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플라토니즘과 초기 기독교 사상(교정, 3월23일)

조회 수 4390 추천 수 159 2004.10.04 10:22:34
4장
플라토니즘과 기독교

플라톤(BC. 427-347) 철학의 중심에 ‘이데아’(idea)가 놓여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상식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것에 연루된 전반적인 사상을 따라잡는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특히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이 관념철학의 단초일 뿐만 아니라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철학 사조와 직간접으로 연루된다는 점에서 이데아를 중심으로 한 플라톤의 철학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깊이와 폭을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가 플라톤의 이데아를 거칠게 표현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실질들을 규정하는 어떤 근원적 세계가 실제로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 앞에 가장 확실하게 놓여 있는 것은 분명히 어떤 관념이 아니라 물질과 현상이다. 나무, 돌, 불, 그리고 계절의 변화, 사랑, 분노 같은 것들이다. 이런 사물과 현상을 단지 그렇게 늘 있는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더 이상 철학적인 사유는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지만 그 사태를 조금이라고 세밀하게 인식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많은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우리의 감각적 인식에 들어오는 이 모든 사물과 현상은 계속해서 변한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계절이 바뀌고 우리가 늙어 죽는다. 헬라인들이 확인할 수 없었지만 우리에게 시나브로 그 비밀을 벗어내고 있는 우주 세계도 역시 계속해서 시작과 사멸의 길을 걷고 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다는 이 엄연한 사실 앞에서 플라톤은 영원한 그 무엇이 어디에 있다고 유추하게 된다. 이 세상의 모든 무상한 것들을 출현시키고 유지시키며 다시 거두어들이는 그런 절대적이고 영원한 세계가 곧 이데아이다. 이것은 일종의 ‘실체론적 형이상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유방식이다. 이런 점에서 어거스틴이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과 플로티누스의 일자 개념에 근거해서 기독교의 신론을 전개한 것은 타당하다. 특히 플라톤의 이데아는 이 세계를 초월하는 궁극적 근원이라는 점에서 창조자 야훼 하나님을 변증하기 위한 안성맞춤의 도구인 셈이다. 만약 플라톤의 이데아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규정하는 보편적 현실(unniversal reality)이라고 한다면 하이데거의 존재, 노자와 장자의 도, 그리고 기독교의 계시와도 접목되는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판넨베르크의 설명에 따라서 주로 교부시대에 일어났던 플라토니즘과 기독교의 사상적 만남에 대해서 검토하고자 한다. 판넨베르크는 플라톤 철학 전반을 다루는 게 아니라 기독교와의 관계되는 부분만 다루는데, 그 핵심은 곧 신론, 생명 사상, 그리고 인식론과 은총론의 연관성이다. 이런 핵심적인 문제를 정리한 다음에 기독교 사상에서 플라토니즘이 어떤 후속 작용으로 나타났는가에 대한 부분도 다루고 있다.

