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혁 선교사가 들려주는 인도 이야기

인도와 코로나19

인도의 길 조회 수 954 추천 수 0 2020.11.25 13:43:50

인도와 코비드19

 

올해 1월 중국 우한에서 귀국한 케랄라 출신 의대생이 인도의 코로나바이러스 첫 감염자가 된다. 확진자가 서서히 늘어나 500명에 이르자 모디 총리는 3243주간의 전국봉쇄(lockdown) 1단계를 선포한다. 결국 531일까지 이르는 4단계의 긴 봉쇄동안 모든 경제, 사회활동이 중지되었다.


봉쇄 3단계가 시작된 지 일주일이 되자 델리와 뭄바이의 노동자의 귀향행렬이 이어졌다. 그러나 4월초 대구의 신천지와 유사한 델리 무슬림 모임이 하루만에 93명의 확진자를 내었다. 중동 노동자가 많은 마하라슈트라와 타밀나두는 이보다 더 많이 발생했다.


아직은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재앙속에서 인도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이글을 통해 재앙속에서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인도인의 삶의 자락을 인문학적 측면에서 톺아보고자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나마스떼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던 3월 미대통령 트럼프는 인도의 혈통을 지닌 레오 바라드카르 아일랜드 총리를 만난다. 이들은 서로 대다수 인도인들의 인사, 두 손을 모으고 살짝 고개를 숙이는 나마스떼를 했다. 이를 두고 말하기 좋아하는 인도인들은 태생적으로 자신들이 위생관념에 충실한 민족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흔히들 나마스떼의 의미를 내 안에 있는 신성이 당신안에 있는 신성에게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알고 있다. 산스크리트에서 나마(nama)는 테(te)와 결합하여 '당신에게 절합니다' 또는 '나는 당신의 안부를 물으며 인사합니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다른 존재앞에 자아를 부정하거나 낮춤으로서 관계가 친밀해지는 사회적 의미, 타인의 신성을 인정하면서 나마스떼'를 할 때 카스트, 피부색 또는 종교에 관계없이 만나는 사람의 신성에 경의를 표하는 영적인 의미를 갖는다. 거리가 있는 인사지만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상호간 인정과 존중이다. 그래서 나마스떼가 코로나19 상황하 최고의 인사가 되는 것이다.

 

집안의 사원


베다시대 인도인들에게는 모든 자연현상이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모든 자연 현상을 신으로 만들어 숭배하며 신들을 위무함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했다. 이래서 태양신 수르야, 하늘과 바다의 신 바루나, 불의 신 아그니, 번개와 천둥의 신 인드라가 생겨났다. 뱀에 물리면 코브라를 섬기고 쥐로 인해 전염병이 번지면 쥐를 섬겼다. 이런 인도인들이 코로라 19가 주는 두려움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앞집에 사는 자칭 브라만 중의 브라만이라는 라지브 우파다야씨는 국영인도항공 퇴역조종사다. 자녀들은 다 출가시키고 부부만 살고 있다. 코로나사태가 발발하기 전에는 2키로 떨어진 사원(만디르)에 가는 것이 일과중의 하나였다. 코로나사태이후에는 그 생활습관을 지속하지 못하자 가정 사원에서 매일 예배를 드린다.


 힌두 사유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전능한 신의 소속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대부분 전통적인 인도 가정은 가정사원 즉 기도실을 갖고 있다. 이것의 배후에는 신이 이 집의 진정한 주인이시며 자신들은 단순히 청지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성스러운 날과 축제일을 포함하여 전능자의 이름을 되풀이하는 것(japa), 명상, 성전 읽기, 기도와 찬가를 부르는 것 같은 다른 영적인 수행도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가족의 모든 구성원, 젊든 나이가 들었든 간에 이 방, 이 공간에서 신을 경배한다.

