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혁 선교사가 들려주는 인도 이야기

의료사업과 기독교 선교단체

인도기독교사 조회 수 232 추천 수 0 2019.06.03 00:58:30

4장 의료 사업과 기독교 선교단체

 

의료 사역은 인도교회와 인도에 상륙한 거의 모든 크리스천 선교의 사역 중에 두드러진 지위를 점유하고 있다. 인도에 의료 시설의 절대 부족은 크리스천 단체로 병원과 약국을 도시와 시골에서 시작하도록 유도하였다.

 

인도로 의료 선교사들을 보내도록 하는 정규적 정책으로 채택한 첫 선교회는 미국 위원회(A.B.C.F.M)였다. 초기에는 남자만 보냈는데 선교 사역과 의료 의사로서 온전한 자격을 갖추었고 의료 복음주의자로 불렸다. 첫 의료 선교사는 존 스쿠더(John Scudder)였다. 근느 1836년에 마드라스에 도착했다. 후에 그의 두 아들이 팀에 합류했다. 큰 아들은 헨리 였고 또한 의료 복음주의자로 1851년 아르코드로 옮겨가 의료선교를 시작했다. 1857년 아르코트 지역은 미국 독일 개혁교회 소속의 미국 아르코트 선교회아래로 들어가게 되었다. 아메리카 위원회는 1837년 마두라이에서 의료 사역을 시작했다. 런던 선교회(L.M.S.) 1838년 네이유르(현 타밀나두의 깐야꾸마리 관구이지만 당시는 남 트라반코르 지역)에서 의료 사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중앙 병원과 지점과 함께 의료선교의 확장으로 개발된 것은 훨씬 후에 일어난 일이다. 1840년부터 미국 침례주의자들이 남 벵갈에 두 의료 복음자들을 보냈다. 첫 프로테스탄트 의사가 펀잡의 루디아나에 첫 의료선교사로 온 것은 1842년이었다.

 

1858년 이후에 프로테스탄트 기독교 선교단체가 일반적으로 의료 선교에 더욱 주의를 기울였다. 스코틀랜드의 통합 장로 선교회(The United Presbyterian Mission)1860년부터 라자스탄에서 그 사역을 시작했다. 그들의 슐브레드(Shoolbred)와 발렌타인(Valentine)과 같은 의료 복음주의자들은 마을로 갔는데 사람들로 하여금 오라고 하기보다 그들에게 가서 의료를 베풀고 또한 복음도 전했다. 사실 이것은 모든 선교회에서 운영하던 의료 복음주의자들이 하던 방법이었다. 그 결과로서 U.P.M. 스코틀랜드는 약제소와 병원을 베아와르, 아즈메르에 세웠고 그 후 25년동안 그들의 모든 지역본의 거의 모든 지점을 세웠다. 그래서 또한 스코틀랜드 선교회의 프리 처치(Free Church)18571903년 사이에 모든 주요 지점들을 세웠다. 19세기 후반부동안 의료선교는 모든 선교회내 서비스의 인정받은 지점이 되었다. 그리고 이 세기말 그 범위에 있어 급속도로 개발되고 성장하였다. 예를 들면 “1858년 인도(분리되기 전)에는 단지 7명의 의료선교사들이 있었으나 1882년에는 28, 1985년에는 140, 1905년에는 280명로 증가했다.” 인도 의사들의 숫자도 서서히 증가하여 1895년에 168명의 인도 의사가 있었다.