1. 신론과 플라톤의 원리론  

교부들이 플라톤 철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가장 근본적인 동기는 이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의 초월성이 바로 플라톤 철학의 핵심적인 구성요소와 연관된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중요한 철학학파의 하나였던 스토아학파는 신을 질료적 세계에 내재하는 로고스로 생각했고, 에피큐로스학파는 신들이 자신들의 환희만 생각할 뿐이지 세계와 인간을 염려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플라톤주의자들은 영원하고 영적인 본질로서의 하나님을 질료적 세계와 구별했다. 이것을 다음과 같은 구도로 요약하는 게 좋겠다. 스토아학파의 신은 이 세계에 전적으로 의존했으며, 에피큐로스의 신은 아무 상관없이 초월한 뿐이지만 플라톤의 신은 스토아학파의 섭리사상을 에피큐로스의 영적이며 초월적인 신관과 연결시킴으로써 내재와 초월을 함께 아우르는 사상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서 플라토니즘은 이제 창조자 하나님이라는 성서적 표상에 가까운 하나님 이해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판넨베르크의 설명에 따라서 성서의 창조론과 플라톤 철학의 관계를 살펴보자. 플라톤이 집필한 <티마이오스와의 대화편>에는 형태를 갖추지 못한 재료로 가시적인 코스모스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데미우르고스라고 불리는 신적인 세계 창조자가 원소로 채워진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단순하게 보면 성서의 창조 사건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로 채용될 수 있다.
어거스틴(354-430)은 <신국>에서 플라톤의 하나님 표상과 기독교 신학 사이에 유사점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언급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결코 육체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 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변화될 수밖에 없는 모든 것은 지고(至高)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보았다.” 플라톤 철학에 대한 이러한 입장에 의해서 어거스틴은 이방인의 하나님 인식에 관한 사도 바울의 언급인 로마서 1:19을 플라톤주의자와 연계시켰다. “이렇게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도록 계시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생성된 것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있는 불가시적인 것을 인식했으며, 또한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바라보았다.”(Ⅶ,6). 어거스틴에게는 플라톤주의자들이 기독교 신학자들과 가장 가까운 사상가들인 셈이었다.
심지어 어거스틴은 신플라톤주의자들이 삼위일체론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까지 주장했다. 일자(Einen), 이성(Nus), 세계영혼(Weltseele)이 세 단계의 계급을 이루고 있다. 일자는 아버지, 누스는 아들, 세계영혼은 곧 성령과 유비적 관계를 맺는다. 좀 더 큰 틀에서 볼 때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은 플라톤주의가 발전해온 한 분파로 해석될 여지가 없지 않다. 플라톤주의가 발전해나가면서 만물의 세원리론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은 곧 누스, 이데아, 영혼이다. 이런 과정을 우리가 상세하게 따라가는 일은 너무 복잡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공부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기독교 신학이 플라톤주의와의 대화를 통해서 삼위일체론의 사상적 근거를 확보했다는 점만 확인하고, 이에 따른 몇 가지 필요한 세부 설명을 보충하는 것으로 이 대목을 정리하도록 하자.
일자와 누스가 동일한가에 대한 질문은 플라톤주의 안에서 매우 분분하게 전개되었다. 아카데미의 제2세대 지도자라 할 크세노크라테스(BC. 314년 졸)는 이데아를 누스에 상관없이 독립적인 것으로 간주했을 뿐만 아니라 신적인 누스 자체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런 견해는 후에 알비노스에 의해서 갱신되었고 플로티노스에 의해서 계승되었다. 신플라톤주의자인 플로티노스(204-269)는 일자를 누스의 영역에서 구분했다. 일자는 자기의 이데아를 인식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인식하며, 또한 거기서 자기와 하나가 됨으로써 누스 안에 현재한다. 그러나 누스는 인식하는 자와 인식되는 자 사이의 양식적인 차이를 즉자적으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일자가 아니다.