이 집에 사는 가족들은 전능하신 분의 은총을 받아 경제적으로 결핍하지 않고 불쾌한 일이나 큰 논쟁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한 가정의 주인이 수행하는 모든 과업은 성공적으로 성취된다. 이 가정 제단으로 인도인들은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오는 공포를 이겨내고 있다.

 

소리를 울려라


322일 모디총리는 인도 전역 통행금지를 실시하고 저녁에는 코로나바이러스를 퇴치하는 의료진들을 격려하고자 소라고둥이든, 냄비든 뭐든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라면 다 동원하여 12억 인구가 일시에 소리를 울리자고 하였다. 21세기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나라의 수장이 제안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좀 생뚱맞아 보인다. 그러나 그날 저녁 인도의 전역이 폭죽의 축제일 디왈리 만큼이나 요란했다. 인도인들이 심정적으로 공감하는 제안이었다. 왜일까?


중국은 기록을 문자로 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없었다면 갑골문자로 시작한 그 기록의 자료들은 지금보다 더 풍성할 것이다. 그러나 인도는 문자가 아닌 소리에 더 의미를 둔다. 고대 인도인들은 오래전에 리듬 있는 소리가 부정을 효과적으로 물리치고 에너지를 회복시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사원의 종을 올리고 아침저녁 예배aarti때 징을 울리는 것은 사원의 일상의식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었다.


일부 사람들이 순수하게 기도만 하러 사원으로 가지만 대부분은 사원을 방문하여 슬픔, 힘든 시기, 정신적 고통, 질병 또는 마음의 불안에 대한 위안을 찾는다. 기도한 후에 수많은 애환을 다 사원에 남겨둔 채 집으로 떠난다. 사원을 지키는 이들은 매일 일출과 일몰 두 번에 걸쳐 종을 치고 소라를 불며 징을 울리면서 소리로 사원 공간의 정기적인 청소를 실시한다.


가정에서는 치유 만뜨라 CD를 틀거나 종을 치고 특히 부정이 짙어 보이는 집안 구석에는 노래사발을 사용하여 어두움을 몰아낸다. 질병이 오래된 집이나 질병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병원,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거세지는 경찰서에 가면 불편하고 불안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장소에서 부정성은 깊숙이 벽에 들어가 쌓인다. 규칙적이고 지속적으로 부드러운 음악을 틀어서 그러한 장소를 청소해주면 빠져나간 에너지를 보충해주는데 도움을 준다. 이런 믿음에 기초해서 모디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물러가도록 함께 소리를 지르자고 제안한 것이다.

 

불을 밝혀라

다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인도 국민에게 45일 밤 9시에 9분 동안 집안의 불을 끄고 촛불이나 등잔, 심지어 휴대전화라도 켤 것을 주문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이렇게 말한다. “상서로운 일, 건강과 번영을 가져다주는 등잔불을 향해 손을 모으자.”


세상의 모든 종교들에 있어 ''은 보편적으로 전능과 지식을 상징한다. 빛은 생명의 근원이며 전능하신 신 자체로도 경배된다. 빛이 어두움을 물리치는 것처럼 지식은 내부 무지를 쫓아낸다. 그러므로 인도인들은 빛과 지식을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의 형태중 가장 위대한 것으로 인정하고 그 상징으로 등잔불을 켜고 그 앞에 두 손을 모으는 것이다.


전통 인도 가정에서는 등잔은 암소의 순수한 버터유(ghee)로 채워지고 가정 제단에 매일 불을 켠다. 어떤 가정에서는 새벽에, 어떤 가정은 새벽과 황혼에 불을 켠다. 어떤 가정에서는 하루 종일 켜놓기도 한다. 이들은 그 등잔을 아칸다 조띠(akhanda jyoti) 또는 디팜(deepam)이라고 한다. 모든 성스러운 행사는 길조를 나타내는 아칸다 조띠에 불을 켜는 것으로 시작한다.


