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혁 선교사가 들려주는 인도 이야기

4장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1

인도가 바라는 선교사 조회 수 2606 추천 수 0 2014.03.22 08:58:29

20:26, 28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5: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요한복음 20:21절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첫 선교사님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또한 이 땅의 선교사들이 일생동안 본받아야 할 최고의 선교사 모델이시기도 합니다. 선교사들은 그 분의 삶과 사역의 예를 반드시 따라야 할 이유는 그 분이 보냄을 받으신 대로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아버지가 나를 보내심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십니다. (20:21) 그래서 그분의 삶과 사역은 선교사들이 본받아야 할 모델입니다. 선교사가 그리스도의 삶을 산다는 것은 성령의 감화감동을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성령충만함 받는 것과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사는 것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을 드러내는 것과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사는 것은 성령 충만함을 받은 결과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단지 성령충만한 사람만이 그분이 이 땅위에 계실 동안에 사셨던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가 사역하는 곳의 사람들은 선교사로부터 그의 자질과 행위에 있어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성화의 삶

그리스도를 닮은 삶의 개발을 성화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했을때 시작되며 이 땅위에 사는 동안 지속됩니다. 우리가 성령께서 우리안에 그 분의 성품을 개발하도록 허용할 때 우리가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는 진행 중인 프로그램입니다. 누군가 이에 대해 적확히 말했습니다. “새 탄생은 단 번에 이루어지나 성인(聖人)이 되기에는 일생이 걸린다.” 그러나 성인이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6:1절은 말씀합니다. “완전한 데로 나아갑시다.”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품과 그의 삶의 방식을 나타내며 성령의 내재하심과 역사하심에 의해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갈라디어서 5:22,23절에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성령안에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성도들에게 바울은 믿음에 의해 너희 심령에 그리스도가 거하시며... 사랑안에서 뿌리를 내리며, 하나님의 충만하심과 가득차게 하심을 원하노라.” (9:17-19)라고 썼습니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에베소 서신에 대한 그의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성령의 도우심으로 에베소 성도들이 그리스도안에 거하며 그들을 절제하시고 강하게 하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여성 선교사이자 도나버 펠로우십의 창시자 에이미 카르미카엘(Amy Carmichael)은 그런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쉐르우디 에리(Sherwood Eddy)에이미 윌슨 카르미카엘은 제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한 그녀의 삶은 가장 향기로웠으며 가장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두 선다 싱도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사람들은 그가 그리스도를 닮았다고 인정했습니다. 그의 모임에 참석했던 한 소녀는 그분이 예수님이 아닌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의 영혼에 대한 사랑과 거룩함은 정말 주님을 닮은 성품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뵙기를 원하는 사람들

인도의 선교 개척지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듣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선교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첫 기독교인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선교사의 말, 태도, 행동과 삶의 방식에 따라 예수님을 영접하기도 하고 배척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 선교사의 성품과 생활방식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오늘날 인도인들은 그리스도인의 삶 안에서 예수님 당시 헬라인들이 선생님, 우리는 예수를 보기를 원하나이다.” (12:21)라고 말한 것처럼 기독교 사역자들을 통하여 예수님 보기를 원합니다. 예수에 관한 진리를 전파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우리의 삶으로 예수님의 실체를 보여주고 그 진리를 실천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사는 것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2:20)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그리스도의 마음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은 성경에 생생하게 그려진 그리스도의 삶의 방식과 성품을 참조로 합니다. 2:5-8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사도 바울은 상기 말씀안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의 네 가지 다른 측면을 설명합니다.

1. 전적인 자기포기

2. 희생적인 종의 자세

3. 진정한 겸손

4. 무조건적인 복종

 

1. 전적인 자기포기

자기를 비우고 내어주기

그리스도는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사람이 됨으로서 우리 주님은 신성과 하나님이 갖는 모든 특권과 신격을 자발적으로 포기하셨습니다. 예수는 자기를 비우실 뿐만 아니라 하인 또는 노예가 되셨습니다. 이 두 가지 행위는 위대한 남인도 선교사인 토마스 워커(Thomas Walker)가 설명한 것처럼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의도하고자 한 본래 말의 의미는 종의 형체를 가지는 것에 의해 그 자신을 비운 것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의미전달이 더 명확합니다. ‘형체란 말은 예수님이 실제적으로 종이 되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단지 종의 역할을 행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은 그 자신을 비우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도 요구합니다. 이것은 전적인 자기포기를 포함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동료들을 섬김에 있어 자신의 모든 영적인 권리와 특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자신을 온전히 비울 때만이 그리스도 형상의 다른 성품인 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선교사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의 원천을 끌어내기 위하여 부적합한 자족을 포기하는 비밀을 배워야만 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종들을 통하여 가시신 능력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도록 전적으로 자기를 포기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대하 16:9)