스토아 철학의 로고스와 플라톤주의의 세 원리의 하나인 세계영혼은 로고스를 이데아의 총괄개념으로 생각한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에 의해서 연결되었다. 이런 생각은 2세기 호교론자들 이래로 기독교 신학자들에 의해서 요한복음의 로고스 개념(요 1:1-14)을 예수와 아버지의 관계에 대한 특징으로 해석하는데 적용되고 확장되었다. 초월적인 하나님의 이성으로부터 로고스의 출현은 로고스 기독론의 중심 주제가 되었는데, 이 기독론은 예수를 아버지와 일치시키지 않고도 그를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기독론적인 사유를 가능하게 했다. 이 대목에서 교부신학의 로고스는 스토아학파의 우주론과는 달리 세계를 초월하는 능력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로고스는 플라톤의 세계영혼과도 구별되었다. 이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에 어울리는 개념이었다. 기독교 삼위일체론에서는 일자, 누스, 세계영혼이라는 플라톤의 세 원리처럼 가시적인 세계로 넘어가는 단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자유롭고 창조적인 근원으로서 유한한 사물을 뛰어넘는다는 게 중요했다.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 신학 사이의 차이점을 살펴보자. 플로티노스의 경우에 “자신을 계시하는 하나님이며, 근거와 근원이면서 동시에 첫 번째이며 일자인 하나님은 상상할 수 없다.” 이와 달리 성서의 하나님은 창조자이며 자기를 게시하는 분이시다. 여기서 창조세계와 하나님은 긴밀하게 연결된다. 왜냐하면 창조자로서의 하나님은 피조물을 자기 자신과 친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학에서는 삼위일체론적인 인격의 상호적 개방성이 그 토대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플로티노스가 생각하는 누스의 일자와 영혼의 일자는 그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현재하는 것이지 타자를 찾아 나서지 않는다. 왜냐하면 “존재와 사유의 피안에 존재하는 순수한 일자 개념으로부터 ... 다원과 운동을 필요로 하게 될지도 모르는 모든 차이가 제거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즉 타자를 향하는 일이 없어야만 한다. 바로 이런 대목에서 삼위일체론*에 관한 기독교적 사유는 단일성과 다원성의 관계에서, 또한 단일성에 대한 생각으로 플로티노스를 극복했다. 특히 플라톤의 누스 개념이 이러한 극복의 단초를 제공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영으로 언급하는 요한복음의 말씀에 토대를 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참고적으로 삼위일체론에 관한 교리사적 과정과 그 내용을 검토하자. 325년 세계 최초의 종교회의가 콘스탄틴 황제의 명령에 의해서 니케아에서 개최되었고, 381년에는 2차 종교회의가 데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서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렸는데, 핵심적인 내용은 니케아 회의에서 결정되었고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는 니케아의 내용을 추가적으로 확인하는 절차였다. 니케아 회의에서 결정된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들은 창조되지 않았고 아버지로부터 태어났으나 아버지처럼 영원하고 아버지와 본질이 같다.” 두 번에 걸친 종교회의와 그 어간에 벌어진, 그리고 약간은 교회의 정치적인 힘이 작용한 그 투쟁이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를 결정한 셈이다. 325년 첫 번째 회의에서 대표적으로 이질론(헤테로 우시오스)을 주장한 아리우스와 동질론(호모 우시오스)을 주장한 아다나시우스가 대결하였다. 이 외의 이후에 계속된 논쟁에서 유질론(호모 이우시오스)자들이 개입한다. 몇 번의 반전을 거쳐 381년 회의에서 니케아 신조를 확인하고 아리우스주의를 완전히 배격함으로써 삼위일체론이 확정되었다. 이러한 세 입장의 차이는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기독교회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다. 초기 기독교회가 오랜 논쟁을 통해 결국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의 동질론을 선택했다는 것은 하나님 인식의 혁명적인 전환이다. 예수에게서 인간성을 제거하지 않으면서도 그를 하나님과 동질로 생각한 그러한 하나님 인식은 유대인들의 사고범주 안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신성모독이었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는 그런 논쟁과정을 통해서 인간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졸저, 기독교를 말한다, 204).

