은 성령강림절후 둘째 주일이면서, 태양력으로 6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2011년의 반이 지나는 시점입니다. 빨라도 너무 빠른 세월입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면 우리의 삶은 허무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참된 생명을 약속하시고 지금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께 예배드립시다.

*찬송 12장……………………………………………………………………………다같이

*오늘의 기도…………………………………………………………………………다같이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우리 모두 기도와 찬송과 말씀을 통해서

당신께 예배를 드리오니 하나님 홀로 영광 받아주소서.

하나님의 행하신 일은 너무 크고 너무 놀라워서

우리의 짧은 생각으로 이해할 수 없을 때가 허다하나이다.

창조주 하나님,

당신은 하늘을 만드시고 땅을 만드셨나이다.

하늘의 별과 땅의 수목과 동물과 곤충과 미생물,

우리가 아직 다 파악하지 못한 온갖 생명들,

이미 세상에 생존하다가 사라진 것들,

앞으로 지구에 나타날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나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영으로 온 세상에 충만하게 하시고

그 영에 의지해서 모든 것들이 어울려서 살아가게 하셨나이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혼란과 모순도

하나님 안에서 조화롭다는 사실을 믿나이다.

이제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하나님을 영혼 깊은 곳에서 찬송하는 것이나이다.

매일의 삶이 살아있는 예배가 되기 원하며

나날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원하오니

성령의 크신 능력으로 우리를 사로잡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사죄기도………………………………………………………………………………다같이

목사: 긍휼이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죄인들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죄인의 괴수입니다. 생명의 영을 거부하고 자기의 생각을 확대하는 방식으로만 살았습니다. 그런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때가 많았나이다.

회중: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목사: 정의와 평화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우리는 정의와 평화에 마음을 두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경쟁력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이 세상의 질서에 길들여진 체 정의와 평화 운동을 외면했나이다.

회중: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목사: 한국교회에 만연한 교회 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원합니다. 교회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오늘의 교회 세태에서 우리가 교회일치를 선포하고 실천할 수 있기를 원하지만, 이런 일에 우리가 게을렀음을 고백하나이다.

회중: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목사: 지난 한 주간에도 우리는 알면서 또는 모르면서 하나님의 선물인 삶을 충실하게 지켜내지 못했나이다. 너무 많은 것에 우리의 관심이 분산되어 정작 생명에 관계된 일을 외면했나이다. 지혜롭지 못했던 저희를 용서해주소서.

다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참회의 묵상기도……………………………………………………………………다같이

*용서의 선포…………………………………………………………………………목사

<목사> 우리의 하나님은 자비가 한량없으신 분이십니다. 그 자비가 아니라면 우리가 어떻게 그분 앞에 나올 수 있으며, 감히 사죄의 기도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 자비에 의지해서 여러분에게 선포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아뢴 모든 죄는 용서받았으니,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이웃의 잘못도 용서하십시오.

<회중> 아멘!

*평화의 인사…………………………………………………………………………다같이

<목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형제와 자매들에게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회중> 예배를 인도하는 주의 종에게도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앉으십시오.)

찬송: 국악찬송 30장, 성도여 다같이 할렐루야…………………다같이

 

[말 씀 예 전]

설교전기도……………………………………………………………………………다같이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발에 등이요,

우리의 길에 빛이 되나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말씀은

우리를 살리는 참된 능력이나이다.

우리에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 안에서

주님의 진리를 받아 깨우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시어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언제나 주님의 말씀 안에서 살게 하소서.

말씀을 읽는 자와 해석하여 선포하는 자와

그리고 거기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 모두,

말씀이 주시는 생명의 광휘에 휩싸이게 하소서.

