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헤겔철학과 신학(교정, 5월20일)

조회 수 4897 추천 수 182 2004.11.17 18:01:32
9장
헤겔철학과 신학

우리는 지난 8장에서 칸트의 도덕철학이 기독교 신학과 신앙운동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생각했다. 첫째는 칸트 철학을 초자연적으로 적용하려는 슈토르(G. Schr. Storr)의 시도였다. 슈토르는 “이성은 초감각적인 대상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아무 것도 확정할 수 없다.”는 칸트의 명제로부터 자신의 입장을 견지해나갔다. 결국 슈토르의 주장은 계몽주의의 합리주의적 형이상학으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벗어나게 하자는 것이었다.
둘째는 톨룩(A.G. Tholuck, 1799-1877)에 의해서 시도된 각성운동이다. 이 각성신학(Erweckungstheologie)은 죄를 지은 인간이 속죄에 의존해 있다는 사실을 종교개혁적인 방향에서 분명하게 주장했다. 여기서의 핵심은 칸트의 도덕철학에 근거해서 도덕경험을 계시의 준거로 다룬다는 것이다. 이런 도덕경험은 죄책 경험이 가져오는 분열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리라는 말이다.
셋째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에 대한 윤리적 해석이 그것이다. 이런 주장은 19세기 개신교 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는데, 그중에서 리츨(A. Ritschl)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칸트에게서 영향을 받은 세 가지 개신교 신학 운동은 기독교 신앙을 19세기 합리주의의 위기 가운데서 개인의 도덕성으로 견인해나갔다. 결국 기독교 신앙은 개인들이 주관적인 실존 안에서 윤리적으로 바르게 살아가면 충분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 셈이다. 판넨베르크의 설명에 의하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도덕철학적으로 설정한 칸트의 시도가 이미 1800년대에 철학적으로 진부해졌는데도 불구하고 칸트 철학이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 개신교 신학에 그토록 심각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끼쳤다는 사실은 좀 의외이며, 그 결과로 개신교 신학이 개인의 도덕성 안으로 축소되었다고 한다.
칸트와는 다른 관점에서 기독교 신학에 영향을 끼친 철학자가 곧 헤겔이다. 초기의 헤겔은 부분적으로 칸트의 종교 문헌에 기대어 종교를 도덕성 강화의 수단으로 생각했지만 1796년 이후 기독교를 도덕적으로 해석하는 칸트와 피히테의 시도를 비판하게 되었다. 칸트에게는 종교가 단지 윤리적 요청에 대한 대답으로 주어지지만 헤겔에게는 “유한한 생명으로부터 무한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고양되는 것”이다. 즉 헤겔에게서 종교 문제는 개인의 도덕성 차원에서 절대정신의 차원으로 지양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헤겔의 이러한 종교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19세기 어간에 꽃을 피웠던 관념론을 검토하도록 하자. 왜냐하면 헤겔철학은 기본적으로 관념론이기 때문이다.