 

인도 규방 전도회(Zenana Misison)선교 사역자들은 여인들, 특히 집안 또는 규방에만 갇혀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한 의료의 특수한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곧 자격을 갖춘 여의사가 인도에 도착하였다. 미국 감리교 선교회는 자격을 갖춘 첫 여의사 클라라 스와인(Clara Swain)을 보낸 첫 선교단체였다. 그녀는 우떨 프라데쉬의 바레일리(Bareilly)를 근거지로 삼아 1870년에 그녀의 의료 사역을 시작했다. 그녀는 람푸르의 나왑(Nawab: 인도 이슬람 귀족계급)이 선물로 준 땅에 1874년 여인용 병원을 개원했다. 이것이 비 기독교도부터 받은 의료선교를 돕는 자선의 초기 일례다. 후에 또한 이러한 자선행위가 많이 있었다. 미국 장로교 선교회에서 파송 받은 사라 세와드(Sara Seward) 의사는 1871년 알라하바드에서 그녀의 사역을 시작하였다. 교파에 속하지 않는 영국에서 온 제나나와 성경 의료 선교회영국 제나나 선교회의 교회1880년부터 여성들 사이에 자기들의 사역을 시작했다. 그들은 여성들과 아이들을 위해 전국에 걸쳐 많은 곳에 병원을 지었다. 영국 감리교도회(W.M.M.S) 또한 의료사역에 뛰어들었다. 그들의 사역지중 하나는 이전 마이소르의 왕국 부지였다. 그들은 특별히 여성과 어린이들을 위해 병원을 열었다. 1961년 마이소르시와 하산에서 시작된 것은 좋은 예다.

 

의료 선교회는 의료 사역이 무슬림에게 다가가는데 있어 더할 나위 없는 좋은 도우미 임을 발견하였고 그래서 북서와 카시미르에 다수 집결해있는 무슬림들 지역에 C.M.S, 스코틀랜드 선교의 교회와 미국 장로선교회등은 많은 장소에 특별히 여성과 어린이들을 위해 병원을 지었다. 1864년에 스리나가르에 C.M.S에 의해 시작된 것은 인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다. 줄리우스 리처(Julius Richter) 인도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의 펀잡을 일컬어 의료 선교회의 가장 좋은 영역이라고 했다.

 

의료 사역이 훈련된 의사, 간호원과 다른 인력이 요구되기에 크리스천 의대와 간호원 훈련 기관이 몇몇 선택된 센터에 세워졌다. 그들은 정부 시험을 위해 학생들을 훈련했고 학생들은 다양한 선교회로부터 후원을 받았다. “이 방향에 첫 노력은 미장로교 선교회의 선교사인 발렌타인 박사에 의해 1881년에 시작된 아그라 의료 선교 훈련 기관이었다. 정부 의료 학교에 접해있는 크리스천 기숙사의 속성에 어떤 것이 있었다. 정부 학교에 출석한 학생들은 또한 이 기관에서 의료 및 다른 것을 보충 수업을 들었다. 더 야심찬 프로젝트는 1894년 루디아나에 에디드 브라운(Dr. Edith Brown)과 그린필드양이 세운 크리스천 여성을 위한 북인도 의대였다. 이것은 펀잡 대학 계열학교로 된 제대로 구색을 갖춘 여성 의사, 조제사, 간호원를 위한 의대였다.“ 윌리암 완레스 박사(Dr. William Wanless)는 미라즈에 크리스천 의대를 설립했는데 이것은 거의 50년 동안 남성을 위한 학장 훈련 대학이었다.” 미국 아르코트 선교회의 아이다 스쿠더박사(Dr. Ida S. Scudder)는 벨로어에 여성을 위한 의대를 세웠다. 얼마 있지 않아 이 대학은 열 개의 다른 선교단체의 지원을 받는 연합 기관이 되었다.

 

기독교 선교단체가 설립해온 것은 의대라고 명명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만약 자신들이 정해준 기준에 맞춰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그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위협을 가해왔다. 가장 처음 영향을 받은 대학이 벨로어에 있는 의대였다. 아이다 스쿠더 박사는 대학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많은 아픔과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다. 그리고 1942년에 의학사 첫 2년 과정을 위해 마드라스 대학과 제휴했다. 아이다 박사는 미국, 유럽과 인도내에서 재정 지원과 원조를 얻어내기 위해 쉼 없이 일했다. 마침내 1945년 남녀 공학 크리스천 의대로서 온전한 자격을 갖춘 대학을 세웠다. 바꿔진 시나리오로 인하여 미라즈 대학은 폐교하고 벨로에와 합병하였다. 루디아나에 있는 것도 벨로어의 예를 따라 남녀공학 으대가 되었다.