등잔 불꽃은 항상 위를 향해 타오르고 이것은 우리로 높은 목표, 이상과 고상한 행동으로 이끄는 지식을 추구하도록 영감을 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져다주는 무지에서 나오는 두려움도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밝은 미래를 기원할 때 물러갈 믿음을 갖는 것이다.

 

카스트와 코로나 바이러스


세계 경제포럼에 따르면 인도에는 139백만의 이주자가 있고 국제노동기구는 코로나 19로 인해 4백만 노동자가 빈곤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남성은 일자리를 위해 여성은 결혼을 위해 우타르 프라데시, 비하르, 라자스탄과 마댜 프라데시에서 델리나 뭄바이 같은 대도시로 이주한다.


도시로 스며든 이들의 평상시 카스트 정체성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카멜레온처럼 환경에 따라 때로는 자신의 카스트 정체성을 드러냈다가 때로는 숨긴다. 사회적,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 이를 사용하고 카스트가 문제의 소지가 된다면 숨긴다. 어떤 이들은 카스트를 세탁하여 더 높은 카스트로 생존을 유지한다.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카스트는 경직된 신분체계가 아닌 생존을 위해 유연하게 수용, 조정되는 전략적 수단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대규모로 고향을 향해 가는 동안 트럭 또는 버스에 같이 섞여서 이동하게 된다. 좁은 공간에서는 카스트를 잊어야 한다. 생존을 걱정하고 무사히 집에 도착하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다.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모두가 비참한 카스트가 되었다.


지역에 마련된 검역소를 지나 이들이 '주거지'에 들어갔을 때 함께한 고통에 대한 기억은 그들의 정체성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충격에 시달리며 카스트의 혼합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카스트는 이 경험안에서 희석되고 유연해졌다. 고통의 시기에 이들 사이에서는 카스트에 근거한 지위를 따지거나 불가촉천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 먹거리, 의료품들은 카스트에 대해 묻지 않고 건네졌다. 카스트에 대한 고려 없이 서로에 대한 도움과 정서적 지원은 이주자들의 행동의 주요 경향 중 하나로 나타났다.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 하에서 카스트의 또 다른 변화하나는 그들 중 일부가 정부의 격리 조치를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방식으로 나타났다. 비하르주의 한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마을에 살던 상위카스트들이 검역을 피하여 마을로 스며들자 달릿(불가촉천민)이 이들이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자 상위카스트들은 공포에 질려 달릿에게 간곡히 머물 수 있기를 부탁했다. 카스트보다 감염으로부터의 안전이 더 중요해졌다. 카스트가 아닌 생존이었다.


카스트는 수천 년 인도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사회체제다. 그러나 전염병 같은 비상사태는 이 체제에 급격한 변화와 충격을 준다. 경직된 이분법을 깨고 위급한 상황에서 카스트의 정체성을 재구성한다. 미래의 진정한 인도사회통합을 꿈꾸는 이에게는 어쩌면 코로나바이러스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

20022월 고드라 폭동사태 이후 모디는 고드라로 인해 잘못 만들어진 구자라트의 이미지를 바꾸겠다.”고 작심한다. 경제개발 제목이 전부 베다에서 따왔다. 수자원 개발, 잘 삭띠(Jal Shakti), 에너지 개발, 우르자 삭띠(Urja Shakti), 사람 또는 인력 개발은 잔 삭띠(Jan Shakti), 지식의 힘과 교육에 대해서는 갼 삭띠(Gyan Shakti), 보안은 락샤 삭띠(Raksha Shakti)를 내세워 구자라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미지도 쇄신했다. 베다속에 모든 것이 있다는 비베카난다를 추종하며 코로나바이러스도 베다가 품고 있는 저력으로 물리칠 수 있다고 믿고 인도인들을 이끌고 있다.

이제 총리주도에서 각 주 수상 주도로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자연을 존중하고 더불어 살아가며 채식주의자 인도인들이 야생동물을 포식하여 생겨난 바이러스를 종내는 능히 물리칠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