 

2. 희생적인 종의 자세

예수님의 예

예수님은 희생적인 종의 자세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왔다는 것을 자각하셨습니다. (20:28) 제자들은 누가 크냐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0:26,27) 예수님이 의미하시는 바는 겸손한 섬김에 드리워진 가장 최고의 명예는 그에 대한 상급이 아니라 섬김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선교일선에서 선교사는 누가 가장 크냐, 작으냐는 문제에 자주 부딪칩니다. 선교일선에서 리더쉽, 다른 수준들은 이 문제를 직면하게 합니다. 선교 현장에서 리더쉽 이슈는 효율적인 복음 전파와 교회 건축에 가장 큰 방해물이 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도자가 되길 원하지 추종자나 종이 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종으로서 지도자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만약 그렇다면, 너의 주요 선생인 내가 너희들의 발을 씻겼으니 너희들도 반드시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야 한다.”(13:14)

 

위대한 정치가이자 선교사인 존 모트(John Mott)는 한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너희 중 가장 위대한 자가 되려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 의심할바 없이 리더쉽이란 최대한의 섬김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것을 심중에 두셨다고 생각합니다.”

 

AICOME 88의 선교 경영 웍샵에서 이런 문구를 보았습니다. “종의 자세의 성경적인 모델은 선교 리더자가 반드시 따라야 할 것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많은 인도 토착선교에 결핍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요구 때문에 젊은 선교사들은 종종 그리스도를 닮은 종의 신분된 모델을 따르기를 거부합니다.

 

종으로서 선교사 - 지도자

기독교 지도자로서 선교사는 하나님의 종이 될 뿐아니라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들에게도 종이되어야 합니다. UESI의 사무총장으로서 20년을 섬긴 P.T. 찬다필라(Chandapilla)는 설명합니다. “기독교 지도자의 지위와 역할은 종의 자세에서 시작됩니다.” 이 말이 지적하는 것처럼 기독교 지도자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된 결과 그는 신자든 비신자든 다른 사람의 종이 됩니다.

 

선교일선에서 선교사는 현지인들이 사회 경제 교육적인 배경이 자신보다 낮기 때문에 그들을 다스리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심지어 현지인 장로와 전도자조차 선교사에게 종종 무시받기 일수 있습니다. 선교사가 그들을 섬기는 대신 사역과 선교의 유리한 점을 차지하고 섬김을 받습니다. 그 같은 태도와 행위는 종이 되신 그리스도의 성품에 반대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영적권위란 말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켄 나나칸은 이것에 대해 충고합니다. “영적인 권위는 단지 한 부분입니다. 종의 자세는 다른 한 부분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잃은 자에게 심판을 선포하는 거만한 대주교같이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로 존재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선교사는 항상 선교일선에서 이방인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현지인을 섬기기 위해서 그는 잠시 머물고 일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토착화가 되는 즉시 그는 반드시 떠나야만 합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바꾸어야 하며 지역 기독교인의 지도하에 일하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단지 종의 역할을 받아들이기를 기뻐하는 선교사들만이 선교일선에서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허버트 케인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모든 현지 교회가 그들의 자치가 인정되어지지 않거나 선교사들이 현지인들의 리더쉽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다면 조만간 모든 활동이 정지될 것이라는 것은 오래전 내려진 결론입니다. 그러나 종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기뻐하는 선교사들은 언제나 환영 받을 것입니다.”

