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녹취록-머리말

사도신경해설 조회 수 3881 추천 수 0 2009.04.04 22:55:53

판넨베르크의 사도행전 해설 제1강 (080830) - 머리말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판넨베르크의 사도행전 해설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거를 같이 읽고 제가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이 책을 읽은 분들이 좀 어렵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시더라구요. 왜 어려울까 좀 생각을 했습니다. 일단 이게 번역이기 때문에 매끄럽게 우리말로 잘 전달되지 않는 그런 한계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번역했는데 제 번역 실력이 좀 부족하기도 한 것도 있겠고요. 그리고 또 기본적으로는 번역이라는 거라고 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잘 한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긴 게 근원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하나만 말씀드린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두개를 이야기해야 되겠네요. 중요하니까요.

 

하나는 언어 구조 자체가, 언어 구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언어 구조자체가 서로 다르다고 하는 것입니다. 흔하게 이야기대로 영어로 이야기하면 주어가 나오고 그 다음에 동사가 나오죠? 우리 언어에서는 주어가 나오고 그 다음에 목적어나 다른 게 나오고 그 다음에 동사가 뒤로 가거든요. 그 다음 기본적인 구문의 차이도 있고 또 전치사가 우리말로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좀 다른 거죠. 어느 언어가 뛰어나다 그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발전된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한 언어와 다른 언어의 장벽이 크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양쪽 언어가 다르다면 역사 이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이데거의 말을 빌자면 언어는 존재의 집이거든요. 그 언어를 통해서 그 언어를 사용했던 사람들의 역사들이 거기에 녹아든다고 할 수 있죠. 그런 점에서 독일어로 된 판넨베르크의 책이라고 하는것, 독일어라는 언어가 가진 한계 두 가지를 말씀드린 거예요. 하나는 구문 구조적인 한계, 번역할때 어려운 점으로서 구문이 다른 점이 있고 또 하나는 독일 사람들의 역사, 삶 그런 듯이 우리하고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 성서 언어도 똑 같이 해당되는 거거든요. 번역된 성서로 설계한다는 것이 근본적인 한계, 늘 전제해야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이 날짜가 정확하게 녹화하고 있는 이 시간이 8월 30일 됩니다. 시간이 6시 10분전이 되나요. 제가 오늘 토요일 할일은 대충 정리를 했습니다. 보통 제가, 토요일 날 하는 것은, 목사들이 주로 하는 것은 설교 준비하는 것이죠. 저도 토요일 날 설교를 준비합니다. 토요일 날 다른 일이 있으면 조금 당겨서 하구요. 오늘은 우리 샘터교회가 저녁에 하는 한달에 한번 하는 가정예배가 있어서 제가 요거 끝내자마자 그쪽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설교 준비를 미리했구요. 어제부터 조금했습니다. 이걸 정리를 다하고 제 방 청소도 좀 하구요. 사무실도 청소도 하고 이렇게 토요일 해야 될 일을 다 마쳤습니다. 오늘 설교 준비를 하면서 사실 느낀 거예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본문인데 로마서 13장 8절에서 14절까지 설교 앞부분에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2천년에 우리와 전혀 다른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살았던 사도 바울의 편지를 내가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가? 내가 이해하지 못한 가운데서 설교를 한다는 것이 좀 당혹스럽기도 하고 그렇다. 그런 애기를 설교 앞부분에서 시작을 했습니다. 솔직한 심정이거든요. 나름대로 신학을 전공하고 다른 일반 목사님들보다 항상 그런 점에서는 전문적이다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힘들더라구요.

 

