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철학과 신학의 관계를 규정하는 제 유형

철학과 신학의 관계 유형을 직접 거론하기 전에 일단 철학이 신학에서 어떤 기능을 감당하는지에 대해서 정리하고 넘어가자. 판넨베르크에 따르면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한 역사적 형태를 갖춘 기독교 교리를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적으로도 기독교 교리의 진리 요청*에 대해서 고유하고 확실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신학과 철학, 13)고 진술했다. 과연 판넨베르크의 이런 진술은 어떤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앞으로 우리가 자세하게 고찰하겠지만 판넨베르크의 주장에 따르면 기독교의 최초 신학자들이라 할 수 있는 교부들 이후로 조직신학은 늘 철학과의 논의를 통해서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여기서 조직신학을 지금처럼 한 분과로만 처리하면 안 된다. 원래의 신학은 그런 분과 없이 거의 조직신학적인 성격으로 구성되었었기 때문에 철학과의 관계가 모든 신학 분과에 해당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미 신학의 토대가 철학과의 논의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었다는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감안한다고 한다면 오늘의 신학도 역시 철학적 사유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이 말은 신학이 철저하게 철학에 의존적이라는 게 아니라 철학적 인식론에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다.

* 일반적으로 기독교 신자들은 기독교의 가르침이 이미 절대적인 진리를 확보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런 믿음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진리가 이미 완벽하게 완료된 것으로 주장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역사적 사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신학적이지도 않다.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말은 곧 기독교 교리가 어느 한 순간에 완성된 게 아니라 오랜 세월을 두고 바른 길을 찾아왔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런 바른 길을 찾는 작업이 어느 역사적 시점으로 끝난 게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곧 기독교는 진리의 길을 여전히 가고 있다는 뜻이다. 신학적이지 않다는 말은 기독교가 기본적으로 종말론적인 진리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 종말이 오기 이전까지의 모든 가르침들은 잠정적인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에는 교회의 가르침도 역시 포함된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독교의 가르침이 진리를 배타적으로, 독점적으로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종교나 학문과 진리 논쟁을 벌여나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교부 신학이 철학과의 연관 속에서 형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철학적 사유에 대해서 심정적으로 반감을 갖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한국의 목회 현장에서는 철학적 사유의 통로인 이성(Vernunft)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소리가 강하게 작동한다는 점에서 이런 현상은 매우 심각하다. 설교자들은 자주 “이성을 의지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세요.”라고 신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이들은 무언가를 착각하고 있다. 믿음과 이성이 대립적인 것으로 보는 것은 무엇인가 근본에 대한 인식이 매우 가볍다는 증거이다. 철학적인 인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신학자인 한 아무도 이성을 절대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믿음의 단계에 이르기 이전까지의 작업은 틀림없이 이성의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가르침이 믿을만하다는 사실의 근거를 합리적으로 설득하지 않으면 그런 신앙은 광신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선 신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해서 일반적인 관점을 정리하자.
신학과 철학 중에서 어떤 쪽이 기독교 전통에 가까울까? 대개의 사람들은 ‘두 말하면 잔소리’라는 식으로 신학이 기독교의 전통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생각은 반쯤만 옳다. 원래 신학(神學)이라는 용어는 플라톤에 의해서 최초로 사용되었는데, 그 당시에 이 신학은 ‘신화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 교부들은 신학이라는 용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오히려 철학(哲學)에 기울어져 있었다. 철학은 신화처럼 허황한 이야기를 진리론적인 차원에서 검증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기독교를 진리로 생각했던 교부들은 기독교야말로 가장 참된 철학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독교는 신학이라는 용어를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해서 받아들임으로써, 이제 신학은 철학에 의해서 그 토대가 검증받아야 할 신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철학 중에서 가장 확실한 철학으로서의 자리를 다지게 되었다.