교리사적인 차원에서 볼 때 기독교 신학의 삼위일체론은 주로 아들 예수와 아버지 하나님의 본질이 동일한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다. 즉 삼위일체는 플로티노스가 생각하듯이 단일성에만 묶여 있는 게 아니라 절대적인 단일성을 규정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문제에 대한 기독교의 통찰은 단일성 개념 안에서 구별된 순간에 삼위일체 교의에 상응하는 동등성(aequalitas)을 부각시킴으로써 신(新)플라토니즘의 단계법칙을 벗어나게 되었다. 즉 기독교 교부들이 예수와 하나님의 단일성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 동등성을 확보했다는 말이다. 이로 인해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들이 아버지와 동질(homousios)이라는 신조가 등장하게 되었다.

2. 하나님을 닮아가는 생명관념

플라톤 사상이 기독교 신학에 끼친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호모이오시스 테오(homoiosis Theo)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는 말이나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말이 원래 기독교의 독창적 발상이라기보다는 기독교보다 역사적으로 훨씬 앞서 있었던 플라톤의 저서에 등장했다는 의미이다. 초기 기독교가 플라톤으로부터 이런 사상을 배웠다는 사실이 놀랍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으로 인해서 기독교의 독창성이 훼손된다는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런 사실은 하나님이 여러 방식으로 기독교 사상을 풍요롭게 발전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오늘 우리에게 대입시킨다면 현대 물리학을 통해서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 사상이 훨씬 깊어지는 것과 같다. 우선 플라톤의 ‘호모이오시스 테오’ 개념을 따라가보자.
“하나님을 닮아감”이라는 표현은 플라톤에게서 여러 관점으로 나타난다. 국가편의 마지막 책에는 이렇게 언급되어 있다. “정의로워지려고 애를 쓰는 사람은, 그리고 신을 닮아갈 정도로 덕을 실천하는 사람은 신들에 의해서 버림을 받지 않는다.” 또한 여섯 번째 책에는 이렇게 진술되어 있다. “신적인 것들과 조화된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은 당연히 조화로운 인간이 되며, 인간에게 가능한 만큼의 신적인 상태에 이른다.” 신들이 그 본성상 불변적이며 영원한 이데아를 직관함으로써 그 불변성을 유지하는 것처럼 인간도 역시 덕을 통해서 항상성을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죽어야만 하는 인간의 숙명 가운데서 악이 여전히 준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 악으로부터 가장 신속하게 달아나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이 길은 가능한 대로 신을 닮는 것이다. 인간이 이런 통찰로서 정의로워지고 경건해질 때 이렇게 신을 닮아가게 된다.” 플라톤에게 최고의 선은 “신을 인식하고 닮아가려고 애를 쓰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그리고 이런 근거에서만 사람은 행복하다.” 따라서 플라톤에 따르면 “철학을 한다는 것은 본성상 비육체적인 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판넨베르크의 설명에 따르면 ‘호모이오시스 테오’라는 플라톤의 사상은 초기 기독교 교부들에게 여러 차원에서 영향을 끼쳤다. 그가 인용하고 있는 이레네우스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은 지속성과 영원성을 의미한다. 영원성은 불변성의 명예이다. 이러한 질서, 하모니, 태도를 통해서 창조된 인간은 창조되지 않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이 된다. 아버지가 그것을 원하시고 결정했으며, 아들은 그것을 움직이게 하고 형성하며, 영은 영양을 주고 키운다. 그래서 인간은 점진적으로 앞으로 전진하며 완성된다. 말하자면 창조되지 않은 이에게 완전히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창조되지 않은 이, 즉 하나님이 곧 완전한 분이다. 그러나 인간은 우선 변화되어야 하며, 그런 다음에는 자라고, 강해지고, 배가되며, 회복되고, 영화스러워져서, 결국 하나님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직관한다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목적이며 불변성의 근원이다. 이 불변성은 우리를 하나님에게 가까이 이르게 한다.(Irenaeus, adv. haer, 4, 38,3)