성서를 이렇게 헬라어 히브리어 이게 그걸로 쓰여졌는데 그것도 원래 것이 남지 않고 사본만이 남아 있고 그 사본을 번역을 한 거란 말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권위가 있는 사본을 선택해서 번역을 하는 건데 그게 얼마나 힘든 작업이냐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는 작업이냐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복음서 같은 것을 놓고 본다면 어려움이 조금 심각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님이 쓰신 언어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어가 아니거든요. 헬라어가 아니거든요. 신약의 헬라어를 예수님이 쓰신 것은 아니거든요. 아람어예요. 예수님이 아람어를 쓰신 이유는 당시 그 당시 그 시대의 일반 민중들이 쓰는 말이어서 그렇습니다. 히브리어는 이미 사어가 되어 버린 것이죠. 제가 말이 좀 옆으로 많이 나왔습니다만 본문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쓸데없는 말을 하는 군요. 그러나 이런 것들이 사실 이런 것이 다 사실 우리가 공부하는데 기초가 됩니다. 이 성서 언어도 그렇고 이러한 신학서적도 그렇고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넘어온다고 하는 것이 보통일이 문제가 아니다 하는 것이죠. 번역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흐름을 따라오고 있죠? 이 책을 읽으신 분들 중에 좀 많은 분들이 어렵더라 조금 하다가 덮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이유를 제가 설명하는 것입니다 두가지만 말씀드린다고 했어요. 하나는 독일어 언어가 번역 자체가 한계가 있다고 하는 거요. 다른 하나는 어쩌면 이게 더 중요할지 모르겠는데 신학에 대한 오리엔테이선이 없을 때는 이런 신학전문적인 책을 읽는다고 하는 것은 그건 불가능합니다. 사실은. 이렇게 예를 들 수 있어요. 피아노를 공부하는데 보통 바이엘을 기초로 해서 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을 충분하게 하지 않는 상태에서 바흐든지 모차르트나 슈베르트나 이런 사람들의 고급스런 작품들을 연주하겠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거든요. 이 신앙에서도 그렇고 학문에서도 그렇고 삶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렇구요. 전이해가 늘 필요합니다. 전단계 어떤 것들이 정리되어야 그 다음단계가 우리들에게 들어오지 그 어디에서도 학문이나 신앙이나 삶에 있어서도 비약은 없어요. 갑자기 철부지처럼 살던 사람이 도사처럼 되는 것 그거 불가능합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획기적인 변화 이런 것들이 있죠. 여러분들이 많이 예로 많이 드는 사도 바울 같은 사람들이죠. 예수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전환한 거죠. 이런 것들은 보통 혁명적인 변화라고 회심했다고 합니다. 부흥회같은 간증에 나오기도 합니다만 깡패짓하다 회심해서 예수 잘 믿고 목사가 되었다. 스님하다가 어떻게 되었다 그러거든요. 여기에는 그런 어떤 다른 것들이 거기에 숨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사람들이 자기 신앙경험을 이야기할 때 그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착각하기 쉬울걸요. 왜곡된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이런 거죠. 그러니까 그것을 일단 긍정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아주 실질적인 변화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갑자기 변화된 것은 아닙니다. 그 사이에 뭔가 있었던 것인데 그걸 본인들이 눈치 채지 못할 수가 있어요. 사도바울의 경우가 바로 그런 거든요. 이미 율법주의의 한계들을 진작 알고 있었을 겁니다. 거기서는 도저히 의로움을 받지 못한다고 하는 문제의식에 들어가 있다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그 경험이라고 하는 것이 뭔지는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바뀐 것이거든요. 보통 깡패였다가 돌아섰다는 사람들도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고요. 또 하나는 이 변화된 fact가 거짓일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요. 이게 스스로도 모르는 거죠. 자기도 실제로는 변화되지 않았는데 변화된 것처럼 느낄 수 있고 아니면 변화된 것 같은 포즈를 취해야 할 때 이득이 올 때 그렇게 합니다. 그게 그렇게 자기가 변화된 처럼 모양을 취하는데 정말 자기가 변화되었다고 이야기하다보면 정말 변화된 것처럼 스스로도 생각해요. 본인도 그렇고 상대방도 그렇고 청중도 그렇고 어떤 면에서는 속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신학, 전문적인 신학책이니까요. 이런 것들도 그 비약은 없다. 그러한 신학적 훈련이 어느 정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갑자기 건너지 못하는 틈 그런 것을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다 보면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진도가 안 나가는 겁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먼저 알았던 사람, 강을 건널때 비슷한 것 같군요. 먼저 강을 건넌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 거죠. 한 200미터짜리 수영을 해서 건너가야 되는데 어떻게 건너가야 하는지 잘 모르거든요. 가다가 중간에서 돌아선다거나 방향을 잘못 잡아서 그런 일들도 있고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그럴 겁니다. 건너간 사람은 강의 물줄기가 어디서 강하고 어디서 약하고 알고 있으니까 몇도 각도로 헤엄을 쳐라 그런 각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판넨베르크의 책을 강을 건너간 사람처럼 완전하게 다 극복했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니고요 그냥 더듬 더듬대면서 뭘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인지 먼저 좀 안 사람이다. 이런 뜻입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지난 1월부터 6월부터 동영상을 라이브로 했잖아요. 들어온 사람들이 연결된 사람들이 조금 더 실감이 났는데 지금은 저 혼자 한 사람, 앉아서 녹화를 하고 있습니다. 혼 자 떠드는 것 같아서 실감이 덜 나네요. 앞에 어떤 군중들이 있다면 느낌이 있고 또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숙달이 되면 반복되어 이런 일이 익숙해지면 사람들이 있거나 없거나 큰 차이가 없겠지요. 이게 앞으로 어느 정도 기간이 필요할지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일주일에 한번정도 강의를 할 생각이구요. 혹은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두번 정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주일에 한번 또는 두 번 이런 방식으로 해서 이 책을 언제까지 떼겠나? 계산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이 책만 갖고 보면 223쪽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장수로 본다면 14장이거든요. 사도신경이 하나하나로 나누어갖고 문서 하나하나 일수도 있고 주로 그렇습니다. 14강입니다. “나는 믿습니”다. 그거로 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은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이 다시 사는 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네요. 이게 어느 정도 앞으로 걸릴지는 전혀 제가 감을 잡지 못하겠습니다. 어느 정도 거기다 딱 대충 거기에 마칠 수도 있겠고요. 1년간다 그렇게 맞출 수도 있습니다. 강의라고 하는 것이 이게 어느 정도의 깊이와 넓이로 진행하느냐에 따라서 길이가 달라지는 것이지 딱 그게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거예요. 이 책만 갖고 앞으로 5년 동안 공부하겠다 생각하면 그것도 가능합니다.