오늘의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철학을 기독교 신학과 대립되는 학문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런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서 인용되는 대표적인 교부가 터툴리안인데, 그는 “아테네는 예루살렘과 함께 무엇을 이룰 수 있는가? 아카데미는 교회와 함께 무엇을 이룰 수 있는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루터 역시 철학적인 이성을 창녀라는 극단적인 말로 표현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터툴리안도 스토아 철학을 받아들였으며, 자신을 가리켜 오캄주의자였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 루터 역시 로마 가톨릭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비난했을 뿐이다. 우리는 교부들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독교 신학이 철학과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보았다는 증거를 찾기 힘들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플라톤의 철학 안에 삼위일체론이 내재되어 있다고까지 언급한 어거스틴에게서 볼 수 있듯이 신학은 철학과 도반(道伴)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신학과 철학 사이에 역사적으로 전개된 이런 깊은 연관성은 절대정신의 변증법적 발전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될 하나님의 역사가 곧 사랑의 세계라고 본 헤겔 이후에 위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니체, 마르크스, 프로이트 등에 의해서 새롭게 전개된 인간 중심적 세계관, 그리고 다윈과 파블로프 같은 이들에 의해서 발전된 생물학적 인간론은 신학으로 하여금 더 이상 이 세상의 학문과 길동무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런 현상은 교회 외부의 인간학적 착상에도 그 원인이 있겠지만 더 엄밀하게 말한다면 기독교 내부의 원인이 훨씬 크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가 제기한 지동설을 학문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종교적 권위로 억압하던 교회가 그 이후의 모든 학문을 향해서도 똑같은 태도를 보이다가 결국 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불신 당하게 된 것이다. 이런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서 쉴라이에르마허 같은 학자는 기독교 신앙을 ‘절대의존의 감정’이라고 규정했으며, 리츨은 칸트의 영향을 받아 ‘윤리적 요청’에서 하나님의 존재 가능성을 확보해보려고 했지만 그런 정도로는 신학과 철학의 관계가 복원되기 어려웠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남보다 못한 관계로 발전했다.
오늘 기독교 신학이 처한 형편은 어떤가? 1921년 ‘로마서 주석’ 2판을 펴낸 칼 바르트는 기독교 교부 시대에 있었던 신학과 철학의 관계를 복원하는 것보다는 성서와 기독교 2천년 역사적 전통에 집중함으로써 기독교 신학의 내적 정당성을 마련해보려고 했다. 바르트와 쌍벽을 이루는 루돌프 불트만은 실존철학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신앙적 실존을 기독교 신학의 토대로 삼아보려고 했다. 바르트 신학을 말씀 객관주의라고 한다면 불트만 신학은 말씀 주관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들에 의해서 20세기 전반부 개신교 신학이 지배당했다.  
이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의 기독교 운동과 신학은 양극단으로 치우치게 되었다. 한쪽은 이 역사를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해방신학이며, 다른 한쪽은 여전히 개인의 영적이고 도덕적인 구원에만 천착하는 근본주의신학이다. 물론 이 양 극단 사이의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그 여러 갈래를 여기서 모두 설명하기 힘들지만 거칠게 윤관만 잡아서 본다면 다음과 같이 두 경향으로 구획 정리할 수 있다. 전자는 사회, 역사, 혁명이, 후자는 개인, 도덕성, 개량이 그 중심축으로 작용하다. 이들이 사회와 교회, 역사와 실존이라는 양 극단으로 구별되어 있지만 철학과의 대화에 성실하지 못하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물론 넓게 보면 해방신학은 마르크시즘에, 근본주의는 케인즈와 막스 베버의 경제철학과 선을 대고 있지만 교회 현장에서, 특히 설교 현장에서 그런 철학적 치열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서 해방신학적 전통과 근본주의적 전통을 싸잡아 철학의 부재라고 비판하는 것은 물론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다. 해방신학적 전통은 경우에 따라 기계적이고 낙관주의적인 역사관에 빠지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역사의 신비를 향한 영성이 탄탄하다는 점에서 근본주의와 같은 차원에서 다루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 교부들과 지난 2천 년간의 기독교 신학자들이 철학과의 대화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그리고 오늘 우리도 여전히 그런 전통을 유지해야만 하는 이유는 기독교의 도그마가 보편적 진리로서 손색이 없다는 사실과 아울러 그런 보편적 진리의 지평을 확보하기 위해서 가장 적절한 도구가 바로 철학이라는 사실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철학은 단지 역사에 등장했던 구체적인 사조로서의 철학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인간의 삶과 역사의 리얼리티를 해명하려는 모든 인문학적이고 자연과학적인 담론을 일컫는다.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이 세계를 창조하고 예수 사건을 야기했으며, 종말을 완성하실 하나님, 그리고 이 세상을 끌어가는 생명의 영인 성령을 훨씬 적절하게 변증할 수 있을 것이다. (말씀과 삶, 2004년 11월호).