 

상호간의 복종을 요구하는 종의 자세

종의 자세는 상호간의 복종을 요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아버지의 뜻에 항상 공손히 복종했듯이 우리가 서로 상대를 높이 섬기게 된다면 이것이 종된 자세의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이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권면합니다.(5:21) 존 스토트는 복종은 사회의 신성한 질서에 대한 겸손한 인식이다. 우리가 피차 복종하는 것은 주로서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께서 종으로서 자신을 낮추신 그리스도에 대한 공경이다." 나이, 경험과 교육이 종된 자세로 복종하는 것을 기피하는 어떤 이유가 될 수가 없습니다.

 

타인을 섬기는 것을 요구하는 종의 자세

종의 자세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을 포함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섬기는 자로서 너희 가운데 있으니”(22: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로서 예수님은 섬기는 예를 세우셨습니다. 이 가장 미천하고 겸손한 발을 씻는 일을 하심으로서 예수님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어떻게 섬겨야 하는 본을 보여 주시고 지상에서 그의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요구하십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3:1,15)

 

에수님은 우리의 지도자이십니다.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광고하거나 방어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둘 다 예수님의 리더쉽 삶의 형태의 일부였습니다. 자기 광고는 사람을 교만하게 인도하고 자기 방어는 두려움으로 이끕니다.

영적 지도력은 섬김의 댓가로 지불됩니다. 테드 암스트롱이 지적한 것처럼 영적인 지도력은 다른 이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이 성품을 가진 자들을 찾습니다.” (왕하 16:9) 섬김의 값을 치룸이 없이 그 누구도 영적인 지도자가 되기를 바라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긴급히 필요한 일중 하나는 좀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기 개인의 일보다 그들 공공의 모임의 유익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정부 공무원이 되는 것입니다.

 

리차트 포스터(Richard Foster)는 자기의와 진정한 섬김의 차이점을 아래와 같이 도표로 설명합니다.

 

자기의에 기초한 섬김

1) 인간의 노력에서 나온다

2) 큰일을 하는데서 감동된다

3) 외적 상급이 요구된다

4) 대상을 선별한다

5) 분위기나 기분에 의해서 좌우된다

6) 일시적이다

7) 일의 진행상황에 예민하지 않다

8) 모임을 분열시킨다

 

진정한 섬김

1) 깊은 내면의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나온다

2) 큰 섬김으로부터 작은 것을 구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3) 은밀히 행하는데서 만족을 얻는다

4) 사역지 안에서 모든 사람이 섬겨야 할 대상이다.

5) 필요에 따라 단순하고 신실하게 이루어진다

6) 삶의 방식이다

7) 자유롭게 진행하되 섬김을 억제할 수도 있다

8) 모임의 그릇을 이룬다

 

3. 진정한 겸손

가장 바람직한 자질 - 겸손

진정한 섬김은 또다른 중요한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의 미덕인 진정한 겸손으로 인도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자신을 낮추셨다고 말합니다. 포스터는 어떻게 섬김은 겸손을 낳는지를 말합니다. “모든 고전적인 영적 훈련들에 있어 섬김은 겸손의 성장에 가장 도움을 주어왔습니다.”

 

겸손의 가치에 관하여 암스트롱은 하나님의 가치의 척도에서 겸손은 아주 높은 위치에 서있습니다. 그는 항상 겸손을 내세우는 자를 사랑했습니다.” 그 같은 자질은 선교사의 삶에서 언제나 자라나야 합니다.

 

겸손에 관한 성경적인 가르침은 역동적이며 분명합니다. 우리는 아래와 같은 겸손에 대한 말씀을 봅니다. “주는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147:6),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십니다.”(3:34) “그러므로 너 자신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아래 겸손히 서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를 정하신 때에 높이시리라.” (벧전 5:6)

 

세례 요한은 그같이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겸손할 수 없는 많은 이유를 가졌습니다. 그는 매우 성공적인 전도자 였습니다. 그는 거대한 명성을 가졌습니다. 그는 강력한 전도자였으나 겸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에 관하여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 자신이 종으로서의 자신의 신분이상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신을 인식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고백은 자기중심적인 아닌 그리스도 중심입니다. 그는 제자들과 그의 추종자들을 예수님에게 빼앗겼습니다. 모든 선교사들은 세례 요한과 같은 겸손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의 동역자에 관하여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3:30)라고 말하기를 준비해야만 합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유익이나 개인적인 인기를 모으는데 자신의 명성을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재능, 사역에 있어서의 성공으로 인한 자랑은 선교사들이 받기 쉬운 유혹이며 사람들 사이에 대중적인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대신에 자신들의 왕국을 세우는 것으로 인생을 마감하고 말 것입니다.