 

어떤 점에서 이 사도신경이라고 하는 것은 기독교 신학 전체를 다루고 있는 거예요. 조직신학, 교리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 전체 뼈대를 신조 creed라고 하죠. Apostle Creed 영어로는 그렇게 되는거고. 제가 흑판 백판이 있으면 쓰겠는데 제가 소리로만 강의를 하고 있으니 쓸 수 없군요. 독일어로 닷라오벤 배치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보통 사도신조. Apostle Creed로 하는데 독일어로 그렇게 직역을 할 수 있기는 있습니다. 여기는 믿음 고백 그렇게 나와 있네요. 그러니까 신앙 전체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조금 윤곽만 말씀드린다면 삼위일체에 대한 이야기예요. 처음에 나온 게 하나님, 두 번째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거고 세 번째가 성령 물론 그 뒤로 로도 교회론이 나오고요. 그리고 죄론 그리고 영원한 생명 이런 것들이 주욱 나오고 있습니다. 기본틀은 삼위일체예요.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거기에 보충적으로 교회로 죄론, 영생론이라고 할까요. 굳이 말을 붙이면 그런 겁니다. 이런 것들을 일일이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검토하기 시작하면 거의 끝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론과 더불어 교회론이 나왔다고 하는데 교회단일성, 보편성, 사도성, 거룩성은 나오지 않았는데 하여튼 그런 것들, 교리적으로 교회를 뭐라고 했느냐 콘스탄티노플 회의 이러한 보편공의회, 그런데서 나온 신조들도 우리가 또 갖다가 같이 끌어들여서 이야기할 수 있구요. 현대신학에서는 교회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그런 일들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는 몰트만의 성령의 능력안에 있는 교회, 그런 책들도 우리가 조금 검토하면서 사도신경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 나가느냐에 따라 다른 거죠. 그래도 대충 1년 정도 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데 52주 정도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조금 줄어들까요? 대충 그렇습니다. 14장까지 있습니다.

 

오늘은요. 첫 시간이기도 하구요. 강의에서도 첫 시간은 강의 소개하고 대충마치거든요. 그러기도 하고 오늘은 제가 이거를 마치고 곧 가정예배를 드리러 가야하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조금 쫓깁니다. 오늘은 길게 하지 않겠습니다.