지난 2천년에 이르는 신학의 역사는 자신의 진리를 단순히 자기 독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훨씬 보편적인 차원에서 변증해 왔는데, 그 역사에서 철학과 맺은 관계유형에 대해서 검토하자. 이런 유형은 어떤 절대적인 대답이라기보다는 판넨베르크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인정받고 있는 관점이다. 어떤 점에서 신학과 철학의 관계는 기독교와 세계, 또는 기독교 신앙과 문화의 관계와 비슷한 점이 없지 않다. 리차드 니이버의 <그리스도와 문화>를 읽어본 사람은 앞으로의 논의가 그런 틀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간략하게 유형을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다. 1) 신학과 철학의 대립적인 관계. 2) 동일시의 관계, 3) 철학에 대한 신학의 우위. 4) 신학에 대한 철학의 우위. 그런데 판넨베르크는 이러한 일반적 시각과는 약간 다른 구도로 이 관계를 해명하고 있다.  


1. 철학과 대립하는 신학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으로 추정해볼 때 신학과 철학은 대립적이라는 사실이다. 우선 우리의 개인적인 신앙의 차원에서 생각해보자.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과 앞으로 종말에 다시 오신다는 이 사실은 그 누구도 반론을 제시할 수 없는 합리적인 방식의 설명으로 전달된다기보다는 그것을 비약하는 신앙으로 전달된다고 보아야 한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 사람들에게 철학적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면 신학과 철학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는 일단 대립적인 관계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회사의 차원에서도 역시 이 관계를 대립적으로 강조한 학자들이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터툴리안은 이렇게 말했다. “아테네는 예루살렘과 함께 무엇을 이룰 수 있는가? 아카데미는 교회와 함께 무엇을 이룰 수 있는가?”(Tertullian, De Praescr. haeret. 7,9). 그의 주장은 기독교 신앙과 철학이 공동의 작업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인데, 신학이 철학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신학의 독특성을 훼손당할 뿐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추기경 페트루스 다미아니(P. Damiani, 1007-1071)는 민수기 21:10-13을 알레고리로 해석함으로써 신학자들이 철학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자기의 생각을 전달했다. 이 본문은 일종의 고대 이스라엘 전쟁법의 일부로서 노예로 잡아온 여자 포로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보도이다. 이에 근거해서 우리는 철학이라는 머리털을 밀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필요 없는 이론들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 손톱도 잘라내고(손톱은 의심의 결과이다), 먼저 입었던 옷도 벗겨낸 다음에 신부로 맞아들여야 했다. 이 여자는 그 주인의 여종으로 남아 있어야만 했다. 다미아니의 이런 해석에 근거해서 교회는 중세철학을 ‘신학의 시녀’(ancilla theologiae)로 다루었다.
마틴 루터도 역시 이성으로는 신앙 문제를 다룰 수 없다는 생각으로 신학과 철학이 대립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적이 종종 있었다. 심지어 루터는 이성을 창녀라는 극단적인 말로 표현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M. Luther, WA 18, 164, 25f.).
그런데 판넨베르크의 설명에 의하면 신학과 철학을 대립적인 관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인용하고 있는 위의 신학자들도 근본적으로는 신학 작업에서 철학적 작용과 활동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터툴리안도 그 당시에 지배적이었던 스토아 철학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의 육체성을 주장할 수 있었다. 다미아니는 변증법 자체를 거부한 게 아니라 그것이 신학으로부터 무제한적으로 독립되어 있다는 사실만 거부했다. 루터도 역시 초기에 자신이 오캄주의자였다고 고백했다. 루터가 비난한 철학은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였다. 루터는 스토아 철학의 숙명주의를 비난하면서 이성의 작용에 대해서 매우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즉 자연적 이성이 세계 영역에서 특별한 권한을 갖는다는 점만이 아니라 신앙에 의해서 계발된 이성이 신학에 참여한다고 생각했다.
판넨베르크는 신학의 역사에 나타난 신학과 철학의 대립적인 요소들은 두 사이가 긴장 관계라는 것이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한다. “신학은 이성을 사용해야만 했으며, 또한 철학과의 논의로부터 완전히 멀어질 수는 없었다.”(27). 아마 이런 판넨베르크의 주장을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 한국의 목회자들 중에서는 노골적으로 ‘이성’을 불온시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철학적 인식론이 한국교회에 자리 잡을 공간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신학의 역사를 정확하게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철학과 신학 사이에 그렇게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지는 않을 것이다.