이레네우스 이외에 많은 신비주의자들도 플라톤의 이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모세의 생애에 관한 저서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그는 플라톤의 에로스 사상에 대한 호모이오시스 테오의 기독교적 해석을 자세하게 다루었다. 플라톤은 영혼을 호모이오시스 테오의 방향으로 고무시키는 힘이 에로스라고 보았다. 플라톤에 의하면 모든 인식은 에로스에 의해서 견인된 자기 기억에 기인하는데, 자기 기억은 지상에 태어나기 전에 본 존재자들의 진리와 직면해 있는 것이다. 그레고리우스는 모세의 생애에서 이러한 플라톤의 사상을 모세와 하나님의 관계로 변형시켜 기술했다. 하나님을 보게 해달라는 모세의 간구는(출 33:18) 이렇게 진술되어 있다. “이러한 것에 대한 경험은, 소위 하나님을 보고 싶다는 소원은 내가 볼 때 그 본성상 아름다움을 지향해야 할 영혼의 분명한 에로스적 구조가 하나의 조건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즉 이 희망은 이미 알고 있는 아름다움으로부터 그 위에 놓여 있는 것을 향해 나간다. 이를 통해서 희망은 아직 은폐되어 있는 것을 향한 열망에 불을 지핀다. 이로써 아름다움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은 원형에 대한 마음이 가득하기를 갈망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각각 나타난 것들을 갈망의 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형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대담하게 간구하게 하는데, 어떤 거울이나 환영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즐기는 게 아니라 직접적인 대상 안에서 즐긴다.” 그레고리우스에 따르면 호모이오시스 테오는 영혼의 생명 과정에 기인한다.
유스티누스는 영혼이 신과 유사하다는 플라톤의 견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만약 영혼이 그 본질상 하나님과 유사하다면 영혼은 스스로 이미 하나님에 대한 직관을 소유하는 게 틀림없다. 플라톤에게 인간의 영혼은 선재적인 성격이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 사상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미 어거스틴이 말한 대로 영혼은 하나님에게서 피조된 것이기 때문에 신적인 본질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영혼은 성령에 의해서 하나님을 직관할 수 있는 선물을 받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유스티누스의 제자인 타티아누스는 영혼을 그 본성상 죽어야 할 존재로 간주했다. 다만 불멸성은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판넨베르크의 설명에 따르면 유스티누스와 타티아누스는 플라톤보다는 기독교적인 플라토니즘이라 할 수 있는 영지주의를 선택했다고 한다. 이원론적 영지주의자들, 특히 발렌티누스에 따르면 프뉴마의 불꽃은 영혼의 본성에 속한다. 그래서 그 영혼이 자유롭기 위해서 물질로부터 벗어나야만 했다. 이런 영지주의 학설은 기본적으로 “육체를 따르는” 삶과 “영을 따르는” 삶이라는 바울의 입장(롬 8:4)과 상응한다.
오리게네스는 인간을 두 영혼을 구별하는 영지주의자와 달리 단순히 육체적인 영혼과 영적인 영혼이라고 보았다. 즉 영지주의의 “극단적인 바울주의”를 반대하고 영혼의 단일성을 주장한 것이다.
이제 이런 사상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기독교 신학은 영혼이 옮겨 다닌다는 플라톤의 학설만이 아니라 그 선재설도 거부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교부들이 플라톤주의와의 논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신론에서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를 유지했으니 인간론에서는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것이다.  