관념론

유럽 철학은 18세기 말부터 19세 초에 관념론(Idealismus)의 시대로 접어든 이후 두 세대 동안 독일 관념론의 꽃을 피웠다. 이 관념론은 한 시대를 풍미한 유행 철학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난 수천 년간 전개되었던 모든 철학 논쟁의 토대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뒤로도 계속해서 현대철학과 사유에 영향을 끼쳤다. 이 관념론 논쟁은 과연 이 세계를 규정하는 어떤 관념이 있는가, 아니면 이 세상은 오직 물질뿐인가, 하는 것이다. 이 관념론 시대에 주로 활동하던 철학자들은 피히테, 셸링, 슐라이에르마허, 헤겔인데, 이중에서 관념론 철학을 집대성 한 인물은 아무래도 헤겔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헤겔의 관념론에 직접 들어가기 전에 우선 ‘관념론’(Idealismus)이라는 용어와 그것에 연루된 철학사적 배경을 잠시 검토해보자.
Idealismus의 idea는 분명히 플라톤 철학을 연상시킨다. 2천5백년에 이르는 유럽 철학의 역사에 등장한 수많은 생각과 주장은 근본적으로 플라톤의 이데아에 대한 해석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가 플라톤의 이데아를 거칠게 표현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실질들을 규정하는 어떤 근원적 세계가 실제로 있다는 의미이다. 플라톤이 그런 생각에 도달하게 된 그 사상사적 배경을 여기서 충분하게 풀어내기는 쉽지 않겠지만, 우리가 헤겔의 관념론을 따라잡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상식적인 차원에서 접근해볼 필요는 있다. 우리 앞에 가장 확실하게 놓여 있는 것은 분명히 어떤 관념이 아니라 물질과 현상이다. 나무, 돌, 불, 그리고 계절의 변화, 사랑, 분노 같은 것들이다. 이런 사물과 현상을 단지 그렇게 늘 있는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더 이상 철학적인 사유는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지만 그 사태를 조금이라도 세밀하게 인식하려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많은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우리의 감각적 인식에 들어오는 이 모든 사물과 현상은 계속해서 변한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계절이 바뀌고 우리가 늙어 죽는다. 헬라인들이 확인할 수 없었지만 우리에게 시나브로 그 비밀을 벗어내고 있는 우주 세계도 역시 계속해서 시작과 사멸의 길을 걷고 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다는 이 엄연한 사실 앞에서 플라톤은 영원한 그 무엇이 어디에 있다고 유추하게 된다. 이 세상의 모든 무상한 것들을 출현시키고 유지시키며 다시 거두어들이는 그런 절대적이고 영원한 세계가 곧 이데아이다. 이것은 일종의 ‘실체론적 형이상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유방식이다. 이런 점에서 어거스틴이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과 플로티누스의 일자 개념에 근거해서 기독교의 신론을 전개한 것은 타당하다. 최문홍은 <세계철학대사전>의 “관념론” 항목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데아를 참된 실재라고 하면서 만물이 변천해가는 현상계와 영원불멸하는 이데아계의 두 세계를 설명한 플라톤과 또 모든 사물이 생성 유전하는 것은 만물의 근본인 일자에 있다고 설명한 플로티노스도 철학사상 고대유심론의 대표자인데, 이러한 경향을 오늘날에 와서는 형이상학적 관념론이라고도 한다.(교육출판공사, 79,80).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에 반해서 데모크리투스는 만물을 원자의 기계적 작용이라고 보았으며, 에피큐로스도 데모크리투스의 주장을 약간 변경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만물의 근원이 물질이라는 주장에서는 궤를 같이 한다. 결국 이들에 의해서 관념론과 대칭되는 유물론의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또한 만물의 근원을 ‘불’이라고 주장한 헤라클레이토스 같은 이들은 플라톤의 이데아나 데모크리투스의 원소에 담겨 있는 ‘실체론’과 전혀 다른 맥락의 사유를 전개했다. 즉 만물의 근원은 어떤 고정된 실체(Substanz)가 아니라 운동과 변화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헤라클레이토스의 과정철학적인 주장이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과 연결될 수 있는 것 같지만 이 양자는 전혀 다른 틀에 놓여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명백한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지만 헤라클레이토스의 운동은 그것 자체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헤라클레이토스의 변화와 운동 개념이 데모크리투스의 원소론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원소론은 기계론적인 세계이해지만 생성과 유전은 훨씬 영적이고 유기적인 세계이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제를 좀 더 단순화해서, 플라톤의 이데아와 데모크리투스의 유물론은 중세기의 ‘실재론’과 ‘유명론’에 의한 보편논쟁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에이도스)이 실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이름으로만 남는 것인지에 대한 보편 논쟁에서 전자의 주장은 실재론(Realismus)으로 후자의 주장은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us)으로 규정되었다. 이 대목에 대해서는 하기락 선생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 논쟁은 보편자(Universalia), 이를테면 플라톤의 이데아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eidos)과 같은 개념적 본질의 존재론적 위치에 관한 것이다. 이 논쟁에서 실재론과 유명론이 분열 대립되어 실재론자들은 개념적 본질을 이루는 보편자가 실재라고 주장하고, 유명론자는 개별적 사물만이 실재이고 보편자는 개별물을 지시하는 이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이 문제는 인식론적 문제라기보다 오히려 존재론적 형이상학적 문제였다. 그런 까닭에 여기서 제기된 실재론을 근세의 인식론적 실재론과 구별하기 위해서 개념실재론이라 부른다.(교육출판공사, 세계철학대사전, 844).