 

가장 위대했던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약점을 인정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강함이 아니라 약함으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쓸모가 있었기에 주님에게 쓰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중국 내륙 선교의 창시자 허드슨 테일러는 약함을 통하여 강하게 되는 비결을 안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선교의 영향을 보완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묻자 허드슨은 이렇게 답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두루 살피시면서 그 분의 일을 할 수 있기에 충분한 연약한 자를 찾고 계셨고 나를 발견했을 때 그 분은 그는 충분히 연약해. 그가 할 수 있을거야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영적인 거장들은 연약한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받아들였기에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선교 사역지에서 선교사는 종종 연령, 경험, 역량이 동일한 동역자들과 일하게 됩니다. 선배임이 분명하고 능력이 출중한 사람 앞에 겸손해 지는 것은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후배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 앞에 겸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의 겸손에 대한 진정한 척도는 그들과 동등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 에서 드러납니다.

 

동역자의 역할을 기꺼움으로 감당하기

새로운 동역자 중 선교사는 훈련을 통하여 장래 지도자들로 성장할 현지 새신자들, 전도사, 장로들과 일해야만 합니다. 새롭게 구성된 회중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능력은 선교사가 그들의 형제요 동역자로서 일하고자 준비된 정도에 좌우되고 이것은 높은 수준의 겸손을 요구합니다.

 

선교사의 삶과 사역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의 그룹사이로 개척자로 갑니다. 둘째로 교회를 세운 후 그 교회의 목사나 지도자가 됩니다. 셋째는 토착 교회가 세워졌을때 지역 지도자와 더불어 일하는 동역자가 됩니다. 선교사는 개척자나 목사가 되는 것이 동역자가 되는 것보다 쉽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현지 지도자와 같이 사역하려면 진정한 겸손이 필요합니다. 성숙한 선교사는 동역자로서 뿐만 아니라 사역지의 다른 선교 단체와 교회들과 얼렁장사를 하는 자세로 일해야 합니다. “선교지에 있어 얼렁장사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진정한 얼렁장사는 아래 다섯 가지 요소를 포함합니다.

1. 공통 대상 - 나아갈 방향

2. 선명한 의사소통 - 따라야 할 보고 체제

3. 권위 구조 - 받아들여야 할 행정 절차

4. 진정한 의무감 - 가져야할 책임성

5. 신실한 감사 - 감사할 이에 대한 인정

 

선교사는 반드시 제2인자가 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중국 첫 개신교 선교사였던 로버트 모리슨이 쓴 것 같이 그런 사람을 보기가 힘이 듭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선교에 가장 큰 과오는 둘째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유익함이 넘치고도 넘치지만 그런 사람을 볼 수 없었습니다.”

 

사도 바나바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도행전 13, 14장에 나오는 것처럼 사도 바울에게 기꺼이 첫 자리를 내어주고 둘째를 차지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선배요 경험 많은 지도자로 1차 선교 여행팀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보다 재능이 많고 능력있는 사람이었으며. 이것을 본 바나바는 사도 바울에게 지도자의 자리를 양보하고 자신은 둘째로 물러났습니다. 그 결과 보다 효과적이고 열매 맺는 사역이 되었습니다. 바나바처럼 선교 지도자는 그의 동료 선교사들의 은사와 능력을 인정하는 겸손이 요구되고 자신의 책임을 공유해야 합니다. 혼자서 다 하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바울 자신도 또한 높은 차원의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사도라 불릴 수 없는 지극히 작은 자라고 고백했습니다. (고전 15:5) '나는 사도중에서 지극히 작은자라'.(3:8) '예수님은 죄인의 괴수인 나를 구원하시러 이 땅에 오셨도다'. (딤전 1:13) 오스왈드 샌더스(Oswald Sanders)겸손은 해가 갈수록 깊이를 더해가며 자라나는 자질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연만하고 경험이 풍부한 선교사들과 선교 지도자들을 위한 가르침입니다. 그들은 반드시 겸손해야 하며 그들을 따르는 후배 선교사들의 모본이 되어야 합니다.