3. 조명과 은총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가 플라톤의 인간론을 모두 거부했다고 볼 수는 없다. 비록 영혼의 선재설은 기독교 창조론과 어울릴 수 없었지만 ‘호모이오시스 테오’ 개념은 미래에 완성될 세계에서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직관할 수 있다는 사실의 토대가 된다. 다만 여기서 기독교 신학이 플라톤 인간론과 대립되는 부분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즉 하나님을 직관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선재적으로, 또는 본질적으로 주어진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는다는 점이다. 바로 이 은총 개념이 조명을 통해서 인식에 이른다는 플라톤의 철학과 연결되는 대목이다. 유스티아누스의 은총론은 이데아를 인식하기 위해서 애를 써야 한다는 플라톤의 생각에 근거해서 인식의 순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데아에 대한 통찰은 에로스로부터 견인되어 참된 것을 모색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그 상승의 마지막 순간에 아름다움에 대한 시야가 ‘갑자기’ 그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플라톤의 주장은 곧 은총을 통한 인식의 비약과 비슷한 논리이다. 유스티아누스는 갑자기 주어지는 이런 영적인 시야를 ‘거룩한 영’이라고 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이런 조명 사건을 세례와 연결시켰다. 이런 생각은 좀 신비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그 배경에는 조명을 통해서 인식에 도달하려는 플라톤의 사상이 놓여 있다.
오리게네스도 기독교의 하나님 인식론에서 볼 수 있듯이 플라토니즘의 조명 개념은 하나님의 은총이 작용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따라서 인간 자신에게서 발견하지 않는 그 무엇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어거스틴의 은총론에서 이런 기독교의 인식론이 구체화한다. 그는 인식에 관한 플라톤 학설을 조명과 은총론의 구조에서 상호 연계시켰다. 그는 모든 인식이 신적인 조명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영혼이 진리 자체인 성령의 불빛에서만 사물의 이데아를 인식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이 이데아는 하나님의 영 안에서, 즉 하나님의 로고스 안에서 원형적으로 종합되는 것이지 인간 영혼에 모사적으로 각인된 것은 아니다. 영혼이 받아들이는 인상으로부터, 영혼이 지각하는 대상으로부터 일종의 기억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기억은 모사적으로, 그러나 잊혀진 채 영혼에 놓여 있는 영원한 진리에 관한 것이다. 판넨베르크에 따르면 어거스틴은 모든 것을 창조한 하나님이 ‘모든 인식을 불러오는 영의 빛’이라는 점에서 플라톤주의자와 일치한다. 그렇지만 그는 영혼이 선재적 상태를 기억한다는 플라톤의 조명 사상을 따르지는 않고, 오히려 아남네시스(상기론)가 옳다고 본다. 이 아남네시스는 이성으로서의 인간 영혼에 놓여 있는 무의식적인 깨달음을, 모든 경험에 앞서 있는 선험적 깨달음을 각성시킨다는 개념이다. 이 각성(admonitio)은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해서 영혼과 조화된다. 결국 어거스틴의 은총론과 플라톤의 조명론이 연계됨으로써 하나님은 인간 구원을 위해 인간 영혼 안에서 활동하시는 분으로 이해되었다.
그렇지만 판넨베르크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한 어거스틴의 사상이 중세기 신학에서 부분적으로만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그 이유는 13세기 아리스토텔레스학파가 등장함으로써 순수하게 세속적인 인식론 모델을 통해서, 즉 자연적 계시를 통해서 자연적 인식의 영역이 강조된 반면에, 어거스틴의 조명론은 은혜로운 인식의 영역에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4. 플라톤 학설에 대한 기독교의 교정과 변형  

앞에서 플라톤 사상이 기독교 신학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그리고 기독교 신학이 플라톤 사상을 부분적으로 수정한 내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언급했지만 이 항목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그런 내용을 다루게 될 것이다. 교부들이 플라톤 사상에서 하나님을 변증할 수 있는 단초를 적지 않게 발견하긴 했지만 그것을 아무 조건 없이 그대로 수용한 게 아니라 명확한 신학적 관점에 따라서, 즉 구약성서와 초기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 따라서 검증과정을 거쳤다는 말이다. 큰 틀에서 볼 때 플라톤 학설 중에서 신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부분은 대체적으로 수용된 반면에 영혼의 선재설에 기초를 둔 인간론은 논란이 많았다. 만약 영혼이 선재할 뿐만 아니라 불멸한다면 기독교의 창조신앙과 기독교의 부활 사상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점에서 기독교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데 인간론 문제만이 아니라 신관 문제도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플라톤 사상과 기독교 신학 사이에 적지 않은 틈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론에서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입장 차이였다. 신플라토니즘은 제일 원리로부터 질료적 코스모스로 단계적인 상승이 이루어지는 반면에 창조 사상은 창조자와 창조세계를 대립하는 것으로 보았다. 즉 창조 사상에 창조자와 이 세계 사이에 소통의 길은 없다. 이 세상의 타락은 하나님의 내부가 아니라 피조의 세계에서 일어나며, 유한하고 무상한 본질이 독립적으로 현존할 수 있는 근거도 기독교 사상에는 없다. 이 세상의 피조물들이 독립적으로 현존한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창조적 의지에 의한 것일 뿐이다. 물론 플라톤도 역시 데미우르고스가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기독교의 창조신앙과 동일한 맥락에 있기는 하지만 신플라토니즘에서는 제일 원리와 이 세상 사이에 연속성이 있는 반면에 창조신학*에는 그런 연속성이 없다. 플라토니즘의 창조사상의 초점은 이 세상의 현존에 대한 해명이라는 점이고 기독교의 창조신앙의 초점은 창조자의 창조행위에 있다는 점이 다른 게 아닐까 생각한다. 전자는 이 세계의 신성을, 후자는 그 피조성에 대한 강조라는 점에서 갈라진다고 보아야 한다.