이 보편논쟁에 의해서 계속된 이 주제는 결국 헤겔을 중심으로 한 합리주의적 관념론과 꽁트를 중심으로 한 자연과학적 실증주의에서 일단락된다고 보아야 한다. 객관적 실체로 인식되는 플라톤의 이데아는 중기의 실재론을 거쳐서 헤겔의 절대정신 안에서 정리되었으며, 늘 이런 인식과 대립해 있던 데모크리투스의 유물론은 중세기의 유명론을 거쳐서 영국의 경험론과 프랑스의 계몽주의를 결합한 꽁트의 실증주의 안에서 정리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헤겔의 관념론을 다루려고 한다. 왜냐하면 헤겔의 관념론이 그 이후 모든 철학 사조의 나들목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이 세계에 드러난 현상의 근원을 전혀 다른 차원의 절대적인 세계에서 찾아보려는 주장과 그것을 부정하는 주장 사이에 얽히고설킨 논리를 따라가는 일은 우리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니까 접어두기로 하고 이제 헤겔의 관념론이 지금까지의 모든 논의를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왜냐하면 서양철학사의 논쟁이 헤겔을 기점으로 전혀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이데아와 보편적 실재론이 헤겔의 역사철학에서 집대성되었고, 그 이후로는 이런 우주론적인 담론이 약화되었다는 말이다. 필자는 여기서 주로 서동익의 설명에 기대어 헤겔의 관념론 문제를 간단하게 다루겠다.(위와 같은 사전, 1229).
우리가 헤겔의 철학적 특징을 상식적인 차원에서 한 마디로 규정한다면 ‘절대정신의 변증법’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역사는 절대정신이 변증법적으로 자기를 현시하는(계시하는) 자리이며, 그것은 곧 하나님의 자기계시이다. 그가 말하는 절대정신은 플라톤의 이데아까지 소급될 수 있지만 그 세계가 변증법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실체론적 형이상학과는 구별된다. 즉 절대정신은 영원한 실체로서 변하지 않는 이데아가 아니라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적 도식으로 완성되어가는 어떤 세계이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이미 완료된 절대적인 세계라고 한다면 헤겔의 절대정신은 역사의 진행에서 그 절대적인 것이 나타나야할 어떤 세계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그의 입장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과 셸링의 객관적 관념론의 모순과 대립을 종합하고 통일시킨 철학체계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은 관념(Idea)이 곧 인간의 주관적 의식의 발현이라는 것이며, 셸링의 객관적 관념론은 관념이 인간 의식의 주관적 경험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작용하는 세계로 설명하는 것이다. 데카르트 이후로 주관과 객관의 대립은 서양철학의 인식론적 패러다임으로 작용하고 있었지만 헤겔이 말하는 절대정신의 변증법 안에서 주관과 객관의 대립은 지양(Aufhebung)된다. 헤겔의 변증법에 대해서 서동익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철학은 이성개념(절대자)의 체계이며, 이성개념은 과정이다. 모든 이성개념은 원래 자기와 반대되는 것을 자신 속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정립은 반드시 부정되고, 부정한 것을 또 다시 부정함으로써 훨씬 포괄적이고 높은 단계의 개념으로 발전하게 된다. 여기서 처음의 두 모순개념은 제삼의 개념의 계기가 된다. 곧 정립, 반정립, 종합의 3단계의 발전 과정에서 종합은 정립과 반정립을 아주 없애버리는 게 아니라 이를 새로운 형태로 살려서 보존한다. 그리고 긍정과 부정을 함께 간직하는 새로운 긍정도 아직 완전한 전체적인 진리일 수가 없고 다시 그 반대자로 전화(轉化)하고, 또 이것과 저것은 새로운 통일의 단계로 자기내복귀(自己內復歸)된다. 이렇게 절대자가 자기를 자각하는 과정이 다름 아닌 변증법이며, 이 3단계의 변증법으로 구성된 것이 곧 그의 철학체계의 전체이다. ‘현실’이 곧 ‘이성’이 되는 절대자가 영원한 로고스인 자기 자신에 있어서, 즉 즉자적으로(an sich) 전개하는 학이 논리학이고, 그 절대자가 외적 존재의 형태로 자기를 외화(外化)하는 것이 곧 자연이고, 그 자연인식이 자연철학이 된다. 다시금 이 절대자가 그 외화에서 자기로 돌아온 존재양식을 전개한 것이 그의 정신철학이다.