 

간호원 훈련 분야와 간호에 대한 기독교 선교단체의 공헌은 현저한 것이었다. 초기에 인도인들은 간호원이란 직업을 일반적으로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러 해 동안 간호원 직업 후보들은 거의 다 혼혈 인도인이나 인도인 크리스천들이었다. 1940년에는 간호원 90%가 크리스천이었고 그들 중 80%가 크리스천 병원에서 훈련받아온 것으로 추정되었다.” r그때부터 다른 단체도 의료 사역에 가담하였고 정보 또한 거대한 규모로 건강 봉사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크리스천 병원들은 여전히 정부 병원보다 훨씬 나은 보살핌을 제공했고 크리스천 의사와 간호원들은 여전히 다른 단체보다 낫다고 인정되었다.

 

크리스천 의료 사역은 의료 분야의 특별한 계열에 모험적으로 뛰어들었다. 안과 병원이 그 가운데 하나다. 밤다(비하르), 자얄푸르-잣탄과 뭉겔리(마댜프라데쉬)에 있는 병원들는 안과 수술과 안질 치료로 유명한 병원들이었다. 네아유르(타밀나두의 깐야꾸마리 구), 벨로어, 루디아나 등 몇 병원은 안과 수술로 유명했다.

 

프로테스탄드 의료사역은 또한 몇몇의 결핵환자 요양소, 나병환자 수용소, 정신병원과 좀 더 후엔 정신과 병원을 짓고 유지하는 일까지 포괄했다.

 

인도의 가장 좋은 결핵 요양원은 안드라 프라데쉬주의 아로그야바람에 있는 크리스천 기관인 연합 선교 결행 요양원이다. 이 요양원은 191514개의 선교회의 공조 연합의 노력으로 세워졌다. 이 요양원은 이 분야에서 치료뿐만 아니라 연구에서도 선두 기관이 되었다. 첫 원장은 덴마크 선교회의 프리메드 뮬러(C. Frimedt Moeller) 박사 였고 벤자민(P.V. Benjamin)박사가 그 뒤를 이었다. 인도 정부는 둘 다 결핵 고문으로 삼았다. 이 요양원이외에도 11개의 다른 요양원이 인도 각처에 산재해 있다.

 

윌리암 캐리는 캘커타에 나병 환자들을 위한 수용소를 설립하는데 산파역할을 했다. 훗날 인도에 온 선교회는 나병 환자들을 돌보는 사역을 크리스천 서비스의 특수분야로 설정했다. 그러나 이 사역에 있어 뛰어난 기관은 국제적이고 종파 초월단체인 나환자 선교’(Mission to Lepers)인데 약 1874년 웰리슬리 바이레이(Wellesley Bailey)의 끈질긴 요청에 의해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형성되었다. 웰리슬리는 경찰에 투신할 목적으로 인도에 왔으나 암발라에 있는 미장로교 선교회에서 선교사가 되는 과정으로 바꾸었다. ‘나환자 선교는 인도내 26개 기관을 유지하고 있으며 34개의 요양소와 병원을 지원하고 있다. “페룰리아(서 벵갈)과 디치팔리(안드라 프라데쉬)같은 큰 규모의 수용소(나환자 선교의 지원을 받음)는 음식, 거처와 의료 치료외에 환자들이 일하는 거대한 농장과 목장을 가지고 직업적인 치료와 교육적, 사회적 활동의 프로그램을 조직, 잘 수행하고 있다. 벨로어 근처에 카리키리에 있는 나환자 선교의 연구와 훈련 센타는 반나병 캠페인에 지속적인 헌신을 하고 있다.4장 의료 사업과 기독교 선교단체

 

의료 사역은 인도교회와 인도에 상륙한 거의 모든 크리스천 선교의 사역 중에 두드러진 지위를 점유하고 있다. 인도에 의료 시설의 절대 부족은 크리스천 단체로 병원과 약국을 도시와 시골에서 시작하도록 유도하였다.