*참고적으로, 창조세계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전통은 갈린다. 이 대목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어거스틴은 죄론에 근거해서 인간과 세상을 부정적으로 접근함으로써 결국 창조영성을 축소시켰으며, 펠라기우스는 긍정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창조영성을 확대시켰지만 그리스도교 전통은 어거스틴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제 이런 문제를 새롭게 풀어주고 있는 매튜 폭스의 글을 아래에 인용한다.
영성전통에서 타락/속량 영성은 창조중심의 영성만큼 오랜 된 것이 아니다. 타락/속량 영성이 되찾아 올라가는 이는 주로 어거스틴이요, “창조계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하느님으로부터 물러납니다.”라고 했던 토마스 아 켐피스이며, 보쑤에 추기경, 코튼 수녀원장, 탄쿼리 신부 등이다. 창조중심의 전통은 그 뿌리가 기원적 9세기까지, 바로 첫 성경저자인 야휘스트의 J자료라는 원전에 미치고, 성경의 시편들과 지혜서들과 많은 예언자들로, 예수와 신약성서의 여러 책으로, 그리고 서양의 바로 첫 그리스도인 신학자인 이레네우스(130-200년)로 올라간다.(매튜 폭스, 황종렬 역, 원복, 창조영성 길라잡이, 분도출판사, 2001년, 9 쪽)

인간의 몸과 영혼의 관계에 대해서 간단히 검토하면 다음과 같다. 신플라토니즘에 의하면 인간의 몸은 영혼의 감옥이나 무덤이지만 기독교 신학에 의하면 오히려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 속한다. 플라톤 학설에 의하면 영혼은 영원한 신성에 속하지만 기독교 신학에서 영혼은 여전히 피조물로서 이 역사 안에서 유일회적으로 살아가는 개인에게 속해 있다. 판넨베르크에 의하면 플라톤이 주장하는 영혼의 선재설은 오리게네스를 제외하고 대개의 기독교 사상가들에게 거부되었다고 한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영혼의 선재설이 아니라 후재설을 가르쳤다. 즉 인간이 죽은 다음에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불멸설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플라톤 학설처럼 영혼이 전이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여러 번 거듭해서 체화된다는 의미이다. 불멸설과 부활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여기서 간단히 처리하기는 어렵다. 일단 초기 기독교가 플라톤의 영혼선재설은 거부했지만 불멸설은 약간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으며, 이 불멸설이 부활론과 긴장을 이루면서 독특한 가르침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보면 된다.
어거스틴은 영혼전이 사상의 신학적 논쟁을 큰 틀에서 전개했다. 그가 이해하고 있는 영혼전이 사상은 헤라클레이토스와 스토아 학설을 통해서 고대 세계상에 영향을 끼친 주기적인 회귀사상이다. 그러나 어거스틴을 비롯한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런 모든 사물의 반복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오직 한번 죽으셨기 때문이다.” 예수는 “죽은 자로부터 부활하시어 더 이상 죽지 않으신다.”(롬 6:9). 이런 논리가 기독교 신학이라고 한다면 이 세계의 주기적 순환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어거스틴은 기독교의 구원신앙으로부터 일단 실존의 유일회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현재를 가장 첨예하게 모든 영원한 것에 대한 결정적인 시간으로 생각하는 것과, 그리고 인간의 개체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그 인간의 영원한 무게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이런 인간 실존의 유일회성과 연결되었다.”(판넨베르크, 74).
어거스틴이 주기적 회귀론의 토대라 할 수 있는 영혼의 전이와 상반된 의미로 제시하고 있는 구원의 유일회성은 신적인 로고스의 성육신 문제와 연결된다. 영원을 시간 안에서 유일회적으로 발생한 사건과 연결시킨다는 것이 고대 철학에서는 매우 낯선 것이었다. 플라톤주의자들은 다른 고대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만이 코스모스를 관리하는 이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이성은 헬라어 ‘로고스’이다. 그렇다면 결국 인간은 이성의 성육신인 셈이다. 그런데 기독교 신학에서는 신적인 로고스와 예수가 일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 예수를 알고 믿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로고스에 참여하는 유일한 길이 된 셈이다. 예수는 역사적으로 유일회적인 존재였다는 점에서 결국 이 세계 역사는 회귀가 아니라 유일회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문제가 2세기에 불거졌는데, 유스티누스는 전체 로고스가 오직 그리스도 안에 나타났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로고스의 ‘기능’, 혹은 ‘씨앗’이 모든 인간에게, 특히 철학자들에게 부여되어 있다는 스토아 학설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서 이제 회귀의 우주론이 아니라 유일회적인 역사로서의 우주론으로 이 세계관아 바뀌게 되었다. 이것이 어거스틴 사상에서 정점에 이른 구원사에 이르는 길목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교부들은 플라톤의 신관과 인간론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다른 한편으로 교정하면서 기독교 신학을 심화했다. 이런 논쟁의 과정에서 플라톤 학설 및 다른 철학과 구별되는 기독교 신학의 핵심적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창조행위, 이 세상의 피조성, 하나님과 이 세상의 상대적 대립, 인간의 영혼만이 아니라 몸도 하나님이 창조한 선한 것. 구원의 유일회성, 이 세계의 유일회성.