헤겔의 변증법적 역사철학은 19,20세기에 인류 정신과 예술,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 사람의 철학자에게서 극단적 좌파로부터 우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상이 파생된 것은 헤겔의 경우가 거의 유일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놀랍게도 마르크스주의는 헤겔 철학의 대표적인 좌파라 할 수 있다. 왜 헤겔 철학이 그 후계자들에 의해서 극좌에서 극우에 이르는 스펙트럼을 견지할 수 있었을까? 그의 변증법적 역사관이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지적한 마르크스는 헤겔의 역사철학에 유물론적 역사관을 적용시킴으로써 결국 프롤레타리아의 독재가 가능한 계급투쟁의 역사를 주장하게 되었다. 이런 반기독교적인 반향이 헤겔 철학에게서 출현했다고 해서 그의 철학을 우리가 부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오히려 헤겔은 절대정신의 변증법적 발전을 통해서 사랑이 완전하게 발현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역사의 목표로 삼았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그에게 빚진 바가 적지 않다. 비록 그에게 종말론적인 역사관이라기보다는 진보사관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역사로서 자신을 계시하는 하나님을 변증하려 했다는 사실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정신현상학

헤겔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인 <정신 현상학>(Phänomenologie des Geistes)은 그가 예나에 머물던 1807년에 출판되었는데, 이 책의 원래 표제는 “Wissenschaft von der Erfahrung des Bewußtseins”라고 한다. 이 책은 대상에 대한 경험이 스스로 의식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다루고 있다. 판넨베르크의 설명을 직접 들어보자.

이러한 경험은 의식의 실제적인 내용이 제 각각 참된 것으로 이해되어야만 하는 것과 늘 동일한 게 아니라는 사실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이 의식은 자기의식으로서 자기의 진리 요청이라는 점에서 볼 때 자신과 조화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의도된 진리와 실제적인 내용의 단일성에 대한 이해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에서 시도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서 자명성의 새로운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이 새로운 단계에는 의식의 진리 지향성과 새로운 형태에서 이루어지는 실제적인 내용사이의 대립이 다시 등장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의식의 경험이 하나의 길을 찾게 된다. 이 의식의 결과는 결국 철학적으로 형성된 의식이거나, 혹은 헤겔이 말한 바와 같이 ‘절대지식’이다. 이런 표현은 흔히 오해되었다. 그는 개체에서는 아무 것도 배울 게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철학적 의식의 형식을 자신에게서 완성되는 반성적 의식의 형식으로 특징화하려는 것뿐이었다. 이런 의식의 진리 지향은 그가 주장하는 내용과 조화를 이룬다.(310).

