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세계 속의 그리스도인

교회와 사회 조회 수 3454 추천 수 23 2008.07.22 13:35:21
7장 세계 속의 그리스도인
- 칼 바르트, in: 의인과 성화, 155-

1.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인이란 우리 안에 우리 자신이 들어있는 게 아니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게 된 그런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특별히 구별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죽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공동체는 모든 세계를 향해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적인 신앙을 규정하거나 세상과 그리스도를 결합한다는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어떤 종교사학적인 방법으로서도 가능하지 않다. 어떻게 절대타자인 하나님을 인간이 인식할 수 있단 말인가? 한편 인간적인 것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를 찾으려는 생각도 옳지 않다. 사회주의, 파시즘 같은 사회적 구상이 하나님 나라의 유비가 될 수 없다. 교회를 민주주의적 양식으로, 사회주의적 동기로 건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교회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전적으로 새로운 길로 그가 오심을 기다리기를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할 우리는 이 두 세계의 구별을 충분히 인식하고 하나님 안에서만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2. 3차원의 운동
사회 속의 그리스도인이 어디에 서 있는가를 생각하는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요점은 역사 안에서 활동하는 하나님의 운동,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계시된 3차원의 운동이다.
이것은 종교가 아니다. 종교경험이란 참으로 신적인 것의 아류에 불과하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계시된 삶은 거룩한 것에 대한 새로운 형식이 아니라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의 부활이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우리가 사회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붙들어야 할 사항은 죽은 자 가운에서 예수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그런 운동이다. 거기서만 이 세상의 죽음의 그림자로 부터 그리스도인의 자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될 것이다.

3. 자연 세상
3차원의 운동으로서 하나님 나라 운동은 어디서 시작하는 것인가? 그것이 바로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들이 서야할 자리일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항거운동(사회주의)으로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혁명 이전에 존재하는 개혁이다. 우리는 무엇 보다도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받아들여 그것이 하나님과 갖는 관계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창조자 하나님, 마지막 심판자 하나님 안에서만 이 세상은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를 생각할 때 우리는 피조 세계 안에 깃든 하나님의 은총을 기억한다. 비록 이 세상에 악이 있다 해도, 허무가 있다 해도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인생의 철허자한 허무를 인식하는 것은 또한 그 상대적 잠재력을 인식하는 것이다.”
복음서의 비유들은 어떤 동화나 철학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기술되어 있다. 세계는 전부가 매우 진부하고 환상이 결여되어 있고, 전적으로 종말론적 관심이 없으며, 또한 그 때문에 더욱 종말론으로 차 있다. 왜냐하면 어떤 문학적 형식이 아니라 내적인 필연성에 나오는 형식을 가진 의미로 충만한 내용 자체이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삶이란? 그것은 무엇인가를 뜻한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의 사상, 말, 행동의 단순한 내용은 폐쇄된 의식 속에서도 하나의 약속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위해 우리의 목숨을 내어놓을 견고한 책임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타락한 세계 속에서도 여전히 창조자에 대한 생각을 집중시키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삶을 긍정한다. 창조의 왕국, 곧 거대한 시간의 덩어리 가지도 항상 하나님의 왕국이 될 수 있다.

4. 긍정과 부정의 변증법
이 세상에는 많은 악과 비극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의 주변은 Ja 보다는 Nein의 대답이 훨씬 많다. 애초부터 삶에 대한 우리의 긍정은 그 안에 신의 부정을 수반하고 잇으며, 부정은 그 반제로서 일어나며, 또한 본래적이고 궁극적인 종합에 대한 명제가 되는 것을 지시한다. 부정은 마지막에 다다르는 최고의 진리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물음에 대답을 주는 부름이다. 이러한 긍정과 부정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은총의 왕국을 건설해야 한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5. 종말론적 윤리
사회의 우상을 경계했듯이 이제는 비판작업, 항의, 개혁, 민주화, 변혁 등이 아무리 근본적이고 철저하다고 해도 하나님 나라 개념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회의 변혁이 곧 하나님 나라와 일치될 수 없다. 하나님 나라는 절대타자이다. 존재유비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가 찾는 종합-신앙과 세상-은 세상 안에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 안에만 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은 세계와 우리를 움직이는 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절대타자로서 구성된 존재의 현현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진보에서가 아니라 그것들의 단절 가운데서, 그리고 위에서 오는 힘으로 이 세계는 하나님 나라와 관련을 갖는다. 결국 그리스도인이 사회 속에서 갖는 위치는 <장래 생명의 희망>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발생하는 일들을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세상을 긍정하거나 아니면 비판하거나 모든 행동은 여기에 근거한다.

<결론>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사회속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진리에 의해 움직인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 안에 근거를 두지 않는가? 우리는 하나님 안에 근거하고 있다. 그런데 왜 영원히 우리 마음 속에 주어지지 않는가? <영원의 관망 아래서>. 그런데 어찌해서 우리는 무엇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모르는가? 실로 우리는 한 가지만을 행할 수 있으며 여러가지를 행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우리가 행하지 못하는 그 한 가지이다. 사회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의하며 행해진 바를 정중하게 따르는 것 이외에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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