 

인도로 의료 선교사들을 보내도록 하는 정규적 정책으로 채택한 첫 선교회는 미국 위원회(A.B.C.F.M)였다. 초기에는 남자만 보냈는데 선교 사역과 의료 의사로서 온전한 자격을 갖추었고 의료 복음주의자로 불렸다. 첫 의료 선교사는 존 스쿠더(John Scudder)였다. 근느 1836년에 마드라스에 도착했다. 후에 그의 두 아들이 팀에 합류했다. 큰 아들은 헨리 였고 또한 의료 복음주의자로 1851년 아르코드로 옮겨가 의료선교를 시작했다. 1857년 아르코트 지역은 미국 독일 개혁교회 소속의 미국 아르코트 선교회아래로 들어가게 되었다. 아메리카 위원회는 1837년 마두라이에서 의료 사역을 시작했다. 런던 선교회(L.M.S.) 1838년 네이유르(현 타밀나두의 깐야꾸마리 관구이지만 당시는 남 트라반코르 지역)에서 의료 사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중앙 병원과 지점과 함께 의료선교의 확장으로 개발된 것은 훨씬 후에 일어난 일이다. 1840년부터 미국 침례주의자들이 남 벵갈에 두 의료 복음자들을 보냈다. 첫 프로테스탄트 의사가 펀잡의 루디아나에 첫 의료선교사로 온 것은 1842년이었다.

 

1858년 이후에 프로테스탄트 기독교 선교단체가 일반적으로 의료 선교에 더욱 주의를 기울였다. 스코틀랜드의 통합 장로 선교회(The United Presbyterian Mission)1860년부터 라자스탄에서 그 사역을 시작했다. 그들의 슐브레드(Shoolbred)와 발렌타인(Valentine)과 같은 의료 복음주의자들은 마을로 갔는데 사람들로 하여금 오라고 하기보다 그들에게 가서 의료를 베풀고 또한 복음도 전했다. 사실 이것은 모든 선교회에서 운영하던 의료 복음주의자들이 하던 방법이었다. 그 결과로서 U.P.M. 스코틀랜드는 약제소와 병원을 베아와르, 아즈메르에 세웠고 그 후 25년동안 그들의 모든 지역본의 거의 모든 지점을 세웠다. 그래서 또한 스코틀랜드 선교회의 프리 처치(Free Church)18571903년 사이에 모든 주요 지점들을 세웠다. 19세기 후반부동안 의료선교는 모든 선교회내 서비스의 인정받은 지점이 되었다. 그리고 이 세기말 그 범위에 있어 급속도로 개발되고 성장하였다. 예를 들면 “1858년 인도(분리되기 전)에는 단지 7명의 의료선교사들이 있었으나 1882년에는 28, 1985년에는 140, 1905년에는 280명로 증가했다.” 인도 의사들의 숫자도 서서히 증가하여 1895년에 168명의 인도 의사가 있었다.

 