<정신현상학>은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대상적 세계를 지향하는 일상 의식인 ‘자연적 의식’을 진리로 간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런 자연적 의식의 토대는 그 대상에 대한 ‘감각적 확실성’에 있다. 이는 바로 경험주의의 논리이기도 하다. 그는 이런 감각적 경험과 경험주의의 의미를 기본적으로 생각했지만 그런 상태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그는 ‘자연적 의식’에는 자기 자신의 내부와 대립적인 요소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따라서 그런 의식을 뛰어넘어 진리를 다시 배워야만 한다. 이는 곧 의식이 늘 진리를 요구한다는 사실과 맞물려 있다. 의식은 그 내용이나 대상이 진리일 경우에 그 의식과 그 내용이 조화되고 있는지 아닌지 질문할 수 있다. 따라서 의식은 자신을 뛰어넘어, 그리고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그 내용의 진리에 대한 생각을 뛰어넘어 추구된다. “이 경우에 진리에 대한 요청은 절대가 유한한 의식 안에 현재하는 것으로 증명되는데, 이것은 내용의 유한성을 뛰어넘어 고양됨으로써 가능하다.”(311). 감각적인 소여가 비록 유한하지만 그 유한에 절대가 들어있기 때문에 우리는 소여의 유한을 뛰어넘어 고양됨으로써 참된 의식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의식은 실제로 보편적인 것과 소여된 것들과의 연관이다. 즉 보편적인 규정을 감각적 소여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지각’(Wahrnehmung)은 이런 복합적인 사태를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사물에 대한, 그런 속성과 상태에 대한 지각은 감각적 의식의 참된 형태이다.”(312).
그런데 헤겔에 따르면 인간을 참된 자의식에 이름으로써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인간의 역사적 세계가 훼손되었기 때문에 세계의 진리는 절대를 인식하는 영역에서만, 즉 종교, 예술, 철학을 통해서만 발생한다. 이 절대는 그리스인들의 예술 종교에서, 다음으로는 “계시종교”에서, 그리고 기독교에서 표현된다. 계시 종교의 철학적 해석에서 의식이 자기 자신과 일치될 수 있다. 자신의 진리로 여기는 것과 실제적인 것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의 대립은 철학의 “절대지” 안에서 지양되었다. 매우 복잡하게 전개되는 헤겔의 정신 현상학은 결국 계시 종교의 철학적 해석에서 의식이 자기 자신과 일치된다는 결론에 도달된다. 이 전반적인 맥락에 대한 판넨베르크의 진술을 인용해서 보자.

정신 현상학은 의식이 어떻게 자신에 대한 반성을 통해서 자신을 뛰어넘는 진리 의식에 도달했는지를 설명한다. 반성 운동(Reflexionsbewegung)의 매 단계마다 의식이 자신의 진리로 여기는 것을 실제로 그 내용과 비교함으로써 말이다. 이 양측이 연결됨으로서 결과적으로 의식의 자기 경험에서 매 경우마다 새로운 단계가 발생한다. 따라서 감각적 소여 안에 자신의 진리가 담겨 있다고 여기는 대상적인 의식으로부터 단계적으로 절대 진리의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의식에 이르기까지 고양된다. 이 경우에 이런 고양의 길(der Weg der Erhebung)은 동시에 총체성(Totalität) 의식을 경험하는 ‘기구’(Organisation)이다. 즉 이러한 전체 과정이 결과로서만, 그리고 이런 기구가 의식 경험의 전체에 관심을 기울이는 한에서 종교와 철학은 절대지(知)에 대한 의식으로서 의미가 있다.(315)  

헤겔의 <정신 현상학>이 끌어나가고 있는 기본적인 것은 단지 주관적으로만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그 어떤 명제도 진리로 주장될 수 없다는 점이라 하겠다. 더 나아가서 유한한 주관이 절대성으로 확대되는 것은 인간의 자유가 실현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그는 주장했다. 오히려 주관의 절대성으로 인해서 자유가 파손된다. 참된 자유는 하나님 의식에 직접 기인하는 것이며, 또한 자신의 유한성을 절대화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연결을 의식하는 데서 발생한다.  