임박한 하나님 나라를 말씀과 삶으로 가르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제1독서 창세기 22:1-14………………………………………………신광혜 집사

성시교독 136, 성령강림(2)……………………………………………목사와 회중

제2독서 로마서 6:12-23………………………………………………신광혜 집사

*제3독서 마태복음 10:40-42…………………………………………신광혜 집사

설교 <아들을 바쳐라!>………………………………………………정용섭 목사

설교후기도…………………………………………………………………정용섭 목사

찬송 182장(1-3절)………………………………………………………다같이

 

[봉 헌 과 친 교 예 전]

신앙고백 사도신경……………………………………………………다같이

*헌금 50장1절……………………………………………………………다같이

중보기도……………………………………………………………………정용섭 목사

주기도………………………………………………………………………다같이

알림…………………………………………………………………………정용섭 목사

 

[파 송 예 전]

*송영 국악찬송 4장, 영광누리소서(1)……………………………다같이

*위탁의 말씀………………………………………………………………정용섭 목사

이제 예배가 끝났으니 각자 삶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거기서 여러분은 여러 종류의 삶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쁨, 슬픔, 자유, 구속, 평화, 불안을 피할 수 없습니다. 어떤 자리에서도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가십시오. 생명의 영이신 성령께서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십니다.

*축복기도…………………………………………………………………정용섭 목사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알리는 말씀]

* 여름 연합수련회는 8월26일(금)-28일(주일)에 열릴 예정입니다. 장소는 작년과 똑같이 충청남도 목소리 테마파크(http://www.moksori.net/) 입니다.

* 예배 후에 정기 운영위원회 모임이 있습니다. 

* 수요성경공부는 7,8월에 쉽니다. 6월29일에 종강 모임이 들안길 '만반' 식당에서 저녁 8시에 모입니다.  

* 6월 설교공부 모임이 6월27일 저녁 7시-9시에 본 예배 처소에서 있습니다. 교회력에 따른 성경본문을 그리스도교 신학과 영성의 깊이에서 공부하고 싶은 분은 누구나 참석하실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대구성서아카데미 사이트를 참조하세요.

* 2011년 하반기(7월-12월) 성경봉독 담당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1주: 황기, 2주: 김성곤, 3주: 전은혜, 4주: 곽영미, 5주: 서혜빈

* 지난주일(6월19일) 헌금: 1,431,000원

 

 

 

매일묵상(‘다비아’에서 인용)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47)

“게르하르트(Paul Gerhardt)의 찬송가들 가운데서 “이것으로 너는 족하다. 네 생명의 하나님 안에서 잠잠하라.”는 구절이 있다. 그 누가 “하나님 안에서” 만족될 수 없다면 어떻게 교회 공동체나 이 세상 안에서 만족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런 사람이 어떻게 신학자로서 실존할 수 있단 말인가? 교회공동체는 이 세상이 버림받은 무리라는 사실은 잘 알지만 이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과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찬양을 위해서 부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지 못할 경우가 많다. 이 세상은 자신이 악의 세력에 붙잡혀 있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으나 -이 세상이 이 사실에 대하여 얼마나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지는 몰라도- 자신이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에 의하여 사방팔방으로 지탱되고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따라서 ‘신앙의 지성’인 신학적인 인식이 신학의 대상을 통하여 신학자에게 주어진 경사진 흐름을 따를 때만 신학자는 만족할 수 있으며, 또한 이처럼 만족한 사람으로서 교회공동체와 이 세상에서 이 만족을 확산시키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복음주의신학 입문, 106쪽)

여기서 바르트는 신학자의 영적 만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소. 신학자는 바로 우리 모두를 가리키오. 그리스도교 신앙을 삶의 중심에 두는 사람은 모두 신학자요. 우리의 영적인 만족은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 하나님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주어진다는 것이오. 즉 하나님이 세상을 버리는 방식으로 선택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오. 이것이 단지 말로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사로잡는 능력으로 경험되어야 하오. 거기서만 우리는 세상을 바르게 비판할 수 있고, 바르게 위로할 수 있소. 그것이 없을 때 세상을 비판할 줄 모르고, 거꾸로 위로할 줄도 모르게 되오. 우리가 지혜롭게 세상에 참여하려면 이런 영적 만족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말이 되오. 여기서 만족은 바르트가 인용한 게르하르트의 찬송가 한 구절이 말하듯이 긍정과 부정을 통해 세상에서 행동하시는 하나님만으로 삶이 충분하다는 사실에 들어가는 것이오.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48)