2. 참된 철학으로서의 기독교

기독교를 참된 철학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은 일견 대립의 유형과 반대되는 주장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실상은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대립을 첨예화한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대립을 통해서 결국 기독교가 참된 신학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기독교를 가리켜 “유일하게 확실하고 유익한 철학”이라고 규정했는데, 말하자면 모든 것의 처음과 마지막을 보증하고 완전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철학이라는 뜻이다. “교부들은 이와 달리 기독교 신앙을 철학적 진리의 예증이라고 해석하는 것에 더 이상 만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앙을 지혜의 참된 형태라고 해석함으로써 신앙을 철학의 자리에 정치시켰다. 철학은 그 개념의 단어적 의미를 이 지혜에서 찾았다.”(판넨베르크, 28).  
이 단락에서 우리가 매우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기독교 사상이 자신의 정체성을 신학이 아니라 오히려 철학에서 확보하려 했다는 것은 그 당시에 신학이라는 용어가 신에 대한 가르침을 신화론적으로 나타내고 있었다는 상황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2세기에 신학은 곧 신화론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말이다. 이런 전통은 이미 플라톤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었다. 어쨌든지 결국 기독교 사상이 신학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신화적 철학이나 국가 숭배의 논쟁적인 신학이 아니라 ‘자연신학’의 형태를 가졌다. 이것이 곧 신적인 것의 본질에 상응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신학은 단지 신화적인 형태의 해명이 아니라 우주론적인 차원에서 신을 변증하는 학문으로 자리 매김 되었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교부들에게는 기독교야말로 참된 철학인 셈이다.
특히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기독교 교리를 참된 철학이라는 관점에서 체계화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 철학은 하나님의 섭리이고, 하나님이 그리스인들에게 빌려준 선물이다.” 그는 철학이 지혜, 즉 지혜에 대한 사랑을 추구한다고 보기 때문에 철학을 그 개념에 따라서 해석할 수 있었다. 즉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지혜가 사랑을 추구하는 자의 ‘여주인’인 한에서 신학은 철학의 가르침을 판단하는 준거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신학이라는 단어와 철학이라는 단어의 어원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개념적인 관점에서는 신학(Theologie)은 ‘신의 로고스’이고, 철학(Philosophie)은 ‘지혜 사랑’이다. 이런 개념만 본다면 철학보다는 신학이 기독교 사상에 적합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어원의 역사적 차원에서는 그게 달라진다. 신학이라는 용어는 원래 기독교 안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헬라 철학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뿌리는 앞에서 말한 대로 플라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의미는 ‘신화에 대한 가르침’이다. 신학이 창조자 야훼 하나님이 아니라 헬라 신화에 대한 가르침이라는 게 확실하다면 우리 기독교의 사상을 해명하는 도구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철학도 기독교 안에 뿌리를 둔 용어는 아니다. 그러나 헬라 신화를 검증하는 준거로 작용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신학보다는 철학이 그래도 기독교를 해명하는 수단으로 가깝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위에서 클레멘스가 설명하고 있듯이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은 그 사랑의 근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그 정당성이 확보된다는 점에서 기독교를 가장 정당한 철학으로 보았다. 그렇지만 기독교는 신학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여 신화로서가 아니라 성서에 계시된 야훼 하나님을 변증하는 학문이 되게 했다.