헤겔 철학의 신학적 의미

헤겔은 칸트에 많은 영향을 받은 현대신학이 계몽주의의 오성(悟性, Verstand)비판에 의해서 결국 감정의 주관성(각성신학), 또는 도덕주의로 물러섰다고 보았다. 이 말은 기독교의 도그마를 무미건조하게 만들어버렸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헤겔은 기독교의 기본적인 교리가 철학에 의해서 유지되고 보증된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앞에서 칸트를 다룰 때 언급했던 것처럼 경건주의적 감정신학이나 윤리신학에 머문 채 고대 교회의 교의학을 철학적 기반에서 개념적으로 관철시키고 정당화하는 작업을 포기하고 있었다.
헤겔이 그 당시 관념주의 철학에 따라붙던 범신론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판넨베르크에 의하면 그런 비판은 헤겔을 오해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내재적이며 삼위일체론적인 하나님의 생명과, 다른 한편으로 세계의 창조와 화해 안에 긷든 하나님의 계시 사이의 차이를 헤겔이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기독교 신학에 대한 헤겔의 해석에 취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쉴라이에르마허의 취약점보다 훨씬 미미하다. 쉴라이에르마허는 삼위일체론을 하찮게 여겼으며, 또한 하나님을 창조자로 생각하는 점에서도 헤겔보다 진지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개신교 역사에서 쉴라이에르마허가 교부로서 자리를 잡는 대신에 헤겔은 주변적 현상에 머물렀다는 건 헤겔을 범신론자로 본 의혹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헤겔이 개신교 신학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특히 삼위일체론에 대한 갱신 작업은 그의 공로가 크다. 이런 여파가 19세기 중엽 쉴라이에르마허 학파에게도 미쳤으며, 그 이후로 개신교 신학에서 삼위일체론이 논의의 중심이 되었다. 판넨베르크의 설명에 의하면 헤겔을 통해서 문자영감설과 초자연적 연결에서 해방된 계시 개념도 역시 이런 사태와 밀접한 가운데서 논의되었다. 특히 칼 바르트는 자신이 공부했던 리츨 학파와 결별하고 1차 세계 대전 이후로 계시신학의 갱신으로 돌아섰으며, 기독론적인 신론을 제시하기 위해서 삼위일체론의 토대로 돌아섰다. 이제 바르트는 기독교 신학 전반을 삼위일체론에 토대를 두고 전개해나가기 시작했다. 20세기 후반에는 융엘과 판넨베르크가 헤겔 철학과의 연결 가운데서 삼위일체론을 거듭 강조하였다. 이들이 헤겔에게서 배울 수 있는 사실은 “삼위일체론이 단순히 전반적인 신론에 대한 부록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실성 전체를 기독교적으로 이해하는 데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라는 점이다.(338).  

이제 헤겔 철학의 신학적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리는 두 가지 대목을 여기서 제시할 수 있다.