 

어느 부분을 먼저 할까요? 제가 그러면 머리말만 좀 하겠습니다. 먼저 사전에 알려드려야겠군요. 이 책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좋구요. 이 책이 한들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예요. 2000년 6월 10일 초판이 나왔습니다. 그 뒤에도 아마 몇 쇄가 나왔을 거예요. 한들출판사에서 이 책을 그 당시 그때 통합과 합동 목사고시 합격한 사람들에게 선물로 준책인 것 같습니다. 그런 몇 권 책을 번역했는데요. 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고생이라고 하는 것이요. 억지로 했다는 것이 아니고요. 필요한 책이라서 하기는 했는데 출판사에서 번역료를 거의 못받았다고 보면 좋겠죠. 무명이기도 하구요. 책을 내주는 것만 하더라도 감지덕지 한 게 한국 기독교 출판사의 사정입니다. 아주 잘나가는 베스트셀러작가가 아니면 거의 자비로 출판한다거나 출판사에서 원고료를 안 받고 그냥 내주는 것으로 하는 것이거든요. 참, 열악하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네. 이 책을 쓴 판넨베르크는 제가 그 분의 계시론을 연구해서 박사학위 논문,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 분은 생존해 있는 개신교 조직신학자로 최고 거장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더라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는 몰트만이 더 잘 알려 있습니다만 세계 신학계에서는 이 판넨베르크를 조금이라도 한 수 높은 신학자로 인정하죠. 이 사람은 1928년 녹일 쉬데틴에서 출생했구요.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했고 1928년 출생이구요. 지금 몇 살이죠. 만 80세가 되었네요. 생존해 계십니다. 1953년 하이델베르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하이델베르그 대학 그림과 같은 데죠. 유명한 철학자들이 나왔고 가르쳤던 대학입니다. 신학과도 유명하죠. 거기에도 지금 한국인 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1953년에 박사학위를 받았으니까 몇살인가요? 25살에 받았군요. 독일에서 공부 좀한다 하는 학생들이 박사학위를 받는 나이입니다. 20대 중반이 됩니다. 아주 빠른 사람은 20대 초반, 늦으면 20대 후반이 됩니다. 우리하고 비교하면 천양지차죠. 거기는 보통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군대 갔다오고 주욱 과정을 거친다면 아무리 빨라도 10년 정도는 우리가 불리한 것 같습니다. 불리하다기 보다도 조금 심정이 그렇다고 하는 겁니다. 1953년 하이델베르그대학에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제가 태어난 해이군요. 1955년에 교수자격을 획득했습니다. 독일학풍이 학풍? 학제? 시스템이 재미있는 것은요. 교수와 연관해서 다음과 같습니다. 박사학위를 받는 논문을 써야 되어야 되요. 디스파치온이라고 하는데요. 발음이 조금 나쁩니다.

 

오늘 약간 피곤하네요. 하루 종일 앉아서 설교, 주보 준비하고요. 우리교회주보 준비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예전식으로 하기 때문에 기도문이나 이런 것 등 찾아내야되고. 등등. 그리고 청소도 좀 했고... 아. 미안합니다. 피곤한 게 그것만이 아니군요. 어저께 오전에 테니스를 쳤어요. 그게 아마 오늘까지 조금 후유증이... 정신은 좀 맑은데 기분은 좋은데 몸이 좀 피곤한 그러한 상태네요. 발음이 좀 약간 시원찮습니다. 피곤하면 집중력도 좀 떨어지고요. 정신적으로 피곤하는 것과 정신적으로 좀 피곤하면 그런데요. 발음도 그렇구요. 여러가지 면에서 그렇습니다.