인도 규방 전도회(Zenana Misison)선교 사역자들은 여인들, 특히 집안 또는 규방에만 갇혀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한 의료의 특수한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곧 자격을 갖춘 여의사가 인도에 도착하였다. 미국 감리교 선교회는 자격을 갖춘 첫 여의사 클라라 스와인(Clara Swain)을 보낸 첫 선교단체였다. 그녀는 우떨 프라데쉬의 바레일리(Bareilly)를 근거지로 삼아 1870년에 그녀의 의료 사역을 시작했다. 그녀는 람푸르의 나왑(Nawab: 인도 이슬람 귀족계급)이 선물로 준 땅에 1874년 여인용 병원을 개원했다. 이것이 비 기독교도부터 받은 의료선교를 돕는 자선의 초기 일례다. 후에 또한 이러한 자선행위가 많이 있었다. 미국 장로교 선교회에서 파송 받은 사라 세와드(Sara Seward) 의사는 1871년 알라하바드에서 그녀의 사역을 시작하였다. 교파에 속하지 않는 영국에서 온 제나나와 성경 의료 선교회영국 제나나 선교회의 교회1880년부터 여성들 사이에 자기들의 사역을 시작했다. 그들은 여성들과 아이들을 위해 전국에 걸쳐 많은 곳에 병원을 지었다. 영국 감리교도회(W.M.M.S) 또한 의료사역에 뛰어들었다. 그들의 사역지중 하나는 이전 마이소르의 왕국 부지였다. 그들은 특별히 여성과 어린이들을 위해 병원을 열었다. 1961년 마이소르시와 하산에서 시작된 것은 좋은 예다.

 

의료 선교회는 의료 사역이 무슬림에게 다가가는데 있어 더할 나위 없는 좋은 도우미 임을 발견하였고 그래서 북서와 카시미르에 다수 집결해있는 무슬림들 지역에 C.M.S, 스코틀랜드 선교의 교회와 미국 장로선교회등은 많은 장소에 특별히 여성과 어린이들을 위해 병원을 지었다. 1864년에 스리나가르에 C.M.S에 의해 시작된 것은 인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다. 줄리우스 리처(Julius Richter) 인도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의 펀잡을 일컬어 의료 선교회의 가장 좋은 영역이라고 했다.

 

의료 사역이 훈련된 의사, 간호원과 다른 인력이 요구되기에 크리스천 의대와 간호원 훈련 기관이 몇몇 선택된 센터에 세워졌다. 그들은 정부 시험을 위해 학생들을 훈련했고 학생들은 다양한 선교회로부터 후원을 받았다. “이 방향에 첫 노력은 미장로교 선교회의 선교사인 발렌타인 박사에 의해 1881년에 시작된 아그라 의료 선교 훈련 기관이었다. 정부 의료 학교에 접해있는 크리스천 기숙사의 속성에 어떤 것이 있었다. 정부 학교에 출석한 학생들은 또한 이 기관에서 의료 및 다른 것을 보충 수업을 들었다. 더 야심찬 프로젝트는 1894년 루디아나에 에디드 브라운(Dr. Edith Brown)과 그린필드양이 세운 크리스천 여성을 위한 북인도 의대였다. 이것은 펀잡 대학 계열학교로 된 제대로 구색을 갖춘 여성 의사, 조제사, 간호원를 위한 의대였다.“ 윌리암 완레스 박사(Dr. William Wanless)는 미라즈에 크리스천 의대를 설립했는데 이것은 거의 50년 동안 남성을 위한 학장 훈련 대학이었다.” 미국 아르코트 선교회의 아이다 스쿠더박사(Dr. Ida S. Scudder)는 벨로어에 여성을 위한 의대를 세웠다. 얼마 있지 않아 이 대학은 열 개의 다른 선교단체의 지원을 받는 연합 기관이 되었다.

 

기독교 선교단체가 설립해온 것은 의대라고 명명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만약 자신들이 정해준 기준에 맞춰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그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위협을 가해왔다. 가장 처음 영향을 받은 대학이 벨로어에 있는 의대였다. 아이다 스쿠더 박사는 대학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많은 아픔과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다. 그리고 1942년에 의학사 첫 2년 과정을 위해 마드라스 대학과 제휴했다. 아이다 박사는 미국, 유럽과 인도내에서 재정 지원과 원조를 얻어내기 위해 쉼 없이 일했다. 마침내 1945년 남녀 공학 크리스천 의대로서 온전한 자격을 갖춘 대학을 세웠다. 바꿔진 시나리오로 인하여 미라즈 대학은 폐교하고 벨로에와 합병하였다. 루디아나에 있는 것도 벨로어의 예를 따라 남녀공학 으대가 되었다.