“만약 우리의 신앙이 그냥 인간에게서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라면 별 것 아닌 사건이요, 여기에서 논의될 가치조자 없을 것이다. 만약에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의 확실한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추측이요, 의견이요, 개연성의 계산이요, 따라서 이 신학의 대상을 이에 대한 추측, 요청, 개연성과 동등시 하고 이런 의미로 긍정한다면 신앙 사건이라는 별 볼 일 없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이런 신앙은 신학자를 참된 신학자가 되게 하지 못한다.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우리가 이미 언급한 의미에서의 인간을 놀라게 하고, 관여시키며, 책임 있게 관여시키는 신학의 대상을 생각해낼 수 없고 추측할 수 없으며 요청할 수 없다. 그래서 이 대상에 대한 신앙은 가설적이고 문제성 있는 지식이 아니라 하나의 내용이 충일한 지식이요 엄격하고 확실한 지식이다. 이것에 비교하면 인간적인 한계상황 이편에서 가능한 가장 확실한 지식일지라도 유용할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 문제투성이의 가설에 불과할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109쪽)

위 글을 해석할 수 있다면 그대는 이미 신학적으로 어른이오. 만만한 작업이 아닐 거요. 바르트는 신앙의 문제를 인간에게서 발생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소. 사람의 심리에서 나오는 어떤 것, 사람의 감정에서 나오는 어떤, 사람의 정치적 참여에서 나오는 어떤 것이 아니오. 신앙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소. 하나님이 먼저 사람을 찾아오오. 사람의 책임은 하나도 없다거나, 사람의 노력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은 아니오. 그 문제는 이 대목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오. 지금 바르트가 말하고 있는 것은 궁극적인 차원이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학으로 변질된 신학의 중심을 바르게 잡는 중이오. 인간을 이해하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 그리고 세상의 계몽과 개량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라는 주장이 잘못이라는 말이오. 신학의 대상인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뛰어넘소. 따라서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우리를 향할 때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있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소. 지금 우리는 우리의 잣대로 행복 여부를 판단하고 있소. 그 행복의 조건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오. 이런 생각은 아무리 순수하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과는 거리가 머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공지 성경봉독 방법 및 예시문 [5] 김태형 2011-01-31 17379
537 9월26일 창조절 4주 file [4] 정용섭 2021-09-24 1389
536 8월30일 주보 file [4] 정용섭 2015-08-28 1387
535 2월28일 사순절 2주 file [2] 정용섭 2021-02-26 1383
534 2012년 11월 11일 창조절 열한째 주일 file [1] 전남정 2012-11-09 1381
533 2013년 3월 24일 종려(고난) 주일 file 전남정 2013-03-22 1381
532 4월25일 부활절 4주 file [1] 정용섭 2021-04-23 1379
531 9월19일 창조절 3주 file [3] 정용섭 2021-09-17 1377
530 4월18일 부활절 셋째주일 file [2] 정용섭 2021-04-16 1374
529 11월13일, 창조절 열한째 주일 file [3] 정용섭 2022-11-11 1370
528 7월1일 성령강림후 여섯째 주일 file [1] 정용섭 2018-06-29 1370
527 12월25일, 성탄절 file [3] 정용섭 2021-12-17 1369
526 3월24일, 사순절3주 file [2] 정용섭 2019-03-22 1368
525 7월29일, 성령강림후 10주 file [1] 정용섭 2018-07-27 1368
524 12월29일 성탄후 1주 file [2] 정용섭 2019-12-27 1367
523 10월23일 창조절 8주 file [3] 정용섭 2022-10-21 1366
522 2014년 10월12일 전교인 수련회 및 창조절 여섯째 주일 file [1] 전남정 2014-10-09 1366
521 12월20일 대림절3주 file [1] 정용섭 2020-12-18 1365
520 2018년 1월7일 주보 file [3] 정용섭 2018-01-05 1358
519 2014년 12월 28일 성탄 후 첫째 주일 file [4] 서상규 2014-12-25 1357
518 2015년 6월21일 성령강림후 넷째 주일 file [2] 서상규 2015-06-19 135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