3. 초자연적 계시와 자연적 이성

교부들이 생각한 참된 철학으로서의 신학 개념은 중세기에 접어들면서 철학의 ‘자연적’ 인식과 구별되었다. 이제 신학의 대상은 초자연적인 계시에 근거하는 교리가 된 셈이다.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준거는 과학이라 할 수 있다. 과학적으로 해명이 가능한 것은 자연적인 것이고, 불가능한 것은 초자연적인 것이다. 물론 여기서 과학이 반드시 자연과학에만 한정되는 말은 아니다. 사회과학이나 역사과학도 역시 과학이라는 점에서 논리적 해명 여부가 여기서 기준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성의 기능으로 작용하는 논리에 의해서 해명되는 부분은 자연적인 것이며, 그렇지 못한 부분은 초자연적인 것이라는 대답이 가능하다. 예컨대 하나님의 존재 여부나 구원은 논리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믿음의 결과라는 점에서 초자연적인 사건인 반면에 낮은 구름이 몰려오면 비가 온다는 사실은 논리와 경험에 의해서 확인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자연적인 사건이다. 그래서 중세기에는 신학과 철학의 기능을 이렇게 구별해서 신학은 초자연적인 사건을 파악하고 철학은 자연적인 사건을 파악하는 도구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 관계가 완전히 이원론적으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이 종합적으로 하나님을 드러내는 계기로 작용한다. 이런 문제를 다룬 대표적인 인물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개념을 받아들인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아퀴나스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지성은 감각적으로 주어짐으로써 구체화된 실체의 인식과 연관되기 때문에 인과관계의 개념을 통해서 하나님을 일종의 제일 원인자로 파악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본질을 실증적으로 인식할 수는 없다. 철학이 인간 지성의 최고 행위이지만 그 한계가 있다. 하나님의 본질을 파악하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지성의 본질이 안고 있는 그 한계로부터 고양되려면 신앙의 빛을 받아야만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자연과 초자연 사이에는, 즉 철학과 신학 사이에는 그 어떤 대립과 반목이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초자연적인 은혜가 인간의 본질을 성취하는데, 이는 곧 자연 이성이 신앙을 돕는 위치에 있다는 말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런 자연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연관된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 중심의 인식론을 받아들임으로써 고유한 자연을 통해서 인간 이성의 한계에 대한 표상에 토대를 제공했다. 이 인식론은 곧 이성을 감각적으로 주어진 것에 한정시켜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하나님 인식이 이성의 본성에 주어진 울타리를 원리적으로 극복한다는 점이다. 판넨베르크에 따르면 토마스가 철학의 자연 인식과 신학의 신앙론을 연결한 그 토대는 인간이 자기를 초월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이성이 감각적으로 주어진 것에 한정된다는 사실과 자기를 초월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인간의 이성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판넨베르크는 자연 이성이 사물의 본질을 실제로 파악한다면 초자연적 교리를 통해서 보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개입될 틈이 없다고 아퀴나스를 비판한다. 초자연의 개념을 통해서 이성의 본성을 고양시킨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말이다. 초자연적인 개념이 이성으로 인식될 수는 있지만 그 내용은 파괴된다.
이런 결과로 인해서 결국 신앙적 인식에 의존되어 있는 않은 ‘자연적’ 사유가 독립되는 계기가 주어진다. 비록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앙과 이성을 종합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성이 독립하게 되었다. 이제 자연 이성은 본질을 자율적으로 충분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상사적으로 보면 계몽주의(Aufklärung)가 종교전통의 권위적 원리와 벌인 논란을 통해서 이런 사태가 결정되었다.
권위적 신앙과 달리 이제 계몽주의에서는 이성의 자율이라는 원리가 부각되었다. 이로 인해서 자연적 이성과 계시의 관계, 철학과 신학의 관계가 반전되었다. 다시 말해서 교부들이 주장한 참된 철학으로서의 신학이 아퀴나스에 의해 신학과 철학의 종합으로 바뀌었다가 이제는 계몽주의에 의해 이성과 철학이 신학과 아무 상관없는 자신들의 독자적인 영역으로 떨어져 나간 것이다.

<요약>
판넨베르크의 설명에 따라서 검토한 신학과 철학의 관계 유형을 다시 정리해보자. 신학과 철학을 대립적으로 보는 관점은 교회의 역사에서 별로 이렇다 할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주장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신학과 철학의 동일화는 후자가 전자로 지양된다는 교부신학의 토대가 되었다. 철학을 신학의 하부구조로 보는 관점은 중세기 기독교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토대에서 제시되었으며, 반면에 철학을 신학보다 우위에 놓는 관점은 계몽주의의 사상적 특징이었다.
그런데 계몽주의의 토대에서 신학과 철학의 관계는 두 가지 성격으로 발전한다. 하나는 신앙을 이성에 속한 권위의 억압으로부터 건져내려는 신학적 시도로서 인간의 종교적 감수성을 강조하는 쉴라이에르마허의 입장이라 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종교적 표상을 철학적으로 지양(止揚, Aufhebung)하려는 시도로서 헤겔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입장이기는 하지만 이 두 가지 모두 철학적 논증과 그것의 정당성을 그 내면에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판넨베르크는 아래에서 우선 종교적 주관성을 다루고, 다음에 철학적 지양을 다루고 있다.