 

간호원 훈련 분야와 간호에 대한 기독교 선교단체의 공헌은 현저한 것이었다. 초기에 인도인들은 간호원이란 직업을 일반적으로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러 해 동안 간호원 직업 후보들은 거의 다 혼혈 인도인이나 인도인 크리스천들이었다. 1940년에는 간호원 90%가 크리스천이었고 그들 중 80%가 크리스천 병원에서 훈련받아온 것으로 추정되었다.” r그때부터 다른 단체도 의료 사역에 가담하였고 정보 또한 거대한 규모로 건강 봉사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크리스천 병원들은 여전히 정부 병원보다 훨씬 나은 보살핌을 제공했고 크리스천 의사와 간호원들은 여전히 다른 단체보다 낫다고 인정되었다.

 

크리스천 의료 사역은 의료 분야의 특별한 계열에 모험적으로 뛰어들었다. 안과 병원이 그 가운데 하나다. 밤다(비하르), 자얄푸르-잣탄과 뭉겔리(마댜프라데쉬)에 있는 병원들는 안과 수술과 안질 치료로 유명한 병원들이었다. 네아유르(타밀나두의 깐야꾸마리 구), 벨로어, 루디아나 등 몇 병원은 안과 수술로 유명했다.

 

프로테스탄드 의료사역은 또한 몇몇의 결핵환자 요양소, 나병환자 수용소, 정신병원과 좀 더 후엔 정신과 병원을 짓고 유지하는 일까지 포괄했다.

 

인도의 가장 좋은 결핵 요양원은 안드라 프라데쉬주의 아로그야바람에 있는 크리스천 기관인 연합 선교 결행 요양원이다. 이 요양원은 191514개의 선교회의 공조 연합의 노력으로 세워졌다. 이 요양원은 이 분야에서 치료뿐만 아니라 연구에서도 선두 기관이 되었다. 첫 원장은 덴마크 선교회의 프리메드 뮬러(C. Frimedt Moeller) 박사 였고 벤자민(P.V. Benjamin)박사가 그 뒤를 이었다. 인도 정부는 둘 다 결핵 고문으로 삼았다. 이 요양원이외에도 11개의 다른 요양원이 인도 각처에 산재해 있다.

 

윌리암 캐리는 캘커타에 나병 환자들을 위한 수용소를 설립하는데 산파역할을 했다. 훗날 인도에 온 선교회는 나병 환자들을 돌보는 사역을 크리스천 서비스의 특수분야로 설정했다. 그러나 이 사역에 있어 뛰어난 기관은 국제적이고 종파 초월단체인 나환자 선교’(Mission to Lepers)인데 약 1874년 웰리슬리 바이레이(Wellesley Bailey)의 끈질긴 요청에 의해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형성되었다. 웰리슬리는 경찰에 투신할 목적으로 인도에 왔으나 암발라에 있는 미장로교 선교회에서 선교사가 되는 과정으로 바꾸었다. ‘나환자 선교는 인도내 26개 기관을 유지하고 있으며 34개의 요양소와 병원을 지원하고 있다. “페룰리아(서 벵갈)과 디치팔리(안드라 프라데쉬)같은 큰 규모의 수용소(나환자 선교의 지원을 받음)는 음식, 거처와 의료 치료외에 환자들이 일하는 거대한 농장과 목장을 가지고 직업적인 치료와 교육적, 사회적 활동의 프로그램을 조직, 잘 수행하고 있다. 벨로어 근처에 카리키리에 있는 나환자 선교의 연구와 훈련 센타는 반나병 캠페인에 지속적인 헌신을 하고 있다.