5. 플라톤 사상의 계속적인 작용과 그 현실

판넨베르크의 설명에 따르면 서양 철학사에서 플라톤 철학은 고대 플라토니즘으로 끝나지 않고 지난 2천년 동안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고 한다. 어거스틴이 활동하던 4,5세기의 신플라토니즘은 물론이고, 9세기에는 칼렌의 칼 궁정학교 교장이었던 에리우게나에 의해서, 12세기에는 샤르트르의 티에리에 의해서, 15세기에는 니콜라우스 쿠자누스를 통해서, 그리고 마르질리오 피치노가 주도한 플로렌스의 플라톤 아카데미를 통해서, 17세기에는 케임브리지의 플라톤 철학회를 통해서 갱신되었다.
기독교 신학에 끼친 플라토니즘의 영향은 주로 세 방향이다. 첫째는 앞서 우리가 비교적 상세하게 살펴보았던 어거스틴을 통해서 큰 영향력이 행사되었다. 둘째는 맥시무스 컨페서르와 에리우게나를 통해서 다시 영향을 끼쳤다. 셋째는 12세기 아라비아어에서 번역된 <원인에 관한 책>(liber de causis)을 통해서 영향을 끼쳤다.
근대에 들어와서 신플라토니즘의 ‘단계적 코스모스’론은 사라지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원인과 작용의 연계도 역시 작용이 원인에 참여한다는 사상에 의해서 사라지게 되었다.
최근의 개신교 신학에서는 플라톤의 원형-모사-사상이 여전히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쉴라이에르마허는 믿는 자들의 관계성 속에서 그리스도의 하나님 의식이 곧 원형성이라고 생각했다. 칼 바르트도 역시 교회교의학을 원형-모사-관계로 구성했다. 말하자면 삼위일체 안에 있는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또한 그들의 상호적 관계 사이에, 남자와 여자 사이의 그런 관계로 짜인 구조인데, 바르트는 이 안에서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 형상을 보았다.

우리는 지금까지 판넨베르크의 설명에 따른 플라톤 철학과 기독교 사상의 관계에 대해서 대략적인 윤곽을 그려보았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기독교 사상의 체계를 완성한 교부들과 초기 기독교 사상가들이 기독교의 가르침을 그 당시 가장 핵심적인 철학과의 논의를 통해서 발전시켜나갔다는 사실이다. 이런 논의의 단초에 바로 플라톤이 자리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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