 

디스파치온. 학위논문이구요. 그 다음에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교수자격 시험을 쳐야 하는데 논문이 필요합니다. 하길타치온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교수가 된다고 한다면 박사학위 논문에 버금가는 논문을 두개 쓴다고 봐야 한다고 되죠. 그래서 그런지 독일의 대학교 교수들은 그만큼 권위를 보증 받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 판넨베르크가 25살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27살에 교수자격을 취득했습니다. 그리고 1958년에 로퍼탈, 보퍼탈이 아니라 로퍼탈, W가 독일어로는 레 발음 나거든요. 로퍼탈. 거기 교수로 취임했습니다. 그게 딱 서른살때군요. 서른살에 교수로 취임했고 거기서 몇 년 있다가 1961년에 만치대학교 교수로 갖구요 그리고 67년에 드디어 뮌신대학교, 남쪽에 있는 뮌치대학 조직신학교수로 가서 1973년에 은퇴를 했습니다. 거기도 65세 은퇴니까. 네. 책을 많이 썼죠. 여러 가지를 썼습니다. 그 사람이 쓴 책의 논문 이런 거만 열거하더라도 책 한권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학문 활동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이 사도신경 해설은 1972년에 썼어요. 72년에... 그러니까 마흔 네살에 쓴 것 같군요. 그렇죠? 20년도 되는 마흔네 살에 쓴 것 같군요. 그렇죠. 그렇게만 소개하고 나중에 우리 본문에 들어가서 판넨베르크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나오면 더 하겠습니다. 지금 녹화가 잘 되는 거겠죠. 혹시 열심히 했는데 헛수고라고 하면 정말...

 

오늘 여기 머리말만 좀 보도록 하겠습니다. 머리말을 쓴 날짜가 1972년 1월이군요. 뮌헨에서 했구요. 여러분들이 이 책을 구할 수 있으면 좋구요. 아니면 구하지 못하신다면 이 책을 보고서 강의를 듣는 것이 좋으니까요. 만약 이 책을 구하지 못하신다면 우리 다비야 홈페이지에 들어가셔서 온라인 강의실인가요? 거기에 들어가셔서 판넨베르크 책 번역 거기에 들어가시면 판넨베르크의 사도행전해설에 그 내용을 다 올려놓았으니까 보시기 바랍니다. 머리말 올려놓았죠? 나중에 확인해서 올려놓을 테니까 책이 없으신 분들은 출력을 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조금 기운이 없는게 또 이유가 있군요. 하루 종일 앉아서 설교 준비하고 주보 만들고 방 청소 하고 이거는 늘 하는 거니까 그런데요. 어제께 테니스 조금 세게 쳤다 그런 것 있고. 하나 또 하나 배가 고프네요. 아... 아침에 빵 한조각 하고 커피한잔, 복숭아 조금 괜찮은 복숭아, 그걸 집사람하고 같이 먹고 나와서 교회로 왔습니다. 점심을 오늘은... 아 그러고 보니까 점심을 못 먹었다고 볼 수 있네요. 시간을 아끼려고 어땠는지 생각이 없어서 그런지. 지난 주 금요일 쪄 놓은 것 냉장고에 있어요. 작은 고구마 크지 않습니다. 참 맛있습니다. 구미 고구마인데요. 그걸 제가 그 날 다 못먹고 지난주에 다 못먹고 그것을 꺼내서 먹고요. 그리고 또 포도를 왕포도 고걸 먹고 말았어요. 그랬더니 배가 좀 고프네요. 내가 왜 그랬을까요? 나가서 분식점에라도 가서 된장찌개 먹으면 괜찮을텐데 칼국수를 먹어도 괜찮았을텐데 오늘은 조금 시간이 조금 쪼달리는데다가 오늘 저녁에 가정예배를 간다고 했지 않았습니까? 황기선생님이라고 하는데 지난 주 조금 귀뜸을 하더라구요. 소머리인가 돼지머리인가 자기 와이프가 잘한다고 해서 눌러서 맛있게 한다고 합니다. 아마 그게 무의식적으로 작용해서 오늘 저녁 잘 먹기위해서 점심 대충 떼우려고 한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게긴한데 시간이 5시 20분인데 허기가 지는군요. 다 내가 저지른 일이니까 할 말없습니다. 돈이 없어서 못 먹는 것도 아니고 지금 교회 쌀도 있으니까 해먹으면 되는데.