참된 무한자 개념

판넨베르크의 설명에 따르면 헤겔은 참된 무한자(das wahrhft Unendlichen) 개념을 통해서 신론을 설명하려고 했다. 원래 하나님의 무한성 개념은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이후로 기독교 신론의 근본이었지만 여기서는 무한자가 유한자와 대립적이라는 관점에서만 다루어졌다. 이에 반해서 헤겔은 무한자가 유한자의 차이 및 이런 대립을 극복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성육신이 참된 무한성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자기계시로 이해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과 절대를 일치시키는 성육신 사상은 이런 점에서 인간의 자유와 연결된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하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 8:36)는 말씀처럼 이 차이가 하나님의 계시로 인해서 극복된다는 말이다. 이런 구도를 삼위일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아버지는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알고 있는 아들 안에서 자신의 타자로 등장한다. 참된 무한자는 자기 자신의 타자이기도 하며, 그리고 타자 안에서 역시 자신과 일치한다.”(343).
그런데 판넨베르크에 의하면 자신을 자신의 타자에게 정립시킨다는 의미에서 절대를 주관으로 생각하는 것은 철학적으로 충분하지 못하다고 한다. 또한 절대가 자기를 포기함으로써 자신을 정립한다는 이러한 구상은 신학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서 삼위일체론의 순수한 의미가 빗나가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로부터 아들과 영의 출현에 상관없이 삼위일체적 인격들의 동일한 등급이, 또한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아들과 영의 인격적인 독립성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344).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헤겔만이 아니라 어거스틴과 안셀름 등으로부터 시작되는 기독교 전체 신학 흐름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유독 헤겔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오히려 그에 의해서 19세기 신학이 근본 주제를 회복할 수 있었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더구나 헤겔이 주관으로서의 절대라는 명제를 삼위일체론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그것이 기독교 삼위일체론의 역사와 연관되었기 때문에 그의 철학은 19세기 신학에서 칼 바르트에 이르기까지, 또한 그 이후 시대까지 삼위일체론에 대한 관심을 갱신시켰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학을 위한 헤겔의 가장 중요한 공헌이다. 헤겔 철학은 분명히 기독교의 중심 교의를, 그 무엇보다도 삼위일체론과 그것에 토대를 둔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론을 다시금 신학의 중심이 되게 했다.”(345).

그렇지만 헤겔의 사변적 삼위일체론은 신학적으로 비판받을만한 부분이 있다. 신학은 삼위일체론적 진술을 주관으로서의 하나님 개념에서 끌어내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계시에서 아버지, 아들, 영이 한 짝을 이룬다는 사실에 대한 진술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19세기 신학에 깊은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절대 관념의 자기 해석에 대한 헤겔의 명제와 삼위일체론의 연계는 신학자의 입장에서 명쾌하지 못한 구석이 있다는 말이다.  

계시개념

기독교 신학이 기본적으로 계시론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헤겔이 이 계시 문제를 다시 신학의 중요한 주제로 부각시켰다는 사실은 신학의 역사에서 대단한 성과라 할 만하다. 이 대목은 판넨베르크의 진술을 그대로 인용하겠다.

헤겔에 따르면 자기를 계시하는 것은 정신으로서, 혹은 주관으로서 하나님의 본질에 속한다. 이런 주제는 헤겔의 사변적 삼위일체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자기계시는 타자에게서 자기를 인식하는 조건인 포기와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포기된 것과의 일치는 계시를 통해서 재생산된다. 이런 의미에서 헤겔은 이미 창조를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 이해했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와 달리 ... 하나님의 자기 계시 사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使信)과, 또한 그의 역사와 연결시켰다. 그렇지만 헤겔의 사상은 신학자들이 예수의 가르침과 그의 역사에 나타난 아들과 아버지의 결합에 집중한 채 삼위일체론을 계시사건의 신학적 해설로 이해하도록 도왔다. 그래서 지난 20세기 신학에서 칼 바르트는 계시론과 삼위일체론의 연관을 회복시켰다. 그리고 그에 의해 닦여진 길에서 많은 논의들이 발전되었는데, 이 일은 계시 개념과 역사적 주제와의 연계가 바르트에 의해서 손상되어버린 것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졌다. 일정한 부분의 비판이 있었지만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계시는 곧 자기계시라는 사상에 대한 논의가 하나님과 삼위일체론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계시개념은 근원적으로 셸링에 의해서 계시를 기적적인 역사적 사실의 활동이나 성서 영감론으로 이해하는 것의 대안으로 그 토대가 잡혔는데, 이런 계시 개념은 신학에서 헤겔에 의해서 아들이 아버지에 대해서 갖는 관계와 기독론적으로 연계됨으로서 관철되었다.(346).

판넨베르크는 헤겔 부분을 정리하면서 기독교 신학이 헤겔에게 감사해야 해야 할 내용을 몇 가지로 제시했다.
1) 하나님을 실제적인 무한자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2) 무한자 개념과 연관된 삼위일체론
3) 기독교 성육신 신앙의 갱신
4) 세계를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 이해하는 것
5) 이 계시를 삼위일체론과 연관시켜서 생각하게 된 것.