 

4.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복종

복종으로 인도되는 겸손

그리스도를 닮은 겸손의 성격은 하나님에게 이의를 제기치 않는 복종의 삶으로 인도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던우리 주님의 삶 안에서 이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의 순종이 그를 십자가와 죽음으로 이끄는 것을 알고서도 그의 아버지에게 복종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가 비록 하나님의 아들일지라도 그는 하나님께 순종의 값어치를 경험하는 것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웠습니다.(5:8) 그리고 세상의 죄를 위해 슬픔, 고통, 죽음의 잔을 들이키기를 기뻐함으로 이를 증명했습니다.

 

복종은 항상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선교일선의 사람은 완전한 복종의 값을 치루기를 기뻐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그의 일꾼들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즉각적이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순종을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미루는 순종은 불순종이기 때문입니다.

 

중국 내지 선교의 기초를 놓는 시기에 허드슨 테일러는 그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께 복종한다면, 책임은 주님에게 있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 위대한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를 어디로 이끄시던 주님은 우리의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복종하고 그가 우리를 이끄시는 곳으로 가면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것이 주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1990년 주님께서 실라와 나를 비하르로 가라고 명령하셨을때 순종했습니다. 거기에는 규칙적인 후원도 없고 정착할 수 있는 곳도 불분명했으며 어떤 사역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많은 부정적인 요소들이 산적해 있었으나 우리는 순종했습니다. 1991년 비하르에 도착했을 때 또 다시 많은 문제들에 직면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낙담시키며 비하르에 대한 부르심에 회의를 심었습니다. 당장 사역을 중지하고 비하르를 떠나도록 종용했습니다. 우리는 주저앉아 비하르에서 사역을 할 수 없는 열 가지 부정적인 이유들을 적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그 모든 요소들을 다 제거하고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셔서 그 사역안에 우리를 정착시키실 때까지 6개월동안 그 문제들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비하르가 집과 같습니다.

 

복종 - 하나님과 교제에 있어 기본 요구 사항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의 일부로서 순종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엔드류 머레이(Andrew Murray)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우리가 보건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지극히 기쁘시게 한 그리스도의 순종은 정말로 우리의 현 위치와 전 행로의 성격이 되어야 합니다.”

 

복종을 떠나서는 하나님과 교제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14:21) “지도자의 복종의 삶은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됩니다. 그들은 지도자들의 삶을 보고 좀 더 큰 높이의 헌신과 복종에 도전하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복종은 사람의 권위에 대한 복종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복종은 우리의 지도자와 기관내 다른 사람에 대한 복종을 포함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는 권위는 없다고 믿으며 현존하는 권위는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13:1)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선교 일선의 선교사는 현장의 행정 책임자에게 복종하기를 준비해야만 합니다. 권위를 가진 사람이 죄가 없는 것도 아니요 초인적인 존재도 아닙니다. 그들은 실수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불순종에 대한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때때로 선교사들은 나는 하나님께 복종하지 사람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라운드힐(Roundhill)이 지적한 것처럼 크리스천 사역자들 사이에 생기는 공통적인 문제입니다. “우리의 대부분은 종종 나아갈 바를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주님 자신에 의해 인격적으로 인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참기 힘든 것은 주님은 그의 종들 중 한 사람을 통해서 그 방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선배선교사, 사역지 담당 총무, 또는 사역지 행정담당자와 같은 그의 사람을 통해 순종하도록 명령을 주시고 선교사는 하나님께 복종하듯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복종은 신실함을 요구합니다.

복종은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을 따르는 신실함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끝까지 참도록 요구합니다. 우리의 주님도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 같은 자질은 만약 선교사가 선교일선에서 직면하는 모든 압력들을 견디어 내는데 있어 필수적인 것입니다. 전적인 굴복, 희생적인 종의 자세, 진정한 겸손과 완벽한 복종과 같은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은 그들로 선교 현장에서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견뎌내는데 큰 도움을 줄 것 입니다.

 

다음은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으로 자라 가는 긴 여정에 있어 우리의 기도의 노래가 되어야 합니다.

 

내안에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이 있게 하소서

놀라우신 자비, 사랑과 정결함 등

예수님의 아름다움이 내 안에서 보여질 때까지

당신의 신성함이 저의 모든 본성을 제한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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