 

머리말 보겠습니다. 이 책, 사도신경해설은 1965년부터 마인쯔 대학교와 뮌신대학교에서 여러번 강의한 내용이다. 교수들이요. 강의한 내용들을 책으로 묶습니다. 일반적으로 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괜찮은 교수들은 그렇게 하실 거구요. 그런데 대학교수들이 그렇게 하지 못해요. 신학대학교수들도 보면 몇몇 분들 빼놓으면 저작이 별로 없습니다. 그 이유는 강의할 때 그 강의안을 만들지 않는다고 하는 거예요. 하더라도 요약본만 만들어서 대충 떼우고 마는 거거든요. 뭐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지만 특히 인문학하는 사람들은 자연과학자들은 좀 다르죠. 실험이라든지 이런 것을 주로하기 때문에 강의안을 좀 꼼꼼하게 만들수도 없어요. 그냥 실험한 것을 책으로 묶어내면 되지요. 그러나 인문학교수들은 그렇지 않는 것이거든요. 강의안을 하나 하나 만들어서 강의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984년도에 그때 쾰른대학교에서 어학을 주로 하고 뮌스터 대학에 가서 박사하고 논문을 쓰고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 하고 자신이 없어서 돌아왔습니다. 왜 그때 가서 공부를 다 마치지 못하고 독일박사학위를 받는데 까지 하지 못하고 돌아왔느냐 그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의가 시간 딱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니니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할 것 같습니다. 그게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인제 제가 지나온 프라이버시 같은 것들이야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그래도 지나온 과정이 있으니까 지금 공부하러 갔던 이야기. 옛날, 옛날은 옛날인데 생생합니다. 아주 옛날 같지도 않아요. 그런 이야기들 또 교회 제가 거쳐온 이야기들, 한국 교회 역사일수도 있구요. 저만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우주와 같은 무게를 갖고 있는거예요. 그 사람을 중심으로 인류 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습니다. 우주역사도 그 중심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거거든요. 서울역의 부랑아처럼 노숙자로 사는 사람도 사실 그것도 가능합니다. 그 사람의 위치에서 촛불시위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구요. 서울시에 대한 것도 예기가 될 수 있구요. 한국의 근대사가 그 사람에게 직간접적으로 연계가 되구요. 그러니까 한 사람 한사람이 우주와 같은 무게를 갖고 있어서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을 하게되죠. 그런 것들을 자기 삶에 reflection, 반추하는 거죠. 그런 것을 하면서 사는 삶이 사유하는 삶이다. 혹은 인문학적 성찰이다. 그런겁니다. 제가 그렇게 뛰어나게 산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목사로서 신학생으로서 사유하는 사람으로 가르치는 사람으로 목회하는 사람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러한 이야기들을 할 거리는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이 강의가 딱 몇 분 만에 마치는 한 학기만에 마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편하게 이런 저런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구요. 좋은 것 같습니다. 허락하시겠죠? 허락하지 않으시면 뭐 본론만 쫓아 나가구요. 아 어쩌면 본문보다도 그 이외의 이야기들이 여러분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같이 겸해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 인제 그런 일이 너무 늘어지면 강의가 한계가 문제도 있으니까 적당하게 천천히 갈 때는 천천히 가고 빨리 갈 때는 빨리가고 그렇게 하면서 이 강의가 살아 있는 강의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또 옆으로 나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용서하십시오.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말씀드리는거예요

 