 

20세기가 시작되며 기독교 선교단체와 교회내 후원 사이에 보다 큰 협조를 했다. 인도에 있는 의료 선교사들은 경험과 카운슬링의 나눔을 위한 모임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1905년 의료 선교사 협회(Medical Missionary Association)를 조직했다. 이 기관은 훗날 1914년에 조직된 국가 선교사 위원회(National Missionary Council)이 하부조직이 되었다. 1926년에 인도 크리스천 의사 협의회(Christian Medical Association of India:CMAI)로 크리스천화되었다. 어떤 크리스천 의료 해위를 하는 사람은 그의 서비스 가맹여부를 불문하고 이 협회의 목적을 받아들이면 회원이 될 수 있다. 1925년부터 1927년까지 협의회는 가치있는 인도내 의료선교회의 조사를 수행했다. 그 결과는 1929년에 핸드북형태로 출판된 인도의 치료 사역(The ministry of Healing in India-1932)였다. 이 협의회는 인도 의료 기업에 대한 중앙 상담과 조언 조직이다. 이 기관의 저널, 컨퍼런스, 간사진들의 활동에 의해 정보, 아이디어를 전파하고 나날의 이슈들을 의논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포럼을 제공한다. 이 기관은 또한 다양한 형태의 의료 교육을 후원한다. 1931년 이후 간호원을 위한 부설기관(Nurses' Auxiliary)을 갖는다. “이 협의회가 옹호하는 의견은 의료 사역은 아마 개종의 수단으로 받아들여진 선교 사역의 단순한 보조물이 아니라 그 자체가 크리스천 교회 사역의 필수 분야다.”

 

독립이후로 인도정부는 의료 서비스에 방대한 참여를 해왔다. 그래서 여타 많은 종교 단체와 사설 기관과 조직이 이 사역을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치료 사역과 크리스천 병원들에 종사하는 개개인 크리스천들로서 차별성 있는 특징이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서비스의 질, 인격적인 관계와 인격적인 서비스가 환자들의 돌봄에 더욱더 결정적이 될 것이며 크리스천 병원들과 크리스천 개개인이 국가에 대한 헌신일 것이다

 

20세기가 시작되며 기독교 선교단체와 교회내 후원 사이에 보다 큰 협조를 했다. 인도에 있는 의료 선교사들은 경험과 카운슬링의 나눔을 위한 모임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1905년 의료 선교사 협회(Medical Missionary Association)를 조직했다. 이 기관은 훗날 1914년에 조직된 국가 선교사 위원회(National Missionary Council)이 하부조직이 되었다. 1926년에 인도 크리스천 의사 협의회(Christian Medical Association of India:CMAI)로 크리스천화되었다. 어떤 크리스천 의료 해위를 하는 사람은 그의 서비스 가맹여부를 불문하고 이 협회의 목적을 받아들이면 회원이 될 수 있다. 1925년부터 1927년까지 협의회는 가치있는 인도내 의료선교회의 조사를 수행했다. 그 결과는 1929년에 핸드북형태로 출판된 인도의 치료 사역(The ministry of Healing in India-1932)였다. 이 협의회는 인도 의료 기업에 대한 중앙 상담과 조언 조직이다. 이 기관의 저널, 컨퍼런스, 간사진들의 활동에 의해 정보, 아이디어를 전파하고 나날의 이슈들을 의논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포럼을 제공한다. 이 기관은 또한 다양한 형태의 의료 교육을 후원한다. 1931년 이후 간호원을 위한 부설기관(Nurses' Auxiliary)을 갖는다. “이 협의회가 옹호하는 의견은 의료 사역은 아마 개종의 수단으로 받아들여진 선교 사역의 단순한 보조물이 아니라 그 자체가 크리스천 교회 사역의 필수 분야다.”

 

독립이후로 인도정부는 의료 서비스에 방대한 참여를 해왔다. 그래서 여타 많은 종교 단체와 사설 기관과 조직이 이 사역을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치료 사역과 크리스천 병원들에 종사하는 개개인 크리스천들로서 차별성 있는 특징이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서비스의 질, 인격적인 관계와 인격적인 서비스가 환자들의 돌봄에 더욱더 결정적이 될 것이며 크리스천 병원들과 크리스천 개개인이 국가에 대한 헌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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