4. 이성적 보편성과 종교적 주관성

위에서 설명한 대로 신학과 철학의 종합을 시도한 아퀴나스의 의도와는 달리 이제 철학과 이성은 교회와 신앙의 세계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나게 되었다. 이런 사태의 발전 앞에서 교회는 이성적 보편성과 종교적 주관성이라는 구도로 길을 헤쳐 나가려고 한다. 즉 보편적인 진리는 이성과 철학이 다루어야 할 대상인 반면에 종교적 주관성은 종교와 신앙의 피난처로 등장하게 된다. 이런 종교적 주관성은 공적인 영역에서 주도권을 상실한 기독교 신앙의 문제를 개인의 사적인 차원에서 찾아보려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를 판넨베르크의 설명에 따라서 조금 더 검토하자.
판넨베르크의 설명에 의하면 칸트는 이성이 신앙의 주관성을 충분히 인식할 수 없다는 그 한계를 통해서 신앙의 공간을 실천에서 찾아보려고 했다. 즉 그는 교회의 역사 신앙은 “결코 보편적으로 납득될 만한 전달 능력이 없다.”고 보았다. 보편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말은 결국 신앙이 이성의 근거에서는 결코 해명될 수 없다는 뜻과 통한다.
판넨베르크의 설명에 따르면 칸트와는 약간 달리 쉴라이에르마허는 종교에 고유한 정서적 영역이 있다고 보면서 형이상학이나 도덕과는 다른 제 삼의 차원을 제시한다. 그것은 우주에 대한 ‘직관과 감정’을, 또는 ‘절대의존 감정’*을 뜻한다.

*우리는 쉴라이에르마허의 절대의존감정이 인간의 심리적인, 주관적인 감정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없으며,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그에게 감정은 보편적 해석의 전제조건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결과이다. 해석되어야 할 대상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과의 일치가 이루어진 사람에게 나타나는 결과가 곧 절대의존감정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이 감정은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단지 심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은 사람에게 음악경험이 감정으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음악을 이해한다는 사실이다. 즉 음악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쉴라이에르마허의 감정은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루돌프 오토의 <Das Heilige>에서 진술된 ‘누미노제’, 즉 거룩한 두려움과 비슷하다. 폴 틸리히는 이 대목을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설명했다.
“쉴라이에르마허의 ‘감정’은 실제로 주관적 감정이라고 이해될 수 없다. 그것은 주체와 객체를 초월한, 우리 존재의 깊이에서 우리에게 미치는 우주의 충격이다. 그는 이런 의미의 감정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그는 감정에 대해서 말하는 대신 우주의 직관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 직관을 divination으로 기술할 수 있었다. 물론 이 말은 ‘신적’이라는 말에서 나왔으며, 신적인 것의 직접적 인식을 의미하다. 그것은 주체와 객체를 넘어선 것에 관한 직접적인 인식, 우리의 내부에 현존하는 모든 것의 바탕에 관한 직접적인 인식을 의미하다.” (송기득 역, 19-20세기 프로테스탄트 사상사, 130).

기독교 신앙을 이렇게 이성적 인식으로부터 벗어난 영역에 설정하려는 노력은 철학자들만이 아니라 신학자들에 의해서도 시도되었다. 신학의 종교적인 주관성을 강조하는 ‘각성신학’(Erweckungstheologie)이 바로 그런 시도라 할 수 있다. 칸트의 도덕철학에 근거해서 기독교인의 죄책감을 강조하고 그 죄로부터 용서받는 경험이 바로 신앙의 가장 확실한 원천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도덕성을 강조하는 이런 각성신학은 비록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죄로부터 해방감을 맛보게 했을지는 몰라도 그것에 전제되는 죄책감을 증대시켰다. 인간을 죄책감과 도덕성에서 접근한 계몽주의 이후 각성신학은 니체, 프로이트 같은 이들에게서 집중적으로 비난의 화살을 받는다. 그런 각성신학이 기독교인들의 도덕성을 실질적으로 불러일으키고, 그런 경험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나름으로 생명의 능력을 확보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인간으로 하여금 자학적인 상태에 빠지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는 잘못된 길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키에르케고르는 도덕 경험 대신에 실존주의적 개념인 ‘결단’을 들고 나온다.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적 결단신학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신학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예컨대 칼 하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분노 사이의 이 “결단 문제”를 사람들이 직면해야 할 “궁극적인 이것이냐, 저것이냐”라고 보았고, 불트만은 “케리그마는 결단을 향한 부름이며 신앙적 결단이다”라고 보았다. 이는 곧 자기 자신을 자기의 현존 너머에서 처리하는 ‘자연적’ 자명성을 포기하는 결단이다. 여기서 이 자명성을 철학은 자유라고 보았으며, 신학은 불신앙이라고 보았다. 결국 이런 실존주의적 신학은 앞서 논의한 여러 유형 중에서 신학과 철학이 대립적이라는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우리 한국교회의 신앙은 각성신학과 실존주의 신학이 결탁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죄책감이 우리의 심리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 실제 삶에서는 실존적인 결단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려고 한다. 이런 태도는 일단 이성과 철학이 지배하는 이 세상의 다층다기한 사건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아도 신앙의 삶에서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과 아울러 역사적 사태를 무시하더라도 여전히 그 정당성을 잃지 않는 기복신앙이 자리할 수 있는 영역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실용적이다. 그러나 개인의 종교적 죄책감과 그 해방이라는 종교성 안에 폐쇄됨으로써 기독교 신앙은 세계와 역사를 견인해나갔던 그런 원래의 자리를 상실하고 사적인 영역에 머무르게 되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5. 철학적 개념으로 지양되는 종교 표상