샘터교회에 와보신 분들은 이 상황을 아시죠. 샘터에 서재가 어디있는지 아시죠? 아파트인데요. 서재를 들어와 보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왜 이쪽으로 서재를 하느냐 하면 햇빛이 들어오는쪽은 아파트로 막혔습니다. 아파트 다른동입니다. 멀리 산들이 보이고 책의 머리말에 쓴 환성산도 왼쪽으로 돌구요. 바로 밑에 숲이 있습니다. 여기 같이 산책한 분들은 기억이 날거예요. 반은 그러니까 제 시각으로는 제 눈높이로는 푸른 숲, 그리고 논, 그리고 아파트는 좀 멀리 보이고요 눈높이 위로는 하늘이 보입니다. 경치가 좋거든요. 제가 지금 벽을 바라보지 않고 지난번 동영상할때는 벽을 바라보고 했습니다만 지금은 녹화만 하는 시간이라서 컴퓨터 보지 않고 창문 밖을 바라보고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느낌이 훨씬 좋네요. 제가 녹음 소리가 깨끗하게 들어가기 위해서 창문을 다 닫아놓았어요. 조금 덥기는 한데 견딜만합니다. 경치가 좋아서 여러분들에게 한마디 말씀 드렸습니다. 편하게 앉아서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1983년에서 85년까지 거기 뮌스터에 가서 아 지금 그 이름을 깜박 기억이 안나네요. 세월이 많이 흐른 것 같습니다. 24년 지났으니까요. 그 분하고 앞으로 논문을 어떻게 쓸거냐 그런 이야기하다가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이유를 말씀드리구요. 그 분 연구실에 들어가면 방이 두 개 더라구요. 처음에 들아가면 비서가 앉아 있었습니다. 비서가 차 날라다 주는 비서가 아니구요. 저의 지도교수로서 그분의 하나의 동료와 같은 거예요. 나이가 많은 여자였습니다. 타이핑을 치는데 그게뭐냐 하면 녹음기를 들으면서 치는거구요. 그러니까 그 지도교수가 강의할 때 강의안도 있고 또 녹음을 해놓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갖고서 녹취죠. 인도에 계신 사띠아 선교사님 고맙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기독교가 뭐꼬 6개월 동안에 거의 50회 가까이 되는 강의를 녹취를 해 주셨는데요 빠르게는 이번 종교개혁주일에 맞게 책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분이 그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제가 확인을 하지 않았어요. 녹취를 지도교수의 비서가 하고 있더라구요. 그러니까 그들은 강의를 하고 똑같은 강의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현대신학의 윤리와 과학의 문제 이런 제목으로 한 학기 강의를 하면 그게 몇 년 지나서 책으로 나오는 거거든요. 그런 것을 평생 동안 반복해서 강의를 하지 않습니다. 대충 그러면 학자의 길도 가볼만한 거죠. 창조적인거죠. 그러니까. 네. 이 책이 1965년부터 그때는 마인쯔 대학교에 있을때니까 뮌헨신학대학교에서 몇번에 걸쳐서 강의한 내용입니다. 강의하면서 보충한 내용이죠.

 

이 책의 목적은 오늘도 여전히 많은 기독교인들이 매주일 암송하고 있는 사도신경에 대한 현대적 비판과 해석을 우리 기독교 신앙의 전통과 중재시키려는 것이다. 그렇죠. 사도신경에 대한 현대적 비판과 해석, 무슨 말인가 하면 이 사도신경을 더 이상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하는 비판이 있다고 하는겁니다. 예수님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삼일만에 살아나시고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우편에 앉아계시고 라는 이러한 신앙고백이 오늘과 같은 첨단의 실증적 물리학과 생물학 세계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바꾸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죠. 나중에 또 나오겠습니다만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하는 이러한 고백들이 도대체가 현대인들에게 가당치나 하다는 말이냐 는 비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계속 지금도 나오고 있고요. 사도신경의 내용에 대한 근본적이 불신, 불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일단 이런 것에 대해서 이 판넨베르크가 2천년동안 내려왔던 기독교 신앙과 근본과 중재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이 말은 곧 기독교 신앙의 중심안으로 역사안으로 들어가서, 기독교 신앙의 중심, 기독교의 2천년 역사 중심안으로 들어가서 이 사도신경이 어떻게 왜 옳은가에 대해서 진술하겠다 혹은 변증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증인입니다. 교부들의 변증입니다. 제가 아까 이야기를 하면서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했죠. 그게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기독교 교리, 사도신경도 교리인데요. 이 교리는 하나의 바깥으로 드러난 기호입니다. 암호일수도 있어요. 문자죠. 문자는 기본적으로 기호니까요. 우리는 그 방식이 아니면 어떤 진리를 전달할 방법이 없어서 그것을 가져온 것입니다. 모짜르트가 레퀴엠을 썼는데 그것을 보존할 수 없잖아요. 그걸 악보로 쓴 게 아닙니까? 악보가 문자고 기호란 말입니다. 거기에 어떤 음악을 담는 거예요. 이 사도신경을 비롯하여 기독교의 모든 신앙들은 그 안에 많은 역사를 담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기호와 문자로 형성되기까지에 히스토리가 있다고 하는겁니다. 그 히스토리가 그냥 역사 객관적인 사실적인 역사라기보다도 의미를 내포하는 그러한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여기서 중심을 정확히 따라가지 않고 옆으로 나간 것 같습니다. 역사성, 여기에 필요없는 건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약간 옆으로 나간 이야기입니다. 어쨌든 판넨베르크가 하려고 하는 작업은 사도신경이 말하는 현대의 비판에 맞서서 혹은 그러한 비슷한 비판에 대해서 사도신경의 정당성을 2천년 기독교 역사와 중재시킴으로서 확보해보겠다. 변호해보겠다. 변증해보겠다 하는 겁니다.