판넨베르크에 의하면 관념론 철학자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헤겔처럼 기독교와 적극적인 관계를 맺은 철학자가 없었다고 한다. 셸링, 칸트도 나름의 역할이 있었지만 헤겔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다음과 같은 판넨베르크의 진술로 이 장을 정리하자.

헤겔은 분명히 이런 점에서 칸트보다는 훨씬 기독교 정신에 근접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칸트는 기독교의 중심 교리에 대해서 헤겔보다는 훨씬 삼가는 입장을 보였다. 그렇지만 사변적 신학자들의 세력이, 즉 신학자들 중에서 헤겔의 학설을 따르는 자들이 이렇게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소위 헤겔의 범신론에 대한 선입관을 제외한다면, 다만 한 가지 근거만 갖고 있을 뿐이다. 즉 모든 것을 포괄하는 논리적 필연성에 대한 헤겔의 주장을 의심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이 필연성은 창조만이 아니라 인간의 타락과 사죄를 신적인 관념의 전개에서 필연적인 수밖에 없다는 동기로 제기될 필요가 있는 것이었다. 헤겔이 이런 필연성 자체를 자유라고 생각해보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의 입장에서는 이런 헤겔의 시도가 세계를 창조하는 하나님의 자유를 손상시켰다고 보았다. <중략> 기독교 신학에서 피조물의 현존은 단지 절대 관념의 발전에서 스쳐지나가는 나루터만이 아니다. 단일 실체론을 성서의 창조 신앙에 어울리게 하려는 스피노자의 난점들이 헤겔에게서는 부분적으로 해결되었다. 그러나 심층적으로는 극복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헤겔은 피조물의 독립적인 현존을 하나님의 결정적인, 즉 종말론적으로 최종적인 의지의 표현으로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347,348)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61 조직신학 6장: 예수의 승천과 재림 [3] 2005-04-13 5667
60 여성신학 7장: 페미니즘과 영성 2005-04-11 4269
59 조직신학 &lt;조직신학&gt; 5장 십자가와 부활 [3] 2005-04-06 5896
58 조직신학 &lt;조직신학&gt; 4장: 구원론과 기독론 (3월31일) [1] 2005-03-30 6344
57 여성신학 6장: 레티 M. 러셀의 여성신학적 착상 2005-03-29 5400
56 여성신학 5장: 로즈메리 래드포드 류터의 여성신학적 착상 2005-03-29 6062
55 조직신학 &lt;조직신학&gt; 3장 계시와 역사(3월24일) 2005-03-23 5978
54 여성신학 4장:엘리자베쓰 쉬쓸러 피오렌자의 여성신학적 착상 2005-03-22 5116
53 여성신학 3장: 메리 데일리의 여성신학적 착상 2005-03-22 6818
52 조직신학 &lt;조직신학&gt; 2장: 계시에 대해서, 3월17일 [4] [2] 2005-03-16 6096
51 여성신학 2장: 여성과 해방 2005-03-14 4307
50 조직신학 조직신학1, 1장. 신학이란 무엇인가?(3월3일) 2005-02-11 7934
49 조직신학 조직신학1, 강의계획서 [1] 2005-02-11 7891
48 여성신학 1장: 신학적 사유를 위한 몇 가지 제언 [5] 2005-02-11 4347
47 여성신학 강의 안내 [1] 2005-02-11 4713
46 신학입문 12장 신학과 과학(교정) 2004-11-24 4747
45 10장 인간학적 철학과 신학(교정, 5월27일) 2004-11-24 4185
44 10장 신학의 세계 지평 2004-11-23 3955
» 9장 헤겔철학과 신학(교정, 5월20일) 2004-11-17 4897
42 9장 언어의 세계와 신학의 세계, 11월18일 2004-11-16 4048
TEL : 070-4085-1227, 010-8577-1227, Email: freude103801@hanmail.net
Copyright ⓒ 2008 대구성서아카데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