계몽주의 이후 신학의 자리가 칸트, 쉴라이에르마허, 키에르케고르 같은 철학자들에 의해서 경건과 실존에 한정되는 흐름이 있었으며, 반면에 이제 언급하게 될 헤겔에 의해서 종교 표상은 철학적 개념으로 지향하게 되는 흐름이 있었다. 도대체 종교적 표상이 철학적 개념으로 지양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헤겔은 이렇게 말했다. “종교는 표상의 형식에서만 참된 내용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철학이 실체적 진리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Begriff der Religion, 299). 그렇지만 철학은 이런 표상 형식의 내용을 개념적인 형식으로 고양시킨다. 즉 종교는 철학을 통해서 실질적 내용을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다.
판넨베르크의 설명을 조금 더 따라가자. 신학이 철학보다 역사적으로 앞선다는 사실은 곧 하나님의 주관적 절대성이 이 역사에 작용한다는 뜻이다. 헤겔이 확보하고 있는, 또는 그의 철학적 신학에서 중심축으로 작동하는 하나님의 주관적 절대성은 기독교의 종교적 표상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헤겔이 종교적 표상을 철학적 개념으로 지양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결국 기독교가 보편적 철학의 진리 안으로 축소되어야 한다는 계몽주의적 성격을 수용한다는 데에 있다. 만약 종교 표상이 철학적으로 지양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헤겔에 의하면 당연히 종교의 진리론적 토대가 붕괴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헤겔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판넨베르크가 지적한 대로 신학이 결국은 철학이 깔아놓는 보편적 진리론에 의존된다는 위험성을 본다. 신학이 철학적 인식론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해명해나갈 수는 있지만 반드시 철학적 개념으로 지양되어야 한다면 신학의 주도권을 상실되고 말 것이다. 이런 문제는 신학과 자연과학의 관계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신학이 자신의 내용을 자연과학적 진술에 의해 보충되어야만(지양) 한다면 신학은 늘 그런 학문에 의존적인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그것보다는 신학의 역사 자체가 이미 철학적 인식론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고유하게 자신의 학문적 영역을 확보해야만 할 것이다. 이런 시도를 판넨베르크는 철학적 신론(헤겔)을 신학적으로 지양시키는 교부신학이라고 일컫고 있다. 즉 신학을 참된 철학으로 해석하는 시도로서 판넨베르크의 기본적인 착상이라고 할 수 있다. 판넨베르크의 진술을 직접 인용해보자.

오히려 역사 과정에서 볼 때 신학과 철학의 병존은 상당한 긴장 속에서 전개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실존적인 기초 결단이 일종의 공통적인, 즉 철학을 권위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인간 현존의 구조와 모순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신학으로부터 출발해서 이제 철학적 통찰을 신학 내에 편입시키려는 그 변화가 보인 늘 새로운 싸움의 형식에서 전개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신학의 입장에서 철학적 요소가 기독교 교리와 연관되어 계속적으로 축적되고 집중되었지만, 신학과 철학의 병존이 자명하다는 이유 때문에 역사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궁극적인 문제는 기독교 교리를 조직신학적으로 전개하는 틀에서만 적절하게 제시될 수 있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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