 

이 작업을 위해서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우선적으로 이 사도신경을 문제 삼는 핵심이 뭔지를 알아야 되고 2천 기독교 역사의 중심이 뭐냐를 알아야 되겠지요. 그런 작업들을 우리가 서서히 따라가죠. 얼마나 기대가 됩니까? 여러분들은 기독교역사를 모르잖아요. 현대신학의 문제점을 잘 모르잖아요. 그건 아주 전문적인 분야입니다. 우리는 그냥 막연하게 이렇게 있는데. 제가 자주 예를 드는 것처럼 우리는 순전히 동네바둑만 두는 아마추어 동호인인데 판넨베르크가 프로 9단의 경지에서 세계 기왕전 해설을 하겠다고 하는겁니다. 여러분 여기 바둑을 두는 분이 계시겠습니만 해설을 잘해주면 정말 재미있거든요. 묘수풀이도 재미있지만 그런거야 기계적인 거지만 바둑의 길이 눈에 보이는 것이거든요. 사도신경을 보면서 우리는 기독교신앙의 중심으로 풍덩 빠져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겁니다.

 

네 계속해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런 작업을 위해서는 우리는 사도신경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의미를 철저하게 실질적인 방식으로 살펴보아야 되고.” 그렇잖아요. 사도신경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그냥 표면적로가 아니라 아주 근원적인 차원에서 그걸 살펴보아야하죠. 그 다음에 “사도신경에 거론된 신앙의 내용이 오늘의 성서비평적 관점에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찾아보아야 하며” 정말 중요한 이야기들이네요. 그렇죠? 마지막 세번째로 “이 내용들이 현대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확신하고 있는 현실성과의 관련속에서 오늘의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 세 가지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에 대한 현대적 비판과 현대적 해석에 대해서 그것을 기독교 신앙의 중심과 연결시키려고 하는데 이거를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세 가지, 중요한 거예요.

 

첫 번째는 사도신경이 어떻게 형성되었나? 그 근본적인 의미를 찾아야 되고

두 번째는 그것에 대한 성서 비평적인 관점을 봐야되고

세 번째는 상대적 현실성과의 관련을 봐야 됩니다.

 

첫 번째는 교리사적인 접근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는 성서사적인 관점, 성서적인 근원들을 찾아야 되고, 그리고 세 번째는 이거는 철학적 조건 현실성의 문제다. 이 세 가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 될 텐데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다음에 이 세 가지가 왜 중요한지 이거는 이 사도신경을 공부하는데서만 아니라 신학의 전반적인 거와 연관됩니다. 세가지 교리사적인 교회역사적, 성서, 기독교는 무엇을 이야기하든지 성서가 하나의 준거틀, 준거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 성서적 근거를 찾고 세 번째는 우리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결국 세계 전체의 보편적 진리와 그것과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의 지평, 그런 지평에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이 세 가지. 오늘 여기까지 말씀 드리겠는데요. 저도 기대가 됩니다. 제가 오래전에 번역한 것입니다만 얼추 대충 그림만 알고 있지 상세하게 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오늘도 머리말의 한 패러그래프만 이야기한 거거든요. 저도 공부가 될 것 같아요. 저의 생각도 정리가 되고 기대가 됩니다. 요 세 가지 문제 중요하기 때문에 다음번에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저녁 정리를 해놓고 샘터교회 한 달에 한 번씩 드리는 가정예배에 가서 돼지머리인지 소머리일지 모르겠는데 머리를 꾹 누른다고요. 기름을 다 빼는, 맛있게 먹고 몸도 보신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다음시간에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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